동아시아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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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中國史 | ||||
기원전 1600 ~ 기원전 206 | 기원전 206 ~ 907년 | |||
907년 ~ 1644년 | 1616년 ~ 현재 |
중국의 역사 1616년 ~ 현재 | ||||
1616 ~ 1912 | 후금(後金) 다이칭 구룬/대청(大淸) ,태평천국(太平天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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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 | 중화인민공화국(中华人民共和国) | 중화민국(中華民國) |
1 타이완 섬의 역사
타이완 섬은 중국 대륙의 왕조들 외에도 스페인 제국, 네덜란드 제국, 일본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자세한 건 타이완 섬/역사 문서 참고.
2 중국 대륙에서의 역사
2.1 북양정부
건국 초기의 국기, 1912년~1928년. 오색기라고도 한다.
청나라의 멸망 뒤 청의 뒤를 이어 건국되었다. 수도는 난징.
일단은 청의 뒤를 이었다고 하지만 실제 건국이 공식적으로 선포된 것은 1911년 10월 10일(쌍십절) 신해혁명 때였다. 중화민국이 건국되자 당연히 청 정부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한 인물을 데려오는데 그가 바로 위안스카이였다. 정계에서 쫓겨났던 위안스카이는 흠차대신으로 복귀하지만 의회 개원, 책임내각 구성 등 혁명의 조류를 어느 정도 반영한 요구를 내걸고 조건부로 복귀해 혁명군과 전투를 벌였다.
당시 미국에 가있던 쑨원은 갑작스런 혁명에 급히 귀국해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이 되었다. 하지만 향신(지주) 계층이 위안스카이 지지를 선언하고, 군사력이 워낙 별볼일 없어 북양군(청의 주력 정규군)에게 형편없이 두들겨 맞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쑨원은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는 얼마 지나지도 않아 위안스카이에게 총통직 이양을 약속하며 겨우 그를 중화민국 체제 안에 묶어둘 수 있었다. 하지만 위안스카이는 안으로는 국민당을 탄압하고 밖으로는 일본의 침략에 무기력하게 대처하여 점차 반발을 샀다.
위안스카이가 황제 취임과 제정 복귀를 노리다가 실패해서 화병으로 죽어버리고, 그 때까지도 남아있던 청 왕조의 잔당도 쫓겨나자 중화민국은 그제서야 중국의 정통국가가 되었지만 실상은 군벌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름 뿐인 국가였다. 당시 정통성을 잇고 있던 국민당은 중국 남부 군벌들에게 불려갔다가 쫓겨나고, 다시 불려다니는 안습한 생활만 반복해야 했다.
2.2 국민정부
국민정부를 참고. 1928년에 설립되어 1949년까지 존속했으며, 국민당이 사실상의 국가정당 역할을 맡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