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

Steam Engine

외연 열기관으로, 수증기가 가진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시켜주는 기관을 뜻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동력기관으로 현재까지도 지구상 모든 전력의 80% 가량을 생산하는 것이 증기기관이다.[1]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이용하는 왕복식 증기기관과 터빈의 회전운동을 이용하는 회전식 증기기관 두 가지가 있는데, 왕복식 증기기관은 초기의 증기선이나 증기기관차에 쓰였으나 현재 거의 쓰이지 않으며, 회전식 증기기관은 발전소 혹은 대형 유조선, 항공모함 등 큰 출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한해 사용되고 있다.

사실 고대문명때부터 끓는 물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방식은 많이 구상 되어왔고, 일부 구현된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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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 수학자 헤론[2] 이 발명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증기기관인 '아에올리스의 공(Aeolipile)'은 물그릇에 있는 물을 끓이면 파이프를 타고 올라가 분출되는 증기에 의해 회전하는 구형 장치였는데 이걸 동력으로 쓸 만큼의 운동에너지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인류 최초의 증기기관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전의 문이 자동으로 열리도록 설계된 증기기관 같은 것도 존재했지만 어디까지나 일상생활이 아닌 신전 같은 특수한 장소에만 사용되었다. 이유는 번거로운 증기기관보다 노예가 더 싸고 편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증기기관 설계하고 만드는 기술자 인건비+재료값+연료값 >>>>(넘사벽)>>>> 노예 밥값 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증기기관은 전문 기술자가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지만, 노예는 아무나 채찍질만 하면 사용할 수 있으니...한국식으로 바꿔 풀면 이것은 군대에서 제설기나 제초기 대신에 시급 300원도 안되는, 몇년 전만 해도 일당 500원에 불과한 병사들을 부려먹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3] 물론 신전에서야 사람이 손도 대지 않는데 문이 열리니 '우와 신기하다'면서 관광객이 몰려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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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신전 자동문 메카니즘. 신전의 입구에 있는 성화에 불을 붙이면 증기기관이 가동해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식이었다.

다만 윗 내용에서 말하듯 단지 인건비가 더 싸서 증기기관이 이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저 시절, 그러니까 고대 그리스 시절에는 석탄과 같이 고열량을 낼 수 있는 연료가 사용되지 않았다. 밑에서 이야기될 셔먼 호에서도 그렇지만, 단지 기계의 원리만 있다고 해서 그게 생각만큼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없다는 소리다. 물론 그 시절 석유란 걸 알고 있었긴 했지만 석유를 추출하여 이용할 수 있는 화학이 발달되지 않았을 뿐더러 차라리 삼림 자원을 이용하는 게 더 쌌으니.....

이후 1500년이 지난 16세기 중세 유럽에서도 원시적인 방식의 간단한 증기 기관이 등장했다가 1663년 에드워드 서머셋 우스터 후작이 개발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공업용 증기기관이 등장한다. 후작은 이걸로 광산채굴업을 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기도 전에 사망한지라 무산되었고, 이후 1698년 토마스 세이버리라는 자가 우스터 후작의 증기기관을 개량한 광산채굴용 증기기관을 만들었고, 1705년 토마스 뉴커먼이 대기압식 증기기관을 발명, 1765년 제임스 와트가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개량해 현재와 같은 모양의 증기기관이 등장한다. 그리고 10년후인 76년 첫 상업용 증기기관이 발명되며 인류 역사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국사에는 증기기관과 관련해 아주 재미있는 기록이 하나 있는데, 흥선대원군가라앉은 제너럴 셔먼호를 건저내서 증기기관을 복제하려고 했었다. 10개월 만에 복원하기는 했으나, 야사에서는 아주 느리게 움직여서 사실상 실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승정원일기는 시범운행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으며 화포 시범 사격도 성공했다고 한다. 일단 배가 처음에 느렸던 주된 이유로는 기관실에 땔감으로 넣은 것이 석탄이 아닌 숯이었고 숙련된 선원이 없었던 점이 컸다, 그리고 증기선은 예열을 하고 나서나 제대로 속도가 나오는데 예열도 안하고 떌감 넣자마자 움직이려고 해서 그렇게 느리게 간것이었다고 하는 말이 있다.

한편 증기기관 기술은 의외로 대포 제작과 연관이 깊다. 그 이유는 바로 증기기관의 핵심부품인 실린더 때문. 쓸만한 실린더를 만들려면 충분한 정밀도와 강도가 필요한데, 대포를 만들던 기술을 응용해서 실린더 제작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대포야말로 단행정(...) 열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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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 모형

증기기관의 등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줬는데, 우선 산업 혁명의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사람이 할 일을 기계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은 러다이트 운동을 벌여 기계를 부수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시켜 공산주의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증기기관은 많은 영향을 줬지만,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철도. 사람이 손으로 끌거나 말이 끌던 궤도마차는 증기기관차로 발전했고, "철도"라는 근대적인 육상교통수단의 시발점이 되었다[4]. 증기 기관차는 다음 세대의 동력기관인 석유/디젤 기관차가 등장하기까지 수많은 파생형을 만들며 철도라는 교통수단의 엄청난 발전을 이끌었다. 로켓 호와 트레비딕의 기관차에서부터 LNER A4, PRR S1[5], Big Boy까지 실로 증기기관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기세로 개발된 역작들이다.

어쨌거나 이후 300년이 지나도록 현재도 생활의 필수요소다. 어지간한 동력계는 이 증기기관의 모델에서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막 시커먼 연기를 뿜뿜 뿜어내면서 파워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반한 덕후(...)들도 상당히 많아서 스팀펑크 같은 장르가 발생하기도 했다.

연료를 태워 보일러를 데우고, 보일러가 만드는 증기가 동력을 발생시킨다는 특유의 구조상 동력발생에 일체 전기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연료만 제때제때 보급해주기만 한다면 EMP가 터져 전자기기들이 전부 먹통이 된다 해도 증기기관은 아무 문제없이 움직인다 오오 증기기관 오오!

1차~2차대전 시절에는 가솔린 자동차 대신 증기자동차와 유사한 형태의 목탄차가 사용되기도 했는데 가솔린 자동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효율이 떨어지는 편이었고 차량에 설치된 가스 포집장치의 부피 문제로 인해[6] 2차대전 이후에는 거의 사장되어 현재는 보기 어려워졌지만 북한에서는 아직 자체적으로 생산하거나(승리 58 트럭 등) 일제시대에 일본이 쓰다 남겨둔 목탄차를 손봐서 사용중이다.

실마릴리온에서는 사우론이 개발했다고 한다. 오오... 하지만 누메노르 멸망과 함께 죄다 사라져서, 수천년 후에야 우리가 아는 역사 속의 증기기관이 재발명되었다고.(…)[7]
  1. 원자력 발전 역시 증기기관으로 전력을 생산한다. 보일러 대신 원자로를 쓴다는 점에서 화력 발전과 다를 뿐.
  2. 헤론의 공식으로 유명한 그 헤론
  3. 흔히들 어린이용 도서에선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산업혁명이 시작된걸로 묘사한다. 특히 이공계에선 특정한 기계의 발명 혹은 과학적 원리의 발견으로 바로 사회가 변화한다는 과학기술 만능주의적 사고가 많이 보이는데, 헤론의 증기기관 일화에서 보듯이 잘못된 것이다. 어떠한 과학기술이라도 정치체제, 사회적 요구, 경제적 조건과 맞지 앉는다면 사장되기 마련이다.
  4. 증기 기관을 이용한 자동차도 여러 번 시도되었지만, 기관 자체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대다수의 증기자동차는 20세기 초반쯤 가면 거의 사장되었고 현재는 일부 업체를 빼면 거의 만들지도 않고 사용하는 사람도 보기 힘들어졌다. 철도는 그 특성상 증기 기관의 무게를 충분히 견딜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5. 증기기관차 문서의 텐더기관차 예시로 올라온 T1과 비슷한 기종이나 저 기종은 미국에서 전 세계를 통틀어 단 1대만이 제작 운용되었으므로 특별하게 개별 문서가 존재한다.
  6. 포집장치가 내장형으로 되어있는 경우도 있지만 외부에 노출된 형태가 더 일반적이다.
  7. 설정상 톨킨의 세계관은 현대 지구의 먼 과거이다.아 그래서 호빗이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