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널드 루엘 톨킨

CBE
파일:Attachment/존 로널드 루엘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jpg
필명J. R. R. 톨킨 (J. R. R. Tolkien)
본명존 로널드 루엘 톨킨 (John Ronald Reuel Tolkien)
국적영국
출생1892년 1월 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블룸폰테인
사망1973년 9월 2일
학력옥스퍼드 대학교 영어언어학
직업소설가, 교수, 언어학자
배우자에디스 브랫 (1916~1971)
자녀크리스토퍼 톨킨
서명
"반세기 남짓한 작업 기간에, 어떻게 한 인간이 민족 하나가 일구어낼 만한 창작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가?" - 가디언

1 소개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 중 하나.
판타지의 위대한 창조주이자 아버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 분보다도 위대한 작가로 불리우는 사람.

소설반지의 제왕》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보통 'J. R. R. 톨킨'으로 줄여 부른다. 판타지 소설계에서 그의 업적은 말할 수 없을 정도라서, 그가 만든 방대한 설정은 이후의 소설·게임 등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판타지의 아버지라고 봐도 될 정도다. 일부 열성 톨키니스트들에게는 거의 신앙 수준이다. 1972년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을 받았다.[1]

2 일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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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모든 톨킨 자료들이 통합되어 모이는 페이지로, 톨킨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 또는 재미있거나 참고할 만한 일화들을 소개한다. 아래의 '대표 작품들'로 가면 역시 이런 형식으로 된 대표 작품 소개를 볼 수 있다.

3 소설가로서의 톨킨

판타지 장르의 절대적인 본좌

톨킨 이후의 대부분의 판타지 창작물은 그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톨킨의 세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을 추구한 거장들도 존재하지만, 흔히 '판타지' 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들은 상당수가 톨킨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그냥 쉽게 말해서 엘프, 드워프 나오면 톨킨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돋네

톨킨은 오랜 이민족들의 침입과[2] 기록 미비로 잃어버린 영국의 신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고자 하였으며, 관심이 많던 유럽, 아랍 등의 신화적 존재들을 일일이 정리하고 그 이미지를 창조하여 자신의 세계에 도입, 그만의 새로운 신화, 레젠다리움을 만들어내었다. 고대 지구인 아르다를 배경으로 수많은 존재들의 흥망성쇠가 펼쳐지는 이 인공 신화 속에서는 물론 실제의 역사와 연결될 수 있는 수많은 연결 고리 등이 즐비하여, 특히나 그의 전문이었던 언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3][4]

게다가 분량 뿐만 아니라 디테일도 상당한데, 반지의 제왕을 비롯하여 자신이 쓴 글들의 번역을 위해 '각국 언어별 번역 지침'을 작성해둔 터무니 없는 양반이다(톨킨 번역지침 참고). 그리고 그 지침에 따라 '성큼걸이' 등으로 번역된 책은 일부 '원서론자'들에게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언어지침이 작성된 이유가 뭔고 하니 자신이 쓴 반지의 제왕, 호빗, 실마릴리온 3부작은 자신이 '번역'한 것이지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5] 특히 반지의 제왕의 권말 부록의 '번역에 관하여' 목차에선 작가가 정말로 그 시대의 자료를 영어로 번역했다고 가정하고 짠 놀라울 정도로 세세한 설정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서부어[6]의 2인칭 대명사엔 '상대를 높이는' 형태와 '스스럼없는' 형태가 있는데, 호빗들이 사용하는 방언은 스스럼없는 형태만을 사용하는 형태였고 때문에 피핀곤도르에 체류했을때 곤도르인들 사이에서 피핀이 고위급 인사라는 루머가 나돌았다더라" 라는 설정이 있다. 그리고 이 정도로 세세한 설정들이 목차를 빼곡히 채울 정도로 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7]

그는 결국 그것을 정리하지 못하고 죽었고, 정리되지 못한 원고들은 셋째 아들이며 편집 작업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톨킨이 정리하여 실마릴리온,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가운데땅의 역사서, 후린의 아이들 등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 크리스토퍼가 사망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원고의 정리가 계속 이뤄지는 이상 향후 책이 더욱 많이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4 학자로서의 톨킨

옥스퍼드 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반지의 제왕 작가이기 보다 영문학자로서 알려지기를 희망했고, 자신의 작품은 언어와 신화를 연구하면서 얻은 부산물로 여겼다고 한다. 이 점에서는 무협 작가보다 언론인으로 알려지길 원했던 김용과 비슷하다. 그런데 김용은 언론인으로서 어느정도 레벨인지 몰라도 톨킨은 세계 제일 옥스퍼드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분명 누구못지 않은 영문학자라고도 할수 있지 않나?

언어학자로서는 고대·중세 영어를 연구했는데, 『베오울프[8], 『가웨인경과 녹기사』[9] 등의 작품을 주로 연구했다.

그 외에도 톨킨은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작업에 참여했고, 『On fairy stories』라는 에세이집을 남겼으며, 고대 웨일스어를 복원하기도 했다.

덴마크의 신학자, 철학자인 쇠렌 키르케고르의 저작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와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5 인간으로서의 톨킨

학자의 이미지로 보아 책만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이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었다. 고대 영문학을 실감나게 가르친다면서 체인메일을 입고 노래를 부르며 강의실에 들어온 적도 있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길 좋아한 자상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구상한 옛날 이야기를 모아서 출판한 작품이 호빗이다. 하지만 그는 허구적인 이야기를 담은 자기 작품들이 왜 베스트셀러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가 됐는지는 평생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자기 작품에 대한 고집은 절대 꺾지 않았다. '반지의 제왕' 초고를 쓰는데 10년을 들였지만 교정에 다시 5년이 걸렸고, 이 때문에 출판사를 두번이나 갈았다.

아내 이디스 브랫과의 로맨스가 유명하다. 16세 때 3살 연상이었던 이디스 브랫과 한동안 사귀었지만, '개신교 여인과 부도덕한 연애를 한다'는 후견인 프랜시스 신부[10] [11]의 반대로 성인이 될 때까지 그녀와 일절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21살이 되던 생일날 약속한 구름다리 밑에서 재회했다. 이디스는 이미 약혼했지만 톨킨과 만난 직후 바로 파혼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결혼식을 올렸다.[12] 참고로 톨킨과 이디스의 관계는 실마릴리온에서 몇 안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난 베렌루시엔으로 나오게 된다. 실제로 톨킨 부부의 묘비에 에디스-톨킨 순으로 루시엔-베렌이라고 이름 아래에 새겨져 있다고 하니(...). 참고로 아내와의 사이에서 3남1녀를 두었다.

결혼 직후 톨킨이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13], 이디스가 그를 위해 발랄하게 춤을 추었다. 이를 본 톨킨은 실마릴리온의 전반적인 스토리와 이 작품의 여주인공 요정 루시엔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6 인종차별 오해

반지의 제왕이 인종차별 시비를 부른 것과 달리 톨킨 본인은 인종차별을 매우 싫어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아파르트헤이트를 뼛속까지 증오한다고 얘기했을 정도. 뿐만 아니라 백인우월주의자들인 나치에 대해서도 매우 증오했다.

반지의 제왕 같은 경우는 일부평론가들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백인우월주의가 드러나 있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집필 당시인 1950년대는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던 시기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들어 톨킨이 인종주의자라고 보는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오히려 엘프-호빗-드워프 등이 합심하여 악을 물리친다는 설정은 톨킨이 인종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문제는 오크를 "인종"으로 보느냐, 아니면 "악마"로 보느냐는 것. 오크가 단순히 "악마"라면 인간-엘프-드워프가 서로간의 반목을 잊고 함께 악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가 되지만 오크를 "인종"으로 보면 백인들끼리 서로 팀먹고 유색인종을 악마라고 부르며 싸운다고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지의 제왕의 인종차별 시비를 보면 오크가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묘사되어 흑인이나 동양인을 연상시킨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14]

다만,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크의 이미지를 몽골에서 따왔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기는 하다. 이 때문에 고의는 아니지만 무의식에 인종주의적인 생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그에게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해도 영화에서 사우론의 군대와 그 동맹들이 아랍/페르시아 계통의 복장 및 병기를 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지라, 중동이나 아시아 사람 입장에서는 유쾌하지 못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근데 이건 아직도 유럽인들의 기저에 남아있는 무시무시했던 몽골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당장에 왕좌의 게임모 종족만 봐도...

오크만이 아니라 사우론 편을 든 인간들인 하라드림이나 이스터링들은 설정상 유색인종들이므로 이를 근거로 인종차별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실마릴리온에서는 배신자들과 싸우다가 충성스럽게 최후를 맞은 이들도 있었으니 미묘한 부분.

그러나 앞서 밝힌 바 있듯이 사실 톨킨은 인종차별을 혐오했다고 한다. 그의 고향 남아공에서는 당시에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 지인들 앞에서 자주 비판하곤 했다. 아직도 영국의 인종차별이 심한 것을 보면, 어쩌면 어지간한 현대 영국인들보다 더 나은 인식을 가진 것이었을지도... 하지만 당시 사회에 깊게 만연했던 인종차별 인식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을지도. 그나마 서구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덜하다고 볼 수 있는 미국에서 흑인이 백인에게 버스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체포된 일이 반지의 제왕이 쓰여지고 난 후의 일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대사는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후에 나온다. 당시에 미국도 이 정도였는데, 영국이었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참고로 톨킨은 작품을 알레고리적으로 쓰거나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지양했다.[15] [16] 60년대에 쓰여진 서문에서도 스스로 밝혔듯이 그는 이야기를 현실에 대한 어떤 은유나 시사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야기 그 자체로 사랑하고 쓰는 작가였다.

정리하자면 작가에게는 아프리카인이나 아시아인 등을 폄하할 의사나 악의는 전혀 없었지만 그런 그도 서양인으로써의 편견이나 시대 및 환경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고 보는게 적절한 평가라고 볼 수 있다.

7 수많은 일화들

7.1 그가 판타지에 미친 영향

반지의 제왕은 후대의 서구식 판타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전근대적인 시대배경의 에픽 판타지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톨킨의 영향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르크(오크)와 호빗, 엔트가 그의 창조물이며 엘프들과 드워프들은 그의 손을 거쳐 마침내 하나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정착하였다. 날개가 달려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장난치는 요정부터, 북구신화의 신화속의 신적 존재로 퍼져있던 엘프들은 완벽한 인간으로서의 모델이자 불멸의 수명을 지닌 고아한 존재들, 그러면서도 가운데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서쪽 바다너머 발라들의 대륙 아만을 그리워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으며, 드워프들 역시 땅의 미(美)를 알며 조각의 대가들이자 전투 때에는 요정들에 못지 않은 불굴의 전사들로 다시 태어났다. 그 외에도 발록을 창조해 냈으며 트롤을 일종의 요정 같은 성격에서 완연한 괴물로 바꿔놓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가장 메이저한 중세 판타지는 조금이든 많이든 모두 톨킨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영향권에 들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들도 있다. 어슐러 K. 르 귄이라거나 C.S. 루이스 같은 거장들이 그들.

7.2 C. S. 루이스와의 관계

나니아 연대기를 쓴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와는 친구사이였으며, 루이스가 주최하던 문학인 모임인 <잉클링스Inklings>에 함께 참여하기도 하였다. 처음엔 형인 워렌 루이스의 소개로 루이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루이스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925년 05월 11일 머튼 칼리지 회의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고 톨킨과 문학에 대해 대화하면서 "모든 문학은 서른살에서 마흔살 사이의 남자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를 들었다고 한다. 루이스는 톨킨에 대한 첫 인상으로 일기를 마무리했는데,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저 한두대만 날려주면 될 뿐'이었다(...). 그리고 '나니아가 반지의 제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네', '반지의 제왕은 루이스 덕분에 써진 것입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를 참조.[17] 그리고 톨킨과 루이스의 관계는 짧은 글로는 설명이 잘 안되므로 자세한 내용은 톨킨과 루이스의 우정 참고.#

톨킨은 루이스의 종교관에 대해서도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루이스는 성공회 신자이잖아? 자세한 것은 루이스 항목 참조.

8 작품 판권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의 경우 톨킨에게 저작권을 얻지 못한 제작자가 이름만 바꾸어 출시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개리 기각스는 공식 인터뷰에서 이를 기각부정했다. 데이브 아네슨 생애 중 공식석상에서 따로 코멘트를 한 적이 없었다. D&D 제작사인 돈법사는 톨킨과 관련된 부분을 일관되게 부정하고 있다. 저작권 소송에 여러번 당한 한 때문일까? 하지만 톨킨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나간 것은 사실. 심지어는 반지의 제왕 영화로 인하여 다시 D&D가 퍼져나가는 나라도 있다. 이스라엘 등 다국이 해당된다.

톨킨의 작품들에 대한 판권은 크게 두곳의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하나는 톨킨의 후손들이 세운 톨킨 에스테이트와 지금은 타계한 명 프로듀서 사울 자엔츠[18]가 세운 톨킨 엔터프라이즈로 톨킨 에스테이트는 캐릭터를 비롯한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울 자엔츠는 영화와 머천다이징 권한을 1969년 톨킨으로부터 사들인 후 계속 보유하고 있다.

9 단어 및 언어 사용

한국의 양판소, 게임, 인터넷 소설들이 톨킨의 창작물과 순수 오리지널 이름들을 멋대로 갖다 쓰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19] 따지고 보면 양판 깔 것도 없이 업계에서 이름 높은 사람들도 비슷하다.[20]

"호빗(Hobbit)"은 톨킨 재단에 판권이 있는 단어이므로 함부로 사용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유사단어로 대체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이외에도 미스릴 등 톨킨이 창조한 단어는 많다...라고는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퀘냐 또는 신다린을 소설에 사용하고 싶은데 저작권은?'에 상세하게 나와있다. 톨킨 언어학 관련으로는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헬게 파우스캉거가 직접 답변을 해 준 것이기에 신뢰도는 100%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작권법으로 보호가 된 단어가 무엇인지 알아본 후, 괜찮은 경우 써도 된다'이다. 톨킨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당연히 좋지 않고(이건 말할 것도 없이 표절이다!), 캐릭터 이름이나 장소의 이름 같은 경우는 멀티미디어 컨텐츠의 경우 이름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마찰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멀티미디어 컨텐츠 측,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 온라인도 사이트 앞 화면에 보면 각 '고유명사'들에 저작권 표시가 되어있다. 일일히 단어들을 구입한 것이기 때문에 톨킨 재단 자체에서 클레임을 걸지 않더라도 2차 구입자가 클레임을 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단순히 이름 몇 개를 갖다 썼다고 재단하고 직접 소송이 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퀘냐와 신다린을 이용하여 직접 단어를 창작하는 경우도 당연히 소송에 걸리지 않는다. 자기 창작이므로.

ex) D&D에서 걸렸다가 수정한 것: 호빗하플링, 발록발러, 미스릴 → 미스랄, 헬메이드 → 헬브라이드 엔트 → 트렌트 등 다수. 이 부분은 찾는대로 추가요망.

10 사어 발굴

톨킨은 몇몇 사어화되었던 단어들을 이들이 계속해서 쓰였다는 가정 하에 현대적인 문법을 주어 복구시켰는데, 이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요정(엘프)과 난쟁이(드워프)이다. 이는 톨킨의 부록에서 직접 밝히고 있는 바인데, 엘프와 드워프의 경우 그 단어가 F로 끝남에도 불구하고 오랜기간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었던지라 elfs, elfin, dwarfs라는 식으로 사용되었다. 톨킨은 이를 "언어학자임에도 과감한 실수" 라는 식의 이야기와 함께 은근슬쩍 elves, dwarves로 표기하였다.[21] 이 덕분에 원래는 없던 고유형용사 elven같은 단어도 톨킨을 기점으로 쓰이고 있다(보통 사전에는 안나온다. elven chain mail이 11개의 사슬 우편물로 번역되는 이유).

재미있는 것은 이 때문에 책이 인쇄되면서 저런 단어들이 과잉 교정된 경우가 매우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Elves, dwarves가 elfs, dwarfs로 돌아간다거나, (톨킨이 최악으로 꼽은 것으로) elven이 elfin으로 바뀐다거나...

11 그 외 일화

  • 주변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글 쓰는 방식이 전혀 프로페셔널하지 않았다고 한다.
욕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특이하고, 완벽을 기하느라 효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줄거리를 다 생각해 놓고 줄거리 위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톨킨은 세계관을 먼저 설정하고, 상황과 사건을 설정한 다음 정말로 가상의 프로도를 출격시켰다. 말하자면 머릿속에서 가상 중간계를 만들고 시뮬레이션 돌리는 것으로 반지의 제왕을 써 내려갔다.이사람이 생각나는군 대부분 마음에 안 드는 결과가 나왔는데 그럴 때면 모든 이야기를 백지로 돌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 때문에 반지의 제왕 완결에 십 수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이는 C.S. 루이스와의 충돌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는데, 톨킨은 루이스가 책을 너무 성급하고 성의없이 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특히 기독교 관련 서적들.
  • 자신의 글에서 상징성을 찾아내려는 행위를 지극히 혐오했다. 사우론은 히틀러라느니, 자본주의라느니, 현대 과학이라느니 이렇게 말하는 평론가들을 너무 싫어했고 "그냥 이야기는 이야기로 읽어달라"고 부탁했다.[22]
  •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 입대한 참전 군인이다. 다만 입대한 해에 참호전을 치르다가 비위생적인 환경에 열병에 걸려 장기간 후방에서 요양해야 했다. 개전 당일 5만 8천명의 인명 손실을 낸, 1차대전 당시 가장 참혹했던 전투인 솜 전투에도 참전했다. 그렇다고 농땡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게 자그마치 18개월을 병마에 시달렸다. 톨킨이 빽으로 장기 요양을 할 만큼 막강한 보호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 이 정도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못 내보낸 것 맞다. 거기에 이 전쟁으로 친한 친구들을 잃어버린 끔찍한 경험이 있다. 영국인답게 네 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문학 클럽이 있었는데 그 중 두명이 전사했다. 두개의 탑에서 나온 죽음의 늪 부분은 이때 목숨을 잃은 친구들의 모습이 담겨있다고 했다. 당시 톨킨은 소위로 대대 연락장교였는데 참호독감(Trench Fever)에 시달려 후방으로 후송되었다. 하지만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르겠으나 톨킨이 영국으로 후송되자 마자 대대는 전멸했다.
  • 제2차 세계대전에는 자신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을 내보내야 했다. 그것도 공군 조종사로. 아들을 위해 호빗을 지었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아버지 톨킨에게는 하루하루가 끔찍한 나날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이 때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톨킨의 작품 세계를 완성시켜나가게 된다. 그리고 크리스토퍼는 나중에 아버지 사후 실마릴리온을 자신이 편집하고 보충해서 내게 된다. 이 당시부터 톨킨의 중간계 세계관에 크리스토퍼가 관여해 온 것을 생각하면 실마릴리온의 편집도 수월했을 것이다.
  • 톨킨의 작품을 감명깊게 읽은 독일의 편집자가 독일어 번역을 부탁하면서 아리아인 인증을 요구하자, 처음에는 노발대발했다가 나중에는 답장에 "자신의 조상 중에서 아리안은 없지만, 만약에 자신의 조상 중에 유태인이 있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라면 아쉽게도 그 축복받은 이들이 내 조상 중엔 없는 것 같다"라고 디스한 적도 있다. 이건 당시 나치 독일이 출판사에다 저자가 비유태인임을 확인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 톨킨이 태도를 좀 누그러뜨리긴 했다. 위에도 나와 있지만 톨킨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모두 끔찍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한 전쟁에는 자신이 참여해 생사의 기로를 오갔고, 다른 전쟁에는 아들을 내보내고 노심초사해야 했다.
  • 세계대전에 대한 경험은 어느 정도 그의 작품에도 반영이 되어 있어서 고대 서사시에 가까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현대적인 묘사를 많이 보여준다.
<반지의 제왕> 후반에서 메리가 마술사왕의 발목을 찔렀던 팔이 평생 불편했다거나, 프로도가 매년 다쳤던 계절마다 앓아눕는 모습은 PTSD나 부상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참전용사들의 모습과도 일치하며, 작품에 등장하는 전쟁터의 모습 또한 사방에 죽음이 널려 있다가 예기치 못한 순간 갑자기 닥쳐오는 등 현대전에 가까운 이미지가 많다. 이런 디테일 이외에도 용이나 나즈굴을 비롯한 항공전력의 위력과 공포에 대한 묘사, 팔란티르로 대표되는 정보전의 개념도 기존의 전설과 신화, 환상문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
  • 아내가 될 사람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권했을 만큼 가톨릭 신앙이 깊은 사람이었다. 가톨릭용 성경 역본인 Jerusalem Bible 편찬[23]에도 참여했을 정도. 실제로 가톨릭용 성경 중 Jerusalem Bible이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데 아무래도 문학작가인 톨킨의 기여 때문인듯.
  • "영어의 탄생"에 따르면 톨킨은 1919년부터 1년간 옥스포드 영어사전(OED, Oxford English Dictionary)의 부편집장 자리에 있었고 W부분을 맡았으며, W로 시작하는 단어들의 정의에 대해 고심한 자료가 남아있다고 한다. 당시 영어사전 편집장은 헨리 브래들리.

12 최신 소식

2012년부터 호빗의 실사영화 시리즈가 차례차례 개봉 중이다.

2013년 톨킨 본인을 다룬 전기영화가 제작에 들어간다는 뉴스가 나왔다.

2014년 5월 28일, 톨킨이 직접 반지의 제왕을 설명한 녹음본이 발견되었다. '놀랍다'

2015년 '쿨레르보의 이야기'라는 신간이 출간되었다.

13 그 밖에 끼친 영향

메탈밴드 블라인드 가디언이 톨킨의 작품을 자신의 곡에 많이 써먹었다. 정규앨범 중 하나인 Nightfall In Middle-Earth는 아예 통채로 실마릴리온의 내용으로 앨범들을 채웠으며 이 앨범은 블라인드 가디언의 앨범 가운데서 손꼽히는 수작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앨범들의 곡 대부분이 톨킨의 작품들에서 모티브를 따오고 있다.

그 밖에 유명한 심포닉 블랙메탈 밴드 Summoning[24], 핀란드의 Battlelore, 슬로바키아의 Orkrist 등 톨킨의 작품을 주제로 삼는(혹은 삼았던) 메탈 밴드들이 굉장히 많다. 내용상 톨킨과 관련이 없는 밴드도 반지의 제왕 등지에서 등장한 지명을 밴드명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Amon Amarth, Gorgoroth, Minas Morgul 등).

14 주요 작품

생전 작품

사후 작품

15 톨킨 저서의 판본들

톨킨이 쓴 책들의 참고할 만한 판본들. 모두 해당 링크를 타고 가면 된다.

16 팬덤

톨킨의 팬들은 보통 톨키니스트란 이름으로 지칭된다. 톨키니스트들은 여타 다른 팬덤과는 그 규모와 깊이를 달리한다. SF쪽에서 팬덤의 본좌마블 코믹스, DC 코믹스, 스타워즈, 스타 트렉, 닥터후 등이 규모나 상업적인 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면, 톨키니스트들은 학문적, 철학적인 면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기행의 천국 영국에서는 톨킨학(Tolkienology)이라면서 세계관 연구를 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26] 열성팬들 중 고학력자가 많고 이들이 나름 개인적인 연구 활동(?)을 활발히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학문적으로 연구된 판타지 문학은 드물다.[27]

17 관련 사이트

  1. 기사 작위는 아니다. 자세한 설명은 대영제국 훈장을 참조.
  2. 지금은 그 이민족들이 영국의 국민의 일부가 되었다.
  3. 2~3개의 언어를 만들어냈으며, 단순히 만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언어 변천사, 문법, 발성법까지 세세하게 설정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고유명사들이 톨킨의 예상한 변이의 과정을 통해 실제 고대 게르만어 등의 고유명사와 연결되기도 한다. 이러한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언어 덕에 열성적인 톨키니스트들은 그가 만든 요정어로 대화도 하며, 톨킨이 창조한 언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4. 전반적으로 반지의 제왕이나 실마릴리온 등은 묘사가 적고 많은 부분을 요약해서 서술하는 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를 현대식으로 살을 붙인다면 무지막지한 양의 텍스트량이 쏟아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5. 반지의 제왕의 무대가 되는 가운데땅은 고대 지구고, 자신은 빌보와 프로도가 쓴 '레드북'을 번역했다는 말. 물론 설정상 그렇다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톨킨 문학은 '영문학'이다. 도서관만 가봐도 알 수 있다. 분류 카테고리에서 당당히 영문학 쪽에 서적들이 위치한다.
  6. 반지의 제왕에서 톨킨이 영어로 번역한 언어
  7. 이 설정들을 읽다 보면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손에서 다 엮인 거라는 것이 실감이 안 나게 될 것이다. 당장 실마릴리온만 읽어봐도...
  8. 톨킨의 재해석이 매우 유명해서, 거의 모든 영문학도가 이 작품을 해석할 때 그의 논문을 인용한다.
  9. 이 작품은 그가 20대일 때부터 최초로 현대어 해석했다. 그것도 두운(게르만 시가의 특징적인 운율법 중 하나로, 각 행의 맨 처음을 같거나 비슷한 발음으로 통일하는 것. 각운과는 반대이다) 하나하나를 전부 살려가면서.
  10.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모건 신부라고 하는데, 사실 풀네임이 프랜시스 재비어 모건이다.
  11. 사건의 발단은 연애질하다가 장학금을 놓쳐서이다.
  12. 가톨릭의 경우는 원칙적으로는 결혼은 가톨릭 신자끼리만 권장한다. 다만 이걸 지키는게 쉽지 않기 때문에 '태어날 2세'에게 가톨릭 유아 세례를 주겠다는 약속만 해준다면 비신자와의 결혼도 가능한다. 사실 이 약속 안 지키는 사람도 많다 톨킨 부부의 경우는 유아세례가 아니라 가톨릭 개종을 선택한 것. 참고로 톨킨이 가톨릭 신자인 것엔 사연이 좀 있다. 톨킨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죽자, 그의 어머니가 주변 친척이 모두 성공회 신자임에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은 여전히 가톨릭 신자에 대한 차별이 심한 나라였고, 결국 톨킨 모자는 친척들의 경제적 지원 단절 때문에 빈곤하게 살았다.
  13. 1차 대전 중 최대의 인간도살장 중 하나였던 솜(Somme)에서 살아 돌아왔다.
  14. 하지만 절대다수의 문화권에서 검은색은 악을 상징한다. 아프리카도 지역에 따라서 검은색은 악하다고 여긴다. 피부색을 떠나 검은색은 곧 어둠을 상징하고, 미지의 어둠에 대한 공포는 모든 인간에게 있는 본능이기 때문. 신화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톨킨의 작품들은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15. 이는 루이스와 작품관으로 인해 갈등을 빚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16. 다만 다수의 평전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바로는 후에 종교적인 요소는 인정을 하고, 많은 모티브를 따로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17.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쓰는데 루이스가 끼친 영향은,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계속해서 쓰도록 격려해주었다는데 있다. 루이스는 톨킨에게 그 작품세계 전반에 걸친 영향을 받았고, 톨킨은 루이스에게 그 작품세계를 실제로 구현시키는 것에 대한 많은 격려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루이스와 톨킨>이란 책을 참고.
  18. 아카데미 시상식을 3차례나 제패한 명 프로듀서다. 그가 프로듀싱한 작품들은 1976년 켄 키지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영상화한 동명의 영화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5관왕, 1985년 아마데우스로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해 8관왕, 1997년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한 9관왕을 차지했다. 2014년 1월 3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 심지어 중국에게 표절당한 한 게임에서는 엔트들이 등장한다.
  20. 한국의 유명 2D횡스크롤 MMORPG에도 발로그나 아란(퀘냐, 신다린으로 왕이라는 뜻) 등 여러 부분에서 베낀 언어•설정이 등장한다. 단 후자는 공모를 통해 결정된 이름이며 한자 표기도 따로 있는 이름이기 때문에 완전히 베꼈다고 볼 수는 없다.
  21. dwarves의 경우는 사실은 dwallowdelf니 뭐니 이런식의 언어학자 특유의 군소리도 늘어놓아주셨다.
  22. 참고로 톨킨의 이 관점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화나 전설, 역사에는 자연스럽게 '적용가능성(applicability)'이 생긴다. 톨킨은 본인의 이야기에 다양한 적용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은 무척 환영했다. 그러나 '적용가능성'은 결코 '풍자(allegory)'와 같지 않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생각해보면 쉬운데, "마치 이카루스의 날개가 녹아내리듯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카루스 이야기는 ~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이야기야"라고 말하는 건 천지차이라는 것이다. 톨킨은 후자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극도로 싫어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톨킨의 표현들은 톨킨의 서간집(The Letters of J.R.R.Tolkien)에 고스란히 실려있다.
  23. 직접 번역했다기보다는 윤문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24. 후기로 갈수록 가사에서 톨킨의 영향이 조금씩 줄어들지만, 여전히 반지의 제왕 관련 메탈밴드로 유명하다.
  25. 'Letters from Father Christmas'로도 불린다.
  26. 톨킨 연구(tolkien studies)와는 다르다. 톨킨학은 톨킨 세계관을 실제 세계로 보는 관점 속에서 연구를 하는 것이고 톨킨 연구는 작품으로서 세계관을 연구하는, 그러니까 문학 연구다.
  27. 사실 톨킨 본인은 자신의 소설에 대한 어떠한 신학적·정치적 해석도 거부했지만, 소설의 내용을 보면 철학뿐만 아니라 정치학적인 경구로도 인용 가능한 부분도 곳곳에 보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