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건

이름추성건
생년월일1970년 8월 5일
국적대한민국
학력서울고-건국대
포지션내야수 (1루/3루수) > 외야수 (우익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3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OB 베어스)
소속팀OB 베어스-두산 베어스 (1993~1999)
SK 와이번스 (2000~2001)
지도자경력추가바람
SK 와이번스 등번호 40번
팀 창단추성건(2000)김지완(2002~2003)
SK 와이번스 등번호 3번
이민호(2000)추성건(2001)송재익(2002~2004)

1 개요

한국 프로야구의 야구 선수였다. OB 베어스에 지명받아 1993년부터 1999년까지 활동하였고, 2000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해 2001년 은퇴하였다.

2 현역 커리어

2.1 프로 입단 이전과 지명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출신으로 건국대학교에 입학, 이후 괴물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건국대학교 재학 당시 주장으로 뛰었고, 장재중, 이종범, 이영우 등의 쟁쟁한 선수들을 이끌었다. 1992년에는 미칠듯한 캐리로 인해 팀이 전/후기 대학리그에서 우승을 거두는 데 일조, 자신은 홈런왕을 차지하는 등의 영예를 누렸다. 당시 일간지에도 많이 나오면서 일반인들에게 어필하기도 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 내야수로 발탁되었으나 국대팀은 올림픽 본선에 올라가지 못했다.

199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 지명회의는 유난히 대박 선수들이 많이 나왔는데,[1] 당시 그리고 지금도 같이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을 쓰고 있던 LG 트윈스OB 베어스는 초고교급 좌완투수였던 이상훈을 먼저 지명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허나 LG가 주사위 룰렛에서 이겨 OB보다 먼저 선점을 치게 되고, 바로 앞에서 이상훈을 빼앗긴 OB는 하는 수 없이 대학리그에서 괴물 타자로 이름을 날리던 추성건을 지명하였다.[2]

2.2 프로 시절

2.2.1 OB-두산 베어스

추성건은 나름 큰 기대를 받고 입단했지만, 정작 기대에 너무 못 미치는 활약을 보여줬다. 첫해 86경기에 출전해 .218의 타율을 기록, 그 이듬해에는 71경기에 출장해 타율 .236을 기록했다.

아마추어에서는 최강 타자였지만, 프로리그에 적응을 할 수 없었던 게 주 요인인데, 이유가 뭐냐면 나무배트에 적응을 못했다. 알루미늄 배트에 최적화되어 있다 보니 막상 나무배트를 쓰게 되자 파워가 나오지 않았고, 부상 확률도 높아졌다. 이 때문에 타격폼을 개조해야 하지만, 그게 쉬운 일도 아니고... 강혁(야구)과 실패 이유가 똑같다. 그 외에도 주변의 강한 관심에 의한 심적 부담감 등이 겹쳐 프로야구에 적응을 잘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94년에는 OB 베어스 항명파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1995년 시즌 시범경기에서 홈런왕을 차지하는 등의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으나 개막전에서 부상을 입고 재활을 하느라 많이 출전하지 못했고, 복귀했는데 당일 또 부상(...)[3] 유리몸 확정 결국 그해 군입대를 하여 1998년에 제대하였다. 하지만 그 시즌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1999년 시즌에서는 부상으로 3경기밖에 나오지 못한 채 방출, SK 와이번스로 이적한다.

2.2.2 SK 와이번스

2000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추성건은 84경기에 출장해 타율 .302를 기록, 나름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팀 내 최고 출루율을 찍기도 했으며(얼마 후에 브리또가 가져갔다.), 64안타에 29타점을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STATIZ에 따르면 2000년 SK 선수공헌도는 5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리고 최다출장 최태원은 6위

2001년 시즌에는 우익수로 전향했다. 하지만 시즌 중반 부상을 입고,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어 은퇴하였다. 은퇴 당시 나이는 32세로 상당히 젊은 편.[4]

3 지도자 커리어

추가바람.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타격코치와 중국 세미프로리그의 타격 인스트럭터 등을 한 적이 있으나 연도가 명확하지 않다.

프로에서 인상깊었던 일을 보여주지 못해서 프로야구팀 코치로 발탁되지 않고 아마추어팀을 전전하고 있지만, 한때 중국 세미프로리그의 광둥 레오파스에서 인스트럭터로도 뛰었다. 당시 천쥔이, 리유카이, 지아더롱, 쟝홍보 등의 선수들을 길렀고, 위 4명은 나중에 2008 베이징 올림픽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중국 야구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히익 국가대표를 4명이나

한편 서울고등학교 야구부에서는 허도환안치홍을 키워내기도 했다. 확실히 이 정도면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충분히 있어보인다. 2016년 현재 자양중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있다.

4 여담

이종범과 동기이다. 같은 건국대학교 89학번.

5 통산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3OB 베어스86124.218271041922427.323.353
199471140.236337251628917.421.319
19953637.21681113859.378.370
1996군 복무
1997
19988847.14970109402.191.184
1999두산 베어스30.00000000010.000.000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0SK 와이번스84212.302648062928233.425.393
20012334.23581017614.353.308
통산 (7시즌)391594.2471471841774962292.377.346
  1. 1차에서 양준혁, 구대성, 이상훈 등의 초대박 선수들이 무려 4명이나(!) 나왔으며, 2차에서도 최태원, 박충식, 마해영 등의 대박 선수들이 나왔다. 참고로 여기서 OB 베어스만 유일하게 죽을 쒔다. 안습.
  2. 그런데도 1차 지명이다. 당시 추성건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을듯.
  3. 참고로 김성한 은퇴경기였다고 한다.
  4. 이 때문에 LG 트윈스에 재임중이던 김성근 감독이 입단 제의를 했지만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