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塚原卜伝
塚原卜伝 (つかはら ぼくでん, 1489 ~ 1571)
500년래 무쌍의 남자 - 전일본검도연맹
전국시대 초기의 검호(剣豪), 병법가(兵法家)로 카미이즈미 이세노카미 노부쓰나(上泉伊勢守信綱)와 함께 검성(剣聖)이라 불린다.
카시마 신토류(鹿島新当流)의 창시자.
보쿠덴 자신이 남긴 유훈을 제자들에 의해 정리한 기록인 보쿠덴 유훈 주석서에 의하면 17살에 최초로 진검승부를 벌여 승리하였고 고키시치도(현재의 교토 ~ 오사카 지역)를 근거로 하며 평생 진검 시합 19차례, 전쟁에 참전하길 37회, 목검 대련만 수백 회에도 불구하고 몸에는 화살에 맞은 상처 6회 이외에는 심지어 목도로 타격당한 상처조차 없었으며, 진검시합+전쟁터 등지에서 손수 죽인 사람만 212명이라고 한다.[1]
아명은 토모타카, 본명은 타카모토. 통칭인 보쿠덴은 보쿠덴(卜伝)은 법호.
별명은 신우에몬(新右衛門), 관직명은 토사노카미(土佐守)로 양부의 관직명을 세습하였다.
2 출신 및 스승
카시마 신궁(鹿島神宮) 주변의 치안유지와 한 해의 길흉을 점치는 일을 대대로 해오던 우라베(卜部)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토모타카(朝孝).
친부인 우라베 아키타카는 카시마 신궁의 신관으로, 카시마 신궁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던 관동 7류라는 검술. 즉 친부에게서는 태도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무술로 추정되는 고무술인 카시마 고류 or 카시마 츄고류를 배웠고.
이후 히다치의 호족이었던 츠카하라 토사노카미 야스모토(塚原土佐守安幹)의 양자가 되어 타카모토(高幹)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츠카하라 야스모토는 천진정전향취신도류 즉 일본 검술 중흥의 시조인 이이자사 이에나오의 가토리신토류의 고수로 보쿠덴은 양부에게서 가토리 신토류를 배운다.
1505년, 보쿠덴이 17살 때 보쿠덴은 고향을 떠나 교토로[2] 상경한다. 이것이 보쿠덴의 1차 무사 수행으로. 아마도 일본의 중심에서 입신양명을 위해 상경한 것으로 보이며, 보쿠덴의 유훈에 전쟁에 참전하기를 37회라고 하고 있으며. 이 시기 교토에서는 전국시대 최초의 천하인 오우치 요시오키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타네의 전쟁이 벌어졌던걸로 보아 이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보인다.[3] 그러나 어느 쪽의 편에 들어 참전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당시 벼슬을 못산걸로 봐서 패배한 쇼군 편에 섰을듯
그러다 1518년, 30살이 되서야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오의(奥義)인 히토츠노타치(一之太刀)[4]를 개안한다.
이 히토츠노타치를 가르쳐 준, 보쿠덴의 유파 및 스승에 관해서는 몇 가지의 설이 있는데.
1. 가토리 신토류의 이이자사 이에나오의 수제자이자, 같은 가시마 신궁의 신관이던 마츠모토 마사노부가 직접 자신의 비기인 히토츠노타치를 가르쳤다는 설. 만약 이 설을 따르고,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도 마츠모토 마사노부에게 배웠다는 설을 따를 경우 두 사람은 같은 스승 밑에서 검술을 배운 동문이 된다.
2. 양부인 츠카하라 야스모토에게서 배웠다는 설.
3. 스스로 고안했다는 설.
이 3가지의 설이 존재한다. NHK의 드라마에서는 카시마 신궁에서 1000일동안 기도를 들여서 일태도를 습득했다는 식으로 방영했는데, 이는 이이자사 이에나오의 일화로서 거짓말.
유파명은 사후 후대의 제자들에 의해 명명된 것이라고는 하나, 츠카하라 보쿠덴의 유파 명이 카시마 신토류로 같은 신토류라는 점. 가토리 신토류와 카시마 신토류 두 유파 모두 태도=타치를 주력으로 상요하는 검술 유파인점. 히토츠노타치는 가토리 신토류의 비기이기도 한 점에서, 가토리 신토류의 마츠모토 마사노부나 양부인 츠카하라 야스모토에게서 오의를 배웠다는 양 설은 물론이오, 설령 혼자서 히토츠노타치를 깨달았다고 해도 유파적으로는 가토리 신토류의 영향 밑에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3 생애
최초의 무사수행을 끝내고, 30살에 카시마로 돌아와서 오의를 개안한 후 1523년 다시 교토로 간다. 이것이 보쿠덴의 2차 무사수행.
그러나 이설이 있는데, 실제로는 마츠모토 마사노부등의 주도하여 일어난 카시마 가문의 반란,의 진압에 참여했다는 이설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마츠모토 마사노부 참조.
그러다가 1533년 양부가 사망하여 츠카하라 성을 잇고 돌아온 후 결혼. 그러나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1556년 양자인 카시마 모토시게에게 가독을 양보하면서 출가하며 이름을 보쿠덴이라 자칭하며 마지막, 3차 무사수행을 떠난다.
이제는 명성이 천하에 퍼진 수준이었는지, 코요군감에 의하면 이 당시의 보쿠덴의 행차하는 모습을 보면. 매 3마리에 갈아탈 말 3마리, 제자들 80여명을 데리고 키나이를 주유하면서, 보쿠덴의 행차를 보는 사람들이 마치 어딘가의 대다이묘의 행차인가보다.라고 말 할 정도로 장관이었다고 한다.
무사 수행을 떠나면서 쇼군, 국사 등 여러 사람들에게 검술을 가르쳤다가 1566년에 노환으로 고향인 카시마로 돌아갔으며, 1571년에 제자이자 보쿠덴의 형의 사위이던 일족 마츠오카 노리카타의 집에서 사망했다.
4 제자 및 유파
검성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처럼. 문하에 수 많은 제자들이 존재한다.
노부츠나와 비교할 경우 제자들 중 이상하게도 끝이 좀 안좋은 인물들이 많다는게 특이점.
일단 검호가 아닌 무장들로는
검호 장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요시테루는 츠카하라 보쿠덴과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양 검성에게 사사받았다는 말이 유명하나. 츠카하라 보쿠덴에게 사사받은건 확실하나, 노부츠나에게 사사받았는지는 사실 기간 문제도 그렇고 확실치는 않다. 보쿠덴이 요시테루에게 오의인 히토츠노타치를 전수했다는 말도 유명하나, 역시 보쿠덴이 요시테루에게 오의를 전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다. 어쨌든 보쿠덴이 사사했던만큼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참살당한 쇼군.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 요시테루의 동생이자 일본애들이 덮어놓고 미화하는 노부나가의 피해자 중 한 사람. 노부나가에게 적대했다는 것만으로 간계에 능하고 야비한 인물로 그려지나 실제로는 보쿠덴에게 사사받아 검술에도 능했으며, 노부나가에 의해 추방된 이후에도 모리 가문과 함께 노부나가에게 끝까지 대항하고, 이후 히데요시의 천하에서는 히데요시에게 자신을 양자로 들일것을 압박받으나감히 상놈주제에 하고 끝까지 거절한 기개있던 인물.
검호국사 키타바타케 토모노리(北畠具教). 겐지의 일족인 명문가 출신으로 검술, 와카, 활 교양 등 문무 양도에 뛰어났던 이세의 다이묘.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와 함께 검호 장군과 검호 국사라는 소리를 들으며 칭송되었으나, 오다 노부나가의 3만 군대에 맞서 5천의 군사로 기개있개 싸우나 밀려서 노부나가의 항복 제의에 최종 항복. 3남 오다 노부카츠를 가문의 양자+다이묘로 들이며 은거하였다가, 이후 노부나가 포위망이 형성되자 불안감을 느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암살당한다. 일화에 따르면 과거 키타바타케 가문의 가신이던 암살자와 차를 마시다가, 암살자의 소매속에 숨긴 단창에 갑작스럽게 찔리면서도 칼을 꺼내어 총 19명을 베고 사망했다고 하는데.... 뭐 어쨌든 검호 쇼군으로 칭송되던 아시카가 요시테루와 동일한 최후를 맞는다. 그나마 아들이라도 살아있던 요시테루에 비해 노부나가는 3살이던 갓난 아이를 포함한 토모노리의 아들까지 모두 죽이며 이세의 명문가를 멸문시킨다. 츠카하라 보쿠덴과의 관계에서는 직접 오의인 히토츠노타치를 전수받았다는 가시마 신토류의 문서가 존재한다. 즉 다이묘 급 제자 중 유일하게 오의를 전수받은게 확실한 인물.
호소카와 후지타카. 아시카가 요시테루 + 아시카가 요시아키 + 오다 노부나가 +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기며 대 다이묘가 된, 전국시대 최고의 교양인. 당대의 교양인답게 궁술,와카 등에 츠카하라 보쿠덴에게 사사받은 검술 실력에도 뛰어났다. 본인도 그렇지만 호소카와 타다오키를 비롯하여 호소카와 가문 자체가 이후 검호들을 중용하며 인연이 깊은데, 호소카와 타다오키는 야규 무네노리의 제자이며,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의 제자인 히키타 유카타 고로를 가문의 검술 사범으로 들였고, 이후 미야모토 무사시에게도 꼴랑 50석을 주며 검술 사범이 아닌 아시가루 대장 급의대우를 해주었다.
마카베 우지모토. 귀신 마카베로 불린 맹장. 가마쿠라 이전부터 400년간을 내려온 마카베 지역의 호족인 마카베 씨의 장수. 전국 시대를 당당하게 독립 영주로 내려왔으나, 마카베 우지모토 당시에는 관동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사타케 요시시게의 동맹 세력이다가 어찌저찌 종속되어 가신 격으로 격하된다. 츠카하라 보쿠덴에게 검술을 배웠다고 하는데 년도로 보면 말년에 카시마에 은거한 보쿠덴을 찾아가서 배운 듯 하다. 좀 상식밖의 괴물로 체구가 크고 10명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검이나 창이 아닌 커다란 통나무를 들고 다니며 휘둘러서 적의 머리통을 깨부쉈다고 하며, 여기에 보쿠덴에게서 익힌 카시마 신토류의 검술까지 체득해서 전장에서는 당할 자가 없는 괴물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이후 처벌로서 주가인 사타케가 강제로 이봉되면서 마카베 영지를 잃었고, 자신은 후사가 없어서 동생의 아들을 상속자로 삼는다.
이마가와 우지자네 -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아들. 멍청이로 유명하나, 검술 축국 등의 교양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보쿠덴 본인의 제자는 아니나 수제자인 마츠오카 노리카타에게서 보쿠덴의 오의인 히토츠노타치를 전수받았다고 한다.
야시로 미츠히데 = 우지이 쇼켄 - 츠카하라 보쿠덴의 수제자이자, 이이자사 이에나오의 카토리 신토류의 비전까지 받은 검호이자 무장. 오다 노부나가에게 대항하다가 영지를 잃고 야규 가문에 은거, 이름을 야스로 미츠히데에서 우지이 쇼켄으로 바꾸고 이후 오다 노부타카의 검술 사범으로 취직한다. 무사시 사후 130년 후 제작됬으며 사료로서의 가치가 아예 전무한 책인 판타지소설니텐기에 따르면 무사시 말년에 호소카와 가문에서 승부를 벌여 무사시가 승리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야시로 미츠히데의 나이가 적게 쳐도 120살이 넘게 되며, 니텐기의 일화를 증명할 다른 사료도 아무것도 없는데다가, 애초에 니텐기에 우지이 쇼켄의 한자조차 틀리게 적어놔서 아예 날조로 판정되고 있다.
기타 나리타 나가야스 등.
검호로는
사이토 카츠히데 - 미노 출신의 검호. 츠카하라 보쿠덴의 수제자로. 일왕 앞에서 신기에 가까운 검술을 시연하여 판관직[5]을 수여받는다. 검호로서 가장 젊은 나이에 빠르게 출세한 인물 중 하나로 츠카하라 보쿠덴에게 사사받은 후 젊은 나이에 자신의 유파인 텐도류를 창건하나. 30중반에 호족+영주들에게 질시를 받아 참살당한다.
모로오카 잇파 - 잇파 류의 시조. 신선조의 콘도 이사미의 천연이심류도 잇파 류 계열의 유파라 유명하다. 히타치의 후호조 씨의 토기하라 씨 밑에서 벼슬을 살았으나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에 의해 가문이 망해서 백수가 되어 검술 도장을 차린다.
마츠오카 노리타카 - 보쿠덴의 임종을 지켜본 수제자...는 아니고 보쿠덴 형의 사위로 일족이라 그랬다고 한다. 어쨌든 일족 빨로 보쿠덴에게 나름 오의인 히토츠노타치까지 전수받고,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히토츠노타치를 전수해주고 감사의 표시로 최종적으로 120석의 영지를 수여 받았다고 한다.보고 있냐 50석
하야시자키 진스케 - 이아이로 유명한 하야시자키 무소류의 창시자. 진짜 제자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하야시자키 진스케가 남긴 저술에 츠카하라 보쿠덴의 카시마 신토류의 검술 법등이 실려있다고 한다. 다만 카시마 신토류 이외에도 다른 검술들도 실려 있는걸로 보아, 제자였다기보다는 하야시자키 진스케가 젊은 시절 유랑하면서 당대의 여러 검술들을 익혔던것 같다. 실제로도 그랬고.
기타 검성인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의 스승이었다는 말이 있으나,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는 카게 류를 계승한 사람이고, 아이슈 잇코사이를 개조로 하는 만큼 우리 스승님이 더 대단하다는 제자들의창작으로 보인다.
5 트리비아
일화들과 사료를 보면 상당히 과시하기 좋아하는 야망 넘치는 성격으로 보인다. 츠카하라 성과 가로직을 이을 것이 분명한 양자신분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신양명을 위해 17세의 어린 나이로 교토로 무작정 가서 전쟁터에 참전하고 진검 승부를 벌여 이름난 무예가들을 베었고, 이후 부유해졌을 때는 행차를 마치 다이묘처럼 하고 다녔을 정도. 고향을 십 여년 씩 떠나있는 무사 수행만 3차례를 다녔으니.
하지만 자신은 검을 빼지 않고 이기는 사람, 위험한 것은 미리 피해가는 사람이 진정한 무사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를 잘보여주는 예가 다음의 무수승류(無手勝流)[6]로 일컫는 유명한 일화.
비와호(琵琶湖)를 건너던 배에 타고 있던 젊은 무사가 보쿠덴을 알아보고 결투를 청했다. 그러자 보쿠덴은 배에서 싸우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니 마침 보이던 작은 섬에서 싸우자고 말했고, 무사가 섬에 내리자 몰래 배를 출발시켜 젊은 무사를 따돌렸다. 무사가 비겁하다고 소리치자 "싸우지 않고 이긴다! 이것이 나의 무수승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7]
이 이야기는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신들에게 해서 유명해진 이야기라고 하며, 현대에도 일본에서는 많이 인용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소룡이 영화 용쟁호투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일화가 약간 치사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진검 승부는 검호들이 명성과 벼슬을 얻기 위해 하던 것이고, 일단 명성을 얻은 이후에는 특히 이름도 없는 애랑 목숨걸고 싸워봐야지면 죽거나 살아도 개망신이고, 이겨도 아무런 득이 없는 독이든 성배다보니 그런 것. 야규 무네노리같은 경우에도 평생 진검 승부를 하지 않았으며 전쟁터에서나 그의 실력을 증명한다.
팔힘이 엄청나서 일단 칼을 손에 쥐면 이 칼을 제자들이 힘을 다해 내리쳐도 꿈쩍하지 않았다고 하며, 진검 시합 때는 대도를 가지고서 보통 상대방을 일격에 베었다고 한다. 그러한 묘사 덕분에 오의인 히토츠노타치는 일격에 상대를 쓰러트리는 검술이다! 라는 말이 있으나, 사실 비검이니까증명된 바는 없다. 어쨌든 그 덕분에 KOEI사의 게임에서는 히토츠노타치가 일격 필살의 검으로 등장한다.
동시대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와의 검성 대결에서는 대체 누가 최강인가?! 라는 라이벌 전이 당대로서도, 지금으로서도 상당한 관심을 끄는 주제이나, 일단 신카게류가 검도 사의 계보로서 야규 신카게류를 비롯한 수 많은 계파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에도 신 카게류가 일본 내 검도 최다 회원수를 자랑할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야규 세키슈사이를 비롯하여 노부츠나 쪽의 제자들의 출세율이 좀 더 높으며, 또 당대에 두 사람 모두를 스승으로 두었던 검성 장군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노부츠나에게 직접 천하제일이라는 칭호를 내려주었기 때문에.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를 보쿠텐보다 한 수 높이는 편. 보쿠텐이 노부츠나보다 나이만 젋었어도 Koei사의 게임에도 보통 노부츠나가 무력 115라면 보쿠텐은 114정도로 노부츠나가 한 수 위에 있는 식으로 등장하며 현대 일본 검도사의 평가로도 츠카하라 보쿠텐에게는 500년래 무쌍의 남자로 500년에 한번 쯤 나오는 괴물로, 노부츠나에게는 고금 제일의 달인. 으로 일본 역사상 가장 강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5.1 히토츠노타치
비기인 히토츠노타치에 대해서 전해지는데, 사실 보쿠덴 시절부터 구전으로만 일부 수제자들에게만 전해졌기에 정확히 어떤 비기인지는 알 수 없다. 빠른 신속의 검이라는 말도 있고, 일대 다수를 상대하기 위한 검술이라는 말도 있는 등.. 뭐 비검이니까...
다만 몇 가지 알 수 있는 바에 의하면 코요군감에 의하면 히토츠노타치는 적과 떨어져 있는 경우 일부러 틈을 보여 공격하게 한 후 상대가 치고 들어올때 아주 가까이 접근하면 이쪽에서 동시에 치고들어가서 벤다. 고 되어 있으며. 카시마 신토류의 가르침에는 히토츠노타치는내가 검을 내려칠 때 천지의 리와 기술을 집중시켜 단칼에 적의 목숨을 끊는것이다! 라고 하는것. 또 카게류 비전의 엔비와 카게류가 맹렬하게 강한 검술, 반대로 신토류는 부드럽고 세밀한 기술을 사용하는 검술이라는 평가를 받았던걸 보면... 아마도 히토츠노타치는 현대 검도로 치면 데바나 와자가 아닐까 싶다. 다만 검도와 실전 검술의 차이상 자세를 무너트리지 않고 공세를 유지하며 연속 공격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전쟁에서 진짜로 적의 목숨을 확실히 끊기 위해서 후속 공격따위는 생각치 말고 전력을 다해서 일격을 내리치는 것이었을듯.
5.2 창작물에서
국내에 번역출판된 '검성 쓰카하라 보쿠덴'이라는 2권짜리 소설에 그의 무사수행 일대기가 묘사되어 있다.
신장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혁신 특전무장으로 등장.
태합입지전5에선 검호 시나리오 중간보스내지는 최종보스격으로 준결승전이나 결승전에 나온다. 기본 무력 99에 검성이라 무력+15의 부과효과, 거기에 CPU한정으로 보정떡칠이 되어(플레이어가 직접 플레이 할 경우엔 도저히 같은 성능을 내지 못한다) 엄청난 맷집과 그에 걸맞게 상당한 똥파워를 자랑하지만 장거리 기술이 별로 없어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그러나 사실 어찌 보면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보다 더 무서운데 보쿠덴의 최강기술인 히토츠노타치는 노부츠나의 마로바시도 막는 무토도리로도 막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만약 카스미 등을 안 가지고 있으면 꽤 골치아픈 상대..
또한 치안유지를 한 집안 출신이라는게 반영되어서 악명이 있는 상태에서 보쿠덴이 있는 마을로 들어가면 일정 확률로 보쿠테한테 걸려 강제로 1대1 싸움을 하게 된다. 여기서 지면 물론 끔살.
앞서 말했듯이 노부츠나나 보쿠덴이나 플레이어가 할 땐 추가로 보정 붙은 것이 없기 때문에 노부츠나, 보쿠덴으로 직접 플레이하더라도 정공법으로 상대를 이기는 것은 꽤나 어렵다. 노부츠나가 출전할 경우는 무조건 결승상대이기 때문에 보쿠덴이 준결승 상대가 되는데 이렇게 될 경우 보정떡칠 받은 상대를 2번 연속으로 상대해야되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무토도리와 분신술은 거의 선택이 아닌 필수 수준.
또 닌자 2레벨 특기인 이동술과 3레벨 특기인 개 소환술(정확한 이름을 아는 유저 추가바람), 의사 2레벨 스킬인 지혈을 익힌 후 도망다니면서 포인트를 쌓아서 갉아먹는 방법도 있다. 이 쪽은 승률이 100%인 대신 멋은 안 난다...
- ↑ 물론 보쿠덴 자신이 남긴 유훈이 원출처이며, 이걸 타쿠앙 소호와 제자들이 정리한 내용이므로 완전히 믿기는 어려운 내용이지만, 19회의 진검 시합들의 일부의 상대방의 이름이 존재하고 사망이 확인되며, 또 최초로 상경했을 때가 오우치 요시오키가 쇼군과 싸웠을 때인등 시기+장소 적으로 전쟁터에 참전했다는 말도 맞는다. 또한 당대에 이미 다이묘급 부자에 검성으로서 쇼군과 이세국사, 일왕들에게 검술을 가르치거나 시연했을 정도니 전쟁터에서 화살 맞은 상처를 제외하고는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다는 등의 디테일한 부분은 거짓일지라도 대체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 ↑ 정확히는 고키시치도
- ↑ 츠모토 요의 소설을 원작으로 NHK에서 방영했던 츠카하라 보쿠텐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에서도 츠카하라 보쿠덴이 오우치 요시오키의 식객으로 머물며 오우치 요시오키를 돕는걸로 나온다.
- ↑ 비기에 대해서는 후술
- ↑ 정확한 위계는 종 4위 ~ 종 5위 사이. 종 7위인가에 김해유판관이라는 직위도 있긴 하나 그걸 뜻하는건 아니고, 조선시대에 종 2위를 대감으로 칭하고, 수령이면 대충 사또로 칭하던것 처럼 종 4위~ 종 5위의 직을 대판관,소판관, 판관으로 칭한다. 미나모토 요시쓰네도 받았던 직위.
- ↑ 손을 쓰지 않고 이긴다. 즉, 칼을 쓰지 않고 승리하는 유파라는 뜻.
- ↑ 이 밖에도 보쿠덴에 관한 일화는 많은데 진짜 있었던 일도 있겠지만 후세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도 있어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판단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