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쟁호투

1 영화

龍争虎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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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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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포스터 석견 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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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 포스터도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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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광고

이소룡 주연 5부작
당산대형정무문맹룡과강용쟁호투사망유희

이소룡 주연의 액션 영화로, 로버트 클루즈(Robert Clouse)감독의 1973년 작품. 제작비 85만 달러에, 흥행은 전 세계에서 9,000만 달러라는 대박을 거둬들였다고 한다.

영문명은 《Enter the Dragon》[1], 일본에서의 개봉명은 《불타라 드래곤》(燃えよドラゴン).

70년대 닉슨의 방중(訪中)을 비롯한 여러 가지 국제정세의 변화로 미국에서는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껏 높아졌고, 이에 정창화 감독의 《철인》(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수입하여,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는 등 크게 재미를 보았던 워너 브라더스 영화사는 아예 직접 무술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브루스 리의 소속사였던 골든 하베스트와 접촉, 합작한 결과로 본작이 만들어졌다.

1.1 영화의 내용 및 의미

소림사를 배신하고 파문당한 마약상 한을 잡기 위해 싱하형이소룡이 섬의 토너먼트에 참전한다는 스토리. 007 시리즈의 영향이 꽤 짙게 보인다.

이소룡이 악역으로 등장해 난리부리다 죽는 《말로우》 및 헐리웃 데뷔작인 《그린 호넷》과 함께 본인의 실제 영어 육성을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서구권에서 이소룡을 전설의 레전드로 만든 작품이다. 동아시아권에서는 특히 《정무문》이나 《맹룡과강》이 더 낫다는 사람도 많지만, 나무위키도 정무문 항목이 제일 충실하게 되어 있다 일단 서구에서 이소룡이라고 하면 이 작품과 《사망유희》를 떠올린다. 감독이 미국인이니까.

또한 서구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이 영화로 이소룡과 '무술(쿵후)'의 바람이 불었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2], 단순한 무술영화를 넘어, 이야기 자체는 당시 유행하던 007 시리즈 류의 첩보물을 표방하고 있다. 단 여자 꼬이는 역은 이소룡 말고 다른 조연(존 색슨)에게 넘어갔다.[3][4](...) 하지만 사람들은 이소룡만 기억하지 존 색슨은…. 오프닝 크레딧에 보면 이소룡과 존 색슨 등의 이름이 함께 나오지만, 결국 극의 중심은 이소룡이 되었다. 색슨은 평생 이 영화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했다.[5]

막판의 패싸움 장면[6], 그리고 최종보스인 한과 거울의 방에서 싸우는 장면[7]이 유명하다. 사실 한국에선 막판 보스 싸움 직전 오하라와의 싸움이 제일 유명하다. 이 거울의 방 씬에서 복근을 클로로 긁혀 피로 王자가 세겨지는 모습이 하이라이트.

당시 여러 인종에게 어필했는데, 우선 주연 3명부터가 황인, 백인, 흑인으로 나뉘어 각각 활약한 게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주제가 및 명장면 모음 26초에 모든 것이 요약되어있다.

1.2 트리비아

  • 처음 도입부에서 홍금보와 시합 후에[8] 기계체조를 하듯 공중제비 세리머니하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에 이소룡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여러 이유들로 인해 원화가 가발을 쓰고 대역했다고 한다. 그는 이 장면 말고도 연회 때 사과를 받는 단역, 오하라에게 서머솔트 킥을 날릴 때 이소룡의 대역, 이소룡에게 발리는 졸개 등으로 등장한다.
  • 이 영화를 찍을 때 이소룡은 너무 긴장해서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없었는데, 이런 상태에서 찍은 첫 장면이 작중 앉아서 과일을 먹는 장면이다. 너무 긴장해서 2주나 지나서야 겨우 촬영장에 나왔다고.[9]
  • 코브라를 풀어서 적들을 내쫓게 하던 장면을 촬영하다가 물려서 죽을 뻔 했다. 다행히 을 빼놓아서 죽진 않았지만, 코브라는 독이 계속 생기기에 위험한 건 마찬가지.
  • 이소룡이 마약상의 기지에 잠입해서 싸울 때, 클로즈업된 화면에서 목이 꺾이는 엑스트라가 바로 성룡. 이 장면 다음에 이소룡이 곤봉으로 한의 졸개를 제압하던 장면에서 성룡을 너무 세게(…) 쳐버렸는데,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성룡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나중에 찍을 영화의 조연 자리를 약속했다고 전해진다. 정작 촬영이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이소룡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약속을 지킬 수는 없게 되었지만.. 훗날 성룡은 이소룡의 이런 인간미에 감동해 자신의 인생 최고의 은인이라 회고했다.[10] 그런데 성룡은 이미 1년 전에 정무문에서도 엑스트라로 나와 이소룡에 맞아서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스턴트를 했다. 당연히 대역이니 얼굴은 철저하게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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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룡 외에도, 홍금보, 원표, 원규, 원화 등의 훗날 쟁쟁한 대배우, 감독들이 당시에는 단역으로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민다.
  • 존 색슨에게 고자킥을 맞고(…) 쓰러지는 근육질 거한 역할로 나온 양사(楊斯)는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짝퉁 이소룡들과 싸우는 역할로 나와 인기를 끌었고, 나중에는 영어 이름을 아예 배역 이름을 따 볼로 영(Bolo Yeung)이라고 지어버렸다. 이후 미국 시장에서 본인 주연작까지 나온, 《용쟁호투》가 낳은 또 하나의 스타. 무술영화계 악역으로는 발군의 톱스타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화에서 안 겨뤄본 유명 무술배우가 거의 없을 정도.
  • 한의 부하이자 여동생(모영(茅瑛, Angela Mao) 분)의 원수인 오하라 역의 로버트 월(밥 월 분)은, 이소룡이 미국에 있었을 때부터의 친구로, 이소룡의 권유로 영화에 출연했다가 호평을 받아, 《사망유희》를 위시한 여러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다.
  • 한의 섬에 등장하는 부하 엑스트라들은, 근처의 진짜 깡패들을 섭외했다. 섬에 있는 여자들도 진짜 창녀들을 데려왔다고 한다. 그 중에서 이소룡에게 이겨서 유명해지려 한 도전자가 있었는데, 한방에 날아갔다. 깡패들로 인해 그 전까지 맴돌던 촬영장의 불온한 분위기가, 이 대결의 결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 이소룡을 노리던 깡패들이 180도 바뀌어, 이소룡의 추종자가 되어버렸다 카더라.[11] 단, 이 대결을 촬영한 필름은 아쉽게도,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영화사의 관계자가 파기했다 카더라. 비슷한 에피소드가 이소룡의 생애를 다룬 《드래곤: 브루스 리 스토리》에 있다. 단 여기선 당산대형 때에 있었던 일로 나오고, 상대가 엑스트라로 위장하고 나온, 이소룡이 쓰러뜨린 남자의 동생.
  • 이소룡과 오하라의 대결에서 오하라가 패한 후, 이를 인정하지 않고 깨진 병을 들고 달려드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실수로 깨진 병[12]에 이소룡이 손목을 크게 다쳐서, 촬영이 중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여기서 이소룡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깡패들이 흥분해서, '오하라(로버트 월)를 죽여라'고 날뛰었고, 클루즈 감독이 진정시키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카더라.
  • 또한, 덤벼드는 오하라를 날려버리고 뛰어올라 밟은 뒤, 괴조음과 함께 끝장내는 장면에서의 이소룡의 표정 연기는, 싱하형의 모델이 되어버렸다.(...)[13] 본래는 슬픔과 분노를 표현한 명장면이다.

파일:Attachment/shingha.jpg파일명이...

  • 초반부, 오하라에게 겁탈당하기 전, 깨진 유리조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소룡 누이를 맡은 무술여배우 모영(茅瑛, Angela Mao)은, 처음에는 강간당하다가 죽는 것으로 설정되었지만, 본인의 결사반대로 그렇게 죽는 것으로 처리되었다고 한다.[14]
  • 이소룡은 이 영화가 개봉되기 3주 전에 죽었다. 영국에선 개봉 당시 상당히 성공을 거두고 있었는데, 런던 한 극장에선 이소룡이 죽은 뉴스가 나와서 관객들이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 이 영화의 사운드는 사실 모두 더빙이다.
  • 주요 등장인물이자, 한에게 당하는 윌리엄스 역을 맡았던 故 짐 켈리는 예순이 넘어서도 흑인 무술가 배역으로 저예산 액션물에서 활약했다. 71년도 국제 가라데 대회 챔피언으로서, 무술가로는 알려지긴 했어도 배우로선 철저한 무명이었다. 그러나 《용쟁호투》 덕에 이후 워너 브라더스 배급 액션물 3편에 연속계약을 맺고, 비록 화려한 대박 배우는 아니라도 꾸준히 영화배우로 활약했으며[15], 홍콩영화라든지 일본영화에도 나오기까지 했다. 더불어 이소룡의 아뵤오오~! 못지않은 그만의 괴조음이 있는데, 우이이이~(Woooooeeee~)
  • 거울의 방에서 싸우다가 죽는 최종보스 한을 맡은 배우 석견(石堅, 1913~2009)은 《영웅본색》의 1967년 원작판에서 악당보스로 나왔는데, 《미스터 부》에서도 악당보스로, 서극 감독의 《영웅본색 3》(1989)에서도 주윤발의 숙부로 나왔다. 이소룡이 태어나던 1940년에 배우로 데뷔하여 악역을 많이 맡았으며, 이소룡 아버지인 이해천(1901~1965)과 친한 선후배 관계라서 이소룡이 어릴 적부터 잘 알던 사이였다.
  • 존 색슨은 자신이 이 영화의 액션을 소화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너무 힘들어서 8일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8일 만에 촬영이 끝났다고.
  • 극중 한의 수집품들 중 하나인 와룡상과 창을 든 장수상은, 홍콩의 제작진들 중 한 노인이 석고와 밧줄과 봉 하나만 가지고 하루 만에 만든 것이라고(…).
  • 그 유명한 "생각하지 마라, 느껴라!(Don't think, Feel!)"도 이 영화에서 나온다. 이 시퀀스를 넣은 건 이소룡의 강력한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는 후문이 있다. 절권도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제한적으로나마 드러내기 위한 의도였다고. #Feeeeel!
  • 랄로 쉬프린이 작곡한 《용쟁호투의 테마(Theme from Enter the Dragon)》는 이소룡,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음악이다. 국내에서도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과 CF에서 배경음악으로 깔렸으며, HOT 출신 장우혁, 토니, 이재원이 JTL로 활동할 때 이 곡을 샘플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노래를 대만의 ENERGY 라는 그룹이 무단으로 리메이크 했다고 한다. 노래 제목은 《무해가격(無懈可擊)》.
  • 《Enter the Dragon》이란 제목이 인상 깊었는지, 중국 관련된 무언가의 제목에 비슷한 이름이 종종 등장한다. 2000년대에도 중국과 미국의 전쟁을 분석해서 이슈가 되었던 RAND사의 보고서 이름이 Entering the Dragon's Lair(용의 굴로 들어가기)였다.
  • 이소룡은 당시 《사망유희》를 한창 기획 중이었는데, 이 영화의 섭외가 들어와서 격투장면 일부만 찍고 일시 중단하였다. 그리고 그 뒤 영원히 세상을 떠났다.
  • 철저히 미국 등 서구권 관객 취향을 고려해 만들어진 탓인지, 무술영화 팬들에게는 다른 이소룡의 작품들에 비해 별로 평이 안 좋은 경우도 있다. 이는 당시 홍콩에서의 흥행기록에서도 보인다. 《당산대형》 [[[홍콩달러], 《정무문443만 홍콩달러, 《맹룡과강530만 홍콩달러로 계속 이전의 흥행기록을 갱신했던 반면, 정작 《용쟁호투》는 330만 홍콩달러로, 홍콩에서의 첫 데뷔작이었기에, 이소룡의 색깔이 가장 적은 편이었다는 《당산대형》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흥행에 그쳤다.
  • 더블 드래곤이라는 게임은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

2 나이스 게임 TV의 게임 리그

용쟁호투(나이스게임TV) 항목 참조.

3주먹이 운다》 4기 부제

주먹이 운다》 항목 참조
  1. 영화사에서 처음에 정한 제목은 《철혈》(Blood and Steel)이었지만, 이소룡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결국 이 제목으로 바뀌었다.
  2. 나쁘게 말하면, 당시 영화사가 흥행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의욕적으로 투자한 작품이 아니었기에, 대충 저예산(80만 달러)으로 만든 영화다. 그렇기에 당시 유행하던 내용 등을 대충 짜 맞추고, 거기에 동양무술을 넣어서 조금 차별화나 시켜보자는 식이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되면 좋지만 안 되어도 저예산이니 괜찮다는 식으로 만들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3. 부인도 포기했다는 그의 사생활에서의 여성행각은 그렇다 치고 이런 종류의 연기를 이소룡이 난감해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물론 《당산대형》에서 러브신이 나오긴 했다. 그런데 이소룡은 술에 떡이 되어 잠들었다는 설정이고, 이소룡을 덮친(?) 여성은 매춘부 역할이었으며, 개봉 시장도 아시아권이었다. 그리고 《정무문》에서도 평소 누이동생처럼 아끼는 사이라고 했던 묘가수와의 단순 키스신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동양인 남성에게 백인 여성이 꼬인다는 설정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할 당시의 백인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준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한다.
  4. 원래 각본에서는 짐 켈리가 끝까지 살아남고 존 색슨이 죽을 예정이었다지만, 색슨의 에이전트가 압력을 가해서 역할을 바꿔 넣었다고 한다.
  5. 심지어 십 수 년 뒤, 길 가다가 노상강도를 만났는데, 존 색슨을 알아본 강도가 돈을 뺏을 생각은 안 하고, 영화 찍을 때 이야기만 열심히 캐물었다 카더라.
  6. 이때 이소룡은 무술 감독도 하고 있어서, 오른쪽 끝을 잘 보면 지휘하는 이소룡을 볼 수 있다.
  7. 이 장면은 오손 웰즈의 대표작 《상하이에서 온 여인》(The Lady from Shanghai)의 마지막 장면을 오마주했다고 한다.
  8. 이 장면에서 이소룡의 상대역을 하기 위해 홍금보, 성룡, 원표, 원화 등 여러 출연진이 경쟁했는데, 이소룡이 홍금보를 뽑았고, 훗날 홍금보는 틈만 나면 "나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이랑 1:1 겨루기 찍은 적도 있다"며 자랑했다고 한다.
  9. 부인이 대신 감독에게 사정사정하느라 매우 고생했다고. 이때 이미 병이 깊어졌던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 이 시기 이소룡이 심한 두통을 호소하거나, 어떨 때는 잠시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10. 다만 홍콩 등지의 영화계 사람들의 이소룡에 대한 대외(對外)용 발언과 사적인 속내와는 다른 경우가 없지 않은데, 홍콩 신문과 잡지 등에서 이를 심층 취재하여 한때 논란이 좀 된 적도 있었다 카더라.
  11. 여기서 이소룡의 부인, 린다 리와 로버트 월의 증언내용이 엇갈린다는 점 등에서 신빙성을 잃는다. 그리고 여러 정황으로 보아, 깡패들을 섭외했다는 말도 100% 신뢰하기 곤란하다. 자세한 것은 이소룡 항목 참고.
  12. 이 병은 영화에서 유리 등을 깰 때 사용되는, 설탕 등의 화학약품으로 만든 병이 아니라, 진짜 유리병이었다. 당시 홍콩에서는 할리우드와는 달리, 설탕으로 유리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다.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에도 보면, 악당들은 물론, 성룡 역시 진짜 유리에 내동댕이쳐진다. 자세히 보면, 특수효과를 위해 만든 유리와는 깨지는 모양 자체가 다르다.
  13. 이소룡을 모티브로 한 DOA 시리즈의 캐릭터 잔 리의 점프 다운공격(상대 다운 시 점프하며 P+K) 또한 이 장면을 재현한다. 기술명도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Enter the Dragon'.
  14. 조금 과장된 면은 있지만, 당시 중국여성들이 강간에 대해 대처하는 전통적인 방식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일본의 중국침략 당시에도,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여성들 중 자결을 택한 여성들이 많았다. 다만 강간당하다가 죽는 장면이 원안(原案)이었다면, 구미(歐美) 백인 남성들의 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판타지(만만한 성적 노리개 등의 이미지)를 고려했을 가능성이 커진다.
  15. 특히 70년대 블랙 익스플로이테이션과 맞물려 인종주의 액션물에서 대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