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 헐트그린

1965년 10월 5일 출생 ~ 1994년 10월 25일 사망

1 소개

Kara Spears "Revlon"[1] Hultgreen미합중국 해군 최초의 여성 함재 전투기 조종사이자, 역대 수많은 순직 조종사들 중 손꼽히는 고인드립의 피해자이다.

2 생애

미국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서 태어나 시카고와 캐나다 토론토에서 자란 뒤 샌안토니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지만 불합격한 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 어릴 적부터 우주 비행사를 꿈꿨기 때문에 그녀는 우주비행사로 뽑히기 가장 좋은 애너폴리스를 지망[2]했고 입시에서 낙방한 뒤 차선책으로 해군 항공사관후보생으로 임관, 조종사 경력을 쌓은 후 NASA에 지원하려 했다. 아직 우주왕복선 여성 조종사가 배출되지도 않았던 시기에 굉장히 담대한 야망을 지녔던 모양.[3]

하지만 여성이라는 유리천장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초기에는 EA-6A 프라울러 조종사로 지상기지에서 주로 근무[4]해야 했다. 그러다 테일후크 스캔들로 미 해군이 발칵 뒤집혀 여성 전투조종사의 실전 배치가 예정되자, 헐트그린은 여러 여성 고정익 조종사들과 함께 F-14 톰캣 훈련에 들어갔다. 이후 태평양 함대의 F-14 예비비행대에 배치되었고, 첫 시도에서 고배를 마셨음에도 끝끝내 정식 함정근무 자격을 따내며 1994년 여름에 니미츠급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 링컨(CVN-72)의 블랙 라이온즈 비행대(VF-213)에 배치되었다. 실력은 동료와 지휘관 남정네들도 모두 인정했지만, 왠지 근무평점은 썩 좋지 못했다. 해군 내에서 성차별적인 사고가 아직 만연했기 때문. 그래도 페르시아만에서 근무하며 썩 좋지는 않아도 순탄한 복무를 이어갔다.

그러나 1994년 10월, 함정근무가 시작한지 몇 달도 되지 않아 F-14 훈련을 마친 뒤 착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F-14A 엔진의 고질적인 문제인 프레임아웃 현상이 착함 시도 도중 발생한 것이다. 탑건에 나온 그 현상. 좌측 엔진이 죽자 우측 엔진 애프터버너를 풀가동한 채 착함을 시도했지만, 높은 고도로 인해 착함하기에는 영 좋지 않은 상황이라 착함 포기를 지시받았다. 하지만 헐트그린은 함정근무에 있어 그다지 베테랑은 아니었던지라 착함 시도를 중단하라는 관제사의 지시에 당황하여 급히 고도를 쫙 올리려다가 실속에 빠졌고, 기체는 왼쪽으로 확 기울었다. 동승한 레이더관제사와 함께 사출을 시도했지만, 후방석보다 0.4초 늦게 사출되는 복좌기 전방석 사출 메커니즘상 탈출이 늦어졌고, 심하게 요동치던 그 0.4초 사이 기체는 확 뒤집혔다. 결국 헐트그린은 사출 직후 해수면에 충돌하며 즉사했다. 사고 19일 후 기체와 함께 인양된 시신은 사출좌석에 묶인 그대로였다. 샌안토니오에서 F-14의 추모비행과 함께 영결식이 치뤄진 후 헐트그린의 시신은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한국 사이트에 소개된 관련 기록.

3 여파

이 사건 이후 미 해군은 진상조사에서 테일후크 스캔들 이전과는 반대로 헐트그린의 과실을 최대한 덮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렇게 객관성을 잃은채 정치적인 목적으로 조종사 과실을 덮으려 했던 시도는 더 큰 논란을 불러왔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사건의 전모가 여론에 드러나자 아직 미숙한 애를 정치적인 이유로 너무 급히 투입했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고, 심하게는 여자가 전투기에 못 타는 건 이유가 있는 거다 등의 남성우월주의적인 주장마저 터져나왔다. 물론 이런 소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개소리임엔 분명하지만, 미 해군이 객관성을 잃고 헐트그린을 너무 실드치려고만 한 것이 이딴 개소리까지 나오는 원인이었음 역시 사실이기에 여러모로 골때리는 이슈였다. 하지만 이전에 헐트그린이 톰캣은 아니지만 프라울러로 착함하던 기록영상에서는 비슷한 위급상황에서도 기민한 대처를 통해 무사히 착함했던 적도 있고,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조종사라 해도 남자고 여자고 신참내기들은 이런 위기상황에 우물쭈물하거나 순간 잘못 판단했다가 목숨을 잃는 사례가 꽤 많았다. 특히나 F-14A TF30 터보팬 엔진의 프레임아웃 현상은 1980년대 영화인 탑건에서도 묘사되듯이 예나 지금이나 저거 때문에 사고난다는 소리를 듣던 문제였다. 사실 헐트그린이 남자였으면 그냥 조용히 고인을 애도하면서, 비행훈련 교범에서 반면교사로나 기록되면서 조용히 잊혀졌을 사건이었다. 하여간 미 해군의 오락가락하는 정책 때문에 앞길 창창하고 이루고 싶은 꿈도 많았던 젊은 조종사만 불쌍하게 되었고 죽어서도 악플고인드립의 대상이 되며 편히 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미 해군에서 다시 병크가 이어졌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여성을 너무 급히 함정근무에 투입했다는 판단을 한 미 해군 측에서는 헐트그린과 함께 배치되었던 동료 여성 F-14 조종사 캐리 로런츠(Carey Lohrenz) 대위를 즉시 그라운딩시켰다. 최소한의 재심사조차 일절 실시하지 않은 채. 로런츠는 씨바 할 말을 잊고 2년간의 법정다툼을 거쳐 비행 자격을 겨우 회복했지만... 해군에서 그런 로런츠를 다시 항공모함에 보내줄리가 있나.


이후 로런츠는 리더십 연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탑건 경력의 F-14 조종사 출신 제임스 윈펠드 합동참모차장과 만난 모습.

4 기타

유가족 중에는 3살 연상의 언니인 배우 대니 헐트그린(Dagny Hultgreen)이 있다.

헐트그린이 이루지 못한 첫 여성 전투조종사 출신 우주 비행사의 기록은 2013년 미합중국 해병대 F/A-18 조종사 출신의 니콜 만(Nicole Mann) 소령이 NASA 우주비행사로 선발되며 비로소 쓰여졌다. 다만 우주왕복선도 전부 박물관에 있고 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이나 스페이스X, 보잉 유인 우주선 역시 아직 개발 단계라서 실제 우주 미션까지는 많은 세월이 남아있다.
  1. 원래 헐트라는 이름에서 기인한 Hulk, 내지는 She-hulk 같은 콜사인을 썼지만 언론 인터뷰에 나가면서 화장한 모습이 모에하다고 동료들이 Revlon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참고로 레블론은 화장품 브랜드.
  2. 우주비행사는 군인들이 많이 뽑히기 때문에 NASA 우주비행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교는 미 해사와 공사다. 민간 중에서는 MIT가 최다.
  3. 아일린 콜린스NASA 우주인단에 뽑힌 것이 1990년이다. 이후에도 셔틀 여성 조종사는 파멜라 멀로이(Pamela Melroy), 수잔 스틸(Susan Still) 외에는 뽑히지 않았다. 콜린스와 멀로이의 경우는 공군 수송기 조종사 출신이고, 스틸의 경우는 헐트그린의 F-14 지원 이전처럼 프라울러 조종사로 활동하다 해군 테스트 파일럿 스쿨을 수료한 후 F-14 훈련을 받았지만 실제 함상근무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4. 가끔씩 땜빵이니 훈련이니 해서 항공모함을 들락거리지만 상시 배치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