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 우주인단

1 NASA Astronaut Corps란?

NASA Astronaut Corps, 우리말로 NASA 우주인단 또는 우주 비행단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배출한 우주 비행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군대식 용어이지만 실제로는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출신까지 포함하여 지칭한다.

주의할 것은, X 실험기 시리즈라던가 여러가지 해괴망측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지구 상공 100km까지 올라갔다 온 테스트 파일럿들도 은근히 있기 때문에 역대 기수와 첫 우주비행의 연도가 맞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기수별로 배출된 연도와 실제 활동 시작 연도는 약 2~3년의 차이가 있다. 우주비행사 훈련을 수료한 후에도 트레이닝은 더 하드코어하게 계속되며, 실제 우주에 올려보내기 전에 백업 승무원이나 지상연락관(일명 캡콤) 임무로 일을 계속해서 배우기 때문.

NASA 최초의 우주인단인 NASA Astronaut Group 1기는 소련에게 스푸트니크 쇼크로 헤드샷을 맞고 국가의 자존심이 박살나며 NASA가 설립되자마자 조직된 머큐리 계획의 7인을 일컫는데, 당시에는 전원이 미군 현역 비행장교 출신이었다. 앨런 셰퍼드를 필두로 거스 그리섬, 존 글렌, 스콧 카펜터, 월리 시라, 고든 쿠퍼, 디크 슬레이튼이 그 구성원이었다. 하지만 앨런 셰퍼드의 첫 우주비행 얼마 전 보스토크 계획의 필두였던 유리 가가린의 우주 비행이 세계를 뒤흔들며 콩라인화...

이후 제미니 계획~아폴로 계획의 멤버들이 된 2기부터는 현역에서 물러난 제대군인들이 일부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면 닐 암스트롱이 있다. 암스트롱은 해군 중위 출신으로 6.25 전쟁에서 격추되는등 온갖 험한 꼴을 다 보다가 전쟁이 끝나자 예비군으로 빠지더니 그냥 진급을 포기하고 제대하여 방위산업체 테스트 파일럿 커리어를 시작한 케이스다.

아폴로 계획의 주축이 된 5기까지의 멤버들은 대개 조종장교 출신의 군인이었다.[1] 4기에서는 파일럿 교육은 군에다 위탁교육을 실시하는 대신 학위 기준을 박사로 높여버리며 민간인 과학자들을 뽑았다.[2] 하지만 파일럿 경험이 전무한 민간인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여겨졌는지 5기는 다시 전문 조종사들을 뽑았다.[3] 6기에서 다시 작정하고 민간인 과학자들을 뽑았는데, 이들은 이후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의 핵심이 되기도 한 미션 스페셜리스트의 시조가 되었다. 그 다음 기수인 1969년의 7기에서는 특이하게도 몽땅 공군에서만 뽑아버리는 일이 나오기도 했다. 정확히는 공군이 NASA와 별도로 유인 우주 프로그램인 USAF Manned Orbiting Laboratory를 진행했다가 프로그램이 캔슬되고 선발된 인원들 중 일부가 NASA로 편입된 것.[4][5]

2 Chief Astronauts

Chief Astronauts, 우리말로 번역하면 선임/수석 우주비행사라는 직위가 있다. 군대로 치면 주임원사 정도 되는 보직인데, 실제로 우주에 나가기보다는 대개 언론 홍보나 우주인 모집 등의 업무에서 얼굴마담 노릇을 하고 우주 비행사들의 최선임으로서 현역 우주비행사들의 건강과 복지를 점검하는 정도의 보직이다. 초창기에는 머큐리 계획에서 그라운딩 당한 디크 슬레이튼앨런 셰퍼드가 보직을 맡는등 불쌍한 베테랑들[6]의 위치[7]였지만 이후에는 많은 우주 체류경력을 가진 우주인들의 대표자 역할로서 목소리를 내는 보직이 되었다. 대개는 파일럿들이 이 보직에 임명되었지만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이 보직을 역임한 페기 윗슨은 수석 우주비행사를 지낸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미션 스페셜리스트로 기록되었다. 여성으로서 이 직위에 오른 것은 굉장한 위업인데, 그도 그럴 것이 페기 윗슨은 최초의 여성 ISS 사령관이었다.

3 직급

NASA 우주비행사들의 직급은 시대마다 달라진다.

머큐리 계획 때는 1인승이었기 때문에 딱히 직급이랄 것도 없었지만, 제미니 계획 이후로는 우주비행사들이 많아지면서 짬밥이나 비행 경력, 근무평가에 따라 직급을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그리하여 2인승 제미니 미션에서의 우주비행사는 미션 사령관[8]과 파일럿으로 구분되었으며, EVA 등의 여러 미션은 파일럿이 맡았다.[9] 3인승 아폴로 7호부터는 미션 사령관 뒤로 사령선 파일럿, 그 다음이 달 착륙선 파일럿이었다.[10] 스카이랩 미션에서는 사령관 다음이 시니어 파일럿, 파일럿이었고[11],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에서는 사령선 파일럿 다음이 도킹 모듈 파일럿이었다. 뭐, 이 쪽은 달 착륙 대신 소유즈와의 도킹을 위한 일회성 미션이었으니... 이후 1980년대부터의 우주왕복선 미션에서는 STS-1부터 4까지는 사령관과 파일럿만이 탑승하여 테스트 비행을 수행했고, STS-5부터 본격적으로 궂은 일을 도맡아 할 미션 스페셜리스트 여럿이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다. 이외에 갖가지 이유로 동승하는 비정규 우주비행사는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라고 따로 불렀다.[12]

반면 소련/러시아는 사령관 밑의 직급이 엔지니어였다. 오늘날 ISS에서의 승무원 직급은 미국식이 아니라 러시아 방식을 따르고 있다.

4 기록과 사건, 사고

군 출신 우주비행사들은 흔히 파일럿들만 뽑힌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조금 어폐가 있는데, 우주선 조종사는 정말 파일럿만 뽑히는게 일반적이지만 연구원인 미션 스페셜리스트는 파일럿이 아니어도 다른 병과 출신이 많이 배출된 바 있다. 다만 아직까지 미션 스페셜리스트와 파일럿은 모두 장교들만이 배출되었다. 정식 우주인이 아닌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직급에서 토머스 존 헤넌 육군준위(CWO-4)가 우주에 올라간 적은 있지만...

4.1 2기 "New Nine"

가장 화려한 업적을 남긴 기수. 제미니 계획과 아폴로 계획의 중추가 되었고, 이후 스카이랩과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 우주왕복선에도 참가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 속해 있다.

  • 존 영 - 제미니 3호, 10호, 아폴로 10호, 아폴로 16호, 우주왕복선 STS-1, STS-9.[13] 아폴로 16호의 사령관으로 달에 착륙. 첫번째 우주왕복선 사령관 임무로 '의회 영예 우주 메달'을 수상.
  • 짐 맥디빗 - 제미니 4호, 아폴로 9호. 최초로 달 착륙선을 조종했다.
  • 에드 화이트 - 제미니 4호, 아폴로 1호. 미국인 최초로 우주유영을 하였으며, 아폴로 1호의 화재 사건으로 사망하였다. 사망 후 '의회 영예 우주 메달' 추서.
  • 피트 콘래드 - 제미니 5호, 11호, 아폴로 12호, 스카이랩 2호. 아폴로 12호의 사령관으로서 달에 착륙한 세번째 인류. 첫번째 스카이랩 미션인 스카이랩 2호 사령관 임무로 '의회 영예 우주 메달' 수상.
  • 엘리엇 시 - 제미니 9호 예정이었으나 우주 비행 전 항공 사고로 사망.
  • 토머스 스태퍼드 - 제미니 6A호, 9A호, 아폴로 10호,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 아폴로의 마지막 사령관으로서 '의회 영예 우주 메달' 수상
  • 프랭크 보먼 - 제미니 7호, 아폴로 8호. 달 궤도에 처음으로 날아간 아폴로 8호의 사령관으로서 '의회 영예 우주 메달' 수상. 1968년의 TIME지 '올해의 인물'로도 선정.
  • 짐 러블 - 제미니 7호, 12호, 아폴로 8호, 13호. 아폴로 13호의 사령관으로서 '의회 영예 우주 메달' 수상. 달 궤도에 두 번이나 날아간 단 세 명의 인류 중 유일하게 달에 착륙하지 못한 사람. 역시 1968년 TIME지 올해의 인물.
  • 닐 암스트롱 - 제미니 8호, 아폴로 11호. 제미니 8호 미션에서 아지나 무인 표적과의 궤도상 도킹을 실행[14]했다가 NASA 역사상 처음으로 비상상황에 놓였지만 침착한 대처를 통해 제미니 8호를 무사히 귀환시켰다. 또한 첫번째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사령관으로서 '의회 영예 우주 메달' 수상.

9명 중 7명이 미국의 '의회 영예 우주 메달'을 수상하였다. 지금까지 수여된 28명 중 사망사고로 사후 추서된 17명[15]을 빼면 11명인데, 이중 6명이 2기 출신임을 볼 때 얼마나 엄청난 업적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4.2 기록의 8기

한편 아폴로 계획이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로 한 시대를 마무리한 뒤 차세대 우주선인 스페이스 셔틀을 개발하던 1970년대 중반까지 NASA는 우주 비행사를 추가로 채용하지 않았다. 사실 MOL에서 편입한 우주비행사들도 뛰어볼 미션이 없어서 공밀레만 돌리는데 당연하지. 그 후 셔틀이 개발되며 1978년 뽑힌 8기에서는 한번에 최대 7명까지 실어나르는 셔틀 시대의 개막에 맞춰 여성들이 들어왔고 아시아계도 들어왔으며 그간 배출되지 못한 인원이 몽땅 나왔다. 그에 따라 온갖 진기록이 쏟아졌는데, 주요 기록으로는...

  • 샐리 라이드 - 최초의 미국 여성 우주 비행사이자, 역사상 최초의 동성애자 우주 비행사.[16]
  • 주디스 레스닉 - 최초의 유대인 우주 비행사.
  • 캐스린 설리번 - 미국 여성 우주 비행사로서 최초의 EVA 수행.
  • 애나 피셔 - 최초의 육아 휴직자.[17]
  • 엘리슨 오니즈카 - 최초의 아시아계 우주 비행사
  • 가이언 블루퍼드 & 로널드 맥네어 - 각각 최초, 두 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인 우주 비행사.[18]
  • 프레더릭 그레고리 -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우주왕복선 파일럿이자 선장.
  • 노먼 태거드 - 러시아 로켓 소유즈로 올라간 최초의 미국인
  • 섀넌 루시드 - 미국인 여성으로서 최초의 장기간 우주체류. 자식이 딸린 어머니로서 최초의 우주 비행사 선발.
  • 로버트 깁슨 & 리아 세든 - 최초의 현역 우주 비행사 간 결혼
  • 밥 스튜어트 - 최초의 육군 출신 우주 비행사. 그간 군 출신 우주 비행사들은 전부 공군, 해군, 해병대 출신이어서 육군은 묘하게 안습한 처지였다. 정작 공군 우주 비행사 상당수를 키워준 미국육군사관학교는 한동안 자기네 육군 아이들은 보내지 못하고 안습했던 처지. 이후 밥 스튜어트는 육군 준장까지 지냈다.

이들 중 레스닉, 오니즈카, 맥네어, 그리고 8기를 수료한 파일럿 딕 스코비는 STS-51-L 미션에서 희생되었다.

4.3 물개의 우주 정복 : 특수부대 출신 우주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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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기의 멤버인 윌리엄 맥마이클 셰퍼드[19]네이비 씰 출신으로서 우주 비행사 훈련을 수료하였다. UDT 특기를 살려 STS-51-L 챌린저 폭발사고 이후 잔해 수색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우주인 명예 훈장을 받았다.


17기 출신의 이탈리아 국적 미션 스페셜리스트 파올로 안젤로 네스폴리는 이탈리아 육군 특전대 출신으로 러시아와 미국의 우주인 프로그램을 모두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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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기 출신의 크리스토퍼 존 캐시디는 네이비 씰 잠수정부대 출신으로서 우주 비행사 훈련을 통과하고 우주에 나갔다. 우주인은 생각도 않고 있었던 전형적인 특수부대원이었지만 윌리엄 셰퍼드와의 만남에서 감명을 받아 NASA에 원서를 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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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기 우주비행사 후보생 앤드루 리처드 모건은 미국육군사관학교국방의학전문대학원 출신의 레인저 수료자로 합동특수작전사령부 의무관으로 복무하다 중령 계급으로 21기 우주 비행사 훈련을 수료했다.

4.4 NASA 우주비행사 출신 미군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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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배출된 12기 파일럿 케빈 패트릭 칠튼이 역대 미군 출신 NASA 우주비행사 중에는 최고 계급까지 진출한 인물이다. 공군 대장까지 올라서 미국공군우주사령부STRATCOM 사령관을 지냈다.

하지만 3성까지 진급한 인물은 칠튼을 빼면 겨우 셋 뿐이다. 토머스 스태퍼드, 리처드 트룰리, 수잔 헴스가 그 셋. 그러나 애초에 장성까지 진급한 사람이 십수명 뿐임을 생각하면 오히려 3성을 단 사람이 넷이나 나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일수도 있다. 사실 군인이 NASA에서 전문 우주비행사로 근무한다는건 우주전이 일반화되지 않은 오늘날에는 군인으로서의 생명은 거의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 커리어와 우주비행사 커리어를 병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근무지에 견학 온 초딩들한테 사인해주고 사진 찍어주고 임무 하나하나가 언론에 보도되는 군인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게다가 그 열네명 중 대부분은 아폴로 계획 시대에 달에 갔다오는등의 공로로 군에서 어떻게든 끌어오려고 용을 썼던 인물들이라 군사적인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20] 스무 명도 안되는 장성 진급자[21]윌리엄 앤더스 공군소장(아폴로 8호 승무원), 찰스 듀크 공군준장(아폴로 16호 달 착륙), 마이클 콜린스(아폴로 11호 승무원), 토머스 스태퍼드 공군중장(아폴로 10호 사령관), 앨런 셰퍼드 해군소장(미국 최초의 우주인/아폴로 14호 사령관), 켄 매팅리 해군소장(아폴로 16호 승무원)까지 6명이 달에 갔다온 사람들이다.

나머지 중에도 짐 맥디빗(공군준장)은 달에는 못 갔지만 최초로 달 착륙선을 테스트했던 아폴로 9호의 사령관이었고, 조 엥글(공군소장)과 리처드 트룰리(해군중장)가 우주왕복선 개발에 크게 기여했던 것을 감안하면 문 레이스 이후의 우주비행사들 중에는 로널드 세가(공군소장), 로이 브리지스(공군소장), 찰스 볼든(해병소장), 밥 스튜어트(육군준장), 케빈 패트릭 칠튼(공군대장), 수잔 헴스(공군중장) 6명 뿐이다. 헴스의 경우 여군으로는 유일무이한 인물.

대체로 NASA와 연계된 일거리(?)가 많은 공군 장성들이 대부분이지만, 육군과 해병대에서도 한명씩 나왔고, 해군에서도 세 명이 나왔다.

4.5 쌍둥이 우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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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켈리스콧 켈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형제 우주인[22]이자 쌍둥이 우주인. 모두 해군 출신으로 16기를 수료했으며, 마크는 현재 퇴역했고 스콧은 현역이다. 마크의 아내는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중상을 입은 개브리엘 기퍼즈 前 연방 하원의원으로, 마크는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 STS-134 미션을 끝으로 아내의 간호를 위해 동생이 아직 현역으로 뛰는데도 퇴역을 결정하고 총기 규제 운동과 병간호에 앞장서고 있다. 스콧은 STS-51-L 챌린저 참사 이후 21년 만에 실시된 바버라 모건의 우주 원격 수업이 있었던 STS-118 미션에서 수업 보조(?)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우주에서의 장기 체류시 인간의 신체 변화를 탐구하기 위한 1년 장기체류 미션인 Expedition 44에 선발되어 2015년 3월 말부터 ISS에 체류 중으로, NASA에서는 1년 후 유전적으로 동일 인물인 마크와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기대(?)하는 중. 이외에 16기에는 켈리가 한명 더 있는데 그 켈리[23]까지 혈연관계인 건 아니라고. 또한 마크는 미국상선단사관학교 출신[24]인데, 우주비행사 중엔 1966년 2월 28일 T-38 추락사고로 순직한, 제미니 9호에 탑승할 예정이었던 엘리엇 시 이후 처음이다.

이외에 16기는 35명이 우주 비행사 훈련을 수료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기수로 기록되었다.

4.6 막장 드라마

16기 미션 스페셜리스트였던 리사 노왁은 17기의 파일럿 윌리엄 오펄레인과 사랑사실은 불륜에 빠졌다. 하지만 윌리엄이 리사를 등지고 콜린 시프먼 공군대위를 선택하자, 리사는 콜린을 납치하고 죽여버리려 했다. 하지만 리사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불륜남녀 두 사람은 우주인의 품위를 땅에 떨어뜨린 죄로 NASA에서 쫓겨났다.

4.7 장비 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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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사에 길이 남을 흑역사의 주인공들

좌측 하이디마리 스테파니신-파이퍼(Heidemarie Stefanyshyn-Piper)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으로, 미 해군 심해잠수사 출신, 가운데 스티븐 보언(Stephen Gerard Bowen 이름에서 풍기는 패기가...)은 미 해군 잠수함 장교 출신, 우측 로버트 셰인 킴브러(Robert Shane Kimbrough)는 미 육군 아파치 조종사 출신의 우주비행사다. 이들은 ISS Expedition 18이 진행중인 2008년 11월 STS-126 미션에서 ISS 건설을 위해 수 차례의 EVA를 실시했는데, EVA 도중 공구 가방을 제대로 안 붙여놨다가 잃어버렸다. 그냥 지구에서 공돌이들이 빠루 같은거 잃어버리면 다시 찾거나 사서 쓰면 되겠는데, 우주에서 공구 가방을 잃어버리면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 게다가 저것은 1억원은 거뜬히 넘는 장비들이다. 결국 장비를 제대로 붙여놓지 않았다가 저 멀리(...) 날려버린[25] 스테파니신-파이퍼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NASA를 나와야 했고, 킴브러도 STS-126 이후 우주왕복선이나 러시아 소유즈 미션에 배정되지 못했으며, 보언도 셔틀 시대의 막바지 미션에서 유일무이한 연속 미션 수행 기록[26]을 세운 것 외에는 소유즈 미션에 배정되지 못했다. 일단 EVA 부문에서는 NASA의 현역 중에서도 독보적이니만큼 오리온 시대에도 활동할 예정이긴 한데... 안습[27] 다만 킴브러는 국제우주정거장 Expedition 49/50 승무원으로 내정되었다.

4.8 외모?

인류 최고치의 스펙을 가진 엘리트라는 스타성과 미남미녀가 나오는 SF영화의 영향 때문에 외모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으나 큰 기대는 금물이다. 우주인이 될만한 스펙을 쌓으려면 최소한 30대 후반, 대부분 4~50대는 되어야 하며 군인출신이나 공부에 몰빵한 공돌이, 공순이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본판이 좋더라도 일상스케쥴 자체가 하드코어 하기 때문에 외모에 치중할 시간은 거의 없다.

우주진출 초기인 냉전시대 때는 체제선전 성격이 강하여 국가 차원에서 우주비행사들을 데려다가 파티나 강연 뺑뺑이를 돌리며 외모관리에 신경쓰게 하고, 경쟁열기가 식은 셔틀 시대 초반만 하더라도 NASA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들은 여성이란 타이틀 선전을 위해 외모 관리 역시 중요한 과업으로 요구받아 스트레스를 많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은 우주비행사들의 외모관리는 꾀죄죄하다는 말을 들을 일은 청결을 유지하는 선에서만 유지되고 있다.

4.9 대학별 배출 랭킹

2013년 기준 NASA 우주비행사 목록[28]

대체로 NASA 우주비행사들은 군인 출신이 많은지라 아무래도 미국해군사관학교, 미국공군사관학교가 우주비행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이다. 이들을 제외한 민간 대학에서는 MIT가 30명 이상을 배출하여 가장 많고, 그 뒤로 스탠퍼드 대학교, 퍼듀 대학교 등이 뒤를 잇는다. MIT의 라이벌은 MIT의 반도 안된다 한편으로는 달에서의 인류 최초의 발자국인류 최후의 발자국을 남긴 두 사람은 모두 퍼듀를 졸업했는데, 당연히 퍼듀에서는 이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다.[29]

5 오리온 시대의 인원 감축

한번에 7명씩 마구마구 실어나르던 우주왕복선이 모두 박물관에 들어가며 NASA는 우주비행사들의 세대교체 문제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이전까지 STS-107 사고 이후 2004년에 선발된 19기가 마지막 셔틀 세대로, 이들 이후의 20기(2009년 선발)부터는 러시아에서 소유즈를 타고 다니며 ISS 엑스퍼디션을 뛰거나 지상에서 로켓이나 우주선 개발에 참여해야 한다. 문제는 불곰네가 소유즈에 끼워줄 자리는 한 자리 마련하기도 굉장히 벅차다는 것. 한 자리 태워주는데 7천만불씩 삥뜯어가니 예산 없어서 고생하는 NASA는 떡실신(...) NASA는 우주왕복선 이후의 차세대 우주선인 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과 이를 발사할 SLS를 위해 최선을 다해 있는 돈 없는 돈 쥐어짜서 갈아넣고 있지만[30], 최초의 유인 비행은 빨라야 2010년대 후반에나 가능할 것이며, 초반 지구 궤도나 ISS 도킹 미션이 지나면 예정된 지구 근처 궤도의 소행성 착륙, 그리고 달 착륙 미션이 될 때는 이 20기와 21기가 주력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이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NASA는 결국 셔틀에만 익숙하던 선배들을 대대적으로 명퇴(...)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일단은 로스코스모스나 ESA에 파견근무하는 형식으로 일자리를 유지해보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오리온 역시 4인승에 불과한지라 이들도 나중에 오리온에 탑승할 자리가 많이 보장될런지는 안습.[31] 그리하여 2013년 선발되어 훈련에 들어간 21기의 멤버 수는 8명에 그쳤다. 눈여겨볼 점이라면 남/녀가 모두 4명씩이며, 이 중 앤 매클레인은 육군 헬리콥터 조종사 출신이고 니콜 만은 F/A-18 조종사 출신이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소행성, 화성에 착륙할 최초의 인물은 여성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32]고 평가하는 중. 실제로 NASA의 일부 의료 관계자들도 앞으로의 유인 천체 탐사는 소행성이든 달, 화성이든 가능하다면 여성을 써먹는 것이 더 괜찮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기도 했다.

6 관련항목

  1. 그래서 이들은 선발 당시 학위가 석사까지만 요구되었다.
  2. 이들 중 지질학자 해리슨 슈미트가 아폴로 17호에서 달을 밟게 된다.
  3. 이들은 아폴로 후기 미션과 스카이랩, 우주왕복선 개발 단계까지 함께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 엥글프레드 헤이즈.
  4. 이 프로그램은 미 공군의 주도로 이뤄졌다 뿐이지 공군에서만 인원을 선발한건 아니고 해군 쪽에서도 뽑긴 했다. 군적상으론 해군인데 공군에게 월급받는 괴랄한 상황. 왜 공군이 NASA와 별개로 이런 짓을 했냐면, 살류트 프로그램에서 소련이 군사적 목적의 우주정거장을 도모한다는 첩보를 입수하자 미군에서 맞불을 놓기 위해 제미니 계획의 남은 모듈을 갖고 계획한 것. 이후 이는 예산 문제로 백지화되었고 NASA에서 이 인원들 중 자기네 조건에 만족되는 이들을 낼름 받아갔다. 지금도 NASA와 별개로 미국공군우주사령부에서는 갖가지 기괴한 짓거리를 하며 세계를 관찰하고 있다.
  5. 이처럼 미국에서 NASA만 우주 비행사를 뽑은 것은 아니다. 머큐리 이전, 유리 가가린의 우주 비행이 알려지기도 전인 1958년 여러 방위산업체와 NACA(NASA의 전신인 국가항공자문위원회), 공군 측에서 합동으로 계획한 MISS(Man In Space Soonest)라는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선발 계획이 있었으나 이는 NASA가 설립되기도 전이었다. 그리고 유리 가가린 크리가 뜨자 이들의 처지도... 이때 뽑힌 우주 비행사 후보들 중 NASA의 35세 이하 연령기준을 만족한 단 한명만이 NASA에 합류하는데, 그가 바로 닐 암스트롱.
  6. 디크 슬레이튼은 원인불명의 심장질환으로 머큐리 계획에서 우주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라운딩 당했으며, 앨런 셰퍼드도 귓병으로 10년 이상 지상에서만 돌다가 겨우 아폴로 14호로 달에 갈 수 있었다. 일단 아폴로-소유즈 도킹 프로젝트에서 디크 슬레이턴도 우주에 갔다오긴 했지만...
  7. 그러나 명예직이기만 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디크 슬레이튼은 머큐리 시절부터 우주 왕복선 초창기 시대까지 함께하며 우주 비행사 교육과 선발, 그리고 우주 왕복선 개발에 큰 공헌을 했던 인물이다. 닐 암스트롱버즈 올드린 중 누가 먼저 달을 밟을 것인지를 깔끔하게 정리한 인물도 바로 디크 슬레이튼.
  8. 흔히 선장이라고 번역되지만, 영문 명칭은 Captain이 아니라 Commander라고 부른다. 사실 인류의 우주선 발사는 이 시절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바다로의 출항, 항해'보다는 '미션'에 가깝다.
  9. 여기서의 '파일럿'는 실제로는 정조종사가 아니라 부조종사에 가깝다. EVA는 이들의 몫이었다.
  10. 즉, 짬밥으로 사령관 다음이지만 정작 달을 밟는 영광은 초짜에게 돌아갔다. 버즈 올드린 역시 원래는 사령선 파일럿이었다가 11호의 중요도를 감안한 상부에서 올드린 같은 전문가를 착륙선에 배치한 것. 11호 이후 미션들의 달 착륙선 조종사는 모두 신참들이 맡았고, 대신 아폴로 15~17호에서 추가된 심우주 EVA는 사령선 조종사들의 몫이 되었다.
  11. 스카이랩 자체가 수십일 장기 체류 미션이었기 때문에 이 미션에서는 사령관 외의 승무원들은 전문 과학자들도 있었다.
  12. 정치인(...)을 우주에 올려보내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첫 우주비행사 배출에 협조하기도 하고, 민간 기업이나 펜타곤이 미션 수행을 감독하기 위해 따라 올라가기도 했다.
  13. 이 기록이 정말 흠좀무한데, 아폴로 시절의 막바지에 선발된 우주 비행사들이 스카이랩과 우주왕복선 시대 초창기를 주도하는 대세 속에서 제미니 시절의 올드보이가 계속해서 현역 우주비행사로 버틴 것이다! 제미니의 첫 유인 미션이었던 제미니 3호의 발사가 1965년이었는데 우주왕복선 미션 STS-9는 1983년이다. 게다가 NASA의 역사와도 같은 이들 우주선을 모두 파일럿과 사령관으로서 조종했다. 이 양반은 계속해서 NASA에서 일하면서 2004년까지 근무했다. 자서전 제목이 괜히 Forever Young이 아니다.
  14. 이는 사상 최초였다. 심지어 소련도 아직은 이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15. 아폴로 1호의 세명과 STS-51-L, STS-107 사고의 각각 7명.
  16. 다만 동성애자였음은 사후에 알려졌다.
  17. 애나는 60대 중반이 된 2014년 현재도 명예직에 가깝게나마 현역이다. 게다가 남편은 9기에서 배출된 의사 출신 우주 비행사 빌 피셔. 당연히 우주비행사의 배우자가 우주비행사로 뽑힌 진기록도 갖게 되었다.
  18. 우주 비행사로 선발된 인물 중에는 1967년 MOL 3기에서 선발되었던 로버트 헨리 로렌스가 있다. 그러나 1967년 12월 F-104 비행교관으로 활동하던 중 사고로 순직했다. 흑인 최초로 우주에 올라간 인물은 쿠바 출신의 아르날도 타마요(Arnaldo Tamayo Méndez)로, 1980년 9월 18일 소유즈 38 미션에서 우주에 나가게 된다.
  19. William McMichael Shepherd. 앨런 셰퍼드(Alan Shepard)와는 무관.
  20. 달에 갔다오면 대통령이 쿨하게(!) 대령 계급을 쏘고 군에서는 원하는 보직 아무거나 말하면 다 시켜줄테니 NASA 그만두고 돌아오라는 식이었다.(그런데도 많은 우주비행사들은 NASA에 계속 있겠다고 뻗댔다!) 이들은 1970년대 전후에 대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의 나이였는데, 인사적체가 심하지 않았던 시대라곤 해도 일반적으로 이 나이는 장성은커녕 대령 달기도 빠른 편이다.
  21. 다만 통계가 아주 정확하진 못하다. NASA가 우주비행사들의 NASA 퇴직 이후의 커리어에는 너무 민감한 사항이 아니면 크게 터치하지 않는 편인데다 우주비행사를 하도 많이 뽑아놔서(...) 한 예로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의 승무원이었던 밴스 브랜드는 해병대에서의 최종 계급이 밝혀지지 않았다(...)
  22. 부자로는 오웬 개리엇과 리처드 개리엇도 있지만 리처드 개리엇은 전문 우주비행사가 아니라 우주비행 참가자였으니 실질적인 혈연관계 우주인으로는 이 둘이 유일하다.
  23. 제임스 켈리. 이 쌍둥이들과 달리 공군 출신이다.
  24. 이 쌍둥이들 자체가 원래는 파일럿이 아니라 상선사관을 하려다가 모종의 계기로 삘을 받아 조종사가 되고 우주까지 간 것.
  25. 머나먼 우주로 날아간 것은 아니고, 지구 중력 때문에 얼마 후 대기권에 돌입하여 다 타버렸다.
  26. STS-132, STS-133. STS-133 미션의 원래 승무원 중에 자전거 사고로 부상자가 나오면서 대타로 들어간 것. 셔틀 시대의 말년이라 차기 셔틀 미션을 보장받을 수 없음에 다른 우주비행사들은 백업으로 고생하려고 들질 않아서 결국 근래 미션에서 뛰었던 멤버들이 다음 미션의 백업으로도 뛰어야 했다. 이런 개말년 안습한 사례는 옛날 아폴로 17호 시절에도 있었다.
  27. 여담으로 제미니 시절에 최초의 EVA를 했던 에드 화이트는 당시 장갑을 잃어버렸교... 그게 TV카메라에 찍혔다.
  28. 여러 대학에서 학위를 딴 경우 중복으로 집계된다.
  29. 퍼듀 자체가 공학, 특히 항공우주공학 분야에서 전미에서 손꼽히는 명문 대학이다.
  30. 추가로 소유즈 대신 ISS 택시 노릇을 해줄 스페이스X, 보잉드래곤 V2, CST-100까지... 물론 이들은 민간 기업이 개발하는 거지만, 이것도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NASA가 빵셔틀 노릇을 해줘야 한다.
  31. 아폴로 시대와 셔틀 시대가 마지막 발사(ASTP)/첫 발사(STS-1) 기준으로 6년의 간극이 있었는데 그 기간에 달이나 스카이랩에 갔다온 우주비행사들은 대부분 지상근무만 하다가 은퇴하였다. 셔틀과 드래곤V2, CST-100, 오리온의 시대에도 그 간극은 최소 6년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STS-107 컬럼비아 참사 이전의 세대는 아마 극소수만이 오리온 미션에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대 중반 기준으로는 일단 우주선 만드는 민간 기업체들에서 모셔가기도 하는 편.
  32. 실제로 2000년대 이후로 나오는 SF 작품 속의 유인 화성 탐사 프로그램에서는 화성 탐사대의 사령관이 여성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닥터후The Waters of Mars에 등장하는 아들레이드 브룩, 마션의 멜리사 루이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