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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Mr. Europe'이라고 불리며 유럽을 호령한 최고의 공격수였다. | |
F.C. 바이에른 뮌헨 사장 | |
카를하인츠 "칼레" 루메니게 (Karl-Heinz "Kalle" Rummenigge) | |
생년월일 | 1955년 9월 22일 |
국적 | 독일 |
출신지 | 독일 립슈타트 |
포지션 | 공격수 |
프로 팀 | FC 바이에른 뮌헨 (1974~198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84~1987) 세르베트 FC (1987~1989) |
국가 대표 | 95경기 45골 |
프런트 | FC 바이에른 뮌헨 부사장 (1991~2001) FC 바이에른 뮌헨 사장 (2002~) |
1979 Ballond'or | ||
수상 케빈 키건 | 2위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 3위 뤼트 크롤 |
1980 Ballond'or | ||
수상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 2위 베른트 슈스터 | 3위 미셸 플라티니 |
1981 Ballond'or | ||
수상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 2위 파울 브라이트너 | 3위 베른트 슈스터 |
1982 FIFA 월드컵 | ||
골든 볼 파울로 로시 | 실버 볼 파울로 로베르토 팔카오 | 브론즈 볼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주장 | |||||||||||
파울 브라이트너 (1980~1983) | →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1983~1984) | → |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1984~1991) |
Mr. Europe
1 소개
역대 독일 레전드 포워드이자 1980년대 초반 세계 축구를 주름잡았던 1인자로, 역대 최고의 퍼스트~ 세컨드 탑 포지션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선수 중 하나다.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대부분의 전성기를 보냈으며 저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 2연속 제패 및 인터컨티넨탈 컵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성공적인 클럽 커리어를 쌓았다. 당시 서독 국가대표로서 유로 1980 우승 및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과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연속 준우승 등등에 기여하며 2차례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한 전설적인 선수다. 차범근과 함께 같은 시기에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실제로 여러차례 맞붙었다.
2 활약
다음은 독일의 축구 언론 키커지에서 평가한 루메니게의 시즌 별 순위(공격수 관련)로, 루메니게가 어느 정도 수준의 클래스의 선수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74-75 : 3.24 - 44위 / 26경기 8골 (데뷔시즌)
75-76 : 2.78 - 16위 / 48경기 13골
76-77 : 2.81 - 22위 / 42경기 15골
77-78 : 2.62 - 3위 / 38경기 14골(분데스리가 베스트11 첫 진입)
78-79 : 2.62 - 5위 / 36경기 14골(분데스리가 베스트11)
79-80 : 2.32 - 1위 (2위 키건은 2.42) / 47경기 36골(분데스리가 베스트11)
80-81 : 2.24 - 1위 (2위 푼켈은 2.74) / 45경기 39골(분데스리가 베스트11)
81-82 : 2.34 - 1위 (2위 벤젤은 2.53) / 48경기 27골(분데스리가 베스트11)
82-83 : 2.32 - 2위 (1위 푈러는 2.32, 3위 차범근은 2.52) / 42경기 21골(분데스리가 베스트11)
83-84 : 2.31 - 1위 (2위 푈러는 2.55) / 42경기 32골(분데스리가 베스트11)
정리하자면 넉넉잡아 7시즌 정도 분데스리가를 지배했던 본좌. 당시 분데스리가의 위상은 뮌헨의 유로피언 컵 3연패 이후 전 유럽 최고의 리그로 급부상하고 있던 시기였고 루메니게는 그러한 분데스리가에서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다만 득점 기록에 관해 의외의 맹점이 하나 있다. 70년대~80년대 초의 분데스리가는 평균적인 득점률이 다소 높은 리그였고 그걸 감안하면 대단한 득점 기록은 아닌 편이다. 특히나 77-78 시즌은 득점 기록이 당대 기준으로도 상당히 낮은 편이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평점이 높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루메니게는 전형적인 스코어러 포지션이 아니었었고 저 당시 뮌헨에서 스코어링을 전담한 건 게르트 뮐러였기 때문이다.
뮐러처럼 페널티 박스 안에 짱박혀서 주워먹기에만 주력하는 타깃형 스트라이커 스타일이 아니라[1], 그보다는 조금 내려간 세컨드 톱 위치에서 2선과 좌우 측면 침투 등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운동장을 폭넓게 사용하는, 단순한 득점 이외에 찬스메이킹에도 상당히 일가견이 있었던 전천후만능형 선수였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조한 득점력에도 불구하고 팀 내에서 차지하는 역량이 높았기 때문에 저런 평점을 찍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득점력이 떨어지냐하면 그런 것도 아니라서 이후 뮐러가 노쇠하기 시작한 78-79 시즌부터 루메니게-브라이트네르 조합이 팀을 캐리하다시피 했고, 한때 10위권 밖에서 절절매던 바이에른 뮌헨은 루메니게와 브라이트네르가 팀의 주역이 된 후 79-80 다시 분데스리가 정상에 복귀하여 2연패를 달성했다. 저 조합은 지금도 독일 내에서 많이 회자되는 콤비이기도 하다.
인터 밀란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두 시즌 연속으로 18골을 넣으며 팀 전력에 큰 보탬이 되며 바로 팀의 주요한 득점 자원으로 자리잡게 된다. 당시 세리에 A는 우승팀의 시즌 총 득점이 40골 정도로 경기당 득점률이 2.1 내외였던 시기였다. 실제로 84-85시즌과 85-86시즌의 인테르의 시즌 총 득점(세리에A외에 컵 대회 및 유럽 단위 클럽 대항전)은 각각 74골, 72골이었다. 전형적인 스코어러도 아닌 30대 초입의 선수가 팀 득점의 25% 정도를 혼자 만들어 냈다는 점은 루메니게의 클래스를 잘 보여준다.
다만 86-87 시즌에는 노쇠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폼이 많이 떨어졌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적을 감행했다. 마지막 선수 생활을 스위스 리그인 세르베트FC 에서 2시즌을 뛰고 은퇴했다.
3 은퇴 후
은퇴 후 1990년에서 1994년까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의 TV해설을 맡았고 동시에 1991년부터는 프란츠 베켄바워의 러브콜을 받고 FC 바이에른 뮌헨의 부사장 직을 2001년까지 역임했다. 그 후 2002년 부터 현재까지 바이에른 뮌헨 구단의 사장[2]과 유럽 클럽 협회(European Club Association)의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4 기타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4강전 프랑스 vs 서독전에서 부상 때문에 선발 출장하지 못하고 연장전이 되어 교체 출장했다. 연장전에서 프랑스가 먼저 2골을 넣어 3-1이 되었고, 서독이 거의 졌다고 생각할만한 상황에서 루메니게가 위 영상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3-2로 따라붙는 멋진 추격골을 작렬-1:42:25"무렵부터- 이게 계기가 되어 결국 3-3으로 따라잡는 데에 성공했고 승부차기로 넘어가게 된다. 승부차기에서는 서독이 먼저 실축했지만 결국 프랑스가 패배했다.
이 당시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대를 상대로 무쌍난무를 펼치며 클래스를 입증했던 대표적인 경기다.
초인축구만화의 원조격인 캡틴 츠바사의 최종보스격 인물인 칼 하인츠 슈나이더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다만 별명인 데어 카이저는 프란츠 베켄바워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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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계를 평정했었던 세이부 컵 축구 독일(서독)팀 모델이기도 했다. 당시 선호되던 팀이기도 하고 골 세레머니도 인상적이어서 당시 아르헨티나 모델이었던 마라도나보다도 더 주목받기도 했었다.
5 경력
5.1 대회 우승
- FC 바이에른 뮌헨 (1974/75 - 1983/84)
-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 유로 1980 우승
5.2 리그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74/75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21 | 5 | 3 | 1 | 4 | 0 |
1975/76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2 | 8 | 7 | 2 | 9 | 3 |
1976/77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1 | 12 | 5 | 2 | 6 | 1 |
1977/78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29 | 8 | 3 | 0 | 6 | 6 |
1978/79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4 | 14 | 2 | 0 | - | - |
1979/80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4 | 26 | 3 | 5 | 10 | 5 |
1980/81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4 | 29 | 3 | 4 | 8 | 6 |
1981/82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2 | 14 | 7 | 7 | 9 | 6 |
1982/83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4 | 20 | 2 | 0 | 6 | 1 |
1983/84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29 | 26 | 7 | 4 | 6 | 2 |
1984/85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이탈리아 세리에 A | 26 | 8 | 9 | 5 | 9 | 5 |
1985/86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이탈리아 세리에 A | 24 | 13 | 6 | 2 | 9 | 3 |
1986/87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이탈리아 세리에 A | 14 | 3 | 5 | 2 | 5 | 1 |
1987/88 | 세르베트 FC | 스위스 슈퍼리그 | 28 | 10 | 0 | 0 | - | - |
1988/89 | 세르베트 FC | 스위스 슈퍼리그 | 32 | 24 | 0 | 0 | 4 | 0 |
5.3 개인 수상
- 1979 발롱도르 2위
- 1979/80 분데스리가 득점왕
- 유로 1980 베스트
- 1980 독일 올해의 선수
- 1980 발롱도르 1위
- 1980 옹즈도르[3] 1위
- 1980 브라보 오토
- 1980/81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
- 1980/81 유러피언컵 득점왕
- 1981 발롱도르 1위
- 1981 옹즈도르 1위
- 1981 브라보 오토
- 1981/82 DFB 포칼 컵 득점왕
- 1982 FIFA 월드컵 실버슈즈
- 1982 FIFA 월드컵 브론즈볼
- 1982 브라보 오토
- 1983 옹즈도르 브론즈
- 1983 브라보 오토
- 1983/84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
- 1984 브라보 오토
- 1988/89 스위스 슈퍼리그 득점왕
- 1988/89 스위스 슈퍼리그 외국인 선수
- 2004 FIFA 100인 선정
- 2009 골든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