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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마 철도의 277번 다리
태국 서부의 칸차나부리에 있는 다리. 본디 매끌롱 강[1]에 있지만 쾌노이(Khwae Noi) 계곡에도 걸쳐 건설되었기에 이 계곡을 흐르는 강의 널리 알려진 이름인 '콰이 강'의 다리로 알려졌다.
1942년 일본군이 영국 육군 포로들을 이용해 건설, 1943년 10월에 완공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 포로들을 직접 감독한 게 조선인 군속들이다.즉 일종의 군무원이다! 사실상 강제로 끌려온 이들은 포로들의 온갖 원망과 일본군의 가혹행위에 시달려야 했고,결국 23명이 B,C급 전범으로 처형당했다.참조해볼 만한 세계일보 링크
2 위의 다리를 주제로 한 프랑스 소설
혹성탈출의 원작자이기도 한 프랑스의 피에르 불르(Pierre Boulle)가 버마 철도 건설 당시, 일본군과 영국군간에 있었던 갈등 등을 주제로 쓴 소설이다. 1952년 출간되었으며, 1954년 영국의 알렉산더 필딩(Xan Fielding)이 번역한후 인기를 얻어 1957년 영화화되었다.
프랑스인이 영국인을 소재로 했던터라 노골적인 영국인 디스가 심한 편이다, 그래서 원작소설 자체를 상당히 싫어하는 독자들도 많았고 영국 참전용사측에서는 작가를 공개적으로 고발까지 했다. 뭐 영국작가들의 전통있는 프랑스군 디스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사실 영국으로선 할말이 없는게 배경이 되는 말레이 전투에서 영국은 10만의 병력으로 제대로 싸움도 안하고는 침공해 오는 3만명의 일본군에게 그대로 항복..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항복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말레이 전투가 바로 그 배경이다. 니콜슨 대령과 같은 찌질이에[2] 적에게 부역하는 매국노는 없다는 의견이었다.[3] 나중에 아카데미 각색상을 피에르 불이 받았을때 논란이 심했다.[4]
3 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국 영화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 ||||
제 29회 (1957년) | → | 제 30회 (1958년) | → | 제 31회 (1959년) |
80일간의 세계일주 | → | 콰이 강의 다리 | → | 지지#s-7.2 |
파일:Attachment/콰이 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 poster.jpg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5]·각색상·촬영상·편집상·음악상 수상, 남우조연상[6] 노미네이트
장르 | 전쟁 |
러닝 타임 | 161 분 |
개봉일시 | 1957.10.02 |
감독 | 데이비드 린 |
출연 | 윌리엄 홀든,알렉 기네스,하야카와 세슈,잭 호킨스 |
국내등급 | 12세이상 관람가 |
2007년에 대한민국에서는 저작권이 만료되었다 |
3.1 개요
니콜슨은 독방에 감금되면서도 저항하여 장교도 노역에 동원하려던 사이토의 의지를 꺾었지만, 정작 군기유지를 위해 니콜슨은 다리건설에 전력을 쏟다 자기가 나서서 병자와 장교도 노역에 동원한다. 쉬어즈는 겨우 탈출하여 제대하려고 했지만 길을 잘 아는 사람이라 억지로 다리폭파 특공대에 차출된다.(작전중에는 길이 막혀서 쉬어즈의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전쟁과 군대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행을 행하며 그 속에서 의미없이 움직이고 또 죽는 인간군상을 그려낸 영화이다.
1942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때, 일본은 남방작전의 일환으로 병력과 보급품을수송하기 위한 죽음의 철도를 건설하기위해 영국군 포로들을 투입한다. 하지만 훈련소장인 사이토 대령(하야카와 세슈 분)이 장교들까지 노역에 투입하려들자, 영국군 중령[7] 니콜슨(알렉 기네스 분)은 제네바 협약을 들어 이를 거부하고, 사이토는 니콜슨을 독방[8]에 감금하는데…
한편, 포로로 붙잡힐 당시 더 나은 대우를 받고자 중령이라고 계급을 속인 미 해군 이등병 쉬어즈(윌리엄 홀든 분)는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계급을 속였던 사실이 발각되어[9] 울며 겨자먹기로 워든(잭 호킨스 분)대령이 이끄는 특공대와 함께 콰이 강의 다리 폭파 임무에 투입된다.
3.2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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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승전 기념일이라는 데드라인에 건설을 끝내지 못하면 할복할 위기에 처한 사이토 대령은 니콜슨 중령을 풀어주게 되고, 니콜슨 중령은 '이렇게 된 바에야 후세에 길이 남을 다리를 건설하자' 하며 능동적으로 다리 건설을 지휘한다. 다리 건설이 끝나고 일본군의 수송열차가 다리를 처음으로 건너는 날이 오자, 니콜슨 중령은 '영국군이 만들고 니콜슨 중령이 지휘함'이라는 명패를 걸며 축하한다. 이에 연합군 특공대는 다리 폭파를 시도하지만 니콜슨 중령을 포함한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하나 둘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특공대원의 죽음을 보고 정신붕괴에 이른 니콜슨 중령이 쓰러지면서 역설적으로 다리의 폭파 스위치를 누르게 되고, 다리는 성공적으로 폭파[10]된다.
3.3 등장인물
3.4 읽을거리
- 니콜스 대령의 실제 모델은 필립 투지 중령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 니콜스 대령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영국군의 자긍심을 위해 다리 건설을 독려하는 행동을 하진 않았다. 대신 공사를 지연시키기 위해 불개미를 풀어 나무를 갉아 먹게 하고, 콘크리트를 엉망으로 배합했다.
- 원작에서는 찌질이인 니콜슨이 여기서는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나온다. 다만 니콜슨도 어느 정도 부역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있다. 개통전날 사이토와의 대화장면은 명장면이다.
- 원작에서는 다리가 폭파되지 않는다
결말에 불만을 가진 일부 한국 번역판에서는 폭파되는 걸로 바꾸기도 한다.니콜슨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폭파 실패, 대신 유일한 생존자인 특공대원이 기차와 주변 부대를 폭약으로 날리고 생포된 자신의 대원인 조이스와[11] 조이스를 끌고 가는 니콜슨을 박격포로 가루가 되도록 날려버린다.[12] 그리고 인도의 사령부에서 그 미친 영국 장교놈에 대해서 보고하는 것으로 끝난다.
- 쉬어즈는 원작에서는 인도 주둔 영국 특공대 장교이다. 미군 포로였다 탈주해서 특공대에 편입되었다는 건 영화의 설정이다. 포로 수용소에서의 쉬어즈의 모습은 윌리엄 홀덴의 전작 <제17포로 수용소>에서 많이 따왔다.
- 영화에서는 꽤 비중이 있고 마지막에 힘들게 만든 다리가 한순간에 날라가는 것을 보고 "모두 미쳤군. 미쳤어"라는 명대사를 날린 군의관 클립톤은 원작에서는 병풍, 그나마 다리 완공전에 다른 수용소로 이송된다.
- 흥행은 대박으로 283만 달러로 제작하여 북미에서만 306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 한국에서는 1981년 4월 10일, 무려 22년만에 개봉했다. 서울관객 18만을 기록하며 흥행은 그럭저럭 성공했다.
- 일본 우익들은 이 영화에 묘사된 사이토 수용소장의 찌질함[13][14] 에 분노를 터트렸고, 동시에 서구의 비평가들도 사이토의 찌질함은 감독의 오리엔탈리즘의 표출이라는 의견도 있다. 막상 영국 참전용사들은 오히려 일본 장교가 지나치게 인간적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태평양 전쟁의 경험때문에 동시대를 다룬 영국 영화들에서는 일본군은 천하의 개쌍놈들로 출연한다. 심지어 이후에 나온 "수용소 여인" 같은 영화에서도 영국여자를 고문하고 강간하는 일본인들을 그릴 정도였으니, 이 작품에서 묘사된 일본인에 대해서 영국에서 비난할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이토 대령의 실제 모델인 부소장 사이토 소령은 공명정대한 행동으로 포로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이럴 수 밖에 없는 게 이 당시 버마방면군 사령관은 미친 악마인 기무라 헤이타로가 아니라 멍청하긴 해도[15] 심정은 순박한 가와베 마사카즈였다.
- 시어즈 역의 윌리엄 홀든은 이 영화 전에 찍은 <제17포로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에 성공해봤자 태평양 전선으로 끌려가서 일본군 포로가 될 것이다'고 비아냥거리는 대사가 있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 무려 30여년이 지난 1990년에 국내에 난데없이 콰이강의 다리 2(1988년 영국영화)가 국내에 개봉했다. 하지만 이 영화 원제는 Return From The River Kwai. 콰이강의 다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의 속편이 아닌걸 멋대로 이 제목으로 개봉했다. 그냥 평작 수준이다.
- 50년대 영화답게 CG없이 오로지 아날로그 기술로만 촬영했는데 영화 중반에 포로들이 일부러 다리를 파괴시키는거나 영화 후반부에 다지은 다리를 폭파시키는 장면에서 기차까지 전부 다 실물 촬영 이었다고 한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 게다가 NON-STOP촬영으로 촬영했다고 한다.[16] 때문에 실제로 NG나지 않게 배우들이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고한다.NG내면 죽였을듯
- 마지막에 다리가 다 폭파된뒤 흘러나오는 보기 대령 행진곡은 명장면.
- 탑기어 시즌 21 스페셜에선 세 MC들이 트럭을 타고 버마를 지나 콰이강에 다리를 놓는 임무를 수행했다. 대나무로 만든 다리를 놓고 세 트럭이 전부 지나가면 임무성공. 다리를 놓는 중 제레미 클락슨은 자신은 알렉 기네스의 역할을 맡겠다고 자처하며 농땡이 부리다가 빡친 제임스와 리처드에게 독방에 감금당한뒤 데꿀멍. 고생해서 만든 다리라 마지막에 폭파하지않았다.
3.5 관련용어
- ↑ 현재 쾌야이(Khwae Yai)로 개칭
- ↑ 원작에서 니콜슨 대령은 말레이 반도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해상으로 탈출하자는 부하들의 만류를 저버리고 휘하 부대를 모은 다음 거창한 해산식을 하고 적에게 항복했다.
- ↑ 다만 매국노는 아니고 실제로 영국군 고위 장교 포로중에 포로들과 수용소 당국과 협의를 잘 해서 많은 부하들을 살린 사람은 있다. 이 사람은 존경받는 참전자이다.
- ↑ 영어도 못하는 피에르 불이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것은 어른의 사정, 사실 콰이강의 다리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매카시즘에 걸려서 공개적으로 이름을 밝히기 어려웠던게 오스카상을 피에르 불에게 줄 수 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 ↑ 알렉 기네스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차기작인 아라비아의 로렌스에도 출연했으며, 스타워즈 시리즈의 늙은 오비완 케노비 역할로도 잘 알려져 있다.
- ↑ 하야카와 세슈
- ↑ 영화에서 사이토 대령은 니콜슨 중령을 대령이라고 부른다. 영국군에서는 중령 또한 그냥 Colonel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자주 있기에 그러한 듯.
- ↑ 함석으로 성인 한명이 간신히 들어갈만한 공간으로 오븐이라고 불린다!
- ↑ 쉬어즈는 탈출한 뒤에 스리랑카에서 탱자탱자 놀면서 자신이 포로 생활중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제대하려고 했다. 문제는 쉬어즈가 계급을 속였던 것이 높으신 분에게 걸리는 바람에
10억 받고 고자되기특공대에 들어갈지, 아니면 군사재판에 회부되는지 결정해야 하는 처지 - ↑ 실제로는 폭파되지 않고, 이후 연합군 폭격에 의해 파괴되었다.
- ↑ 영화에서는 사살처리된다
- ↑ 그 부대의 철칙이 절대로 포로가 돼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동지의 손에 죽는 것
- ↑ 영화 내내 니콜슨의 당당함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다 다리건설을 니콜슨이 맡자마자 자기가 지휘할때보다 훨씬 빠른 진척도를 보이니 겉으로는 '잘하네. 이대로 계속해봐'하고 쿨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자기방에서 혼자 질질짜는 모습까지 보인다
- ↑ 다만 겉으로는 당당한척 위엄있는척 행동하지만 뒤로는 섬세하고 소심한 모습덕에 악당두목이지만 입체적인 캐릭터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렇기에 아예 천하의 개쌍놈이란 느낌은 적은 편. 흔히 2차대전을 배경으로하는 첩보영화 등에 등장하는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나치 장교 등과 비교해보자.
- ↑ 이 양반의 유명한 행각이, 버마군 사령관으로서 임팔 작전을 그대로 인가해준 것이다.
- ↑ 사실 이것은 1950년대 영화의 후반부촬영은 거의 다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