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안타를 기록하고 가족과 함께
이름 | Craig Alan Biggio |
생년월일 | 1965년 12월 14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뉴욕 |
포지션 | 포수, 2루수,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7년 드래프트 1라운드 22순위 휴스턴 애스트로스 지명 |
소속팀 | 휴스턴 애스트로스(1988~2007) |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영구결번 | ||||
5 | 7 | 24 | 25 | 32 |
제프 배그웰 | 크레이그 비지오 | 지미 윈 | 호세 크루즈 시니어 | 짐 움브리히트 |
33 | 34 | 40 | 42 | 49 |
마이크 스캇 | 놀란 라이언 | 돈 윌슨 | 재키 로빈슨 | 래리 디어커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크레이그 비지오 | |
헌액 연도 | 2015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82.7% (3회) |
1995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득점왕 | |||||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크레이그 비지오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엘리스 버크스 (콜로라도 로키스) | |
1997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득점왕 | |||||
엘리스 버크스 (콜로라도 로키스) | → | 크레이그 비지오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
1 소개
1990년대~2000년대를 대표하는 2루수 중 한 명
메이저리그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활약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그라운드의 야전 사령관, 메이저리그의 근성의 악바리. 데뷔 이래 한 번도 바꾸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 지저분하고 낡은 헬멧이 트레이드 마크.그리고 한때는 모든 마구 유저들이 갖고싶어 하는 No.1 카드였다
2 선수 시절
본래 포수로 선수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어깨가 약한 탓에 도루저지율이 형편없었고 구단 측에선 비지오에게 포지션을 변경할 것을 요청한다. 포수를 보던 당시 실버슬러거를 1회 수상했고, 포수치곤 발도 빨랐기 때문에[1] 권유를 받은 것이다. 결국 피나는 노력 끝에 2루수로 포지션을 전환하여 1992년부터 애스트로스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루수로만 골드 글러브를 4년 연속 수상. 1990년대 아메리칸 리그에 로베르토 알로마가 있다면 내셔널 리그에는 크레이그 비지오가 있었다.
그러다 비지오는 2003 시즌 제프 켄트가 애스트로스로 영입되면서 팀을 위해 중견수로 포지션을 옮기는 희생을 한다. 하지만 역시나 빠른 발이 있었기에 처음하는 중견수치고는 준수한 수비 능력을 보였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전무후무한 세 포지션에서 올스타전 출장이라는 진귀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2]
20시즌 동안 뛰면서 3할을 기록한 시즌은 4시즌에 불과하지만 한시즌에 20홈런정도는 심심찮게 칠 수 있었고, 발이 빠른 덕분에 병살타가 극히 적었으며[3] 도루능력도 준수했다. 특히 킬러B의 최전성기였던 1990년대 말, 비지오가 출루하면 데릭 벨이 진루타를 쳐주고 제프 배그웰이 적시타를 치면 비지오가 홈으로 들어오는 패턴으로 애스트로스의 타선을 이끌었다.
순한 외모와는 달리, 엄청난 근성의 허슬 플레이어. 메이저리그 역대 2위에 해당하는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였으나[4] 그러고도 한 번도 투수와 몸싸움을 벌인 일이 없다. 오오오! 대인배!거기에 메이저리그에서 대표적인 기부천사였다.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휴스턴 지역사회에 많은 기부를 하기로 유명했다.
리그 최정상급의 2루수로서 고액연봉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이를 고사하고 20년 동안 애스트로스를 떠나지 않은 진정한 의리파 선수다. 애스트로스가 2000년대 중반 제프 켄트, 앤디 페티트, 약빨은 알바 로저 클레멘스를 고액으로 영입하자 배그웰이 프런트를 향해 오랜동안 헌신한 자신은 안중에도 없냐며 팀을 떠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을 때 잡아줬던 이가 바로 비지오였다.
2007 시즌에 대망의 통산 3000안타를 기록하였고, 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3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
내야수, 그것도 주목을 덜 받는 2루수로서 3000안타도 달성하고 20년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라는 플러스 요인, 무엇보다도 약물과 전혀 무관한 청정타자라는 요인까지 작용되어 2013년에 명예의 전당 후보 1년차로 무난하게 헌액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득표율에 있어 굳이 변수를 들자면 같은 해에 쏟아져 나오는 약전드들 중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멘스의 약물 관련 위증 재판 무죄 평결에 의한 지지도 상승 가능성 정도인데, 득표율이 어찌 되었든 마이크 피아자, 커트 실링 등보다 월등히 높은 첫회 득표율이 될 것이란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약물 혐의를 받고 있는 선수들에 반발하여 백지표를 던진 기자들의 영향일까. 3000안타를 친 20년 프랜차이즈 스타 청정타자임에도 68%의 득표율에 그치며 후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3000안타 친 선수도 첫 턴에 못 들어가는 명전(...)[5] 다음 해에는 마스터와 포커페이스의 前 선수노조 대변인, 빅 허트가 등판하는데, 까딱 잘못하다간 호프집 장수하게 생겼다.[6] 비지오 본인도 약전드들에 대한 반감이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튀어서 명전 첫 턴 입성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점을 아쉽게 여기고 있다. 본즈와 클레멘스에 대해서는 의외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자신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표를 줬을것이며 "그들은 내가 상대한 최고의 선수들이었고 그들이 보여준 야구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2번째로 도전한 2014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74.8%, 단 0.2%가 부족해서 또 다시 입성하지 못했다. 22순위로 드래프트된 2루수 비지오는 0.2%, 즉 2표가 부족해서 2년 연속 탈락 어디서 콩 볶는 냄새가...
결국 3번째로 도전한 2015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82.7%의 표를 얻으면서 혼슨갑, 외계인, Steelheart과 함께 입성에 성공하였다!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된 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서 사랑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받고 뛰었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나에게 끊임없는 성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며 벅찬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4 기타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일화가 있는데, 휴스턴에서 한국인들이 모임을 갖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지나가던 이 아저씨가 무슨 장난기가 발동하였는지 사진찍는 구석에서 갑툭튀하여 빙긋 웃었더니 야구에 관심 없는 다른 이들은 누군겨 하는데 야빠 참가자는 충격과 공포에 어쩔줄을 몰랐다고 한다. 당사자의 말에 따르면 너무 친절하고 이웃집 아저씨 같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흠좀무. 아니 이런 철면피 같으니라고... 이 훈훈한 이야기 출처는 엠엘비파크
참고로 두 명의 아들, 코너와 케이번도 야구선수인데 큰아들인 코너는 노트르담대학교에서 2루수로 활약하고 있지만 빅리그로 올라올수 있을지는 미지수. 그러나 둘째인 케이번은 BA가 선정한 2013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유망주 26위에 올랐으며 2012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미국대표팀 4번타자를 맡는 등 앞으로가 기대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2013년 드래프트 전후로 휴스턴 팬들이 전체 1순위감은 아니어도 2라운드 픽으로 미리 점찍어놓아 각종 드립을 쏟아내고 있으며 다른 팀들이 지명하기 살짝 눈치가 보인다고(...) 딴팀이 지명해도 노트르담 대학으로 도망갔다가 나중에 지명받으면 그만
크레이그 비지오는 2013년 현재 단장 특별보좌로 일하고 있는데, 2013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인터뷰를 하면서 단지 내 아들이라서 휴스턴이 지명해야만 하는건 아니라는 말을 했다. 그래도 얘기가 나오자 웃는 것을 보면 내심 휴스턴이 지명했으면 하고 기대하는 모양. 그런데 2라운드까지 진행되는 드래프트 첫 날 휴스턴이 케이번을 스킵했다. 어? 결국 둘쨋날에도 휴스턴은 케이번을 지명하지 않았고 드래프트 셋째날에야 무려 29라운드에서 그나마 휴스턴도 아닌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지명했다. 안습... 아무래도 대학 보낸다고 미리 언질을 줘서 휴스턴이 지명하지 않은 듯.
이후 2016년에 다시 케이번이 드래프트에 나왔는데, 이 때는 5라운드에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지명을 했다고 한다. 코너는 이 때 커미셔너의 사무실에서 인턴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드래프트 소식을 알린 게 바로 코너였다고.
마구마구에서는 상당히 높은 스탯을 보유한 97년 레어 카드와 98년 엘리트 카드가 꽤나 고가에 거래된다. 실제로도 뛰어났던 당해 스탯을 반영한 만큼 게임 상에서 2루수 용병이 필요한 거의 모든 덱의 영입 1순위 카드로 고려되며, 엘리트 카드가 과거에 비해 비교적 흔해진 지금에도 불구하고 97년 레어 카드는 200만 거니가 넘는- ↑ 단순히 '포수치곤' 발만 빠른게 아니었다. 포수로 뛴 4시즌 동안 71도루를 기록, 데뷔 시즌 빼고는 포수로서 시즌 20개 안팎의 도루를 성공했다. 이후 단축시즌이었던 1994 시즌에 39도루로 시즌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커리어 하이였던 1998 시즌에 50도루를 기록했다. 통산 414도루를 기록했을 정도로 최상급의 주루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 ↑ 메이저리그 올스타 선발은 단순한 인기투표가 아니다. 그 시즌에 그 포지션에서 정상급 활약을 한 선수라는 증거.
- ↑ 1997년엔 전경기에 출장하여 744번 타석에 들어서는 동안 "단 한차례의 병살타도 기록하지 않았다."
- ↑ 20홈런-20도루를
- ↑ 3000안타가 명예의 전당 첫 턴 보증수표는 아니다. 실제로 3000안타 이상을 기록한 은퇴선수 27명 가운데 BBWAA 투표로 첫해 입성한 선수는 16명 뿐이다. 지금의 투표 방식과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3152안타를 친 폴 워너는 자격투표와 결선투표 등을 포함해 5년간 7차례의 투표를 거치고 나서야 입성할 수 있었다.
- ↑ 다행히(?) 이들은 전부 첫 턴에 명전에 입성했다.
- ↑ 왜냐하면 마구마구에서 덱을 구성 할때 레전드 등급은 자유채널을 제외하면 2장이 한계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아껴서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