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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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完善
1915년 1월 20일 ~ 1988년 5월 1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관료이다. 호는 해암(海巖)이다.

1915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성장한 곳은 영월군이다. 경기상업고등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를 졸업하였다. 1947년 상공부 직할 영월광업소장으로 근무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영월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장기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당선되었다. 제2공화국 장면 내각에서 부흥부(현 국토교통부)장관,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이 출범한 후인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영월군-정선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엄정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5년 통합야당인 민중당 당무회의 의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장승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9년 신민당 정무위원과 재정위원장이 되었다.

그러나 1970년 친여 인사로 전향하여 대한석탄공사 총재를 지냈다. 이후 1971년 건설부(현 국토교통부)장관, 1972년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장관 겸 부총리 등을 역임했다.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당선되어 유신정우회 의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