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내 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 십만 명 동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1]
"……착착 깎어 죽일 놈!……그 놈을 내가 핀지 히여서 백 년 지녁[2]을 살리라고 헐 껄! 백 년 지녁을 살리라고 헐 테여……오냐 그 놈을 삼천 석 꺼리는 직분히여 줄려구 히였더니, 오―냐, 그 놈 삼천 석 꺼리를 톡톡 팔어서 경찰서으다가, 사회주의 허는 놈 잡어 가두는 경찰서다가 주어 버릴 껄! 으응, 죽일 놈!"[3]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 소리에 가깝습니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마지막 장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니라'[4] 중 윤 직원의 대사
채만식의 장편소설[5] 《탁류》와 함께 채만식의 2대 장편소설로 언급된다.
1 줄거리
소설의 시작은 구두쇠 윤 직원[6] 억지를 부리며 인력거 삯을 깎고, 버스비를 안내려 하는 에피소드에서 시작한다. 윤 직원의 아버지 윤용규는 도박꾼으로 하루하루 돈이나 잃는 사람이었지만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돈으로 지주와 고리대로 돈을 긁어모은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가 관리들의 토색질로 괴롭힘당하고 화적떼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을 봐왔던 윤 직원은 "우리만 빼고 어서 망해라!"라고 외치면서 아버지보다 더 지독하게 돈을 긁어모은다. 일제강점기에 사는 윤 직원은 토색질도 없고 화적질도 없는 일제 치하야말로 태평천하라고 외치면서 기부나 자선에는 인색해하면서 경찰서 무도관[7]을 짓는데는 돈을 아낌없이 베푼다.
한 편으로 윤 직원은 자신의 부족한 명예를 채우기 위해 애를 쓰는데, 자신은 향교에서 돈으로 직원 자리를 사고 족보를 조작한다. 또 두 손자를 각각 군수, 경찰서장 감으로 보고 손자들의 출세를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퍼붓는다. 그러나 윤 직원 가문은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 당장 윤 직원 자신도 첩 사이에 자기 증손자랑 동갑인 늦둥이가 있고 그것도 모자라 소작인의 딸인 증손자 또래의 소녀를 새 첩으로 들인 상태, 아들 윤 주사는 술과 마작에 빠져 하루하루 돈을 시궁창에 갖다 박고 앉아있다. 큰 손자 종수는 하라는 군수는 안하고 부전자전으로 항락에 빠져 살고 심지어는 아버지의 첩 옥화와 불륜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며느리와 손자며느리도 남편이 밖으로 나돌아다녀 하루하루 불만만 쌓이고, 증손자도 땡땡이는 일상이요 증조부의 소녀 첩에게 수작질이며, 양반가로 시집을 보낸 딸은 남편이 죽고 소박맞아 한 집에 산다. 그래도 윤 직원은 가부장적인 태도로 집안을 이끌며 일본으로 유학간 작은 손자 종학이 경찰서장이 되는 날만을 기다리지만 어느날 종학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이유가 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알자 "이 태평천하에 그게 무슨 짓거리냐"면서 멘붕에 가까운 충격을 받는다.
2 설명
아마도 중고등학생들이 "반어적 표현"을 잘 사용한 소설을 배울 때 이 소설로 스타트를 끊었을 것이다. 작가인 채만식은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형식의 소설인 〈치숙〉을 쓴 바 있다. 이 소설의 주제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국가와 민족을 살펴보지 않는 일제 당시의 친일파들을 비판하는 것'이 되겠다. 애당초 위에도 나와있듯이 윤 직원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우리만 빼고 어서 망해라!"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윤 직원에게 일제는 자신의 권력과 안위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나 다름 없으며, 그런 일제에 저항하려는 당시 지식인들이 파던 사회주의[8]에 동참한 자신의 둘째 손자는 그야말로 천하의 개쌍놈이나 다름없는 역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소설의 마무리에 "태평천하"라면서 울부짖는 윤 직원의 모습이 이 소설의 주제를 잘 부각했다고 한다. 소설의 제목인 '태평천하'부터가 이러한 반어적 표현. 다만 비판하는 건 좋았는데 그 다음에 채만식이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친일 행위를 하게 되면서 "당신이 할 말이 아냐" 하면서 비판하는 움직임도 많았다. 채만식은 광복이 된 다음에 스스로 사죄하기는 했지만...
비단 왜정때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만 확보되면 그 시대를 '태평천하'로 판정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요즘도 윗 대사에서 명사 몇 개만 바꾸면 딱 들어 맞는다.- ↑
번역 :화적패가 있냐? 불한당같은 수령들이 있냐? 재산이 있어봤자 도둑놈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같던 말세가 다 지나가고... 자 봐라, 거리마다 순사요, 고을마다 공명한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야. 남(일제)은 수십만 장병으로 우리 조선 백성들을 보호해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야? 응? 제 것 지니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태평한 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고 하는 것이야 태평천하! 그런데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에 유학까지 갔으면 떵떵거리고 편안하게 살 것이지, 어째서 지가 세상을 망쳐놓을 불한당패에 참여를 한단 말이야, 으응? - ↑ 무식한 데다 사투리가 섞이니 징역을 이렇게 발음한다.
- ↑ 쫙쫙 찢어 죽일 놈! 내가 편지를 보내서 그놈을 백년 징역을 살게 할거야! 백년 징역을 살게 하라고 할테야... 오냐. 그놈에게 삼천 석 짜리 유산을 남겨주려고 했더니, 오―냐, 그 놈 몫의 삼천 석 짜리를 다 팔아서 경찰서에다가, 사회주의 하는 놈 잡아 가두는 경찰서에다 줘버릴거야! 으응, 죽일 놈!
- ↑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胡)이니라."라는 뜻이다. 진시황은 저 '호'가 '오랑캐'인 줄 알고(오랑캐라는 뜻도 있다.) 만리장성을 쌓고 흉노족을 토벌했지만 그 호는 오랑캐가 아니라 자기 아들 호해(胡亥)였다는 말이다. 실제로도 진나라는 진시황이 죽고 호해가 집권하자 망국의 치세에 접어든다. 본 소설에 나오는 윤 씨 집안의 상황을 한 줄로 요약해 주는 글귀.
- ↑ 중편소설로 보기도 한다.
- ↑ **사 직원 할때 그 직원이 아니다!! 그 직원은 職員, 윤 직원의 직원은 直員으로 향교의 직위 중 하나이다. 본명은 윤두섭. 어릴때는 얼굴이 두꺼비 같다고 해서 윤두꺼비라고 불렸다.
- ↑ 이것도 한자가 武道館으로 무술(특히 유도)를 훈련하는 곳을 말한다. 일본어로 쓰면 부도칸.
- ↑ 이는 절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게 아니며, 오히려 작중에서 유일하게 둘째 손자만이 참된 인물이라는걸 부각시키는 장치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는 빨갱이들이나 파는 위험한 사상 취급을 받지만
이게 다 돼지3부자 때문이다당시 제국주의를 내세워 인민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일제를 타도하자는 사회주의는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 그야말로 완벽한 이상향이고 한 줄기 빛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반공주의자가 다 친일파는 아니고,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도 사회주의자들을 자랑스러운 한민족을 부정하고 허황된 이상만 쫓는 괘씸한 놈들로 보고 반공 노선을 걸었다. 다만 다같이 일제에 맞서 싸우는 입장이니 때로는 단결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게 3.1 운동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이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예상하면서 일으킨 운동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해당하는 것이니 승전국의 식민지는 해당 안됨"이라면서 무시했고 소련은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시국을 진정시키느라 당시의 조선같은 작은 나라는 돌볼 틈이 없었기에 결과적으로 외국의 지원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