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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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의 건물

무도관은 무술 경기장으로 일본 각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도쿄치요다구에 있는 일본무도관을 지칭하며 본 항목에서는 이 일본무도관에 대해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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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무도관(日本武道館). 일본어로 닛폰부도칸(Nippon Budokan)이라고 읽는다. 일본 도쿄에 있는 대형 유도 경기장이다. 최대 1만 4천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1] 본 목적은 1964 도쿄 올림픽 유도 경기 개최를 위해서였지만 당시에는 이곳만한 대규모 공연장이 없었기에 점점 음악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 되었다. 허나 2020 도쿄 올림픽에도 유도 경기장으로 채택됨으로서, 2019년부터는 공연장으로서의 일을 잠시 멈출 듯 싶다.

1.1 공연장으로서의 무도관

일본의 공연장 규모
라이브 하우스1,000~2,000석Zepp, LOFT, SHELTER, BLITZ, SHIBUYA-AX,
TSUTAYA O-EAST/O-WEST/O-nest/O-crest, WWW,Quattro 등
1,500~10,000석시민회관, 국제회의장 등
무도관7,000~8,000석일본무도관
아레나6,000~30,000석요요기 제1체육관, 요코하마 아레나,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오사카성 홀 등
30,000~50,000석일본 5대 돔구장
도쿄돔, 후쿠오카 돔, 교세라 돔 오사카, 나고야돔, 삿포로 돔
스타디움30,000~72,000석도쿄국립경기장, 닛산 스타디움,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일본 무도관에서 공연한다는 건 일본 음악시장, 일본의 음악계에서 메이저 진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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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으로 쓰이는 경우에는 '라이브 하우스 무도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듯 하며, 무수히 많이 피고 지는 일본 록 밴드들의 염원은 바로 언젠가는 이곳에 서서 공연을 하는 것이다.

사실 무도관의 객석 규모는 엔드 스테이지시 7~8000석, 센터 스테이지(360도 개방)시[2] 10000여 석의 공연장이다. 신인들이 공연하는 라이브 하우스나 홀에 비하면 훨씬 큰데다가 무도관이라는 건물 자체의 지명도도 높기 때문에, 여기서 공연한다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도 메이저 가수다!'임을 선언하는 상징적 행위인 것이다. 스포츠로 치자면 세계 선수권 대회 내지 올림픽 출전 정도 느낌. LIVE AT BUDOKAN 의 이름을 한 라이브 비디오가 많다는 것이 이 곳이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가지는 위치를 상징한다.

락밴드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 뮤지션들에게도 일종의 '통과의례'나 자신들의 출세를 알리는 축포같은 위치를 지니는 공연장인데, 퍼퓸(일본)이나 동방신기도 이 곳에서 콘서트를 가졌던 적이 있다. 도쿄돔[3]이나 닛산 스타디움[4]처럼 더 큰 규모의 공연장이 생긴 지금도 무도관 단독 공연의 상징적 의미는 크다. 물론 일본 대중음악계의 성지이기 때문에 외국 뮤지션들도 이곳에서 공연을 하면 제대로 일본에서 공연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류 가수들이 언플용으로 무도관 공연을 남발하는데, 일본의 한류 팬들은 소위 '잡팬' 성향이 강해서 한국 가수라면 특별히 팬이 아니라도 공연도 보러 가고 CD도 사기 때문에, 무도관 공연을 했다고 해서 일본에서 그 정도의 인기를 누린다고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한류현상 이전에 이 곳에서 공연했던 한국인 가수는 딱 둘 뿐이다. 가왕 조용필과 신바람 이박사.

근래 들어서는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매니악한 분야의 가수나 밴드들도 무도관에 서기 때문에 그 위엄이 예전만 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무도관은 자신들의 이름이 높아졌다는 사실의 방증이며, 반대로 말하면 매니악한 분야만으로도 1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일본 대중음악계의 넓은 시장성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물론 일본 가수들 중에서도 언플용으로 무도관 공연을 잡는 경우는 매우 많아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전혀 없는 듣보잡아이돌이나 가수가 느닷없이 무도관 공연을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런 경우 티켓 떨이판매나 티켓에 이벤트[5]를 집어넣는 경우가 대다수고, 좌석 일부에 암막을 쳐서 가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때문에 보통 '무도관 콘서트를 성공시켰다'는 기준은 8000석 이상[6] 매진일 경우이다.

공연장으로서의 기능은 솔직히 좋지는 않다. 아레나가 푹 꺼진 상태이기 때문에 2층 스탠드로 올라가게 된다면 밴드의 정수리만 구경하게 되며 의도한 무대와 조명 연출도 제대로 보기 어렵다. 그리고 소리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인데. 세계 정상급의 사운드 엔지니어들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이지만, 음향관련으로 여러번 뜯어 고쳤어도 소리가 지금도 라이브홀에 비해서 한참 쳐진다.

공연을 하지 않을때는 이름답게 각종 무도대회가 열리거나, 대학교의 입학/졸업식이 치뤄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쿄대학이 일본무도관에서 입학식을 치룬다.

일본 성우쪽에서의 무도관은 애니메이션 관계 행사장으로 쓰이긴 하지만 아티스트 활동하는 성우들에게는 여전히 아티스트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가고 싶은 꿈의 장소로서도 유명한 편인데 실제로 2016년 1월 기준으로 이미 무도관을 밟은 성우 아티스트들은 시이나 헤키루(최초 입성 1997년), 미즈키 나나(최초 입성 2005년), 타무라 유카리(최초 입성 2008년), 호리에 유이(최초 입성 2009년), 사카모토 마아야, GRANRODEO, 치하라 미노리, 스피어(최초 입성 2010년), 미야노 마모루(최초 입성 2013년), OLDCODEX, 하나자와 카나(최초 입성 2015년) 정도 순서인데 여기에 2016년 공연 예정인 성우들[7]을 합쳐도 15명 남짓할 정도로 적은 것이 특징이다.이는 성우 아티스트라는 게 그만큼 힘든 것을 증명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일 정도.성우 아티스트계의 3대장이라고 불리는 미즈키, 타무라, 호리에가 2000년대 중후반에 들어갈 정도로 음악성이나 라이브 공연 관객 동원력이 음반 판매량보다 상당히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2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모 입시물을 빙자한 하렘물에서도 나온다. 주인공은 평생 쓸 운을 도쿄대 입학에 써버린 탓에 무도관 지붕에서 떨어진 빛나는 만두지붕 꼭대기에 있는 그거에 깔려 다리가 부러지는 참사를 겪는다.
  • 만화 케이온!에서도 방과후 티타임으로서 이곳을 목표로 하자는 드립을 친다. 적어도 일본에서 밴드를 꾸민다면 고교야구에서 코시엔 진출을 외치듯 누구나 하는 말이다.[8]

2 동명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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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EA에서 나온 동명의 게임. 1:1 대련 구도지만, 플레이해보면 격투액션이라기 보다는 스포츠 게임에 가깝다. 간단하게 말해서 89년에는 격투게임이라는 장르 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 카라테카[9]스트리트 파이터 1편이 겨우 나왔던 시절이다. 즉, 이 게임을 대전 격투라고 보자면 할아버지뻘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라데,봉술,검도 등 일본의 무술을 소재로 진행하는데 수련이 끝나면 실제로 무도관에 가서 정규시합을 치룬다. 상대는 사슬낫이나 인술[10] 등 플레이어가 선택 불가능한 유파에서도 나오며, 각각의 상대에게는 프로필이 있었다.[11] 전후 이동과 점프, 상중하단 공격과 그에 맞는 방어 시스템도 있었다.[12]

당시 PC통신, 특히 게임 프로그래밍 계에서 페르시아의 왕자와 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걸작으로 손꼽혔다. 간단한 조작감과 타격감이 좋아[13] 당시 제법 인기를 끌었다. 물론 복사본으로...
게다가 당시 최고 사양인 VGA급 그래픽[14]에 움직임도 부드럽고, 심지어 PCM으로도 음성 지원이 되는 게임이었다.[15] 무술 도장에서는 배경에 학이 느릿느릿 걸어다니기도 했고, 시간이 가면 태양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가 움직인다. 이스터 에그고질라가 출연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있을 건 다 있는 토탈 패키지.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게임이 2HD 디스켓 1장에 딱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것은 극한의 코딩으로 자체 압축률을 높인 결과로,[16] 90년대 당시 최고 수준의 압축률을 자랑한 RAR로 압축해도 용량을 거의 줄이지 못했다. 요즈음은 게임 데이터를 압축해서 패키지 파일에 넣는 것이 기본사양인데, 이 게임이 바로 그 선구자뻘 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것도 고작 2명이서 만든 게임이 이 정도 수준이니 충공깽. EA는 제작사가 아니고 판매원이다.

이전 버전에서는 와패니즈적 성향이 짙다고 기술되어 있었으나, 89년 당시에는 와패니즈라는 개념조차 확립되지 못한 시기. 당연히 와패니즈라는 용어 조차 없었다. 게다가 제작진 2명 중에 1명은 일본인이다. 오히려 미국에서 일본문화를 다룬 거의 최초의 PC게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1. 단, 공연장으로 쓰일 경우에는 무대장치등 여러 문제로 1만명 남짓한 정도 관객석(2층 이상 관객석과 1층 스탠딩석 정도)만 설치하는 듯.
  2. 여담으로 센터스테이지로 공연하면 정말 콜로세움같은 형태가 된다. 이 경우 관객들을 위해 뮤지션들이 계속 움직이거나 해서 한쪽 방향의 관객들만 등지지 않도록 연출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3. 기본으로 4만 명 ~ 5만 명
  4. 기본으로 7만 명 ~ 8만 명
  5. 추첨을 통해 대기실에서 멤버들을 만날 수 있다거나
  6. 즉 기본 좌석을 모두 개방해서
  7. 1월달 오노 다이스케, 3월달 유이 카오리, 아오이 쇼타, 10월달 미모리 스즈코
  8. 다만 실제로 진지하게 목표를 잡은 게 아니다. 자세한 건 방과후 티타임 항목 참조.
  9. 유명한 페르시아의 왕자의 모태가 된 작품.
  10. 수리검을 날린다.
  11. 창을 들고 나온 적의 유파가 '보장원류'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유파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12. 물론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나오기 전이라 상중하단은 가드 상성을 말하는 게 아닌, 말 그대로의 상중하단이다.
  13. 당시 기준. 21세기 기준으로는 움직임이 굼뜨고 빡빡하게 느껴진다.
  14. 320x200 해상도에 256색
  15. 피씨 스피커로 기합소리가 나왔다. 당시 대부분의 게임 사운드는 뿅뿅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16. 당시 컴퓨터 사양이 낮아서 하드 디스크도 없었고, 640KB 기본 메모리로 게임이 돌아갔기 때문에 따로 압축을 풀어둘 데가 없었다. 오로지 코딩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