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결주의

民族自決, self-determination

1 개요

제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패전국들의 식민지를 빼앗고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경제적으로 철저히 분쇄하려는 의도로 1918년 공식석상에서 고안되었지만, 사실상 대한민국의 3.1 운동의 근간이 되는 주의이다.
각 민족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그 귀속과 정치 조직, 운명을 결정하고 타민족이나 타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을 것을 천명한 집단적 권리를 뜻한다.

'주의'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예컨대 민족주의처럼 정치적이거나 사상적인 신념체계는 아니다. 꼭 체계적으로 이론화된 사상이 아니더라도 '~주의'라고 이름이 붙는 경우는 있는데, 예컨대 형법 상의 속지주의속인주의는 특별한 사상이나 신념이라기보다는, '이러한 경우에는 이런 원칙에 따라 판단하기로 하자' 하는 약속의 성격을 띤다. 민족자결주의 역시 본래는 패전국의 해외 영토 처리 방식에 대해서 제안된 일종의 원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구 식민지 국가들의 민중은 이 '주의'를 훨씬 의미심장한 것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2 연혁

알려진 바와 달리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 유명한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관련 취지가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봉건 왕조의 소유물에서 벗어나 언어적 문화적 공동체를 이룬 집단이 국가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개념으로, 나폴레옹 시절에도 표면화 되었고 1848년 혁명독일 통일국가 구상에서도 제시되었다.

구체적으로 널리 알려진 민족자결주의는 우드로 윌슨1918년 1월 18일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14개조 평화 원칙"에서 제시되었다. 1차 대전 종결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서 각국에 받아들여졌다. 현재에도 유엔총회의 결의로서 인정되고 있으며 국제인권규약에도 존속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레닌도 민족자결을 주장한 바 있다. 레닌은 자신의 저서 <제국주의론>에서 제국주의는 곧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보았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와 싸워야 하며 그것은 곧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해방운동 지원이라는 실천적 형태로 나타났다. 몽골이나 다른 주변 소국의 독립을 지원했으며 우리나라의 3.1 운동 역시 윌슨뿐만 아니라 레닌의 민족자결의 영향도 받았다.

3 영향

1차대전의 종결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이 민족자결의 영향을 받아 독립국을 떼어내게 된다. 에스토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핀란드,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이 독립을 성취했다.

반면 유럽 이외의 지역이나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던 탄자니아, 나미비아, 토고 등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1]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승전강대국이 소유한 인도, 베트남, 튀니지, 알제리, 세네갈, 케냐, 리비아, 기니, 가나, 나이지리아 같은 식민지들,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조선과 대만은 민족자결주의의 혜택을 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민족자결의 주장은 식민지 전반을 강타했다. 일본제국식민지였던 조선에서는 민족 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3.1운동이 일어났고, 열강의 반 식민지였던 중화민국 역시 시위가 일어났으며 영국, 프랑스의 식민지 국가에서도 반발해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차대전 이후 독일은 민족자결주의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는데, 독일민족은 사실상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2개 국가로 분리되어버렸고, 체코슬로바키아주데텐란트, 폴란드그단스크,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등 독일계 주민이 많은 지방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들과 동유럽 신생 독립 국가들의 영토들로 각각 편입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치 독일은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며 이 지역의 병합을 노리며 결국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중동 서남아시아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오스만 제국이 물러나기 무섭게 영국과 프랑스가 이들 지역들을 위임통치령이라는 명목으로 점령, 지배했고 점령 과정에서 민족과 종교등을 무시한채 국경을 그리고 나눠 중동 국가들의 국경선을 획정시켰는데 그 중에서 시리아이라크등은 쿠르드족과 아랍족, 이슬람교 시아파와 수니파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경계선 획정에 의해 단일국가로 통합되어버리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져버렸다. 결국 이 때문에 이들 나라들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독립 후 민족분쟁과 종교분쟁, 피비린내나는 내전 등이 벌어지며 21세기 현재 중동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드는데 본의 아니게 큰 악영향을 끼쳤다.괜히 저 두 나라가 중동 분쟁 관련해서 온갖 지탄을 받는게 아니다.

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등 옛 유고슬라비아 출신 발칸반도 지역 국가들의 전쟁과 인종청소 대학살 역시 민족자결주의가 남긴 악영향이었다. 민족자결주의라는 명분 하에 단일국가로 통일이 되어본 적이 없던 발칸반도, 동유럽의 지역들을 같은 슬라브 민족이라고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던 세르비아가 영국, 프랑스 등의 서유럽 열강들의 묵인하에 종교, 문화 서로 다른 지역들을 합병시켜 유고슬라비아를 세운 것. 안 그래도 종교, 종족간 갈등과 대립이 심했던 곳이 바로 발칸반도였는데 이 지역들을 별개의 국가들로 독립시키게 놔두지 않고 인공적인 단일 통합 국가를 세운 것은 실제 민족자결주의에 어긋나는 정 반대의 행동이었다.[2]

결국 종교, 언어, 문화 등 모든 것이 다른 발칸반도의 지역 국가들을 단일국가로 묶어서 만들어낸 유고슬라비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크로아티아인들의 세르비아인 우스타샤 대학살을 겪어야 했으며, 동구권 붕괴 이후 유고 내전으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떨어져나가고, 이후로도 1990년대 보스니아인,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들의 인종 학살로 점철된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내전으로 이어져 결국 6개국으로 분리되었다.

4 관련항목

반민족주의, 제1차 세계대전
  1. 이 쪽은 영국, 남아연방(대영제국), 프랑스 등이 전승국으로 식민지, 자국영토로 삼아버렸다.
  2. 단, 유고슬라비아는 비록 종교와 문화에서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이 남 슬라브 민족이 차지하는 민족 구성이고 거의 차이가 없는 언어를 쓰는 등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었으므로 단일 국가가 되기에는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유럽만 해도 유고슬라비아 정도의 다양성을 가지면서도 통합을 유지하는 나라도 분명 적지는 않다. 원래 영국과 프랑스는 '런던 밀약'으로 이탈리아에게 아드리아 해 해안 지대를 넘기기로 결의했고 실제로 1차대전 말기에 이탈리아는 이 지역을 점령하려했다. 유고슬라비아 통합안은 이에 대한 카운터로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민족주의자들이 주도적으로 주장한 결과 받아들여진 것이므로 강대국들의 강요와 같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고슬라비아 민족의 '자의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유고슬라비아 인들의 합의가 성공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팽하고 유고슬라비아를 승인해주었다. 유고슬라비아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