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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어: Tratado de Tordesillas (트라타도 데 토르데시야스)
포르투갈어: Tratado de Tordesilhas (뜨라따두 디 또르데질랴스)
보라색 점선이 1493년의 교황 칙서에 따른 경계선이고 보라색 선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른 선이다. 녹색 선은 1529년의 사라고사 조약으로 추가된 경계선이다. |
1 개요
대서양이라고 불리는 바다. 그 수평선은 끝없이 펼쳐진다. 어디를 둘러봐도 물, 물, 물. 파도만이 희고 검은 빛으로 출렁이며, 짙푸른 평원에 움직임을 보태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1494년 6월 7일, 이 광대한 푸른 평원에 한 줄기 경계선이 그어졌다. 그 선은 북극에서부터 죽 내리그어져 대서양을 둘로 가르고, 남아메리카의 동단부에 상륙하여 약 3천 킬로미터 정도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치달리고는, 다시 대서양으로 나와 남극에 꽂혔다. 물론 바다 위에 눈에 보이는 선은 없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는 펼쳐 놓은 지도 위에 내리그은 선이었을 뿐이니까.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선을 경계로, 이후 인류는 지구의 운명을 바꿔 나가는 담대한 모험을 펼치게 된다.
대항해시대 당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로의 신항로를 발견하고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서로 경쟁적으로 인도로 가는 길을 찾고 있을 때 두 국가가 전쟁까지 갈 정도로 티격태격 하자 1494년 6월 6일 교황 알렉산데르 6세[1]가 중재에 나서 에스파냐 서부의 토르데시야스라는 도시에서 체결한 조약이다.
당시 포르투갈은 이미 남쪽으로 뻗어가 서아프리카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대한 권리를 교황에게 승인받은 상황이었다. 교황의 칙서에 따라 기니와 카보 보자도르[2] 남쪽에 대한 포르투갈의 권리가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에스파냐가 레콘키스타를 마무리하고 통일하여, 이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콜럼버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었는데, 원래 콜롬버스가 발견한 카리브해의 섬들은 위도상 포르투갈의 권리가 인정되던 땅이었던 것이다.
결국 교황의 중재로, 대서양 한 가운데 경선[3]을 기준선으로 서쪽은 에스파냐가, 동쪽의 땅은 모조리 포르투갈이 먹는다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으로 인해 브라질을 제외한 남아메리카는 전부 에스파냐가 차지하게 된다. 지금의 브라질의 해안가 지역은 기준선의 동쪽에 있었기에, 기준선 동쪽의 땅에 대한 권리를 얻은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차지했다.
조약을 맺는 과정 중 당초 교황이 제시한 카보베르데 기준 서쪽 100리그 경선에서, 포르투갈의 강력한 주장으로 370리그 경선으로 더 밀어낸 것과 관련해 콜롬버스 이전에 이미 포르투갈에서 이미 남미 대륙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어 이를 확보하기 위해 밀어붙였다는 떡밥이 남아있다. 공식 기록상으로 브라질은 1500년 발견되었으나, 이미 수십년 간의 경험을 통해 아프리카 항로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축적된 상태에서, 인도로 가는 도중에 폭풍을 만난 것도 아니면서 대서양 반대편까지 배를 몰고 갔다는 점과 발견 당시 항해 기록이나 이를 보고 받은 포르투갈 왕실이나 새로운 땅을 발견해놓고도 아무런 놀라움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4] 그나마 이러한 진실을 밝혀줄 수 있었을 기밀 항해 기록은 리스본 테주 강변에 위치하던 왕궁의 문서 보관고에 저장되어 있다가, 1755년 11월 1일 일어난 리스본 대지진과 연이은 지진해일로 모조리 유실되어 버려 그저 짐작만 할 수 있는 상태다.
당초 조약대로라면 에스파냐 측이 보장받은 부분이 훨씬 컸지만, 아마존 하구를 확보한 포르투갈 개척자들이 나중에 조약이 유명무실해진 뒤 아마존 상류를 거슬러올라가 깃발을 꽂아서 결국 지금의 브라질 영토가 완성됐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렇게 완성된 브라질의 면적은 남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대략 절반 정도 된다. 기아나 지역 같은 일부를 제외하면 남아메리카 대륙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거의 반반씩 차지한 셈. 남미를 벗어나 신대륙 전체로 보면 북중미는 거의 다 에스파냐가 차지했기에 에스파냐의 지분이 훨씬 크다.
나중에 태평양쪽도 문제가 되어 1529년 사라고사 조약(Treaty of Zaragoza)으로 태평양도 동경 142도까지 경계선을 설정했다. 그래서 일본에 처음 온 유럽인 선교사도 포르투갈인, 홍콩이 영국에 넘어가기 전 중국으로의 유일한 직통창구가 포르투갈이 점령한 오문(마카오)이었다.
이후 포르투갈의 왕위가 스페인 왕에게 넘어가면서 이베리아 연합이 형성되어 조약의 양 당사자 사이의 구분이 애매해지고[5],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식민지 확보에 나서면서 이 조약은 유명무실해졌다. 이들 국가들이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자기네들끼리 맺은 조약을 인정할 이유도 없고, 더군다나 종교개혁으로 교황의 권위가 떨어지면서 조약의 권위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페인은 이걸 근거로 19세기까지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고[6], 현재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게임에서의 등장
역사적으로 중요한 조약이다보니, 식민지 개척시대를 다루는 게임에서도 자주 다뤄진다.
2.1 대항해시대 2
6명의 주인공 중 조안 페레로와 카탈리나 에란초의 스토리에서 이 조약이 언급된다. 본편의 시작년도가 1522년이기 때문에 조약은 아직 유효한 상태이므로, 카리브해에서 포르투갈 세력이 움직일 수 없는데 카탈리나 에란초의 오라비인 미카엘 에란초와 약혼자인 에르난이 살인멸구를 당하면서부터 카탈리나는 페레로 가에 복수를 꾀하고 이에 두 주인공 간 플롯이 만들어진다.
2.2 대항해시대 3
이 조약이 맺어진 이후에는 상대방 세력에 속하는 스폰서에게 스폰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오,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보급을 위해 항구에 기항하는 것조차 안 된다. 덕분에 포르투갈 국적 캐릭터는 신대륙의 항구 기항에, 에스파니아 국적 캐릭터는 바스코 다 가마와 아폰소 데 알부케르케와 같은 포르투갈 함대가 공략한 인도 항구에 기항할 때마다 협상을 해서 돈을 쥐어주거나 잠입해서 도시에 들어가야 한다. 굶겨 죽일지언정 이 항구에는 들이지 않겠다니, 이것이 교황의 가르침인가?
이것을 없애기 위해 도시를 공격해서 함락시킬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조항을 어겼다면서 벌을 받을 수도 있다. 적의 수도를 점령하면 다른 도시도 다 우리 것이 되니 상관 없지만 문제는 그후 역사적 이벤트 등으로 새로 생기거나 점령되는 도시는 수도를 점령함에 따라 그 나라가 모두 자국령으로 합병됨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나라 것이 되어 있기에[7] 다시 점령해야한다. 망명정부 이게 어느 정도로 난감한 일이냐면 이슬람 세력에 있는 도시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짜증을 유발한다. 이슬람 세력권에 들어갈 때는 터번이라도 쓰면 잠입률 100%지만 이건 뭐...
이 때문에 대항해시대 3가 발매되었을 시 나온 각 PC게임잡지에서 나온 공략으로 1494년 이전까지 말라카와 같이 중요한 항구들을 라이벌 국가가 점령하는 이벤트가 나오기 전에 선점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할 정도.
여담이지만 대항해시대 4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데, 배경 시기가 너무 늦기 때문이다.
2.3 대항해시대 온라인
세계일주 이벤트를 통해 언급이 된다. 플레이어는 마젤란이 수행한 세계 최초의 세계일주의 항로를 비슷하게 따라가면서 세계일주를 하는데, 이 세계일주를 주최하는 나라가 다름아닌 스페인이다. 이유는 토르데시야스 조약 때문에 동쪽으로는 가지 못하자 서쪽으로 넘어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 세계일주를 한다는 것.
2.4 Europa Universalis 시리즈
1494년 6월 6일에 발생하는 역사적 이벤트이자 모든 국가의 공통 이벤트로 지정되어 있다.
이벤트가 발생한 직후 개척 메뉴를 열어보면 역사적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권한을 인정받았던 지역에는 해당 국가의 문양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벤트가 발생해도 해당 지역이 자동적으로 양 국가의 영토로 편입되는 식의 직접적인 효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더불어 타 국가에 대한 배타성도 없어서 무주지 상태라면 다른 국가에서 교역거점(Trading Post)이나 식민지를 펼쳐도 무방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무 메리트가 없는 이벤트로 보이지만 이 조약의 진정한 효과는 따로 있다. 원래 유로파 시리즈에서는 선전포고를 하거나 따로 교섭을 하여 군사통행을 허가 받지 못하면 타국의 영토에 군대가 진주하지 못한다. 하지만 토르데시야스 조약 이후로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권리로 인정받은 유럽 외의 땅에 타국이 식민지를 건설했더라도 아무런 제약조건없이 군대가 진주하여 지나가거나 혹은 공격해서 탈취할 수 있다! 반대로 타국은 이런 행위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어 게임 시스템 상으로 최소한의 권리보장은 해주고 있다.
17세기에 접어들어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효과가 무효화되는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양 국가의 선점권이 사라진다.
최신작인 EU4에서는 효과가 다른데,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만 한정되는 이벤트가 아니며 가톨릭 국가라면 어느 국가든 사용이 가능하다. 가톨릭 국가 중 가장 먼저 아메리카 지역의 특정 식민지 구역을 개척한 국가는 해당 구역 전체를 먼저 개발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 다른 국가들의 식민지 개발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다른 국가들은 그 구역에서 식민지를 성장시키는데 엄청난 페널티를 받으며 이로 인해 아예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단 이 효과는 가톨릭 국가들에게만 적용되며, 다른 종교(개신교, 개혁교회 포함)의 국가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 그 유명한 역대급 막장교황 맞다. 게다가 에스파냐 발렌시아 출신이다!
- ↑ 카나리아 제도 정남방에 위치한 곶, 현재 서사하라 령.
- ↑ 교황이 제시한 선은 처음에는 서경 38도였으나, 이후 양국이 직접 1년간 협의하여 최종적으로 서경 43도 37분으로 정해졌다. 다만 이건 카보베르데 제도의 서쪽으로 얼마 떨어진 곳을 기준으로 삼은 터라, 해석에 따라(카보베르데 제도의 동쪽끝인지 서쪽끝인지 중앙인지) 조금씩 기준이 달라진다.
- ↑ 적도를 기준으로 남반구와 북반구가 여러모로 대칭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대항해시대 이전에도 흔한 발상이었다. 따라서 북반구와 마찬가지로 남반구에서도 무역풍-편서풍 지대가 차례로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15세기 수준의 사고실험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결론이고,
같은 전제에서 출발했다가 헛다리만 짚은 남방대륙의 존재에 대한 추론과는 달리 다행히도 이쪽은 실제 사실도 그러했다그러므로 인도항로 개척 중 아프리카 남단에서 유럽으로 회항하는 최적의 항로를 찾는 과정에서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카브랄에 의한 공식적인 브라질 발견보다) 먼저 브라질을 발견했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 실제로 범선의 경우 인도양에서 유럽으로 복귀(Back Haul)할 때 서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북상하는 것보다 희망봉에서 동풍을 타고 남아메리카 대륙쪽으로 크게 우회한 다음 북서진하는 것이 최적의 항로이다. - ↑ 이 시기 포르투갈인들이 남미 내륙으로 진출하면서 오늘날 브라질 국토의 기반이 된다.
- ↑ 물론 이걸 가장 앞장서서 방해한 것도 영국. 그래서 지금도 스페인은 영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
- ↑ 예를 들어 스페인으로 플레이하면서 리스본을 점령했더라도 그것이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해 항구들이 점령되기 이전이었다면 바스코 다 가마의 항구 점령 이벤트와 함께 그 항구는 포르투갈 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