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Orchestre de Paris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를 거점으로 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1 연혁
공식 창단 연도는 1967년으로, 유럽 유수의 악단들 중에는 뉴비에 속한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 만든 것은 아닌데, 원래 1828년부터 존재하고 있던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Orchestre de la Société des Concerts du Conservatoire)을 모체로 재조직한 악단이다.
명칭대로 파리 음악원 소속이었던 저 관현악단은 창단 당시 관현악 연주 분야가 빈약했던 프랑스에서 거의 유일한 연주회 전문 악단으로 활동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베를리오즈나 프랑크, 생상 같은 본좌급 작곡가들의 숱한 관현악곡들을 초연하는 등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겨온 고참 관현악단이었다.
하지만 양차 세계대전까지 별 탈없이 견뎌왔던 저 악단도, 1960년대에는 무슨 이유인지 상임 지휘자 같은 대빵도 제대로 못구하고 심각하게 비실대기 시작했다. 베를린 필을 비롯해 세계적인 명문 악단이 즐비한 이웃 독일에 비해서 변변하게 내세울 오케스트라가 없는 것에 대해 고심하던 프랑스 정부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하에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창단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던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기존 악단을 해체해 버렸고, 그 대신 문화부의 음악 부서를 담당하던 작곡가 마르셀 란도프스키를 시켜 파리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고 재창단했다.
초대 음악 감독에는 2차대전 이후에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노장 지휘자 샤를 뮌슈가 초빙되었다. 뮌슈는 짧은 시간 동안 악단의 연주력을 다듬어내고 다시 연주회 전문 악단으로 재출발시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뮌슈는 프랑스 국적이지만, 독일어권 지역인 알자스-로렌 출신으로, 독일에서 학교를 나왔으며 라이프치히에서 오케스트라 단원 생활을 한 바 있기 때문에 독일 음악에도 능했다. 창단 직후 EMI에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나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 드뷔시와 라벨의 관현악곡들을 취입하는 등 맹활약 했지만, 이듬해인 1968년에 뮌슈가 악단과 창단 이후 첫 미국 연주 여행을 하는 동안 리치먼드에서 심장마비로 급서하면서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뮌슈의 후임으로는 놀랍게도 당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예술 감독을 맡고 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음악 고문' 이라는 직책으로 들어왔다. 카라얀이 파리 오케스트라를 맡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내가 프랑스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도 있다. 카라얀은 2년여 정도만 활동하고 사임했다. 1972년에 카라얀의 후임으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게오르그 솔티가 제2대 음악 감독에 공식 취임했다. 초기에 매우 열정적으로 활동했으나 결국 3년만에 사임하고 말았다. 파리 오케스트라에서 매우 시달렸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정명훈이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소란 끝에 물러나게 되었을 때, 솔티는 파리가 원래 그런 곳이라며 정명훈을 두둔한 바 있다.
하지만 솔티의 뒤를 이어 갑툭튀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재임기에 와서 이 악단은 갑자기 급성장 시기를 맞으며 리즈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바렌보임은 취임 당시 33세의 젖뉴비에 불과했지만, 유연함과 카리스마를 고루 갖춘 상태였고 단원들과의 궁합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이런 덕택에 바렌보임은 1989년에 퇴임할 때까지 거의 15년 동안 음악 감독직을 장기 유임했고, 이 기록은 2010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바렌보임은 전속사였던 도이체 그라모폰에 프랑스 음악을 중심으로 한 많은 음반을 취입했고, 공연 무대에서는 현대음악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피아니스트로서 단원들과 실내악 활동도 하는 등 악단의 저변을 상당히 넓혀놓았다. 바렌보임은 파리 오케스트라에서 물러난 이후 일약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발탁되었는데, 지휘자들이 기피하기로 유명한 파리 오케스트라를 장기간 잡음없이 이끈 리더쉽이 높이 평가받았다는 후문이다.
바렌보임의 후임으로는 소련 출신의 젊은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가 들어왔고, 비치코프는 당시 전속사였던 필립스를 중심으로 음반을 제작했다.
비치코프가 1998년 사임한 후에는 잠시 후임 물색에 혼선이 있었고, 헝가리계 독일 지휘자인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가 카라얀과 마찬가지로 음악 고문 자격으로 잠시 악단을 이끌기도 했다. 2000년에는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제5대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에셴바흐도 바렌보임 못지 않게 전속사인 텔덱을 통해 프랑스 음악을 중심으로 근현대 작품을 적극적으로 녹음해 소개하는 등 괄목할 만한 활동을 보여주며 약 10년 동안 두 번째로 장기 재임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에셴바흐가 09/10년 시즌을 끝으로 미국의 워싱턴 내셔널 교향악단에 이임하게 되자, 후임으로 에스토니아계 미국 지휘자인 파보 예르비가 10/11년 시즌부터 음악 감독을 맡게 되었다.
2 역대 음악 감독
음악 감독이 아닌 음악 고문으로 활동했던 지휘자는 기울임체로 표기했다.
- 샤를 뮌슈 (Charles Munch, 재임 기간 1967-1968)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재임 기간 1969-1971)
- 게오르그 솔티 (Georg Solti, 재임 기간 1972-1975)
-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 재임 기간 1975-1989)
- 세묜 비치코프 (Semyon Bychkov, 재임 기간 1989-1998)
-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Christoph von Dohnányi, 재임 기간 1998-2000)
-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Christoph Eschenbach, 재임 기간 2000-2010)
- 파보 예르비 (Paavo Järvi, 재임 기간 2010-)
3 특징
비록 1970년대 이후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이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같은 다른 관현악단들이 경쟁 악단으로 등장하면서 독주하는 기세는 약간 수그러들고 있지만, 여전히 연주회 전문 악단이 그리 많지는 않은 프랑스 음악계에서 늘 주목받고 있는 단체다. 특히 관악기 주자들의 역량은 비단 프랑스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구 급의 달인들이라고 칭송받을 정도로 뛰어난 편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현실은 튜닝조차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악단인 만큼 본국의 관현악 작품 연주에 일가견이 있지만, 뮌슈나 바렌보임 등의 재임기에는 과거 적국이었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표준 관현악 레퍼토리도 적극적으로 다뤄서 연주곡 편식 현상도 없는 편이다. 현대음악도 바렌보임 시기부터 쭉 다뤄온 탓에 어느 정도 익숙한 듯 하다. 합창 붙는 작품을 공연할 때는 1976년 창단된 파리 관현악단 합창단(Chœur de l'Orchestre de Paris)이 흔히 따라붙는다.
하지만 연주회 전문 악단이라고는 해도, 파리의 공연장 대부분이 주로 오페라나 발레 같은 무대 작품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극장들이라 연주회만을 상설 개최하는 상주 공연장 잡는 일이 늘 문제가 되어 왔다. 샹젤리제 극장이나 팔레 드 콩그레, 살르 플레옐, 샤틀레 극장, 모가도르 극장, 시테 드 라 뮈지크 등 상주 혹은 임시 상주 공연장으로 거쳐간 곳들이었다.
그나마 가장 괜찮았다고 하던 살르 플레옐도 1998년에 운영난 때문에 매물로 나왔고, 2002년에는 폐관되기까지 하면서 상주 공연장 자격을 잃게 된 안습 상황도 있었다. 그나마 프랑스 정부에서 긴급 지원을 해서 폐관은 면했고, 지원 자금으로 리모델링도 대대적으로 해서 2006년에 다시 재개관했다. 이 직후 파리 관현악단도 다시 상주 악단이 되어 2010년 현재까지 공연 중이다. 다만 여기도 성이 안차는지, 프랑스 정부 주도로 시테 드 라 뮈지크 근처에 새로 짓고 있는 2400석 규모의 필아르모니 드 파리가 2014년에 완공되면 그 쪽으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