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립 관현악단

프랑스어: Orchestre national de France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거점으로 하는 관현악단. 홈페이지

1 연혁

1934년에 체신성[1]의 인가를 받아 프랑스 국립 방송국이 운영하는 악단으로 창단되었고, 당시 명칭도 프랑스 국립 방송 관현악단이었다. 초대 음악 감독으로는 데지레-에밀 앵겔브레슈트가 임명되어 악단 육성에 주력했다.

하지만 2차대전 발발과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으로 인해 렌느와 마르세유 등지로 피난해야 했고, 독일 점령군 당국과 비시 프랑스의 활동 허가를 받아 해단은 면했다. 하지만 양측으로부터 삼엄한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명맥을 간신히 잇는 수준이었고, 유대인 단원들도 강제 해직되었다. 1944년에 연합군에 의해 파리가 해방되자 악단도 활동의 자유를 되찾았고, 독일에서 포로로 잡혀 있다가 풀려난 마뉴엘 로장탈이 제2대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다.

로장탈에 이어 1947년 부임한 로제르 데조르미에르도 악단의 실력을 전쟁 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주력했지만, 1951년에 갑자기 실어증이 발병하면서 음악계에서 은퇴해야 했다. 악단 측은 같은 해 앙드레 클뤼탕스를 대타로 초빙했고, 클뤼탕스는 전후 좀처럼 연주되지 않았던 과거 추축국 작품들의 공연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소련 등 동구권 작곡가의 작품도 다루었다.

1960년에 클뤼탕스가 벨기에 국립 관현악단 음악 감독에 집중하기 위해 사임하자 모리스 르 루가 뒤를 이었고, 1962년에는 보스턴 교향악단에서 퇴임하고 귀국한 샤를 뮌슈가 추가로 영입되어 2인 음악 감독 체제를 취하게 되었다. 1964년에는 프랑스 국립 방송에 텔레비전 방송 부서가 추가되면서 프랑스어 명칭이 'Orchestre National de l'ORTF' 으로 바뀌었다.[2]

뮌슈가 1968년에 새로이 결성된 파리 관현악단으로 이임한 뒤에는 장 마르티농이 후임으로 들어왔다. 작곡가이기도 했던 마르티농은 꼼꼼하게 악단의 음향과 연주력을 다듬었고, 악단과 정기적으로 녹음을 진행하던 EMI 프랑스 지사 뿐 아니라 종전 후 처음으로 독일 음반사인 도이체 그라모폰과 정기 녹음 계약을 맺어 프랑스 작품 위주로 음반을 출반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르티농은 1970년대 중반부터 골수암이 발병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1975년에 사임한 뒤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악단 명칭이 현재의 것으로 변경되었다.

마르티농의 퇴임 후 악단 측은 루마니아 출신의 세르주 첼리비다케를 새로이 영입했는데, 첼리비다케는 지독한 리허설 방식과 고집스러운 성깔 때문에 악단과 궁합이 그다지 좋지는 못했고 슈투트가르트 남서독일 방송 교향악단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불과 세 시즌만 지휘한 뒤 사임했다. 첼리비다케 사임 후에는 거의 12년 동안 음악 감독 공석인 상태로 활동했고, 미국 출신의 로린 마젤이 수석 객원 지휘자 자격으로 악단과 자주 출연했다. 마젤은 1987년에 제9대 음악 감독으로 부임해 1991년까지 재임했다.

마젤 사임 후에는 프랑스스위스 지휘자인 샤를 뒤투아가 뒤이어 2001년까지 재임했고, 뒤투아는 근현대 음악을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확충했다. 2002년에는 독일 출신의 쿠르트 마주어뉴욕 필하모닉에서 옮겨와 취임했고, 마주어는 독일계 정통 관현악 작품들의 연주로 호평을 받아 퇴임 후에도 명예 음악 감독 자격으로 악단을 종종 지휘하고 있다.

2008년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다니엘레 가티가 제12대 음악 감독으로 부임해 2010년 11월 현재까지 재임 중이다.

2 역대 음악 감독

  • 데지레-에밀 앵겔브레슈트 (Désiré-Emile Inghelbrecht, 재임 기간 1934-1944)
  • 마뉴엘 로장탈 (Manuel Rosenthal, 재임 기간 1944-1947)
  • 로제르 데조르미에르 (Roger Désormière, 재임 기간 1947-1951)
  • 앙드레 클뤼탕스 (André Cluytens, 재임 기간 1951-1960)
  • 모리스 르 루 (Maurice Le Roux, 재임 기간 1960-1967)
  • 샤를 뮌슈 (Charles Munch, 재임 기간 1962-1968)
  • 장 마르티농 (Jean Martinon, 재임 기간 1968-1973)
  • 세르주 첼리비다케 (Sergiu Celibidache, 재임 기간 1973-1975)
  • 로린 마젤 (Lorin Maazel, 재임 기간 1987-1991)
  • 샤를 뒤투아 (Charles Dutoit, 재임 기간 1991-2001)
  • 쿠르트 마주어 (Kurt Masur, 재임 기간 2002-2008. 퇴임 후 명예 음악 감독 호칭 수여)
  • 다니엘레 가티 (Daniele Gatti, 재임 기간 2008-)

3 특징

파리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다. 창단 때부터 프랑스 국립 방송 소속이었고, 1975년에 국립 호칭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운영 주체가 정부 혹은 국가로 이양되지는 않았다. 2015년 현재도 운영권은 라디오 프랑스(Radio France)가 갖고 있으며, 공연 실황의 중계도 해당 방송국이 주로 맡고 있다. 라디오 프랑스는 이 악단 외에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운영하고 있다.

유럽의 많은 방송국 소속 악단들과 마찬가지로 동시대 음악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특히 2차대전 이후에는 올리비에 메시앙이나 앙리 듀티외, 에드가 바레즈, 피에르 불레즈 등의 갓나온 신작들도 과감히 다루어 프랑스 음악계에 충공깽을 선사하기도 했다. 비단 프랑스인 작곡가들 뿐 아니라 프랑스를 거점으로 활동한 얀니스 헤나키스나 천 치강 같은 작곡가들의 작품도 소개하는 등 레퍼토리 폭도 꽤 넓은 편이다.

당대 유명 작곡가들이 자작품을 연주/녹음한 기록도 많으며, 특히 브라질의 대표 작곡가인 에이토르 빌라-로부스와 소련의 본좌급 작곡가였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EMI 프랑스 지사에 각각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로서 자작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독일계 작품은 독일 점령 시기 수북하게 쌓여 있던 앙금 때문인지 일부러 다루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정규 레퍼토리로 들어오게 되었다.

합창 붙은 작품들을 공연할 때는 흔히 같은 방송국 소속인 라디오 프랑스 합창단(Chœur de Radio France)이 협연하고 있다. 상주 공연장은 1944년 파리 해방 이래로 샹젤리제 극장을 사용하고 있고, 이외에도 라디오 프랑스의 본거지인 메종 드 라디오 프랑스의 대강당인 살르 올리비에 메시앙에서도 공연하고 있다.

아직 악단 자체 음반 레이블은 갖고 있지 않지만, 나이브 같은 프랑스 음반사와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음반을 내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도 데카의 인터넷 다운로드 전용 음원 서비스인 '데카 콘서트' 에서 공연 실황 일부를 구매할 수 있다.

  1. 당시 프랑스 방송국들은 모두 체신성 관할 하에 있었다.
  2. ORTF=Office de Radiodiffusion-Télévision França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