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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통악기중 하나로 국악에서도 사용되므로 국악기에 포함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려때 송에서 수입된 아악기로 黃=C인 당악 음정을 따른다. 편경과 쌍을 이루는 악기이다.
16개의 종을 두 단으로 된 나무 틀에 위아래 여덟 개씩 매단 악기이다. 나무틀의 발 부분은 사자모양의 받침대에 각각 꽂아 놓는다. 틀 위쪽 양편에는 용의 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고, 꼭대기에는 공작 다섯 마리와 물들인 실로 만든 술로 장식을 한다. 연주할 때는 뿔로 만든 망치인 각퇴(角槌)로 종 아랫단의 둥글게 표시된 부분을 두드려서 연주한다. 악학궤범에 따르면 아랫단은 오른손, 윗단은 왼손으로 치며 속악(향악)에는 양손으로 연주했다고 하는데 오늘날은 그냥 오른손으로만 연주한다.
편종에는 두 가지 제조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종의 크기에 따라 종의 음높이가 결정되는 방식이고, 다른 방법은 종의 두께에 따라 음정이 결정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세종 11년에 두 번째 방법, 즉 종의 크기는 같고 종의 두께로 음정을 결정하는 법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종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음의 높이가 높아진다.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고려 예종대 송나라의 휘종이 편경과 함께 보내준 때의 일이고, 공민왕때에도 전란으로 소실된 편경과 편종을 명나라에서 다시 구입했다는 이야기가 고려사 등에 나온다. 이후 태종대까지도 중국에서 편종과 편경을 수입했는데 하지만 중국에서 보내주는 편종은 음정이 정말 개판이었다고 한다(…)역시 유서깊은 메이드 인 차이나 결국 세종11년부터는 박연의 건의로 주종소를 두어 국내에서 직접 만들게 되었다.
음에 맞춰 종을 때리기만 하면 되는 쉬운 연주법이지만 의외로 때리는 강도나 방법에 따라 음색이나 음량이 달라져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악기이다. 종 아래 정면에 치는 부분을 둥글게 표시해 놓은 것도 악사들이 아무데나 함부로 두들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한다. (세종실록 권46)
국립국악원에서는 1920년대까지 편종전공이 있었고, 실제로 편종전공으로 일생을 마친 악사님들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 보허자, 낙양춘 등에 편성되고 취타를 대편제로 연주할 때도 간혹 편성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