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廟祭禮樂
영어: Ritual Music in the Confucian Shrine
1 개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문묘에서 행하는 제례를 위한 음악.
문묘(文廟)는 문선왕묘(文宣王廟)의 약자로, 위에 언급한 공자 외에 맹자 등 중국 성현들을 중심으로 설총과 최치원, 이율곡 등 한반도의 성현들까지 합쳐 총 112인의 신위가 모셔진 곳이다. 아무래도 중국 성현을 중심으로 모신 묘역의 제사용 음악이라 그런지, 종묘제례악보다 중국에서 들여온 아악의 영향력이 더 강한 편이다.
문묘제례의 공식 명칭은 '석전대제(釋奠大祭)'이다. 석전대제는 1953년부터 음력 2월과 8월의 첫 번째 정일(丁日)에 두 차례 지내다가 2007년부터 양력으로 기준을 변경해서 5월 11일(공자의 기일)과 9월 28일(공자의 탄신일)에 지내고 있다. 기준을 변경할 당시, 전통에 따라 기존의 음력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양력으로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으로 유림 내에서 약간의 분쟁이 있었으나 후자의 주장이 대세를 이루어서 곧 가라앉았다.[1] 석전대제도 종묘제례와 마찬가지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물론 문묘제례악도 포함된다. 제례 장소는 성균관대학교 교내에 위치한 문묘(사적 143호)이며, 제례는 성균관 유생들이 맡고 음악 연주와 무용은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무용단이 맡고 있다.
다만 이 역시 1년에 두 번밖에 치러지지 않기 때문에, 일반 청중들을 위해 국립국악원에서 상설공연이나 특별공연 때 무대 상연 형식으로 공연하기도 한다.
2 역사
고려 시대였던 1116년 송에 사절로 갔다온 왕자지를 비롯한 사절단이 휘종에게 받아온 대성아악(大成雅樂)이 문묘제례악의 직계 원조로 기록되어 있는데, 초기에는 이 아악과 그 연주 형태를 큰 개작 없이 문묘 관련 제례에 사용했다. 하지만 이후 송이 몰락하고 원이 등장해 중국 뿐 아니라 한반도까지 관광하면서 제례도 같이 막장화되고 말았다.
이렇게 뒤죽박죽이 된 문묘제례와 제례악이 본격적으로 부활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 무렵으로, 세종대왕의 명을 받은 박연이 원 시절 편찬된 '대성악보(大成樂譜. 또는 석전악보 釋奠樂譜)' 를 비롯한 대성아악 관련 중국 문헌들을 참고하고 일부 의식 변화에 따라 개작과 첨삭을 가해 정비했다.
이렇게 개량되고 복원된 제례와 제례악은 한동안 큰 변화 없이 상용되었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또 한 번 관광당해 전승이 끊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두 환란 사이에 광해군이, 호란 후에는 영조가 악학궤범을 비롯한 문헌을 참고해 다시 복원하도록 했는데, 이 때도 박연이 정리한 것이 그대로 전승되지 않고 일부가 축소되거나 개작된 형태로 변형되어 정립되었다.
청의 멸망 후 중국에서 왕조가 사라지고, 이어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체제를 거치면서 중국의 문묘 의식은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그나마 문화대혁명 후에야 문묘제례와 제례악의 학술적인 복원 노력이 시작되었고, 이 때 많이 참고한 것이 한국에 남아 있는 문묘제례였다.
3 구성
애초부터 중국에서 '하사한'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박연 등의 개작과 첨삭에도 불구하고 중국 아악의 강한 영향력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평조와 계면조를 기반으로 하고 보태평과 정대업이라는 두 묶음의 연곡으로 구성되는 종묘제례악과 달리, 가온다(C)가 황종음인 도-레-미-파#-솔-라-시 일곱 개 음으로 이루어진 음계가 기본적인 조성으로 정립되어 있다. (서양음악으로 치면 완전4도 아래로(F→C) 조옮김된 리디안 선법.)
장단도 곡에 따라 다른 종묘제례악과 달리, 빠르기 등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한 음당 한 박씩이라는 매우 규칙적인 장단이 사용된다. 그리고 농현이나 시김새도 극도로 억제되어 있어서, 종묘제례악보다 훨씬 옛스럽다는 느낌이라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세종 치세 때는 총 15곡이 연주되었는데, 12율의 각 음을 중심음으로 한 황종궁, 대려궁, 태주궁, 협종궁, 고선궁, 중려궁, 유빈궁, 임종궁, 이칙궁, 남려궁, 무역궁, 응종궁 열두 곡에 송신황종궁, 송신협종궁, 송신임종궁 세 곡이 더해진 형태였다. 종묘제례악에 버금가는 대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역사 항목에 쓴 것처럼 양대 환란을 거치며 황종궁, 고선궁, 중려궁, 이칙궁, 남려궁, 송신황종궁 여섯 곡만이 제례에 쓰이고 있다.
새로 추가된 송신 계통 곡을 제외하면 모든 곡이 다른 중심음을 가지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조옮김(이조)이 된다. 다만 그 조옮김이 일괄적으로 고르게 되는 것도 아닌데, 12율을 적용하기는 했지만 연주에 사용하는 모든 악기가 조옮김한 선율의 모든 음역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맹점이 생긴다. 그래서 만약 그 음역 대에서 조옮김된 선율의 음을 연주할 수 없으면 무조건 1옥타브를 올리거나 내려서 연주한다.
이 때문에 각 악기가 서로 다른 음을 연주하는 구절이 꽤 여러 군데 있으며, 마치 서양 음악의 화음을 연상시키는 대목도 들려온다. 게다가 정확한 박절법까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 제례악이 다른 한국의 궁중음악과 비교했을 때 가장 이국적이고 이질적인 곡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긴, 원체 중국 입김이 강했으니.
각 곡은 그 곡의 중심음으로 시작해 같은 중심음을 연주하며 끝내고, 네 개의 음이 한 구를 이룬다. 한 구는 또 여덟 개가 모여 한 곡이 형성되고, 한 구의 끝에는 반드시 북을 치게 되어 있어서 곡의 구성 원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4 악단과 무용수 배치
기본적으로는 종묘제례악과 유사하다. 악단은 댓돌 윗쪽에 걸터앉아 연주하는 등가(登歌)와 아랫쪽에 걸터앉아 연주하는 헌가(軒架) 두 악단으로 편성되는데, 다만 한반도에서 자생하거나 개량된 악기도 혼합 편성하는 종묘제례악과 달리 문묘제례악에서는 닥치고 모두 아악기로 간다.
등가: 편종, 편경, 특종, 특경, 금, 슬, 봉소, 훈, 지, 약, 적, 어, 박, 성악(악장이라고 한다)
헌가: 편종, 편경, 노고, 노도, 진고, 훈, 지, 약, 적, 부, 축, 어, 박
악기 편성 전체를 통틀어 중요한 규칙이 있는데, 전통음악에서 악기 재료로 분류하는 여덟 가지 재료로 만든 악기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쇠붙이인 금부(金部), 돌인 석부(石部), 실인 사부(絲部), 대나무인 죽부(竹部), 바가지인 포부(匏部), 흙인 토부(土部), 가죽인 혁부(革部), 나무인 목부(木部)로, 실제로 위의 악기들도 이 8부에 하나 씩은 다 포함된다.
하지만 사부에 속하는 금과 슬의 경우, 악기는 존재하지만 연주법을 잊어버린 관계로 그냥 악기 자체만 구비할 뿐, 연주는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도 일단 악기라서 소리는 나기 때문에, 복원한 악기를 가지고 연주법을 재현해서 진짜로 연주할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도 있기는 하다.
종묘제례악과 마찬가지로 등가와 헌가는 제례 절차 별로 따로따로 연주 순서가 배당되어 있으며, 둘이 같이 연주하는 대목은 없다.
무용수도 종묘제례악과 마찬가지로 종대와 횡대를 여덟 줄씩 맞춰서 총 64명이 동원되는 팔일무(八佾舞)를 춘다. 역시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로 나뉘며, 춤출 때 양손에 드는 소품도 종묘제례악과 동일하다. 춤사위도 주로 팔의 움직임에 의존하고 발의 움직임은 대형 유지를 위해 최소화하는 제례무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데, 종묘와 문묘제례 양자를 비교해 보면 미묘하게 다르다고 한다.
5 제례 절차
종묘제례와 마찬가지로, 문묘제례도 일반적으로 집에서 지내는 제사와 틀은 같다. 다만 거기에 수반되는 부가 의식 숫자도 꽤 되며, 규칙에 훨씬 엄격히 따르는 것은 중요한 차이점.
영신(迎神): 성현들의 혼을 불러내는 의식. 제례악 연주는 헌가에서 하고, 제례무로는 문무가 추어진다.
전폐(奠幣): 혼들에게 폐백을 드리는 의식. 연주는 등가에서 하고, 문무가 추어진다.
초헌(初獻): 혼들에게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전폐와 마찬가지로 연주는 등가에서 하고, 문무가 추어진다.
공악(空樂): 아무 의식 없이 음악만이 연주되는 의식. 연주는 헌가에서 한다. 무용도 생략되지만, 이 대목에서 문무를 추는 무용수가 퇴장하고 무무를 추는 무용수가 입장한다.
아헌(亞獻): 혼들에게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연주는 헌가에서 하고, 무무가 추어진다.
종헌(終獻): 혼들에게 마지막 술잔을 올리는 의식. 아헌과 마찬가지로 연주는 헌가에서 하고, 무무가 추어진다.
철변두(撤籩豆): 제례에 사용된 제기를 거둬들이는 의식. 연주는 등가에서 하고 무용은 생략된다.
송신(送神): 혼들을 보내는 의식. 연주는 헌가에서 하고 철변두와 마찬가지로 무용은 생략.
망료(望燎): 사용한 축문을 태우는 의식. 송신과 마찬가지로 연주는 헌가에서 하고 무용 생략.
- ↑ 성균관이 아닌 지방의 향교 중에는 기존의 음력 기준으로 석전대제를 치루는 곳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