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함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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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조약 더 나아가 일제강점기의 시발점이 된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일본의 운요호와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

1 개요

砲艦外交. 포함을 앞세워서 하는 외교를 의미한다.

여기서의 '포함'은 다소 상징적인 의미로 실제적 의미는 '군사력(특히 해상군사력)'을 의미한다. 물론 인류 역사상 무력을 앞세워 외교를 요구하는 사례는 고대부터 꾸준히 있어 왔던 사례이지만[2] 실제 '외교, 수교'만을 위한 이런 군사시위 행위는 근대의 전열함, 전함 등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포함외교라고 불리게 되었다.

단순한 무력외교까지 합쳐 설명하면 난잡해지기 때문에 이 항목에선 근대 이후 벌어진 함선, 해상군사력에 의한 외교만을 설명하기로 한다.

2 역사

스페인 제국의 성공을 일으킨 대항해시대 시기 이후, 유럽의 열강들은 앞다투어 식민지경영을 하고자 했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발흥은 무력을 통해 강제적으로 식민지를 확장시키는 것을 당연시하였고, 유럽의 동쪽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해로를 통해 식민지를 확장시키게 된다.

그런 상황 때문에 강력한 해군력은 곧 국가의 국력을 뒷받침해주는 필수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나 유럽 국가의 해군력은 산업혁명을 거쳐 유럽 국가들이 기존의 약탈식 식민정책을 포기하고 식민지를 값싼 원료의 생산지와 자국 공산품의 판매처로 운용하는 '자본주의식' 약탈 체제로 넘어가면서 더욱 성장하게 된다. 얼핏 보면 더 쉬워보이는 단순 약탈체제에서 더 복잡해 보이는 체제로 넘어간 이유는 '공장에서 대량생산을 했으면 당연히 팔아야 하는'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으로, 기존 국가들의 정책이었던 단순 약탈 식민지 경영은 산업사회에선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쓰이던 전열함과 같은 목재 범선 군함 역시 포함외교에 널리 쓰였고 동남아시아 등지에선 먹혀들어갔지만, 정말 강력한 국가[3]에는 먹히지 않았다. 비록 전열함은 강력했지만 정말 제대로 해전, 전쟁을 경험하고 해안 포대와 군대를 구축한 중앙집권이 제대로 구축된 국가를 상대로 할 경우 타지에서 제한된 보급과 제한된 인원, 함선만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진 원정함대는 처절하게 박살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존의 범선은 증기선, 철갑선 등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으며, 이렇게 강철로 장갑을 댄 군함은 산업혁명을 거치지 않은 국가들의 해안 방어로는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요즘처럼 고폭탄이나 대함 미사일 따위가 있었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국가들의 함포, 요새포는 기존의 둥근 철탄환을 쏘아대는 것이 고작이었고, 당연히 그런 포로는 철제 장갑함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게 된다.

이런 철갑함들은 서구 과학기술의 상징이었고,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국가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당장 거북선이 철갑선이라고 일본 측에서 언급이 되듯이 이런 진짜 철갑선들은[4] '물 위를 떠다니는 해상요새, 불침함' 정도로 취급되었다[5]. 심지어는 일본 측에서도 '흑선' (쿠로후네 사건)이라고 언급되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근대화가 되지 못한 국가들은 철갑함에 확실한 피해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군함을 내세울 수 있었던 서구 열강의 입장에서 보면 군함은 두려움도 주고 군사적 우위도 점하는 '확실하고 편안하고 효과적인 대화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군함의 속성 때문에 전함이 부각되고 함대결전사상이 발전하게 되지만 이건 조금 더 훗날의 이야기.

게다가 서구 국가들의 식민지 경영 정책이 바뀌었기에 그들은 '통상'을 요구했다. 굳이 식민지를 점령해서 다른 열강들에게 욕을 먹고, 싸우는 것, 그리고 식민지 치안을 유지하고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는 것 보다는 근대화되지 못한 국가들에게 공업제품을 비싸게 팔고 원료를 싸게 사오는 폭리를 취하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였기 때문이였다. 물론 당하는 쪽도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경제적 예속을 우려하는 경우가 많았고(그리고 전근대적인 국가의 무역독점주의에 의거해 통상수교라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흥선 대원군처럼 수교를 거부해버리는 사태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포함외교는 악명을 떨쳤다.

이렇게 포함외교는 한동안 맹위를 떨쳤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민족자결주의가 대세를 이루고[6] 결정적으로 냉전이 오면서[7] 거의 소멸하게 된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말을 듣지 않는 모사데크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영국이 키프로스에 군대를 증강하는 등 꽤 활발하게 이루어져였으나 1956년 수에즈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옛날처럼 말 안듣는 이집트를 조지려다가 미국과 소련의 핵협박에 깨갱하고 물러나면서 끝나버린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포함외교는 시행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미국제7함대가 그것이다. 제7함대의 경우 북한이 못된 짓을 하면 서해에 들어오거나 전진배치를 하는 등의 목적이다. 다만 과거 포함외교의 피해자들과 달리 북한은 핵개발이나 대남 도발 등 각종 못된 짓을 자행하기 때문에 세계적 기준으로 봐도 막장짓이나 하는 파탄국가로 낙인이 찍혀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행동에 '제국주의적이다.'라며 비판을 하는 국가는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을 싫어하는 중국러시아 정도만 있는 실정이다. 물론 다른 당사자인 한국이나 한국 만큼 북한을 싫어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경계하는 일본은 지지를 보낸다.

3 사례

예시의 작성 시 '사건명 - 가해국, 피해국' 순으로 작성해 주세요

  1. 사진 출처 - 동아일보 “이토 히로부미 ‘운요호 사건’ 주도 가능성” 기사
  2. 하지만 보통 군사력으로 외교를 강제할 정도로 군사력, 국력의 격차가 발생할 경우 고대국가의 특성상 차라리 정복전쟁이 나았으므로 고대시절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전쟁을 하곤 했다.(일례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합종연횡. 진의 국력이 다른 국가를 압도했지만, 다른 국가들이 뭉치면 진도 이길 수 없어서 외교적으로 강제하는 선에서 끝내곤 했다. 이후 분열책이 성공하자 각개격파에 성공하고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다.)
  3. 이를테면 근대 직전 강희제, 옹정제로 포텐을 터뜨려 세계 국력 정점을 찍은 청나라같은
  4. 단 거북선이 철갑선이 아니라고 확정하는 것이 아니다.
  5. 여기서 더 하자면 '우리는 못 만드는 무적의 요새를 양이놈들이 만들어 왔다!', '저거 뭐야? 무서워!' 등의 반응. 그나마 기존의 목제 범선은 화공선 등으로 태울 수라도 있었지 철제 군함 앞에선 이런 공격따위는 먹혀들지 않았다.
  6. UN등이 결성되면서 다른 국가에 대한 무력 개입이 국제사회의 큰 비난거리가 되었기 때문.
  7. 냉전 당사 국가가 억지로 포함외교를 하게 될 경우 반대진영의 항의와 흑색선전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