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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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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13일 '풍선 아저씨(風船おじさん)'란 별명으로 불리는 스즈키 요시카즈(鈴木 嘉和)가 자신이 만든 박스에 풍선을 매달고 태평양 횡단을 도전하다 행방불명된 사건이다.
2 풍선 아저씨의 일생
1940년 도쿄도에서 피아노 조율사 일가에 태어나 쿠니타치 음악 대학 부속 고교를 졸업하고 야마하의 계약 사원으로 코가네이시에서 피아노 조율업을 했다. 1984년 44세의 나이로 음악 교재 판매 회사인 뮤직 앙상블을 개업하고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소리를 녹음한 테이프 판매를 개시. 이외 여러 음악 사업을 펼치나 잘 되지 않아서 빚에 쫒기던 그는 "비닐 풍선 26개를 붙인 곤돌라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곤돌라를 타고 미국에 건너가서 빚을 갚겠다!"라는 황당무계한 발상을 하고 만다.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
스즈키의 판타지 호는 1989년 요코하마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출품을 하려면 3,000만엔(2015년 기준으로 약 2억 8900만원)을 내야 하는 것과 기껏 출품에 성공했더니 회장내 전시 위치도 안 좋고 박람회 자체도 흥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난 스즈키는 박람회 마스코트인 '부루아쨩(ブルアちゃん) 인형옷을 입고 높이 30미터의 탑에 올라가서 "단체 버스 주차장을 개방해라!"라는 현수막을 걸고 7시간이나 서서 항의를 계속했고, 결국 경찰과 소방차가 출동하게 되었다. 이후 경찰서에서 풀려난 스즈키는 헬륨 풍선의 부력으로 10미터에서 20미터 지상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공중 산책'이라는 곤돌라를 박람회장에 자비로 설치했으며, 1990년 뮤직 앙상블은 5억엔(2015년 기준으로 약 48억원) 가량의 채무를 안고 최종적으로 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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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아쨩. 귀엽다
3 타마가와 하천에서의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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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그는 자기 회사가 파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모험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업 실사판?
1992년 4월 17일 풍선 아저씨는 경찰들의 제지에도 아랑곳 않고 타마가와 하천에서 치바현 쿠쥬쿠리 해안을 향해 의자에 5미터, 2.5미터 크기의 풍선을 동여매고 날아올랐다. 이 때 15kg의 모래 주머니 2개가 떨어져나가며 고도가 급상승하는 바람에 예정된 고도 400m를 넘긴 5,600미터 고도에 도달하자 당황한 풍선 아저씨는 라이터로 5미터 풍선 끈을 지져서 겨우 고도를 하강시켜 결국 오후 1시 40분, 출발 지점에서 24km 떨어진 도쿄도 오오타구의 민가 지붕에 불시착했다. 이때 풍선 아저씨는 왼손에 상처만 입은 반면 민가는 지붕이 무너지고 TV 안테나가 꺾이는 피해를 입었음에도 피해 민가에 손해배상은커녕 별다른 사과의 말도 없었으며, 풍선 아저씨는 이 도전이 성공하면 다음엔 하와이를 향한 모험을 계획할 예정이었다고.
참고로 '풍선 아저씨'라는 별명은 이 사건을 보도했던 미디어에서 붙인 것으로 타마가와에서의 실패를 보고 많은 미디어들이 거리를 두게 되어서 판타지 호의 출발시 찾아온 건 후지 테레비뿐이었다고 한다.
4 판타지 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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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이 지난 1992년 11월 23일, 그의 나이 52세 때 스즈키의 전화에 불려나온 도시샤대학 교수 미와 시게오(三輪茂雄)와 학생 7명, 아사히 신문의 통신 국장, 전날부터 밀착 취재해온 후지 테레비 와이드쇼 '굿모닝!나이스데이' 취재진, 그리고 스즈키의 지지자들이 비와호 호반에 모인 가운데, 풍선 아저씨는 헬륨 풍선 여러개를 단 판타지 호의 시험 비행을 행하였다.
원래 이 날의 명목은 단순한 시험 비행이었으며, 판타지 호가 120미터까지 상승하고 난 다음 일단 지상에는 착륙하였다. 그러나 돌연 16시 20분경 스즈키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주위의 제지를 뿌리친 채 습용 로프를 풀고 비와호 호수에서 미국 네바다주 샌드 마운틴을 향해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건지?'라고 묻는 미와 교수의 말에 그는
미국이에요(アメリカですよ)(?!)
라는 대답을 남겼으며, 이때 제트 기류를 타면 40시간 내에 미국에 도착할거라고 생각했다고....
파일:Rg1KDTh.jpg SOS신호 이후 발견되었을 때 뉴스 화면. |
다음 날에 휴대 전화(1992년의 것)로 "아침해가 아름다워요"라는 연락이 온 지 2일 뒤 SOS 신호가 발신되자 해상보안청의 수색기가 출동했으며 미야기현 긴카산 동쪽 약 800미터 해상에서 판타지 호를 발견하였다. 비행기를 본 스즈키는 비행기를 향해 앉아 있는 자세로 손을 흔들었고 SOS 신호를 중지했으며 당시 판타지 호의 고도는 평균 2,500미터로 높을 때는 4000미터 상공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약 3시간 후 판타지 호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자 수색기도 추적을 중단했고 그 이후로 이 판타지 호를 본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
전문가는 실험 전에 풍선으로 미국에 간다니 말도 안 된다고 이야기했으며, 풍선이 미국까지 갔다는 증거가 없으니 아마 바다에 떨어져 사망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 1994년까지는 호적상에는 살아 있는 것으로 되어있었으나 일본 민법상 실종 후 7년이 경과하면 자동으로 사망처리 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1999~2000년 사이에 사망한 상태다. 알래스카에서 발견됐다는 시체는 루머로 밝혀졌다.
4.1 판타지 호에 대하여
직경 6미터의 비닐 풍선 6개, 직경 3미터의 풍선 20개를 장비하였고 곤돌라의 외형은 약 2미터 가량, 깊이는 약 1미터이며 해상에 착수할 때를 대비해 부력이 높은 전나무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곤돌라의 제작은 전나무 장인에게 의뢰했지만 곤돌라 전문은 아니었고, 비닐 풍선을 제작한 회사에서는 비닐 풍선은 애초에 사람을 태울 수 없고 풍선이 영하 수십도에 달하는 고도에 견딜 만하다는 보증도 없음을 미리 스즈키에게 얘기했다. 스즈키는 풍선 가스가 빠지면 부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비행시 기체의 부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추를 준비했지만[1] 부력 부족으로 비화호에서 출발할 때 준비한 200개를 전부 내렸다 .
소지품은 산소 충전기와 마스크, 일주일분 식량, 경위 경도 측정기, 고도계, 속도계, 해난 구조 신호기, 낙하산, 레이터 반사경, 휴대 전화, 지도, 영하 60도 이하의 기온에 견딜 수 있는 방한복, 헬멧에 자외선 차단 선글라스 등이 있었던 걸로 보아 준비는 꽤 철저하게 한 것으로 보이지만 무전 면허를 소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전기는 포함되지 않았고 고도계의 사용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5 여담
현재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의 유머 취급을 받는 모양이나 남겨진 가족들, 특히 아내는 그의 회사 공동 경영자로 집이 저당잡혀 있었고 남긴 빚을 필사적으로 갚느라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었으며(2006년 시점) 현재 빚을 다 갚았는지는 알 수 없다.
1995년 락 그룹 LÄ-PPISCH가 앨범 '포르노포르노'에 돈키호테적인 삶을 산 그에게 경의를 담는 내용으로 풍선 아저씨'라는 곡을 수록하였고 1997년에는 극작가 야마자키 테츠지가 연출한 무대 '풍선 아저씨'가 신주쿠 시어터 톱스에서 상연되었다. 카니에 케이조(蟹江敬三)[2]의 1인극이다.
2001년 야구 선수 이치로가 '국민 영예상'을 거절했을 때 비트 다케시가 '모험가였던 풍선 아저씨에게 국민 영예상을 주는 게 낫겠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실제로 수십 개의 풍선을 몸에 매달아 비행하거나 방송에 실험한 사례가 있으며 미국까지 횡단하는 건 무리겠지만 영화 UP이 비슷한 소재를 써서 화제가 됐던 때라 만약에 80~90년대가 아닌 현재였다면 그의 기행이 화제를 불러일으켜서 사업이나 방송쪽에서 활동하며 빚을 갚았을 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남의 가정집 기물을 파손해놓고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고 그의 가족들은 그가 남긴 빚과 기행 때문에 심하게 고생했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뭐 굳이 이러쿵 저러쿵 설교할 일도 아니지만.
참고로 그 이전 1982년에 풍선을 단 의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짓도 벌인 사람도 있었다.
2008년에는 브라질의 한 천주교 신부가 트럭 운전사 전용 공동묘지를 만들기 위해 후원자를 모으려고 풍선을 잔뜩 단 의자를 타고 비행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이 신부는 만약을 대비해 정말 철저히 준비하였고 등산 및 밀림 생존법까지 배웠으나 단 한가지 GPS 사용법을 숙지하지 않았던 터라 결국 자신의 위치를 알리지 못하고 실종된 뒤 한 시추 플랫폼에서 하반신만 남아있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뒤 다윈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 사례는 좋은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거고 애초에 가톨릭 신부님이셔서 후사가 없으므로 다윈상의 수상자격에도 적합하지 않아서 선정 이후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