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 | 763 ~ 809 |
هارون الرشيد (Hārūn ar-Rashīd, 정통한 하룬)
이란에서 태어난 인물로 형인 알 하디가 급사해서 786년 칼리프의 자리를 승계했으며 제국 초창기부터 큰 권력을 가지고 있던 가문인 바르마크 가를 캐발살내고 칼리프의 왕권을 강화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비잔티움 제국과 군사적인 대결을 자주 벌여 주요 국경지대에 요새를 쌓아두는 한편 비잔티움 제국에게 일정량의 조공을 받아내는 등 우위를 점하였으며 비잔티움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당시 막 세워진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와 교류를 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하룬 알 라시드는 아바스 왕조 내의 학자와 문인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폈고 유명한 학자들은 궁궐에 초빙하는 등 문화 부흥 정책을 펼쳐 그의 치세에 이슬람 문화가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그의 치세는 아바스 왕조 최고의 황금기라 불리나 달도 차면 기울듯 제국은 분열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치세 내에는 제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고 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지배권도 상실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룬 알 라시드는 반란을 진압하던 중 이란 동부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왕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도 공명정대하고 자비로우면서도 놀기 좋아하는 유쾌한 군주로 나오지만 주로 같이 나오는 당시 재상이였던 자파르[1]를 갈구는 일이 매우 잦다. 보통 갈구는 게 아니라 뭔 일만 터지면 "헐퀴, 이게 무슨 일임? 너님 이렇게 될 때까지 뭐했음? 이거 빨랑 해결하지 못하면 너님은 물론 가족들도 다 몰살임."이라서 자파가 언제나 고생한다. 신밀레 그리고 자파르는 해결하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해 자포자기하는 순간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셨더라면...", "변명은 죄악이라는 것도 모르나!" 갑자기 해결책이 나타나 일을 해결하는 식으로 끝난다. 조선에도 신하들 갈군 왕이 있긴 하지만 이건 좀 심했다.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도 자파르의 가문인 바르마크 가문을 몰살시켜 자기 협박을 실행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가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위에 나온대로 아바스 칼리프 조의 초반 전성기를 이끌어 온 바르마크 가문을 완전히 박살내는 등 절대 그는 선량하고 너그럽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신앙심이 깊고 문화 발전에 힘쓰긴 했지만 아바스 조의 유지에 필요하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대표적인 예.
어느날 하룬 알 라쉬드의 궁정에서 어떤 학자가 낙타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한 페르시아인 대신이 그것은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불평했다. 그 말을 들은 알 라쉬드는 불현듯 다음과 같이 말했다."그대를 집과 궁전까지 태워다 주고 그대에게 영광을 가져다 준 것이 바로 낙타다. 만약 당장 낙타가 죽는다면, 너희 페르시아인들이 가장 먼저 맛보게 되는 것은 낙타 가죽 채찍 맛이다.[2]"
이 일화를 해석하면 아랍인의 상징인 낙타에 대해 페르시아인들이 불평하면서 아랍에 대한 불평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우리는 원한다면 뭐든지 줄 수 있지만, 가져갈 수도 있다고 역시 간접적으로 답해준 것이다. 나름 자신이 있으니까 할 수 있었던 말.
한편 아라비안 나이트가 아닌 실제 일화 중에선 사치를 경고하는 뜻을 가진 이야기도 있다. 요리사이기도 한 형제 이브라힘(Ibrahim Al-Mahdi)이 대접한 생선요리를 먹다가 그 요리가 향신료로 맛을 낸 생선의 혀를 발라다가 생선 모양으로 꾸며서 만든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라시드는 이브라힘에게 지나친 사치와 낭비를 꾸짖고 하인에게 시켜 바깥으로 가져가서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대접할 것을 명했다고 한다.
문명 5에서 아라비아의 지도자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