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

1 개요

香辛料
영어 : spice

향료의 일종으로 글자 그대로는 향기와 매운맛이 있는 재료라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향신료라 불리려면 반드시 부재료로서 음식의 맛과 향을 돋우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참깨, 고추, 마늘 등처럼 무엇보다 재료 고유의 독특한 향이나 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단적인 예로 소금은 향신료와 그 쓰임새가 매우 유사하나 고유의 독특한 향이 없이 그저 음식에 '짠맛'만을 더하므로 향신료가 아닌 조미료라 불린다. 요컨대 고유의 향 없이 단순 4대 미각에 해당되는 신맛, 짠맛, 단맛, 쓴맛만을 더하는 식재료는 향신료로 분류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중세시대에는 설탕이 향신료의 일종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향신료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풀, 열매, 종자, 나무껍질 등이 존재한다. 하나의 식물에서 각기 다른 부분이 다른 향신료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 중에서도 풀 계열 향신료의 경우에는 허브나 향초란 명칭으로 불리며, 따로 구분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허브는 다른 향신료에 비해 매운 맛이 약하고, 향 자체도 강하지 않다. 이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부분은 허브(식물) 항목을 참조하자.

일반적으로 향신료는 추운 지방보다는 더운 지방에서, 농경 민족보다는 수렵/유목 민족에게서 더 자주, 더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더운 지방일수록 음식이 쉽게 부패하므로 향신료 특유의 소독 효과가 필요해지고, 육식이 주가 되는 수렵/유목 민족일수록 고기의 역한 냄새와 맛을 개선하기 위한 향신료가 반드시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특유의 효능으로 인해, 향신료는 약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인도, 중동, 아프리카의 요리에는 많은 양의 향신료가 사용된다. 예를 들어 가정집에서 수육을 삶을때도, 다른 재료 없이 그저 고기를 맹물에 넣고 끓이기만 한다면 역한 냄새가 남아있게 된다. 수육을 맛있게 삶는 사람은 이 냄새를 잡기 위해서 마늘이나 생강 같은 각종 향신료를 이용한다. 그래도 향신료의 위상이 와닿지 않는다면, 한국요리에서 고추와 마늘이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해보자.

한민족의 경우에도 초창기에는 유목 민족 계통[1]으로 향신료를 많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마늘. 다만, 구체적인 문헌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종류의 향신료가 사용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2 역사

서양은 이미 로마 시대부터 향신료를 적극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유럽에 유통되는 향신료는 보통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어 이후 말이나 낙타에 실려, 육로를 통해 인도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왔다. 거리 자체도 엄청났지만 도중에 사고와 천재지변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 상인을 노리는 도적 패거리마저 사방에서 날뛰는 상황이라 이에 따른 위험부담금이 향신료 가격에 더 추가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럽이 중세 시대로 접어들 때 즈음엔 중동 지방에 이슬람 국가가 성립되어 이런저런 이유로 이슬람과의 교역이 상당 부분 제한돼 버렸고, 그 결과 유럽으로 유입되는 향신료의 양이 급감하게 된다. 그에 따라 베네치아 상인이 서유럽의 향신료 교역을 독점하게 되는데, 독점 덕에 이슬람으로부터 사들인 향신료를 몇 배에 해당하는 값에 되팔아 엄청난 이득을 거뒀고, 반대로 유럽에서 유통되는 향신료 값은 더욱 치솟았다.

심지어 당시 이슬람 상인 역시 향신료 가격을 올리기 위해 신비주의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이들은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곳에나 나올 법한 기기괴괴한 거짓 이야기를 지어내 향신료가 비쌀 수 밖에 없는 이유인 양 퍼뜨리고 다녔는데, 예를 들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중략)성경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계피에 대해,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실론계피를 아랍 지방에 있던 불사조의 둥지에서 발견했다고 적고 있다. 불사조의 둥지는 매우 가파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놀라운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짐승을 큰 조각으로 잘라 불사조의 둥지 근처에 흩어 놓았다. 불사조들은 둥지에서 내려와 이 고기 조각을 물고 다시 둥지로 갔다. 결국 둥지는 고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계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결국 상술한 바와 같은 지나치게 먼 거리, 독과점의 폐해, 거짓 마케팅 등이 겹치면서 당시 유럽에선 향신료가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사치품이자 고급품으로 취급됐다. 덕분에 향신료가 비슷한 부피의 보석과 교환됐을 정도였다 보니 1500년대만 해도 상인들은 원가 대비 수십 배에 달하는 엄청난 이득을 남길 수 있었고 인도로 배를 열척을 보내서 단 한척만 살아돌아오더라도 이득이였다. 이런 탓에 유럽에서는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예전부터 유럽안에서 자생하고 사용해왔던 전통적인 향신료가 재발굴되어 널리 사용되곤 했는데, 그 대표적인 작물이 바로 허브다.

하지만 이런 특수도 한없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대항해시대에 이르러 항해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되자 너도 나도 만 있다면 앞뒤 안 가리고 죄다 향신료를 실어 나른 것이다. 이로 인해 전유럽에 대량의 향신료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기 시작,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향신료에 대한 신비감이 사라지면서부터는 향신료의 값어치는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폭락했다. 이는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도 절실히 체감할 수 있다. 아! 덤핑 그만 풀라고! 이 부분은 자국이 포르투갈이라면 일상같이 겪을 수 있다.

사실 반대로 말하자면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것도 향신료 덕이 크다. 콜롬버스, 바스코 다 가마 등이 목숨을 걸어가며 항로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그 근본적인 목적은 북아프리카계 상인들과 이탈리아계 도시국가들이 독점하던 향신료 교역로를 타파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바스코 다 가마가 말도 안 통하는 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마침 북아프리카계 상인이 그곳에 있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항로가 개척된 후에도 높은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나무를 태우는 등의 가격 안정책을 시도했었기 때문에 향신료가 유럽에 대량으로 풀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중세 시대 주식이었던 빵이나 밀이나 오트밀을 죽처럼 끓인 음식인 포리지(porridge)는 현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이 엉망이었기 때문에 향신료나 소금의 존재는 거의 필수적이었다. 참고로 포리지(porridge)는 넓은 의미로 '죽'을 뜻하기도 해서, 그냥 쌀을 말갛게 끓여내는 우리나라 죽도 영어로는 porridge라고 쓴다.

한편 중세 시대의 열악한 위생환경과 발달하지 못한 의료기술 속에서 향신료의 약효가 과장되어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계피나 생강 등 특유의 향이 강한 향신료들은 방향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흑사병이 만연하던 시기에는 공기로 병이 전염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독기를 몰아낸다고 생각되는 향신료들이 더욱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그런거 없다.

이건 딱히 중세의 이야기만도 아니라서, 병의 원인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거의 현대에 와서 이야기이다. 대항해시대에 유럽에 전해진 담배가 거의 만병통치약 취급을 받기도 했고, 이게 동양으로 전해지면서 한의학 서적에 담배가 역시 만병통치약처럼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1970년대에 가난한 집에서는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태반은 기생충 감염이었는데, 구충제 대신에 담배를 입에 물렸던 것이 한국의 모습이었다. 중세전염병이 돌때를 묘사한 그림을 보면 의료원들이 새 부리가 달린 가면을 쓰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부리부분에 향신료를 넣고 다녔다고 한다. 어쌔신스 크리드 2에서 볼 수 있는 그거 맞다. 당시 유럽인들은 향신료를 태워 나오는 독한 냄새가 전염병을 없앤다고 생각했다

흔히 고기의 썩은 내를 방지하기 위해 향신료가 유행했다는 말이 나도는데 오늘날의 연구결과들은 이러한 설을 부정하는 추세이다. 중세 유럽 귀족층은 식품 위생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였고[2], 향신료 자체가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기 때문에 단순히 유통기한을 늘리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건 어려웠다. 당시 기준으로는 유통기한을 늘리려고 향신료를 사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새 고기를 더 사는 쪽이 훨씬 이득이다. 이는 단순한 농담이 아닌게 실제로 한 기록을 보면 후추 한 파운드의 가격이 돼지 한 마리의 가격과 거의 비등했다.

또한 애초에 고기가 상할 일이 없는 것이 중세시대에는 살아 있는 가축을 도시 안에 위치한 푸줏간까지 데려와서 도축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그날 도축된 고기는 바로 도시에서 소비되었다. 요즘의 냉동육, 냉장육보다 더 신선하다오늘날의 학자들은 향신료가 방부제라기보다는 당시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나 귀족의 사치가 극에 달했을 시기엔 주객이 전도되어, 음식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향신료를 쓰는 게 아니라, 그 비싼 향신료를 이 만큼이나 쓴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 맛이고 뭐고 없이 그저 무작정 향신료를 마구마구 뿌려대기도 했다. 거의 카레 수준에 가까웠으며 잠시 귀족들의 식탁이 남아시아와 비슷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재밌는 건 자기 재산만으로는 향신료 값을 감당할 수가 없는 수준이 되다 보니 귀족들이 농노들에게 자유민으로 풀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향신료가 농노 해방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일본의 연구가 하네다 마사시가 쓴 책인 '동인도 회사와 아시아의 바다'에서는 향신료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인식에서는 하나의 건강기능식품으로써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지적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모든 사물은 건습한열의 네가지 기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은 이 건습한열의 기운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몸에 병이 나는 것은 이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건강하고 오래 살려면 그 당시 기준으로는 건습한열에 맞추어 음식을 먹어야 했다. 중세 유럽에서 모든 고기는 찬 성질을 지닌 음식이었고 그와 반대로 향신료는 모두 더운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찬 음식인 고기에 더운 기운을 가진 향신료를 뿌리면 밸런스가 맞게 되는 것. 이런 중세 유럽인들의 생각이 근대 의학이 발전하면서 변화하게 되었고 이 시점에서 향신료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이 하네다 마사시의 설명이다.

다만 중세 요리들이 맛도 없이 향신료만 들이부었다는 주장에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그러한 주장의 근원은 중세 요리책을 통해 실제로 음식들을 복원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양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계량화 이전의 한식조리법처럼 간장 약간, 마늘 좀 많이, 소금 한움큼, 이런 식으로.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오히려 아랍이나 터키, 인도의 요리와 비슷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음식은 육류 위주의 식사가 주가 된다거나 빵을 그릇 겸 식기로 쓴다거나 하는 점에서 중세 시대의 식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리고 언뜻 보면 향신료 사용량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지만 맛있는 요리들이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당시 식문화에 허세과시가 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금도 고급 요리에 그러듯이.

3 생소한 외국 향신료와 친해지기

우리가 잘 모르는 독특한 향신료도 요즘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바로 구할 수 있다. 주로 전문 식당에서 독특한 맛을 낼 때 쓰는 재료들, 뒤집어 말하면 이게 있으면 집에서도 식당 맛을 흉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오프라인에서 구매하고 싶으면 버스터미널 근처의 아시아마트, 이태원동 등 외국인 거주지역의 외국인 마트도 괜찮다. 하지만 외국인이 가게를 볼 경우가 있으니 적절한 영어회화실력과 배짱은 필수. 대신 싸면서 양은 푸짐하다. 온라인에서 사기 힘든 물건도 취급하니 적절히 이용하면 좋다.

독특하고 강한 향기로 인해 자칫하면 거부반응을 나타내기 쉬울 수 있는 향신료와 친해지려면 우선 생고기를 구울 때 소금과 같이 뿌려서 구워보자. 혹은 향신료와 소금으로 고기를 재우는 방법도 좋다. 잘 쓰면 각종 소스 부럽지 않지만, 소스의 베이스가 향신료일 경우도 많다.

참고로 고기의 종류마다 적절한 향신료가 있는데 예를 들어서 각종 허브는 닭고기를 구울 때 좋고(백리향, 로즈마리 등) 돼지고기세이지, 팔각 등, 쇠고기는 커민, 오레가노 이런 식으로. 정향은 모든 고기 요리에 적절하다. 다만 향이 너무 강하니 양 조절에 주의할 것.

일단 고기에 시험해봤다면 다음 단계로 과일이나 디저트, 심지어 계란의 맛을 낼 때도 요긴하다. 이 경우에는 계피, 생강, 팔각, 올스파이스, 카르다몸, 캐러웨이, 정향 등의 가루를 설탕과 함께 뿌려서 먹어보자, 향의 여운이 웬만한 시중의 디저트 부럽지 않을 것이다. 바닐라도 향신료의 일종이긴 하나 사용 방법이 까다롭기 때문에 에센스 형태의 것이 좋다. 계란의 경우 커민, 파프리카 가루를 소금에 섞어 향신료 소금을 만들어서 삶은 계란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2012년 9월 기준으로 농심그룹에서 미국의 식료품 회사인 맥코믹제 유기농 향신료 시리즈와 그라인더 시리즈도 정식으로 수입해서 판매 한다는 걸 보면 예전보다는 좀더 쉽게 향신료를 사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통후추나 굵은 소금 등 갈지 않은 원재료를 병에 넣고서 그 병 위에 재료를 원하는 크기로 갈아서 쓸 수 있는 그라인더를 단 향신료병으로 되어 있다.

3.1 기초

괜히 아무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이것저것 시도할려고 하면 감이 안 잡힌다. 그리고 익숙해져도 굳이 많이 사용할 필요없이 특성에 맞게 활용하면 된다. 보통 통에 보면 무슨 용도라고 쓰여있는데, 굳이 용도를 연관시켜 생각하지 말고 이 향을 썼을 때 어떻게 조화가 될 지 상상해보면 쉽게 쓸 수 있다.

사실 풍미를 결정하는것 맛 뿐만 아니라 향도 중요하다. 짠 맛, 단 맛, 신 맛 이런 쪽으로만 접근해서는 복잡 미묘한 느낌을 구현하기에 무척 어렵다.

어느 음식이던 향신료만 잘 활용해도 매우 다양한 맛과 향으로 변한다. 별도로 공식을 따져야 하거나, 시간이나 온도를 치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물론 생각하면 결과가 더 좋다.) 요리에 기본만 된다면, 향신료만 잘 써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을 낼 수 있다.

향신료는 조미료가 아니다. 맛도 내지만 향을 내는게 주가 된다. 향신료를 많이 쓰는 서양 음식을 보면 감칠맛 보다는 향을 내는것이 강조된다.

서양에서 잘 쓰이는 지방맛은 향신료를 잘 조합하면 매우 쉽고 간편하게 훌륭해질 수 있다. 참고로 식용유를 쓴다면, 콩기름만은 피하자. 콩기름은 맛을 크게 해치는 주된 원인 중 하나.

모르면 일단 파슬리로 시도해 본다. 왠만한 음식에서 파슬리는 별로 거부감없이 잘 조화된다. 그냥 장식으로 생각해도 좋고, 약간 진지한 느낌의 풀맛이 나는데 버터 맛(기름 맛)의 느끼함과 잘 조화를 이루어 준다. 파슬리는 좀 많이 써도 향이 너무 강해지지 않는 편이다. 보통 요리 후에 위에 뿌리고, 섞지 않는다.

파슬리 다음은 로즈마리다. 로즈마리도 생각보다 쉽게 잘 어울린다. 그런데 로즈마리는 파슬리와 달리 요리 후가 아니라 요리 중에 뜨거울 때 쓰면 나무 향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고기류에 좋고, 너무 많이 쓰면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 조절해야 한다.

시나몬. 자주 쓸 일은 없는데, 은근히 쓰인다. 계란 구워먹을 때도 뜨거울 때 아주 조금 뿌리면 좋고, 뭔가 볶아먹거나 국물 혹은 면 요리에도 아주 조금 넣어 섞으면 맛이 곱상해진다. 대신에 시나몬은 아주 조금만 써야지, 욕심내서 두 번 톡톡쳤다가는 시나몬 맛 밖에 안 난다. 요주의.

칠리 파우더도 은근히 잘 어울린다. 품종이 달라서 한국 고춧가루 맛이 아니라, 정말 깔끔한 매운 맛을 내 주는 것들이 있다. 물론, 향신료로 쓰기 때문에 불 같이 매운 맛을 만들기 위한 용도보다는 매운 맛을 조금 더 조화롭게 맵게 만들거나, 심심한 맛에 생기를 넣는 느낌으로 생각하면 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짜장면에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종종 애용하는 고춧가루 떠올려보면 된다.

그리고 향신료지만 향신료 취급 안하고 넘어가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설탕도 제법 훌륭한 역할을 한다. 설탕 넣을 땐 소심하게 넣지 말고, 확실히 넣어줘야 한다. 역시 뜨거울 때 쓰면 훨씬 좋다.

그냥 믹스된 것도 좋다. 향신료를 고르다보면, 믹스된 게 있다. 편리하고 맛있게 배합했으니, 굳이 안 고를 이유가 없다. 그냥 집에서 해먹는 용도라면 필수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향신료 고를 때는 브랜드보다, 원산지가 어딘지 볼 필요가 있다. 쉽게 생각해서 해 쨍쨍한 곳에서 자란 향신료가 향이 좋다. 그 차이가 정말 천지 차이다. 동네에서 그냥 아무거나 산다고 샀다가 잘 못 사면 맡아보면 향이 거의 없다. 칸나멜라나 ISFI 고르면 중상 이상은 된다.

4 일람

앞서 언급했듯이 허브조미료도 포함한다. 그리고 야채처럼 생으로 먹어서 부식처럼 섭취하는 경우도 향신료로 쓰기 위해 일정한 가공을 해서 판매하면 포함했다. 또한 설탕, 조청, 자일리톨, 올리고당 같은 감미료가쓰오부시 같은 동물성 식재료는 엄밀히 말해서는 향신료에 포함될 수 없으니 아래 목록에 추가할 때 주의를 요한다.

  1. 오늘날에 유목민하면 떠올리는 말타는 민족이 아니라 수렵이나 채집을 주로 하는 민족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생각보다 유목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서 기원전 10세기경에나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최초의 유목민이 나타났고, 동아시아쪽 문헌에서는 기원전 4세기 경의 기록에서 유목민에 대한 언급이 처음 등장한다. 그래서 고조선 시대의 한국인은 수렵채집민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동로마 제국은 식품 부정에 민감해서 10세기 초에 완성 된 바실리카 법전에 관련한 내용이 실려있었고, 오스만 제국의 경우 상한 고기를 팔거나 빵의 무게를 속이거나 향신료를 거래할 때 먼지나 흙을 섞는 행위를 저지른 악덕상인들을 그의 가게 앞에서 교수형에 처했다. 이는 다른 유럽국가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