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力 inflation.
1 개요
경제용어 인플레이션에서 그 개념을 빌려온 말로 국민의 평균 교육수준이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초중고보단 대학 이상의 교육을 말한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의무교육은 언어의 통일과 국민 의식 형성 등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국가가 보장하는 의무교육제도는 20세기 중반을 지나서 급변하는 사회상을 따라가기에 힘이 부치고 경직된 제도의 문제로 인해 국민이 원하는 지식수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웠고 사교육은 이 틈새를 노려 성장했다. 그 때문에 현대 사회는 의무교육 상한을 고등학교까지 올렸지만, 실제는 이보다도 더 높은 고등교육을 요구하게 되고 대학과 대학원 이상의 교육이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변화가 학력 인플레이션의 시작을 불러왔다.
특히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지고 대학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대학 진학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한국 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OECD에서 2012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OECD의 2010년 대학 진학률이 평균 60%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당 자료의 19페이지를 보자. 호주가 거의 100%에 가까운 진학률로 1위를 차지했으며, 한국도 70% 정도로 자료 내에서는 상위권. 가장 낮은 중국은 20%도 되지 않는다.
2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
대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은 웬만한 복지국가에서 무상으로 해준다고 해도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며, 미국,한국처럼 의무교육이 아닌 국가에서 개인이 대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기위해 들여야하는 비용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화 되었다.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 등으로 부담을 경감하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약한 편이다. 부모 세대는 자식이 대학에 다닐 때 50대가 되는데 은퇴에 대비한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대신에 교육비 부담을 지게 된다. 20대가 직접 교육비를 부담할 경우에는 30대까지 교육비 문제를 주택, 결혼 문제 등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N포세대가 이런 세태를 반영한 말이다.
거기에다가 과연 모든 직업군이 대학 이상의 학력을 필요로 하냐는 문제도 있다. 이는, 학력은 어디까지나 학교에 들어가 일정기간 교육을 수료한 여부일 뿐이지 실제로 지식 수준이 향상되었냐의 여부와는 별개이기 때문.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한 사회일수록 입시위주 교육이 판을 치게되고 단순히 졸업장,수료증을 갖기 위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1] 다만 받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란 불안감이 퍼져서 이를 손보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육은 3차교육(tertiary education)에 속하는데 외국은 직업교육을 여기에 포함한다. 3차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해 그 공급과 수요가 는 것인데 그 혜택을 보게 될 기업이나 집단들은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피교육자들이 비용 대다수를 부담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3 긍정적인 면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 구성원 전반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는 현상 자체에는 긍정적인 점도 여럿 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투표권을 가지는 국민 개개인의 교육 수준이 높아야만 한다. 어차피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세부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선거로 선출된 소수 전문가 집단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하는 대략적인 정책의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려면 어느 정도의 지식은 필요하다. 그리고 현대 사회가 고도로 전문화됨에 따라 그런 최소한의 수준에 필요한 지식 자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예를 들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후보와 친환경 에너지를 추구해야 한다는 후보 중 어느 쪽이 우리나라 실정에 더 나을 지를 고려해서 투표하려면, 각 발전 방식에 대해 대략적으로라도 알아야만 한다. 경제 문제에서도 감세 정책을 펴겠다는 후보와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후보가 경합할 때 누구를 선택할 지 판단하려면 경제학도 어느 정도 공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다수 국민은 후보의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일단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정치 문화를 바꾸는 것도 국민이 계몽되었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고등 교육을 받아야 할 이유는 많다. 공장에서 단순 생산직으로 일하는 데에는 대학 교육이 직접적인 쓸모가 없다. 그러나 고용주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법언도 있듯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면 일단 알아야 한다. 일반인이 법적 구제 절차나 소송 방법 등을 변호사처럼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만,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할 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심지어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도 많이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의무교육만 마치면 법적으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되지만, 정작 의무교육 기간에는 자녀 교육법에 대해 배우기는커녕 성교육도 제대로 받는 경우가 별로 없다. 아직도 한국 정서상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에서는 성에 대해 적나라하게 가르치기 힘들다. 따라서 성인이 된 이후에 대학에서 받는 교양 강의에서나 그런 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 사회적 비용을 이유로 대학 교육을 제한한다면 오히려 사회적인 부작용(원치 않는 임신, 성병, 성범죄 등)이 클 수 있다.[2] 가정을 이룬 후 자녀들의 성장 과정에서도 부모가 교육을 많이 받았을수록 더 나은 가정교육을 제공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단적인 예로, 호기심 많은 자녀가 이것저것 질문을 할 때 적절히 대답해 주지 못하고 짜증이나 낸다면 자녀의 지능 발달에 악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당장 취업하는 데 필요한 것만 배운 사람들이 부모가 되면 낮은 학력을 대물림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위와 같은 긍정적 효과들을 거두려면 학력이 배움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그저 비싼 등록금을 내고 출석만 해서 학위를 받는 것이라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시간과 금전을 낭비할 뿐이다. 그러나 만약 교육이 그렇게 파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교육 제도 문제이지 학력 인플레이션의 문제는 아니다. 너도나도 고학력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만 보면 당장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필요도 없어 보이는 지식을 배우고 있으니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동력이 아니라 국가를 경영하는 주체로 본다면, 전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을 때 국가도 장기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