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시즌별 성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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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마디로 요약이 가능하다.
덕 클락과 김태완에 운명이 갈린 독수리
그리고 한화 암흑기의 서막
2007년에 활약했던 3할 20홈런의 외야수 제이콥 크루즈와 11승 140이닝을 소화한 흑현진세드릭 바워스 대신 외야수 덕 클락과 선발투수브래드 토마스를 데려오면서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토마스와 클락의 동반부진으로 초반에 부진...게다가 이 때 신경현,고동진[1],한상훈[2] 등 야수진도 김태균을 제외한 나머지는 영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브래드 토마스가 마무리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덕 클락이 전반기에 미친듯이 활약하면서 연쇄효과가 일어나 올림픽 브레이크이전 까지 한화는 두산보다 남은경기수가 적은 공동2위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한화가 2006년에 아쉬움을 잊고 우승할 수 있었을거란 느낌이 팽배했었다.
하지만...중요한 후반기에 한화는 류현진-패패패패의 승리공식(...)을 거두면서 삼성에게 밀려 .508 5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3] 그리고 이것이 끔찍한 한화의 암흑기의 전주곡이 될 줄은 그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2 투수
선발진으로 보면 류현진,송진우,정민철,유원상에 땜빵으로 윤규진,김혁민,최영필 등이 들어갔다.
전년도에 불펜에서 활약했던 송진우는 기복이 심했지만 팀내2선발로써 묵묵히 제 몫을 해주었고 시즌 말미에는 무너진 팀의 불펜에서 호투를 하는 등 악전고투를 하였다. 07년의 방어율 2위(어느 약쟁이의 기록만 아니라면 1위다).팀내 다승 2위(2.90에 12승, 155이닝)였던 정민철이 제 몫을 해주길 바랬으나 송진우보다도 더 심한 기복의 피칭을 선보였고 정규이닝은 소화하였으나 방어율은 꼴찌였다.(6승10패 5.23) 전년도 가을야구에서 호투를 보여준 유원상은 드디어 기회를 부여받아 선발로 시작했으나 끝없는 볼질로 한화팬들의 뒷목을 부여잡게 만들었다.지만 가을에 불펜으로 보직 이동하면서 방어율 0.17을 찍으며 이사람이 정녕 볼질을 했던 그 사람이 맞는가싶을 정도로 잘던졌다(...)
전년도에 무리했던 안영명은 결국 망했어요가 됐고 부상에서 돌아온 최영필,윤규진이 전반기에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그야말로 팔이 빠지도록 던졌다. 너무 많이 던진결과 당연히 탈이 날 수 밖에 없었고 이후 한화의 불펜은 마정길에 선발에서 불펜으로 보직변경한 송진우와 유원상이 맡게 된다. 토마스는 4월에는 부진했으나 이후 날이 따뜻해지면서(....) 상대타자들을 꾸겨버리는 피칭을 보여주면서 세이브를 착착 적립시켜 나갔으나 후반기에는...
마정길은 알다시피 류현진 등판 때가 유일한 휴식일일정도로 철저하게 굴려졌다.
3 타자
김태균 혼자서 이끌던 타선이 덕 클락과 김태완, 추승우의 미칠듯한 버닝에 힘입어 불타오르게 되었다
추승우-한상훈-덕 클락-김태균-이범호-김태완-송광민으로 이어지는 타선은 다이너마이트처럼 연신 뻥뻥 터뜨려주었다. 하지만 덕 클락이 1루에서 주루를 하다 박정권과 충돌. 박정권은 시즌 아웃되고 덕 클락 본인도 무릎에 큰 부상을 입은게 암흑기의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다.더군나나올림픽 브레이크기간동안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않고 선수단을 방치한 결과는 처참했다.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도화선이 되었던 추승우는 체력 및 클래스의 한계로 타율이 점점 내려가고 있었던데다가 클락은 무릎부상의 후유증으로 정확도와 파워가 눈에 띄게 감소되었고 전반기에 22홈런을 때렸으나 후반기에는 단 1개의 홈런만 적립했다.(이는 김태완도 마찬가지였다).연쇄적으로 이어져 결국엔 다시 김태균 혼자서 이끄는 타선이 되었고(이범호는 그나마 제몫을 해주었으나 타율을 보면 알 것이다)4월 초반이 다시 재림하게 되었다. 2008 시즌 한화는 압도적인 타격으로 박살내는 팀이었는데 타선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지는 자명한 일
4 결과
전반기만 하더라도 일부 한화팬들을 제외한 나머지 팬들은 4강에 갈거라 확신하였고 2위에서 5위로 떨어지는 대참사를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다. 한편, 2005~2007년 3년간의 가을야구를 보여준 김인식 감독은 이로 인해 감독자리마저 위태로울 정도로 큰 위기에 쳐해졌다.
사실 2008 시즌은 김인식 감독이 한화시절에 보여준 야구의 장점이 극대화되었다가 단순간에 단점으로 극대화된 시즌이라 볼 수 있는데 2005~2007년만 하더라도 송진우,정민철,구대성의 기량이 전성기시절만은 못하지만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었고[4] 유승안감독 시절 키웠던 안영명, 윤규진, 김태균, 이범호의 기량이 절정에 다다렀으며 류현진의 경우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타선이야 그나마 젊은 편이니 그렇다쳐도 투수진은 위 셋에 최영필,김해님,문동환...초고령화투수진이었다. 나중을 대비해 발굴해서 키웠으면 문제 없었거늘 뒤를 이을 젊은 투수를 발굴하기도 전에 살인적인 혹사로 결딴을 내고야 말았다. 쉽게 말해 김해님[5],문동환[6]등 전력이탈이 비교적 큰 것에 비해 채운것이 적었고. 육성의 요람이 되었어야할 2군이 부상 부진에 빠진 1군 선수들이 잠시 쉬웠다 오는 곳으로만 전락해버렸으니... 0이 되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가 쌓여가고 그나마 +가 되주었던 이영우,송진우,구대성,정민철도 나이를 생각하면 언제 -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송진우,정민철,구대성,이영우의 성적도 옛날만큼 좋진 않았다. 2006 아니 2007까지만 하더라도 +에 좀더 가까웠겠지만 그 수치는 점점 줄어들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마이너스를 채워준건 최영필, 윤규진, 추승우, 마정길, 덕 클락, 김태완이었으나 이들 중 마정길만 남고 나머지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거나 끝모를 부진에 빠져버렸으니 결국엔 -. 그동안 버텨왔던 전력들이 과거였으면 안걸렸을 과부하에 과부하에 걸렸으니 단점이 폭발! 어찌보면 자명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화 팬들,선수들,아니 구단은 이보다 더한 시즌이 계속 이어질 거란건 당시에는 꿈에도 못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