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혐중
1 개요
일본이 중국을 극도로 꺼려하고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유명하다. 당장 일본 국내의 설문조사에서도 나오는 것이지만 싫어하는 나라 1위 자리를 항상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도 가장 싫어하는 국가 순위에서 중국을 싫어한다는 응답이 한국을 싫어한다는 응답보다 2~3% 높게 나오는 일이 잦으며 [1] 경우에 따라 15~25%나 높게 나오는 일도 있다. 한국 역시 오늘날처럼 사이가 좋지 않을 때는 안 좋아하는 나라 순위권에 들기는 하지만 중국에는 미치지 못하며 가끔씩 좋아하는 나라 순위권에 드는 때도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2 역사
현재는 매우 험악한 관계로 보이지만 처음부터 일본이랑 중국이 사이가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고대에 일본은 중국의 문물을 흠모하고 잘 받아들으며, 그 증거로 견당사가 여러차례 당나라를 방문하고 송나라도 다이라노 기요모리 정권과 밀접한 무역을 해왔었다. 명나라 초기에는 일본의 해적질에 분개하여 교류를 전면 중단했지만, 동아시아 최대국인 명나라가 강경한 태도를 취하자 겁을 먹은 무로마치 막부가 명나라에게 사죄하고 해적들을 처벌함과 동시에 교류 청원을 요청하였고 명나라는 이것을 받아들여 다시 활발한 교류를 했다. 현재에도 일본은 중국의 시장을 결코 무시 할 수가 없어서 중국 시장의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고 양국의 경제 관계는 그 어느 때보 다 커지고있으며,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피하려 하는 경향이 보인다.[2] 문화적으로도 한국보다도 친밀한 면이 있는데 라멘, 교자, 부추 볶음을 비롯한 중국 요리가 일본인들 사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일본에서 유학하는 중국인 유학생도 많다. 일본의 서브 컬처에서도 한국인 캐릭터는 적어도 중국인 캐릭터는 최근 들어서도 꽤 보이는 편인데다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중국 신화, 증국무술, 중화 요리 등 중국 문화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
중국과 일본의 첫 전쟁은 삼국시대 일본이 나당 연합군에 멸망되어가는 백제에 원군을 보냄으로 터졌다. 여기서 당나라 군대가 일본군을 무찔러버리게 되었고, 곧 백제가 결국 멸망하게 된다.(백강 전투) 그리고 원나라는 여몽연합군으로 일본을 공격했는데, 이것은 일본에게 역사상 처음 있었던 외적의 공격이었으며, 점령된 지역은 초토화가 되어 일본에서는 모쿠리(몽골)와 고쿠리(고려)가 온다고 하면 어린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고 알려질 정도로 충격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일본이 처음으로 중국을 적으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중국에 대한 승전에 도취된 나머지 중국에 대한 응징 겸 정복을 위해 고려원정을 준비할려고 하였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하여 실채했다.
세월이 흘러서 일본은 대륙을 다시 넘보고, 임진왜란을 일으켜서 조선을 정복하고 그 다음 방향을 대륙으로 넘보려고 했었지만, 조명연합군의 활약으로 인해 일본의 꿈은 실패했다. 다시 몇백년 세월이 흘러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를 달성한 후, 중국을 바라봤다. 중국은 근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 하여 다른 서구 열강들에게 굴욕을 당하는 중이었다. 일본은 그런 중국과 전쟁하여 승리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 일본 제국의 목표 중에 중국 대륙의 정복이 있었고, 그로 인해 중일전쟁이 일본의 침략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중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연합국의 멤버가 되어서 일본에 맞서게 되면서 오히려 점점 전쟁이 길어지고 패색은 일본 측에게 기울다가 결국 일본은 중국에게 패전했고, 승자는 중국이 되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패권은 다시 중국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중국은 공산화되어 정부의 뻘짓으로 인해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경제는 정체되었으나 일본은냉전으로 미국과 동맹을 맺어 착실하게 경제 성장을 하고 국력이 커지고 있었다.
3 중일대립으로 인한 반중감정
21세기에 들어서는 중국이 점차 강대국으로 부활함에 따라 빠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패권을 휘두르며 일본을 제치기 시작하고, 일본은 국력이 정체되어 우경화가 진행되기 시작하자 점점 갈등의 씨앗이 커졌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격화되면서 특히 일본 반중파들을 중심으로 반중 및 혐중감정이 생겼다.[3]
2015년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 의하면 일본인의 # 89%가 중국에 대해서 비호감이라고 응답했으며, 호감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9%에 그쳤다. 그나마 이것도 내려간 것으로 13년과 14년에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분쟁 때문에 90%를 넘어갔다. 반면, 대만은 대표적으로 일본인이 호감을 갖는 나라로 나타났다. 정확히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싫어하는 것에 가까운 셈이다.
이들은 중국은 남의 땅 차지하려 하지마라, 중국인들은 대륙도 큰 주제에 뭐가 모자라서 땅을 먹느냐고 조롱하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중국에서는 과거 일본 제국의 전쟁범죄 등을 널리 퍼뜨리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이에 맞서 일본에서는 가끔 티베트, 위구르 소수민족과 대만 독립파들과 같이 합류하여 중국 정부의 문제점을 들춰내어 시위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홍콩의 우산 혁명 당시 일본의 반중 성향 인물들이 여기에 동조하기도 했다.
4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분쟁으로 인한 반중감정
2012년 중국과 일본 사이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및 국유화 논란으로 중국과 중국인들 사이에 혐일 감정이 발생하였고, 중국인들은 일본을 왜노라고 비하하는 것도 모자라, 중국 내에 있는 일본 대사관과 기업 등을 공격하고 아무 죄 없는 일본인 관광객까지 마구 위협, 폭행하였다. 이에 질쎄라 일본인들은 중국과 중국인들 미개하고 야만적인 나라라고 비판하고 조롱하였다.
일본인들은 중국에 대해 적대심을 드러내며 반중시위를 벌였고, 중국 정부에 대해서도 센카쿠를 돌려내고 자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서 사과하라는 요구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센카쿠 열도에 오성홍기와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꽂고 일본을 마구 비난하는 중국인들을 체포하자, 역으로 중국은 희토류 일본에 수출 전면 금지라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경제가 난리가 난 일본은 결국 사과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중국에게 역관광당해 사과를 하고 배상금까지 뜯겨야 했다.(....)
그러나 희토류 원소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중국의 조치는 일본에 반중감정이 커지는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이 이를 갈고 미국으로부터 희토류 원소 개발 기술을 얻어내는데 성공했고,[4] 또 자기네들만의 대체 기술을 개발하였다.- ↑ 헌데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중국보다 한국을 더 싫어한다는 응답이 더 많다.
- ↑ 실제로 현재 일본의 최대 무역 상대국은 중국이다.
- ↑ 애초에 혐한초딩이란 말은 있어도 혐중초딩이란 말은 잘 안 쓴다.''혐'이란 단어 자체가 '좋아하는'의 반의어 성격이 강하다. 즉 좋아하는 부류가 있으니까 '혐오'하는 부류도 있는 거다. 심지어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과 좌파들도 중국만큼은 경기가 날 정도로 매우 싫어하니 말 다 했다. 애초에 친한파 및 좌파 성향, 심지어 상당수의 우파 성향도 포함한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좋아하거나 한국과의 협력을 주장하는 큰 이유중 하나가 바로 중국, 몽골, 북한은 모두 공산권, 대만은 자유권이긴 하지만 중국 때문에 외교는 커녕 정식 국가 승인도 받지 못하고 있는 미승인국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유일한 서방 국가인 한국 과 연합하여 중국을 견제해 나가자는 의도' 때문이다. 거기다 특히 일본의 진보/좌파 계열들이 중국에 비판적인 이유는, 일본 제국주의만 욕할 게 아니라 2차대전에서 승리한 후 다시 아시아 패권을 얻어낸 중국이 현재까지 타국에 휘둘르는 패권주의적 행동으로 타국들이 괴로움을 겪는다는 점이 주 원인이다. 한국과 일본이야 국력이 어느정도 받쳐주니 중국의 패권의 강도가 비교적 약할 뿐,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중국이 휘두르는 패권은 그 국가들이 더더욱 서방세계에 붙게 되는 원인이 된다.
- ↑ 원래 미국이 세계 최초로 희토류 원소 개발 산업에 뛰어들었다. 다만 환경문제로 미국이 희토류 원소 개발을 중지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