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카쿠 열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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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우오쓰리 섬(중국명 댜오위 섬)

1 명칭

  • 중화인민공화국 - 钓鱼岛及其附属岛屿[1][2](Diàoyú Dǎo jí qí fùshǔ dǎoyǔ: 댜오위다오 지 치 푸수다오위; 조어도 급 기 부속도서)
  • 중화민국(대만) - 釣魚臺列嶼[3](Diàoyútái Lièyǔ: 댜오위타이 례위; 조어대열서)
  • 일본 - 尖閣諸島(せんかくしょとう; Senkaku-shotō, 센카쿠 쇼토, 첨각제도) 또는 尖閣列島 (せんかくれっとう: Senkaku-rettō, 센카쿠 렛토, 첨각열도)
  • 류큐어 전통 명칭
  • 옛 영어명: Pinnacle Islands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쓰는 명칭을 한국어의 한자 발음대로 읽으면 '조어도 급 기 부속도서'가 되는데, 직역하면 '댜오위다오 및 그 부속 도서'라는 뜻이 된다. 중화민국에서 쓰는 명칭에서 보이는 '열서'는 열도와 같은 의미이다.[6]

중화민국이 사용하는 중국어 번체 문서 중에 臺 대신에 臺의 약자로도 쓰이는 台를 쓰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정식으로는 臺를 쓰는 것이 권장된다. 중국어 간체에서는 臺가 폐지되고 台로 통합됐으므로 무조건 台로 써야겠지만. 그런데 댜오위타이(釣魚臺/钓鱼台)는 베이징에 있는 유적지 이름과 같아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 베이징에 있는 댜오위타이는 현재 주로 중국을 방문한 국빈을 영접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옛 영어명에 보이는 pinnacle(피너클)은 건물(예를 들면 누각 閣) 위에 올려 놓는 작은 첨탑(尖塔)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일본어명 센카쿠(尖閣)는 바로 이 영어명을 번역한 것이다. 즉 원래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명명하기 전에 영어명이 더 먼저 있었던 셈.

중국어명에 보이는 조어(釣魚)는 낚시, 물고기잡이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댜오위다오(조어도)는 물고기 잡는 섬이라는 뜻이고, 댜오위타이(조어대)는 물고기 잡는 높고 평평한 건물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댜오위다오/댜오위타이 자체는 이 제도 중 핵심이 되는 섬 하나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섬에 붙여진 일본 측 명칭은 '조어' 부분을 거꾸로 뒤집어 쓴 우오쓰리 섬(우오쓰리시마, 魚釣島)이다. 조어(釣魚)나 어조(魚釣)나 뜻은 같다.[7]

한국의 옛날 신문에서 센카쿠 열도 관련 기사를 찾고 싶을 땐 댜오위다오, 댜오위타이, 센카쿠보다 조어도, 조어대, 첨각으로 검색하는 게 걸리기가 쉽다. 예전엔 한자를 그대로 한국 한자음대로 읽고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8] 물론 조어대의 경우 베이징에 있는 유적지가 검색 결과에 걸릴 가능성도 높으니 주의.

2 개요

대만오키나와 제도 사이에 동중국해 남서쪽의 무인도와 암초로 이루어진 제도를 말한다. 현재는 일본 오키나와이시가키 시 소속으로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일본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영유권 분쟁 지역이다. 이시가키 시 소속이지만 이시가키 섬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 도쿄오가사와라 제도만큼은 아니지만...

원래 섬 일대는 일본 사이타마 현에 사는 한 남성의 사유지였으나, 일본 정부가 권리자에게 20억 5천만엔을 주고 매입하여, 2012년 9월 11일부로 국유화한 상태다. 단, 부동산 소유자가 누구인가와 어느 나라의 영토이냐는 다른 문제이고, 또 한 나라 안에서 어느 행정구역에 속하느냐도 다른 문제이니 주의. 예를 들어 부산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땅을 사도 계속 서울의 관할 지역에 속하고, 한국인이 미국 내 땅을 사도 미국 영토인 것과 마찬가지다.제주도 땅을 중국인이 사도 대한민국 영토

중국은 댜오위다오가 대만의 부속도서로서 1403년 명나라 영락제 시기의 문헌을 근거로 중국이 댜오위다오를 가장 먼저 발견했으며, 댜오위다오라는 이름을 붙이고 섬을 이용해왔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 때부터 계속해서 중국이 관할권을 행사해왔으며, 여러 고지도들도 댜오위다오를 중국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출처

이에 반해 일본은 류큐왕국을 오키나와현으로 편입한 후 인근의 무인도였던 센카쿠 열도 또한 오키나와현으로 편입시켰으며, 1971년 미일 오키나와 반환협정에 따라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이 일본에 반환되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청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종전 이후 영토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중일간에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중국에서 댜오위다오가 대만 소속이 아니라 류큐[9] 소속임은 인정하되 류큐는 중국의 속국(...)이었으니 지금 일본은 오키나와 현을 불법 점령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오키나와 현을 통째로 중국에 '반환'해야 한다는 공격적인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그러면 그리스는 비잔티움 제국 당시 시티리아반도+동유럽+북아프리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기가 있었으니 다 그리스로 반환해야하는건가(...) 물론 아직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닌 듯하지만 2006년부터 갑자기 이런 주장을 펴는 중국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2.1 역사

1879년, 일본 정부류큐에 침입해 류큐왕국을 강제로 폐합였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율리시스 그랜트는 청나라에 이 사건은 심각한 문제이므로 청나라가 일본과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랜트의 중재로 청나라 측은 류큐를 3분해서 서남부의 사키시마 제도(미야코야에야마 제도)는 청이 먹고, 아마미 군도는 일본에 병합시키며 오키나와 제도 (오키나와 본섬 주변)는 독립을 유지할 것을 제안했다. 일본은 사키시마 제도(미야코야에야마 제도)는 청나라에 주는 대신 오키나와를 일본에 병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홍장은 일본의 제안을 조공국이 없어지는 굴욕이라고 여겼는지 받아들이지 않았고,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 청일전쟁이 나면서 야에야마를 근거로 타이완까지 일본이 점령하면서 류큐 분할은 없던 일이 되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그때 이홍장이 사키시마 제도를 받았을 경우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은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 섬들은 대만 아니면 류큐 소속인데, 류큐의 부속도서로 본다면 그 중에서도 오키나와 본섬의 부속도서가 아니라 사키시마 제도(미야코야에야마 제도)의 부속 도서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1895년 청일전쟁 와중에 일본 제국은 이 군도를 무주지라며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독도 침탈 과정 또한 무주지를 이유로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국이 중국에게 대만과 함께 류큐 일대를 중국에 완전히 '반환'하는 것을 제안했으나 이상하게도 장제스가 거부했다는 주장이 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굳이 추정을 해보자면, 그때 장제스가 류큐를 받았을 경우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은 없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이 섬들은 대만 아니면 류큐 소속이니까.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이 이 곳을 실질 통치하겠다고 나섰다면 일본이 개입하지 않은 채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이라는 두개의 중국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것이다. 참고로 현재 센카쿠 열도 분쟁에서 두 중국은 일본의 실효 지배를 무력화시켜야 하는 입장이라 일단은 협력 관계에 있다.

센카쿠 열도와 인근 해역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영토로 귀속됐다가 1951년 9월 미일강화조약 체결 시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양되었다. 처음에 미국은 당연히 중국에 모두 반환해주려고 했는데 장제스가 거절한 이후 미국은 땅 욕심이 생겨서 결국 미국의 영토가 됐다. 그러다 다시 일본에 반환되었고 사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동 도서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제기되지 않았으나, 1968∼1969년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의 아시아 연안지역 광물자원 공동개발조정위원회(CCOP)가 동중국해 일대의 해저조사를 실시하여 석유매장 가능성을 확인한 시점부터 중국-대만의 영유권 논쟁이 활발해졌다.

3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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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일본이 이 섬 주변에서 조업을 하던 중국인 어부를 체포했다. 여기에 중화인민공화국은 맹렬하게 항의했다. 중국 정부에서 일본 관광을 금지하고 희토류 원소 수출을 중지하겠다는 격렬한 압박을 벌인 끝에, 결국 일본은 중국인 어부들을 무조건 석방하는 굴욕을 보인다. 중국은 이번 기회에 본 때를 보여주려는 심산인지 정부 차원에서의 사과와 배상을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으며 일본 정부는 처음에는 그것만은 못하겠다라고 대립하였으나 중국이 매우 강경하게 대처한 탓에 결국 일본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중국에게 정부 차원에서 사과와 배상을 하고 마는 굴욕을 보이면서 양국의 국민감정은 극히 나빠졌다. 이 사건으로 민주당과 간 나오토는 지지율이 폭락했고, 반대로 자민당은 반사이익을 얻었다.

이후 10월 12일, 사건 발생 당시에 중국 어선이 일본 순시선에 들이박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10]

그러나 중국이 이겼다 보기에도 볼 수도 없는 것이, 그 후 일본은 바로 도서지역 방어를 명분으로 글로벌 호크를 도입하려고 하고, 군비증강과 요나구니 섬에 병력을 배치하고 있어 자위대의 활동범위까지 늘려주고 말았다. 일본의 군비증강에 대해 비판하던 중국으로선 구실을 만들어준 꼴이 되었다. 참고로 요나구니 섬은 센카쿠 근처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에 병력을 배치하는 것은 센카쿠 열도의 수비를 강화하고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2014년 이후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원소 수출 강제중단에 대해 미국, 유럽연합과 손잡고 WTO에 제소해 승소를 이끌어냈으며#, 미국에게 희토류 원소 기술을 전수받고 거기에 자기네 입맛에 맞게 독자적인 기술로 희토류 원소를 생산하거나 기존 제품에서 희토류를 추출해 내는 재활용 기술, 희토류가 필요없는 새로운 생산 기술 등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더 이상 중국으로부터 희토류를 수입할 필요가 없어졌고 인도, 브라질 등으로 수입처를 다양화하면서 도리어 중국의 관련 기업들이 줄도산크리를 맞게 되었다.#

2012년 4월 이시하라 신타로가 이곳을 자신이 도지사로 있는 도쿄에서 사겠다는 성명을 밝혔다. 물론 중국측에게 돈을 지불해서 구입하겠다는게 아니라, 현재 개인 소유로 되어있는 센카쿠 열도의 섬 일부를 해당 개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도쿄로 편입시키겠다는 소리. 그러니까 이게 성공한다면 이후 중국측에서 센카쿠 열도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형식상으로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 대한 간섭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감정 대립에 있어서는 몰라도, 법리적으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개인의 부동산 소유권과 영토에 미치는 국가의 주권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인이 일본에서 부동산을 산다고 그 부동산이 '한국의 영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중국인이 센카쿠 열도의 섬을 개인적으로 구입하여 가지고 있다고 해도, 부동산을 소유하려면 일본의 관청에 등기를 해서 일본 정부에 부동산 관련 세금을 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부동산을 구입하여 소유한 중국인은 일본의 영토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결국 원래 섬주인만 땡잡았다 이게 웬 20억엔이냐

이처럼 영토에 관한 주권 대립의 문제에서 해당 부동산 소유자의 국적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이 활동은 이시하라 신타로의 유치한 선동질이며, 그나마도 결국에는 섬주인이 도쿄가 아닌 일본 정부에 팔면서 일본은 센카쿠 열도를 공식적으로 국유화 하였다.

그리고 2012년 8월 15일, 일본 정치인들이 태평양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센카쿠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중국 소속의 시민단체 댜오위다오보호행동위원회가 상륙을 감행했고 일본 측에서 시민운동가 5명을 체포해 버렸다. 비록 중국인은 아니지만 엄연히 중국 주권의 홍콩인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어떻게 처리를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여담으로 참여자 중에 대만(중화민국) 사람과 중화민국을 지지하는 홍콩 사람들도 있어서,[11] 오성홍기 2개 외에 청천백일만지홍기 1개가 함께 상륙했고 의용군 행진곡삼민주의가 모두 불렸다고 한다. 현대판 국공합작

같은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자라도 중국 본토 주민이 중화민국 국가를 불렀다간 코렁탕 먹기 십상이지만 홍콩과 마카오 주민은 일국양제(1국가 2체제)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을 거부·부정하는 정치 활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그래서 홍콩에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독립해서 홍콩을 독립국으로 만들어 영연방 회원국이 되자고 주장하거나, 중화민국을 정통 중국으로 간주하고 홍콩의 중화민국 편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중국 정부가 몰래 감시를 하거나 와해 공작을 벌일 가능성은 있다.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일국양제는 각각 반환한 날짜부터 최소 50년은 보장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동안은 합법이다. 물론 이 50년이 지난 뒤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를 연장시킬지 폐지할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2014년 홍콩 우산 혁명의 사례를 보면 50년 후에 일국양제를 폐지할 가능성이 높아보이기도 하지만 진짜로 그렇게 할지는 역시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결국 일본은 이들을 체포하긴 했으나 중국의 후폭풍이 매우 두려웠던 나머지 재판 없이 바로 추방을 해버렸다. 자칫 이들을 기소라도 했다간 간 나오토 총리 시절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이 크게 반발하기 때문에 독도 문제에만 집중을 하자는 판단 때문인 듯.

그리고 일본이 2012년 9월 11일, 센카쿠 열도의 3개 섬을 개인 소유자에게 20억 5천만엔을 주고 구입하여 정식으로 국유화 한 것이 반일의 불씨에 기름을 끼얹는 결정타가 되었다. 이윽고 중국 전역에서 본격적인 반일시위가 시작되었다. 반일시위가 절정에 달한 것은 9월 18일 전후로, 이날은 류탸오후 사건을 조작하여 일본군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날이라서 원래부터 중국에서 반일감정이 알게 모르게 끓어오르는 시기인데, 센카쿠 열도를 일본이 국유화 한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두 사항이 합쳐져 반일감정을 엄청나게 끓어올렸다.

중국다운 대륙의 스케일에 걸맞게 해군 군함을 붙인 어선 군단으로 센카쿠 열도 바로 옆에서 대놓고 조업 싹쓸이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시위로 인해 중국에 진출해있던 일본 대다수 메이커들이 파괴, 약탈등의 초월적인 데미지를 입어버렸고 시위대와 정부 단위로 내뿜어대는 무지막지한 패기로 인해 가뜩이나 안좋았던 중일관계는 삽시간에 막장으로 변해버렸다. 참고로 어선들에게 중국 해군을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드문 일이고, 센카쿠 열도를 칩입하는 중국어선을 돕는 일은 주로 중국의 해안경비대 경비함들이 나선다.

2012년 8~9월에는 중일간의 충돌의 여파로 일본의 대중국수출이 크게 감소했다.

2013년 8월 중국 해경선 4척이 이틀동안 센카쿠 해역에서 일본 어선과 순시선들을 쫓아버리며 시위를 벌였고# 이에 맞서 일본도 중국의 센카쿠 열도 상륙에 대비해 대규모 탈환 훈련을 벌였다.##

한편 같은 달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지원한 온라인 FPS 광영사명 온라인에서 출시와 동시에 센카쿠 열도를 자위대의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코옵 모드가 발표되어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굉장히 시끄러웠다. [12] 여기서 선박 임검 전문 부대인 호위함 입입검사대와 특별경비대가 헬기 레펠도 아니고 상륙작전(...)을 하는 걸 보면 해자대 눈깔이 여간 뒤집힌 게 아니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아베 신조 면상에 바람구멍 나는 트레일러는 보기 좋다

그리고 이 기사를 보면 센카쿠 열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5일만에 압승을 거둔다 했는데, 현재 중국의 국력이 일본보다 우위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지도 않고 겨우 5일만에 압승을 거두는건 무리다. 그리고 현재 공군력으로 따졌을땐 호각 내지는 중국측의 근소 우위긴 하지만 해군력은 일본 해자대가 우위다. 게다가 여기선 미국의 개입의지를 과소평가 했는데, 이 기사를 봐도 알수 있듯이 미 태평양 사령관이 중국이 센카쿠를 공격하면 일본을 보호하겠다고 대놓고 못 박은 상황이다. 당연히 센카쿠 열도도 일본이 실효지배 하고 있으니까 센카쿠 열도도 방위하는 곳에 포함된다. 더 자세한건 중국군 vs 자위대 항목 참조.

8월들어 센카쿠 열도 분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2016년 8월 12일 오전 5시 경 센카쿠 열도의 가장 큰 섬인 우오츠리 섬 북서쪽 약 65㎞의 공해에서 그리스의 화물선과 중국 어선 민진위05891호가 충돌하여 어선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해당 어선에 타고 있던 중국 어민 가운데 6명이 일본 해상 당국에 의해 구조되었다. 기사 기사2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협력과 인도주의 정신을 보여준 것을 칭찬한다"고 논평했으나 중국 인터넷 상에서는 자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상술된 것처럼 중국은 센카쿠 열도 해역 근처에서 대량의 어선을 동원하여 조업하는 방식으로 일본에 시위해 왔었고, 어선을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해경선을 투입해 왔었다. 사고 전날에도 200척 가량의 선박이 일시 조업 활동을 펼쳤으며 근처에도 적지 않은 해경선이 위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해경선이 사고 직후부터 수색을 하였음에도 어민들을 직접 구출하지 못하면서 긴급 상황에 자국민을 구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마이니치 신문은 일본 정부 내부에 이번 구조를 통해 최근 격앙된 센카쿠 열도 문제가 다소 완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전했다.

4 각국의 반응

4.1 중국

중국에서는 당연히 댜오위다오는 명백한 중국 땅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더 나아가서 미국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에 "댜오위다오는 중국 땅"이란 내용의 대형 광고를 실으면서 일본을 골머리 앓게 하고 있다.

4.2 일본

일본에서는 당연히 센카쿠 열도는 명백한 일본 땅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센카쿠 열도에 대해 1885년 오키나와에 살던 후쿠오카 현 출신 사업가 고가 다쓰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한 뒤 일본 정부가 무주지(無主地)임을 확인하고 1895년 1월 14일 오키나와 현에 정식 편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무주지를 영토로 편입할 때처럼 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이에 대한 이의 제기가 없었으므로 센카쿠 열도는 일본 영토라는 것이다.

4.2.1 류큐 독립 지지자

류큐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 정부와 동일하게 센카쿠 열도가 현재는 오키나와 현 소속이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류큐가 독립할 경우 당연히 류큐 공화국의 영토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근래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이 격화되자 독립 운동에 불똥이 튀었다. 독립 시 센카쿠 열도를 중국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겠냐는 우려 때문에 독립 찬성 여론이 급감했기 때문. 게다가 중국 일각에서 오키나와 현 현지의 독립 운동가들의 입장과 무관하게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류큐 독립이나 류큐의 중국 편입 같은 주장이 나오자, 류큐 독립 운동가들이 일본 극우 세력으로부터 중국의 지원을 받았느니 어쩌니 같은 사실과 다른 음해에도 시달리고 있다.

상세한 내용은 류큐 독립 운동 문서를 참고할 것.

4.3 중화민국

중화민국에서는 당연히 댜오위타이는 명백한 대만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만 극우들도 이곳으로 배를 타고 돌격하여 일본 극우단체랑 바다에서 쌍욕하고 서로 들이박기까지 하며 대만에서 일장기를 불태우고 분노하던 적도 있으니 말 다했다.친일 국가 대만이라고 옹호하던 일본 극우들은 깨깽

일본독도 문제로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네 마네 할 때 대만에서 "댜오위타이 문제도 같이 회부하자!"라고 주장했다고 하나 실제로 대만이 ICJ회부를 실행에 옮겼다면 일본은 ICJ 강제 관할권 조항에 동의한 국가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일방적인 제소에도 무조건 응해야 하므로, 실제로 대만이 ICJ에 회부한 것은 아니다.

현재 대만은 일본과 따로 협정을 맺어 현재 대만의 센카쿠 열도 영유권 주장은 일시 유보한 상태이다. 정확하게는 미국처럼 일본의 행정권까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준 것이고, 주권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센카쿠 열도 영유권 주장에서 정치 진영에 따라 온도차가 있는데, 범람연맹 계열에서는 센카쿠 열도가 중화민국 땅이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편이다. ICJ에 회부하자는 발언도 범람연맹의 중심 정당인 중국 국민당이 집권했던 시절 마잉주 당시 총통이 했던 말이다. 반면 범록연맹 계열에서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센카쿠 열도가 대만 땅이라고 말은 해도 적극적으로 영토 분쟁에 나서지는 않는다. 리덩후이는 아예 센카쿠 열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발언해버려서 대만 여야 양쪽에서 까인 적이 있다.

범록연맹 계열의 민주진보당 소속 차이잉원 현임 총통은 당선 직후 "조어대는 대만의 영토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차이잉원 총통 시기에는 영토 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화민국 입장에서는 그렇잖아도 중국에 밀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상황에 일본마저 적으로 만들어 좋을 게 없기 때문에 센키쿠 문제로 일본을 자극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도 중국 견제를 위해 대만과의 협력은 중요하다. 대만과 일본 양국은 2012년에 대만 어민의 센카쿠 해역 내 조업 허용을 골자로 한 어업협정을 체결한 바 있으며, 일본 내에서는 대만에 너무 많이 양보한 거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만으로부터 센카쿠 관할권을 인정받는 대신 어업권을 내준 셈이다.

4.4 미국

일단 미국은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있지만 내심 센카쿠 열도는 일본땅으로 보고있다. 다만 미국은 대놓고 일본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15년 아베 신조 내각의 노력으로 미국이 센카쿠 열도에 대한 미일방위조약의 효력이 발휘됨을 인정하는 상황이고 동시에 미일합동훈련을 통한 중국의 센카쿠 열도에 대한 팽창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저지를 위한 미일방위협력을 가속화함으로써 사실상 일본 영토임을 시인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 미국이 여전히 완전히 입장표명을 낸 것은 아니지만,[13] 현재 센카쿠 열도를 두고 중일간의 갈등은 상당히 대립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2015년 동안 근접위협비행에 사격레이더의 조준 등의 사건들이 나오고 있고 중국견제론에 입각하여 일본의 아베내각이 매우 강경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에게 중국은 잠재적 주적이다. 때문에 중국이 어디랑 대립을 갖더라도 표면적인 주적인 북한과의 대립이 아닌 이상 중국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사실상 일본의 영유권을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대만과 일본이 충돌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만도 비록 상호방위조약은 맺지 않았지만 미국의 중국 견제에 협력하는 우방국이기 때문에 독도 영유권 분쟁처럼 중립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4.5 한국

한국은 공식적으로는 이 문제에 중립에서 언급이 없는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일본이 실효지배하는 점을 고려하여 이름을 표기할 때에는 일본명을 따라 '센카쿠 열도'라고 부를 때가 많으며, 맨 처음 언급할 때에 한해 '(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병기한다. 한편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 반감을 가지고 똑같이 무주지라고 병합한 댜오위다오를 중국이 영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으며, 반대로 실효지배하는 쪽이 대체로 영유권 분쟁에서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한국의 독도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일본의 댜오위다오 실효지배를 인정하기도 한다.

다만 대만 쪽에서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자고 말했을 때, 일본이 이를 무시한 것을 보고 한국인들이 '니네는 독도다케시마라고 부르며 국제사법재판소 가자고 하잖아? 그런데 왜 저건 안 그러냐?' 하면서 차게 비웃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정식으로 제소를 당한다면 중국이나 대만의 일방적인 제소에도 무조건 재판에 응해야 한다. 이는 ICJ 강제 관할권 조항에 동의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실제로 대만이 ICJ에 제소를 한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특히 일본이 독도에 대해서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중재를 추진하면서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에 대해서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중잣대로 행동에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한바 있다. 기사

5 관련 문서

  1. 정체자(번체자)로는 釣魚島及其附屬島嶼.
  2. 다만 이 명칭은 중국 대륙(본토) 지역에서 주로 쓰고, 특별행정구인 홍콩마카오에서는 중국으로 반환되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중화민국(대만)과 교류가 밀접했던 탓인지 대만에서 쓰는대로 釣魚臺列嶼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홍콩과 마카오의 현지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정부에서 쓰는 표기를 번체로 바꾼 釣魚島及其附屬島嶼를 쓸 가능성이 있지만. 한편 중국어가 공용어 중 하나인 싱가포르와, 화교가 상당수 존재하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중국 정부가 쓰는 钓鱼岛及其附属岛屿를 많이 쓴다고 한다.
  3. 굳이 중국 본토의 간화자(간체자)대로 옮긴다면 钓鱼台列屿.
  4. 유쿤은 우오쓰리 섬(魚釣島), 쿠바는 구바 섬(久場島)을 가리킨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두 섬을 가지고 센카쿠 열도를 포괄해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유쿤은 물고기(魚), 쿠바는 비로 야자(ビロウ, livistona)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5. 오키나와 방언과 마찬가지로 우오쓰리 섬과 구바 섬을 합칭한 것. 또한 이군은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작살(銛)을 의미하고 쿠바는 비로 야자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6. 열서의 '서(嶼)'는 '섬 서'자이다. '도서(島嶼) 지역'이라는 용어에서 쓰는 그 '서' 자이다.
  7. 한문 및 현대 중국어 문법상 동사 뒤에 목적어가 오는 게 기본 어순이지만, 목적어를 앞으로 당겨 도치할 수도 있다. 그래서 釣魚와 魚釣가 같은 의미가 된다. 여기서 釣는 '낚시질하다, 낚다'로 해석되고, 魚는 '물고기(를)'로 해석된다.
  8. 오래된 신문 기사에서는 한글 없이 한자만 써놨다(소리내서 읽을 경우에는 한국 한자음대로 읽음). 하지만 네이버 등의 옛날 신문 검색 시 한글을 입력하면 거기에 맞는 한자도 자동으로 매칭시켜서 검색 결과에 표시해 준다. 이 기능 때문에라도 검색 시 한국 한자음대로 적는 게 좋다.
  9. 오키나와 현, 때에 따라서는 가고시마 현의 아마미 군도도 포함
  10. 현재는 삭제됨.
  11. 말 그대로 홍콩이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의 지배를 받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같은 민주화 이슈에서는 홍콩 독립론자들과 입장을 같이 하지만, 일본과의 영토 분쟁 같은 이슈에서는 홍콩 내 중화인민공화국 지지자들과 보조를 같이 한다.
  12. 해당 게임의 코옵 모드 중 경험치 벌이가 가장 좋은 모드는 이 센카쿠 열도 모드와 중일전쟁 시기 상하이 모드 두 가지다. 나머지는 보상이 거지같아서 할 마음도 안 든다. 어렵기만 더럽게 어려운 지하철역 테러진압이나 있는지도 모를 지진 구조 등 어찌 보면 게임으로 프로파간다 효과를 노린 것.
  13. 미국도 사실 센카쿠 열도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일본이 미국의 동맹국이라 일본 편을 들어주는 것 뿐이지 괜히 적벽대전처럼 손권(미국)이 유비(일본)랑 동맹맺고 조조(중국)를 물리쳤다고 해도 결국 손권은 유비에게 철저히 농락당해 형주 땅을 모조리 뺏긴 것처럼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