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 토너먼트 대회 | ||||
대통령배 | 협회장기 | 봉황대기 | 청룡기 | 황금사자기 (왕중왕전) |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 | ||||
폐지된 대회 | ||||
대붕기 | 무등기 | 미추홀기 | 화랑대기 |
1 소개
1949년부터 대한야구협회와 부산일보 공동주최로 열렸으며, 주로 7월에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경기가 진행되었다. 2011년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생기면서 폐지되었다. 지방대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였던 대회였으며, 이러한 연유로 고교야구 주말리그 출범으로 인한 대회 폐지 때 반발이 심하였다. 지방대회의 공통적인 특징인 개최지 소재 고교의 역대 우승/준우승 횟수가 많다.
2 역대 우승,준우승팀
회수 | 연도 | 우승팀 | 준우승팀 |
1회 | 1949년 | 경남중 | 부산상중 |
2회 | 한국전쟁으로 대회 중단 | ||
3회 | |||
4회 | |||
5회 | 1953년 | 인천고 | 경남고 |
6회 | 1954년 | 경남고 | 경남상고 |
7회 | 1955년 | 인천고 | 부산상고 |
8회 | 1956년 | 동산고 | 인천고 |
9회 | 1957년 | 경북고 | 경기공고 |
10회 | 1958년 | 경남고 | 경기공고 |
12회 | 1960년 | 경동고 | 경남고 |
13회 | 1961년 | 동산고 | 부산상고 |
14회 | 1962년 | 부산고 | 경남고 |
15회 | 1963년 | 부산고 | 대구상고 |
16회 | 1964년 | 동대문상고 | 배문고 |
17회 | 1965년 | 부산고 | 장충고 |
18회 | 1966년 | 부산고 | 부산상고 |
19회 | 1967년 | 대구상고 | 부산상고 |
20회 | 1968년 | 경남고 | 선린상고 |
21회 | 1969년 | 선린상고 | 대구상고 |
22회 | 1970년 | 경북고 | 부산고 |
23회 | 1971년 | 경북고 | 부산상고 |
24회 | 1972년 | 경북고 | 대광고 |
26회 | 1974년 | 부산상고 | 대광고 |
27회 | 1975년 | 경남상고 | 경남고 |
28회 | 1976년 | 부산상고 | 신일고 |
29회 | 1977년 | 세광고 | 부산상고 |
30회 | 1978년 | 부산고 | 경기고 |
31회 | 1979년 | 부산고 | 군산상고 |
32회 | 1980년 | 천안북일고 | 선린상고 |
33회 | 1981년 | 신일고 | 선린상고 |
34회 | 1982년 | 천안북일고 | 경남고 |
35회 | 1983년 | 천안북일고 | 부산상고 |
36회 | 1984년 | 부산고 | 군산상고 |
37회 | 1985년 | 선린상고 | 광주일고 |
38회 | 1986년 | 천안북일고 | 세광고 |
39회 | 1987년 | 경남상고 | 충암고 |
40회 | 1988년 | 신일고 | 부산상고 |
41회 | 1989년 | 경남고 | 동대문상고 |
42회 | 1990년 | 동산고 | 경남고 |
43회 | 1991년 | 부산고 | 공주고[1] |
44회 | 1992년 | 동산고 | 경남고 |
45회 | 1993년 | 경남상고 | 경남고 |
46회 | 1994년 | 마산고 | 경남상고 |
47회 | 1995년 | 경남상고 | 경남고 |
48회 | 1996년 | 마산고 | 신일고 |
49회 | 1997년 | 경남고 | 부산상고 |
50회 | 1998년 | 경남상고 | 부산고 |
51회 | 1999년 | 제물포고[2] | 광주진흥고 |
52회 | 2000년[3] | 부산상고 | 경남고 |
53회 | 2001년 | 경남고 | 부산고 |
54회 | 2002년 | 천안북일고[4] | 경남상고 |
55회 | 2003년 | 부산고 | 마산용마고 |
56회 | 2004년 | 덕수정보고 | 부산고 |
57회 | 2005년 | 덕수정보고 | 광주진흥고 |
58회 | 2006년 | 덕수정보고 | 광주동성고 |
59회 | 2007년 | 부산고 | 경남고 |
60회 | 2008년 | 광주진흥고 | 부산고 |
61회 | 2009년 | 개성고[5] | 화순고 |
62회 | 2010년 | 부산고 | 천안북일고 |
3 이모저모
- 2~4회 대회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으며, 11회와 25회 대회는 운동장 사정으로 개최되지 못하였다.
- 6월의 대구 대붕기와 8월 봉황대기 중간에 개최되는 관계로, 이 기간은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이라 우천 순연이 있을 시, 한 팀을 두 개로 쪼개서 출전시킨다거나, 화랑대기 토너먼트에서 쭉쭉 올라갈 때 봉황대기 1회전은 버린다는 각오로 게임을 뛰기도 하였다.[6]
- 두 번의 대회 3연속 제패가 있었다. 22~24회의 경북고, 56~58회의 덕수정보고. 덕수정보고는 4연패를 목표로 59회 대회에 참가했지만 4연패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 광주일고와 광주동성고(광주상고 포함)가 이 대회와는 인연이 없다.
- 대회장소(부산)과 대회시기(여름 휴가철)탓에 대회보다 부산에서 휴가를 즐기는 게 주목적이라 카더라
- 1경기가 08:30분에 시작한 적이 있었으며, 선수들은 연신 하품을 참으며 게임을 뛰기도 하였다.
- 영화 '굿바이 홈런'의 시대배경이 되었던 대회가 해당 회차 61회차다.
- ↑ 이 당시, 박찬호가 3학년
- ↑ 창단 이후 첫 전국대회 우승
- ↑ 결승전은 사직야구장에서 개최되었으며, 평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KBS가 전국으로 생중계하였다
- ↑ 황금사자기,화랑대기,봉황대기,전국체전 등 4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 ↑ 김응룡 당시 삼성 라이온즈 사장의 전국대상 무차별적 스카우트에 힘입어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했으나, 서울대회 2관왕은 차지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광주 무등기와 부산 화랑대기 2관왕에 그친다.
- ↑ '09년 화순고는 개성고와의 화랑대기 결승전 바로 다음날에 수원에서 봉황대기 1회전을 뛰어야 했다. 화랑대기 우승도 못하고, 봉황대기 1회전에서도 패배하고 안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