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고등학교 야구부

2016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상 A
(전반기)
경북고등학교50px경주고등학교글로벌선진학교대구고등학교
50px상원고등학교40px포항제철고등학교
2016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상
(후반기)
경북고등학교50px경주고등학교글로벌선진학교50px김해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60px마산고등학교물금고등학교50px상원고등학교
50px용마고등학교울산공업고등학교40px포항제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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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등학교 야구부
(慶北高等學校 野球部)

(Kyeongbuk High School)
창단1920년 5월 11일~1959년[1]
1965년~현재
소속 리그대구경북권
감독박상길
연고구단삼성 라이온즈
우승 기록[2]21회

대회우승준우승4강
대통령배6회(1967, 68, 70, 71, 72, 74)2회(1975, 82)3회(1979, 85, 2016)
청룡기7회(1967, 68, 71, 74, 75, 81, 93)3회(1947, 72, 78)2회(1976, 82)
황금사자기4회(1968, 71, 79, 81)-3회(1984, 92, 2010)
봉황대기4회(1971, 75, 81, 2015)3회(1987, 97, 2008)2회(1989, 2007)
협회장기---
1967년, 1968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1967년 대회 창설경북고등학교선린상업고등학교
1967년, 1968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동산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선린상업고등학교
1968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선린상업고등학교
1970년, 1971년, 1972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선린상업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1971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상업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중앙고등학교
1971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성남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
1971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971년 대회 창설경북고등학교배명고등학교
1974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상업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광주제일고등학교
1974년, 1975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경남고등학교
197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상업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부산상업고등학교
197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신일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선린상업고등학교
1981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선린상업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
1981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선린상업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세광고등학교
1981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북일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
1993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공주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휘문고등학교
201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휘문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휘문고등학교
고교야구 전국대회 최다 우승 고교

명실상부한 고교야구의 명문팀 중 하나로, 명성에 걸맞게 프로 출범 후 거의 매년 프로선수를 배출하는 야구부이며, 대구, 경북 지역을 대표하는 고교 야구부 중 가장 뛰어난 역대 성적을 자랑한다.

모교인 경북고등학교부산광역시경남고등학교와 함께 경고라는 약칭으로 불리기 때문에 대구 경북지역에서는 경고 야구부라고 불리기도 한다.

1 연혁

1.1 1920년대~1950년대

경북고 야구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였던 대구고등보통학교 시절(약칭 대구고보)인 1920년까지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 5월 11일에 일본인 교사 센게 다카노부(千家 尊宜)와 스에노브 이치로(未延 一郞)가 주도해서 야구부가 처음 탄생했다. 당시 창단 선수진은 김명갑, 배소업, 손관성(孫觀星), 이규현(李圭鉉), 이상오(李相旿), 이원복(李元福), 이희철(李熙徹), 주덕근(朱德根), 차희순(車喜淳), 최경희(崔慶熙), 편무조(片茂祚) 등으로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이 시기 창단된 이후로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는데 1928년 대구춘계쟁패전 4강 진출[3]이 당시 주요 대회에서 낸 유일한 성과였다. 대구상업 고시엔 조선 예선 결승을 밥먹듯이 가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성적.

해방 이후에는 한동안 이름을 드러내지 않다가 1956년 제11회 청룡기에 참가, 1957년에는 제 12회 청룡기와 제11회 전국지구대표고교쟁패전에 참가, 이중 전국지구대표고교쟁패전에서는 에이스 김창영(金昌永)을 앞세워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9월 23일에 열린 결승전에서 동산고에 3:2로 패배하며 우승 트로피 수여를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 기세를 몰아 제38회 전국체전 고교부에 경북지역 대표로 참여, 4강까지 진출했지만 경기지역 대표였던 인천고에 6-3패배하며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1959년은 경북고 야구부에는 치욕의 역사로 볼수 있다. 제 14회 청룡기에서는 동산고의 고순선(高順先)에게 26명의 타자가 단 한개의 안타를 뽑지 못하며 한국 야구 역사상 3번째 노히트 노런[4]을, 제13회 전국지구별 초청 전국고교야구쟁패전에서 인천고의 이선덕(李善德)에게 35타자가 단 한개의 안타를 치지 못하며 한국 야구 역사상 4번째 노히트 노런[5]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이런 모습에 "인문계 고교의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로 폐부되기에 이른다.

1.2 1960년대~1970년대 : 사상 최강의 야구부

그러던 중 1965년 다시 재창단 되면서 다시 기지개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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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식

임신근, 남우식, 황규봉이선희 등 에이스가 이끈 시기는 경북고의 황금기였다. 이들과 함께 뺄 수 없는 인물이 삼성 라이온즈 초대 감독으로도 알려진 서영무로, 1974년까지 경북고 감독을 맡으면서 13번의 우승을 함께 했다.

임신근은 고교 2학년 때인 1967년에 대통령배, 청룡기 우승을 이끌었고, 고교 3학년 때인 1968년에는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까지 모든 중앙대회[6]를 제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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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의 경북고

임신근이 졸업한 후 1971년 고교 3학년인 투수 남우식천보성, 배대웅, 정현발 등 타자들이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7], 화랑대기, 문교부 장관기 등 6개 대회를 제패했다. 여기서 화랑대기와 문교부 장관기를 뺀 4개 대회만 치더라도, 역대 고교야구 팀 중 중앙대회 4개 대회를 제패한 건 전무후무하다. 당시 경북고 야구부가 우승했을 때 대구의 군부대에서 오픈카를 빌려줘 야구부가 대구 시내에서 행진하곤 했는데, 우승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 점점 군부대에서 오픈카를 빌려주기를 꺼렸다는 일화도 있다. 또한 경북고가 지는 걸 보기 위해 고교야구를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1971년 경북고는 고교야구 역대 최강팀으로 손꼽힐 정도로 강한 팀이었다. 특급에이스였던 남우식은 한양대학교를 거쳐 실업야구 팀인 롯데 자이언트에 입단한 후 1980년에 은퇴했고, 동기들과 달리 프로에는 진출하지 않아 현 시점에서는 인지도가 떨어진다. 그래도 롯데그룹에 입사해 푸르밀의 대표이사직까지 승진했다.

남우식 등이 졸업한 후에는 황규봉과 이선희가 나왔다. 둘다 팀을 대표할만한 에이스 투수였지만 당시 황규봉이 주로 등판하고 이선희는 1루수로 나온 적이 많았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임신근과 남우식의 시절과 달리 전국적으로 고교야구 붐이 일면서 선린상고나 군산상고 등의 팀이 떠올랐고, 어느 팀이라도 전국대회 우승을 확신하기 어렵던 시절이어서 경북고는 대통령배 우승과 청룡기 준우승에 그쳤다.

황규봉과 이선희의 시절이 지난 후에는 1975년 성낙수가 팀을 이끌었고, 청룡기와 봉황기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해 최고투수가 됐다.

1.3 1980년대~1990년대 : 침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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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1981년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등 3개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후 경북고는 기나긴 침체에 시달렸다. 성준, 김성래, 김동재, 류중일[8] 등 뛰어난 선수는 많았지만 전국대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1980년대 이후 경북고가 예전만큼 성적을 못 내는 이유는 대구 지역 경제의 성장이 점점 지체되면서 대구 지역 선수층도 점점 얇아져 갔고, 또한 같은 지역내의 대구상고[9]와 대구고도 경북고 못지 않게 성장하면서 경북고가 예전만큼 막강한 전력을 꾸리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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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1993년 고교 2학년이던 이승엽이 투타에서 맹활약하는 가운데, 고교 3학년 강동우와 김수관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1981년 이후 12년만에 청룡기에서 우승해 고교야구 팀 중 최초로 전국대회 20회 우승을 달성했다.

1997년 김일엽의 호투로 봉황대기에서 준우승했지만 또다시 몇 년간은 8강에 진출하는 데에서 만족해야 했다.

1.4 200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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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2007년 봉황대기에서 박지훈의 호투로 4강에 올랐고, 2008년 봉황대기에서는 유격수 김상수의 활약에 힘입어 준우승을 했다.

2012년 경북고등학교 야구장에서 열린 전국체전 야구 고등부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4강전 당시 투수는 경북고 2학년 박세웅과 북일고 3학년 송주영, 윤형배의 대결이였는데, 8회까지 5대 4로 앞서있다가 9회 1점을 더 내주고 결국 경기는 승부치기까지 이어졌다. 경북고가 절호의 기회를 얻었었으나 좌익수의 호수비로 득점하지 못하고, 반면 북일고는 득점에 성공하여 동메달에 만족했어야 했다.

봉황대기 결승전 후 박세진(우수투수상)과 최충연(MVP)

2015년 첫 대회인 봉황대기에서는 막강한 원투펀치인 최충연[10], 박세진[11] 원투 펀치에 2학년 거포 곽경문 등의 활약이 더해지며 결승에서 장충고를 10:1로 크게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봉황대기 우승은 34년만이며 메이저 전국대회 우승은 22년만에 달성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제96회 전국체전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용마고에게 8-3으로 패배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2016년 약체라 평가받았지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이라는 성과를 냈다. 배제고, 전주고, 장충고를 꺾었지만 4강에서 동산고에게 7:4로 패배했다.

2000년대 이후에 1차 지명자는 배영수, 백준영, 김상수, 박세웅, 박세진, 최충연 등 6명으로, 그나마 배영수는 고교 시절 성적은 대구상고의 장준관에게 밀렸으나 프로 와서 대박난 경우고, 백준영은 그야말로 뽑을 선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뽑았다. 2014년 신인지명에서 1차 지명이 부활했는데 투수 박세웅이 상원고의 투수 이수민과 더불어 삼성의 1차 지명자 후보로 손꼽혔으나 삼성은 이수민을 지명했고, 박세웅은 신생팀 KT 위즈의 첫번째 1차 지명자가 됐다.

2 출신 선수[12]

이름포지션프로입단경력
임신근투수,외야수1982년 창단멤버[13]한일은행-삼성(1982)
조창수외야수-한일은행-실업롯데
남우식투수-한양대-실업롯데
배대웅내야수1982년 창단멤버기업은행-포철-삼성(1982~1986)
손상대포수1982년 창단멤버한양대-실업롯데-삼성(1982~1987)
정현발외야수1982년 창단멤버한양대-실업롯데-삼성(1982~1986)-청보(1987)-태평양(1988)
천보성내야수1982년 창단멤버한양대-실업롯데-삼성(1982~1984)
이선희투수1982년 창단멤버농협-포철-삼성(1982~1984)-MBC(1985~1987)
함학수내야수1982년 창단멤버기업은행-포철-삼성(1982~1987)
황규봉투수1982년 창단멤버고려대-한국화장품-삼성(1982~1986)
서정환내야수1982년 창단멤버건국대-포철-삼성(1982)-해태(1983~1989)
정진호내야수1983년 1차연세대-한국전력-경리단-삼성(1983~1986)-청보(1987)-태평양(1988~1990)
손상득포수1982년 창단멤버고려대-포철-삼성(1982~1988)
박정환포수1982년 창단멤버한양대-포철-삼성(1982~1992)
성낙수투수1982년 창단멤버경희대-포철-삼성(1982~1985)-빙그레(1986)
김근석내야수1983년 1차 지명고려대-삼성(1983~1988)-청보(1987)-태평양(1988)
김동재내야수1983년 1차 지명연세대-삼성(1983~1988)-MBC(1989)-LG(1990~1993)
황병일외야수1983년 1차 지명건국대-삼성(1983~1985)-빙그레(1986~1990)
김성래내야수1984년 1차 지명연세대-삼성(1984~1996)-쌍방울(1997~1999)-SK(2000)
진동한투수1984년 1차 지명고려대-삼성(1983~1989)-쌍방울(1990~1992)
성준투수1986년 1차 지명한양대-삼성(1986~1998)-롯데(1999)
류중일내야수1987년 1차 지명한양대-삼성(1987~1999)
문병권투수1988년 2차 1라운드연세대-MBC/LG(1988~1993)
최창호투수1987년 2차 3라운드[14]청보(1986~1987)-태평양(1988~1995)-현대(1996~1998)-LG(1998~2002)
이영재포수1991년 1차 지명동국대-삼성(1991~1994)
김현욱투수1993년 2차 3라운드한양대-삼성(1993~1995)-쌍방울(1995~1998)-삼성(1999~2005)
이상훈투수1990년 연고지명삼성(1990~1999)-두산(1999~2003)-롯데(2004)
최재호투수1996년 2차 2라운드계명대-삼성(1996~2001)
이정훈투수1997년 2차 10라운드전주고-해태(1997~1998)
강동우외야수1998년 1차 지명단국대-삼성(1998~2005)-두산(2006~2007)-KIA(2008)-한화(2009~2013)
이승엽내야수1995년 연고지명삼성(1995~2003)-치바롯데(2004~2005)-요미우리(2006~2010)-오릭스(2011)-삼성(2012~)
김일엽투수1998년 고졸우선지명
2007년 신고선수 입단
단국대-PHI(2002~2003)-롯데(2007~2012)-한화(2013)
배영수투수2000년 1차 지명삼성(2000~2014)-한화(2015~)
김강민외야수2001년 2차 2라운드SK(2001~)
이병규외야수2006년 신고선수 입단한양대-LG(2006~)
백상원내야수2010년 4라운드단국대-삼성(2010~)
이상훈외야수2010년 4라운드성균관대-한화(2010~2012)-삼성(2013~)
정병곤내야수2011년 9라운드단국대-LG(2011~2012)-삼성(2013~)
박지훈투수2012년 1라운드단국대-KIA(2012~)
손형준외야수2012년 10라운드연세대-삼성(2012~)
김상수내야수2009년 1차 지명삼성(2009~)
이상민투수2013년 7라운드동의대-NC(2013)-넥센(2014~)
이성민투수2013년 우선지명영남대-NC(2013~2014)-kt(2015)-롯데(2015~)
김상훈투수2010년 2차 4라운드두산(2010~2015)-넥센(2016~)
김종화투수2010년 신고선수 입단삼성(2010~2011)
이지찬내야수2014년 2차 8라운드경성대-kt(2014~)
김윤동외야수,투수2012년 4라운드KIA(2012~)
임기영투수2012년 2라운드한화(2012~2014)-KIA(2014~)
김명신투수2017년 2차 2라운드경성대-두산(2017~)
박세웅투수2014년 전국단위 1차 지명[15]kt(2014)-롯데(2015~)
허웅투수2015년 2차 2라운드SK(2015~)
최충연투수2016년 1차 지명삼성(2016~)
박세진투수2016년 전국단위 1차지명kt(2016~)
곽경문내야수2017년 2차 8라운드삼성(2017~)
  1. 인문계 고교의 이미지를 유지한다는 교내 방침 때문에 1959년 해체.
  2.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3. 4강에서 신생팀이던 대구상업에게 7-4로 패배
  4. 9이닝 15탈삼진, 6사사구, 2실책, 0피안타, 0실점, 2:0 승리.
  5. 9이닝, 15삼진 7사사구 2실책 0피안타 0실점. 4:0 승리.
  6. 봉황대기가 창설되기 전이었다.
  7. 준우승팀은 서울의 신생팀인 대광고로, 대광고에는 작은 체구 때문에 경북고 진학이 실패해 경북고에 앙심을 품었던 김재박이 있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결승전에서 김재박의 에러로 주자가 출루해 1대0으로 경북고가 우승했다.
  8. 참고로 류중일은 1982년 7월 17일에 열린 잠실야구장 개장 기념 경기에서 부산고를 상대로 잠실 야구장 첫번째 홈런을 쏘아 올린 인물이다.
  9. 현재 상원고.
  10. 2016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11. 2016년 kt wiz 전국단위 1차지명
  12.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
  13. 플레잉 코치였다.
  14. 1986년 신고선수 입단.
  15. 신생팀 혜택으로 연고 상관 없이 전국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