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충청 (전반기) | |||||||
45px | 공주고등학교 | 대전고등학교 | 북일고등학교 | 45px | 세광고등학교 | ||
영선고등학교 | 청주고등학교 | ||||||
2016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충청 (후반기) | |||||||
45px | 공주고등학교 | 대전고등학교 | 북일고등학교 | 45px | 세광고등학교 | ||
50px | 인상고등학교 | 청주고등학교 |
150px | |
공주고등학교 야구부 (Gongju High School) | |
창단 | 1974년 |
소속 리그 | 충청권 |
감독 | 오중석 |
연고구단 | 한화 이글스 |
우승 기록[1] | 3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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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 우승 | 준우승 | 4강 |
대통령배 | 2회(1977, 2013) | - | 1회(1992) |
청룡기 | 1회(1992) | 1회(1990) | 1회(2000) |
황금사자기 | - | - | 1회(2006) |
봉황대기 | - | - | |
협회장기 | - | - | - |
1977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공주고등학교 | → | 부산고등학교 |
1992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
경남상업고등학교 | → | 공주고등학교 | → | 경북고등학교 |
201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 ||||
진흥고등학교 | → | 공주고등학교 | → | 서울고등학교 |
1 연혁
1925년에 창단해서 1945년까지 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중들이 아는 공주고등학교 야구부의 역사는 1974년으로 당시 대한야구협회장인 김종락의 후원을 받아 창단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만 해도 야구의 불모지였던 충청권인지라 창단 멤버들은 외부 전학생들이었다. 그 전학생 중 가장 우수했던 선수가 훗날 감독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김경문. 상대 타자가 고의로 타석에서 스윙인척 배트를 휘둘러 머리를 가격했을 정도로 우수한 포수였던 김경문은 부산에서 전학을 와 공주고의 핵심 멤버가 되었고, 그를 필두로 한 외인군단은 1977년 대통령배에서 부산고를 누르고 창단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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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
그러나 이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하고 1980년대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데, 충남 천안시에 생긴 북일고등학교의 등장 때문이었다. 북일고등학교는 한화그룹의 지원을 받아 전국에서 유망한 선수들을 스카웃하면서 일약 고교 무대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게 되었고, 자연히 지역예선에서 북일고에 치인 공주고는 1980년대를 그렇게 날리고 말았다. 그리고 애당초 충남 지역에 고교 팀이 두 개 뿐인지라 수시로 지역예선에서 둘이 만난 통에 빚어진 라이벌 의식은 2000년대를 넘어서도 계속되었다.[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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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
비록 성적에서는 북일고에 뒤졌다고 해도, 공주고가 모든 고등학교를 능가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해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안승민박찬호다. 박찬호의 등장 전후로 공주고도 훌륭한 인재들이 모였고, 이를 토대로 1990년 청룡기 준우승에 이어 노장진이 1992년 청룡기에서 결승전 노히트 노런의 신화를 쓰며 창단 후 두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참고로 박찬호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1년에는 박찬호-손혁-홍원기 등 멤버가 우수했지만, 전설의 92학번이 등장한 시즌이라 다 능력이 우수해서 4강도 들지 못했다.[5] 예외적으로 전국 대회는 아닌 부산일보가 주최한 화랑대기 대회의 결승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우승은 당시 손민한, 염종석, 김대익 등을 주축으로 했던 부산고가 차지했다.
그 뒤로 다시 2000년대 두 차례 4강에 오른 것 외에는 전부 초반 탈락하는 긴 암흑시대에 들어갔지만, 2013년 대통령배에서 2학년 에이스 김훈호와 3학년 이재림의 활약을 앞세워 정확히 20년만에 다시 메이저대회 우승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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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컵스의 마지막 우승을 이끈 레전드도 공주고 출신이라 카더라
2 야구대제전
- 역대전적 : 1패
- 최고성적 : 조별예선 (2014 야구대제전)
야구대제전 참가는 2014년 야구대제전이 처음이며, 조별예선에서 패해 탈락했다.
3 출신 선수[6]
이름 | 포지션 | 프로입단 | 경력 |
김경문 | 포수 | 1982년 원년멤버 | 고려대-OB(1982~1989)-태평양(1990)-OB(1991) |
신경식 | 내야수 | 1982년 원년멤버 | 상업은행-OB(1982~1990)-삼성(1991~1992)-쌍방울(1993~1995) |
김광림 | 외야수 | 1984년 1차지명 | 고려대-OB(1984~1993)-쌍방울(1994~1997)-현대(1997~1998)-쌍방울(1999) |
허준 | 내야수 | 1993년 2차 1라운드 | 경성대-빙그레/한화(1993~2003)-KIA(2003~2004) |
신재웅 | 투수 | 1995년 1차지명 | 경성대-한화(1995~2002) |
박찬호 | 투수 | 1994년 아마추어 자유계약[(LAD) | 한양대[7]-LAD(1994~2001)-TAX(2002~2005)-SAD(2005~2006)-NYM(2007)- LAD(2008)-PHI(2009)-NYY(2010)-PIT(2010)-오릭스(2011)-한화(2012) |
손혁 | 투수 | 1996년 2차 1라운드 | 고려대-LG(1996~1999)-해태/KIA(2000~2002)-두산(2003~2004)- 노퍽 타이즈 (2007) |
홍원기 | 내야수 | 1996년 1차 지명 | 고려대-한화(1996~1999)-두산(1999~2005)-현대(2006~2007) |
노장진 | 투수 | 1993년 고졸우선지명 | 빙그레/한화(1993, 1997~1998)-삼성(1999~2004)-롯데(2004~2006) |
조동화 | 외야수 | 2000년 신고선수 입단 | 대불대-SK(2001~) |
박정배 | 투수 | 2005년 2차 6라운드 | 한양대-두산(2005~2011)-SK(2012~) |
오재필 | 외야수 | 2001년 2차 12라운드 | 한양대-한화(2005~2013) |
송광민 | 내야수 | 2002년 2차 10라운드 | 동국대-한화(2006~) |
조동찬 | 내야수 | 2002년 2차 1라운드 | 삼성(2002~) |
박노민 | 포수 | 2004년 2차 3라운드 | 한화(2004~2016) |
최용규 | 내야수, 외야수 | 2008년 2차 2라운드 | 원광대-KIA(2008~2010, 2014~) |
김태식 | 투수 | 2007년 2차 2라운드 | LG(2007~2010)-NC(2012) |
황진수 | 내야수 | 2007년 2차 6라운드 | 롯데(2007~) |
안승민 | 투수 | 한화(2010~) |
- ↑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 ↑ 대통령배,청룡기,황금사자기 대회에 충남대표는 1개교만 참가할 수 있었는데, 북일고와의 예선전은 서울 본선 못지 않게 살벌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정식 야구장을 갖춘 북일고에서 예선전을 치를 시, 북일고의 홈텃세로 공주고 야구부 버스의 야구장 진입을 막아, 공주고 선수들은 정문에서 부터 무거운 야구장비를 들고 야구장까지 가야했다.
- ↑ 2002년 봉황대기 대회에서 북일고는 20-3으로 공주고를 맹폭했는데, 동대문야구장 우측 스탠드를 맞고 튀어나온 홈런볼을 공주고 우익수는 화를 내며 어디론가 던져버렸다.
- ↑ 충남에는 천안북중, 온양중, 태안중, 공주중 야구부가 있었는데, 스카우트 전쟁도 치열하였다. 이후 태안중 야구부가 해체되고 부여에 위치한 외산중이 야구부를 새로 창단해 2014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 이 해에는 4대 메이저 대회를 경남상고와 신일고(조성민, 설종진, 강혁 등이 포함)가 양분했다.
- ↑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
- ↑ 2학년 중퇴. 2001년 명예졸업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