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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昞禹
1931년 10월 16일 ~
1931년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태어났다. 대구농림고등학교(현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영남대학교를 졸업하였다. 6.25 전쟁 중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유엔군에 파견되어 복무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당 후보로 경상북도 청송군-영덕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중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문태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신민당에서 유진산계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봉화군-영덕군-울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복수공천을 받은 오준석 후보와 문태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단수 공천을 받은 문태준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김중권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같은 해 영천시-청송군 간 노귀재 도로 포장을 요구하며 맨발로 투쟁하다 연행되기도 하였다. 한편 신한민주당 내에서 소외된다고 생각한 유한열 등과 신보수회라는 당내 계보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86년 유한열 등과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중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87년 민중민주당이 신한민주당에 다시 흡수되자 잠시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있다가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청송군-영덕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통일국민당 김찬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