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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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重權
1939년 11월 25일 ~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관료, 변호사이다. 호는 진송(珍松)이다.

1939년 경상북도[1] 울진군에서 태어났다. 울진 후포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한민국 공군 군법무관으로 복무하였다. 실미도 사건 당시 공군 감찰부장이었다. 전역 후 판사로 근무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울진군-영덕군-청송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김찬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황병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 제13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울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울진 원자력 발전소 유치에 따른 주민들의 반발로 낙선하였다. 낙선 후 노태우 대통령 임기 말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이 때 민주당 김대중 대표최고위원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하면서 김대중과 인연을 맺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당파국민연합 후보로 경상북도 울진군-봉화군-영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지지를 선언하며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울진군-봉화군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광원 후보에 밀려 19표 차로 낙선하였다. 같은 해부터 2001년까지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중도 사퇴하였다.

이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울진군-봉화군-영양군-영덕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선여부비고
1981제11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11선거구)[2]민주정의당49,144 (41.1%)당선 (1위)중대선거구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덕/청송/울진)민주정의당51,624 (42.9%)당선 (1위)중대선거구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울진)민주정의당23,484 (54.8%)당선 (1위)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울진)민주자유당14,285 (38.5%)낙선 (2위)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양/봉화/울진)무당파국민연합15,724 (20.2%)낙선 (2위)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봉화/울진)새천년민주당28,702 (49.98%)낙선 (2위)19표차 낙선[3]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무소속22,932 (26.9%)낙선 (2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무소속30,365 (38.9%)낙선 (2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무소속28,171 (36.0%)낙선 (2위)
  1. 출생 당시는 강원도였으며 이후 1963년 경북으로 넘어왔다.
  2. 영덕군, 청송군, 울진군
  3. 하지만 16대 총선에선 3표차로 당락이 갈린 곳(경기 하남)이 있어서 묻혔다.(...) 물론 완전 묻힌건 아니고 TK에서 민주당 후보로 고작 19표 차이로 낙선했기에 상당한 주목을 받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