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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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漢烈
1938년 1월 15일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옥계 유진산의 4남이다.

1938년 전라북도(현재는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루스벨트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미국의 일리노이 주정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금산군-대덕군-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이준섭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선친 유진산 직계 출신인 이민우, 유치송 등이 만든 계보인 견지동우회에 속하였다. 1979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는 이민우 등과 김영삼을 지지하였으며,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사무차장에 임명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천영성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한국당 당기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2년 신상우의 뒤를 이어 민주한국당 사무총장이 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천영성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신한민주당 내에서 신보수회라는 당내 계보를 만든 다음 1986년 신보수회 소속 국회의원 중 일부와 함께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중민주당(약칭 민주당)을 창당하고 자신은 총재가 되었다. 1987년 통일민주당이 창당하고 나서 민중민주당은 다시 신한민주당에 흡수되어 신한민주당 소속이 되었다. 그 해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여 김영삼 지지를 선언하였다.

1988년 다시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91년 최형우가 정무제1장관이 되자 공석이 된 대한민국 국회 동력자원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국민당 정태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충청남도 논산시-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김범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전국구 국회의원 예비순번에 들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승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