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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 마누엘 세자르 코슈타 (Rui Manuel César Costa) | |
생년월일 | 1972년 3월 29일 |
국적 | 포르투갈 |
출신지 | 아마도라 |
신체 조건 | 180cm, 74kg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
프로 입단 | SL 벤피카 |
소속팀 | SL 벤피카(1990~1994) AD 파페(1990~1991) (임대) ACF 피오렌티나 (1994~2001) AC 밀란(2001~2006) SL 벤피카(2006~2008) |
국가대표 | 94경기 26골 |
1 개요
포르투갈의 마에스트로. 90-00년도 포르투갈 황금세대를 세르지우 콘세이상, 누누 고메스, 파울레타[1], 루이스 피구등과 이끈 핵심 주역.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더불어 소위 7공주 시대 피오렌티나의 핵심.
현 벤피카 디렉터.
2 플레이 스타일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정석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패싱 능력, 특히 스루 패스가 빼어나서 어떤 상황에서든 빈 공간으로 스루 패스를 찔러넣는게 그의 장기였다. 피렌체 시절에는 루이 코스타 스루 패스 - 바티스투타 슛이 주요 득점 루트일 정도. 어찌보면 단순하면서 금방 막힐 루트지만 최정상급 선수 두명의 찰떡호흡은 항상 엄청난 파괴력을 과시하였다. 다만 신체조건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해 피지컬로 비벼대는 선수들을 만나면 작아지는 약점이 있었다. 이는 AC 밀란에서 카카에게 밀려나는 원인이 된다.
3 선수 시절
3.1 벤피카
5살의 나이에 Damaia Ginásio Clube라는 유소년 클럽에 입단하면서 축구를 시작했고 이후 벤피카 유스로 적을 옮겨 흑표범 에우제비오의 조련을 받고 성장하였다. 지금도 회자되는 포르투갈 황금세대가 첫선을 보인 91년 u21 월드컵 이후 벤피카의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주앙 비에이라 핀투와 함께 강력한 중원을 형성하여 93년 포르투갈 컵, 93-94 시즌 리그 우승을 견인한다. 이후 벤피카는 조반니 트라파토니가 부임한 2005년 이전까지 11년간 리그 우승과 담을 쌓게 된다.
3.2 피오렌티나
전성기
재정 문제를 겪던 벤피카는 94년 피오렌티나의 1200만 에스쿠도[2]의 오퍼를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피오렌티나로 자리를 옮긴다. 당시 세리에 A 무대는 소위 7공주라 불리는 최강급의 7개팀이 있었고 리그 수준도 2위 라리가나 3위 분데스리가, 4위 EPL이 대적도 못할 만큼 수준높은 리그였고, 각 팀마다 손꼽히는 미드필더들이 포진해 있었지만 루이 코스타는 매년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시즌 베스트 11에 계속 선정되고 매해 이적시장마다 이적루머가 뜰 정도였다. 당시 비교된 선수로는 AC 밀란의 즈보니미르 보반, 유벤투스의 지네딘 지단, SS 라치오의 파벨 네드베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등이 있다. 하지만 2001년 거품이 꺼지면서 피오렌티나는 파산하기에 이르고 루이 코스타의 광팬이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무려 3천만 파운드(42M 유로)[3]의 사재를 지불하면서 AC밀란으로 이적한다. 이때의 활약만 놓고 실력이나 호사가의 입담에서나 토티, 지단, 베론과 더불어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중 한 명이였다. 지금도 피오렌티나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선수로 추앙을 받고 있다.
3.3 AC 밀란
밀란으로 이적 후 보반의 공백을 매우는 사명을 받고 출전하였지만 그의 약점이였던 압박과 부상 문제로 인상깊은 활약이 적어 먹튀논란도 일기도 했었다.[4] 2002-2003 시즌에는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챔스 어시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이 된다.[5]그러나 2003-2004 시즌 카카가 영입되고 나서는 카카가 루이 코스타를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했고 코스타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출전하는 등 후보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밀란에서 리그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1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를 기록한 후 2006년 황혼기를 불태우기 위해 다시 친정 벤피카로 이적하고 은퇴한다.
4 국가대표
루이 코스타를 필두로 한 황금세대의 u21 월드컵 우승으로 혜성같이 떠오르며 에우제비오 이후 그저그런 유럽 중위권 팀이던 포르투갈은 국제대회에서 강력한 팀으로 부상한다. 황금세대의 최전성기이던 유로 2000에서는 4강까지 진출하지만 당대 최강의 팀이던 프랑스에게 2:1로 석패하고 홈에서 열린 유로 2004에서는 조별리그와 결승에서 복병 그리스에게 2번 패해 준우승에 그치는 등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부재와 클럽에서 빛나던 시기에 결국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서브가 되고나서야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린점을 보면 결국 이름값에서든 실력으로든 대표팀에서는 피구, 클럽에서는 카카에게 가려진 루이 코스타 본인의 축구인생을 보는 듯 하다.
참고로 루이 코스타는 2002 월드컵 대한민국전에 출장하지 않았고, 부상으로 인해 교체멤버로 대기했었다.
- ↑ 파울레타는 포르투갈이 세계 청소년대회를 제패할 당시의 멤버는 아니었고 뒤늦게 대표팀에 발탁이 되었다.
- ↑ 포르투갈의 예전 화폐단위.
- ↑ 당시 이적시장 규모로 보면 미친 수준이다. 지금이야 3000만 파운드야 유망주 영입하는데
루크 쇼, 윌프리드 자하x2지급하는 수준이지만 8년전 안드리 셰브첸코가 첼시에 입성하는데 든 이적료가 3000만 파운드로 호비뉴이전 리그 최고액수였다. - ↑ 특히 득점력이 확연히 떨어진 것이 컸다.
- ↑ 이 때 당시 주전 경쟁에서 밀어버린 선수가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친 히바우두다. 코스타가 잘한것도 있지만 히바우두가 피지컬 저하 및 컨티션 난조, 전술과 리그에 적응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