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트라파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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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반니 트라파토니 (Giovanni Trapattoni)
생년월일1939년 3월 17일
국적이탈리아
출신지쿠자노 밀라니노
포지션수비수 / 미드필더
175cm
유스팀AC 밀란 (1953~1959)
소속팀AC 밀란 (1959~1971)
AS 바레세 1910 (1971~1972)
감독AC 밀란 유스 감독 (1972~1974)
AC 밀란 감독 (1974/1975~1976)
유벤투스 FC 감독 (1976~1986/1991~199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감독 (1986~1991)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 (1994~1995/1996~1998)
칼리아리 칼치오 감독 (1995~1996) 
ACF 피오렌티나 감독 (1998~2000)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0~2004)
SL 벤피카 감독 (2004~2005)
VfB 슈투트가르트 감독 (2005~2006)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감독 (2006~2008)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8~2013)
바티칸 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0)
국가대표17경기 1골
AC 밀란 역대 감독
체사레 말디니
(1972, 1973~1974)
조반니 트라파토니
(1974)
구스타보 지아뇨니
(1974~1975)
구스타보 지아뇨니
(1974~1975)
조반니 트라파토니, 네레오 로코
(1975~1976)
파올로 바리손, 네레오 로코
(1976)
유벤투스 FC 역대 감독
카를로 파롤라
(1974~1976)
조반니 트라파토니
(1976~1986)
리노 마르케지
(1986~1988)
루이지 마이프레디
(1990~1991)
조반니 트라파토니
(1991~1994)
마르첼로 리피
(1994~1999)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역대 감독
마리오 코르소
(1985~1986)
조반니 트라파토니
(1986~1991)
코라르도 오리코
(1991~1992)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감독
프란츠 베켄바워
(1994)
조반니 트라파토니
(1994~1995)
오토 레하겔
(1995~1996)
프란츠 베켄바워
(1996)
조반니 트라파토니
(1996~1998)
오트마르 히츠펠트
(1998~2004)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디노 조프
(1998~2000)
조반니 트라파토니
(2000~2004)
마르첼로 리피
(2004~2006)

비토리오 포초 이후 이탈리아 최고의 감독이자 한때 알렉스 퍼거슨을 능가했던 명장[1][2][3]

축구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UEFA 주관 대회를 우승한 감독[4]

1 소개

명문구단에서 수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74세 라는 많은 나이에도 정열적으로 활동하는 감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듣보잡... 그나마 알려진 거라곤 2002월드컵 때 이탈리아 감독으로 경기가 끝나자 깽판치는 장면만이 유일하다. 이탈리아 밖에서, 그러니까 독일, 아일랜드에서는 웃긴 감독 정도로 알려져 있다.[5]

오스트리아의 에른스트 하펠, 스코틀랜드의 알렉스 퍼거슨, 독일의 오트마르 히츠펠트와 더불어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이다. 이탈리아, 독일,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10차례의 리그 타이틀을 획득했다. 독일의 전설적인 명장 우도 라텍[6]과 함께 UEFA가 주관하는 모든 클럽 대항전 타이틀을 획득한 감독이며, UEFA 유로파 리그 최다 우승 감독이다.

2 커리어

2.1 선수시절


인터컨티넨탈 컵에서 만난 산투스의 펠레와 AC 밀란의 트라파토니

1958/59 AC 밀란 데뷔로 알려져 있지만 58/59시즌에는 한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으며 실질적인 데뷔는 그 다음시즌인 1959/1960 시즌이다. 마지막 시즌을 제외한 선수생활을 오직 AC 밀란 한 구단에서만 보냈다. 선수시절 포지션은 수비수/수비형 미드필더. 당시 조반니 로데티, 잔니 리베라 같은 창조적인 플레이어들에게 패스를 뿌려주는 역할로 활약했다.

리그에서의 주목할만한 선수 마킹 실력으로 1962년 칠레 월드컵에도 출전하였으나 A매치 기록은 17경기 인것으로 봐서 많이 기용 되지는 않았고 1964년에 국가대표팀에서 일찍 은퇴한다.

국대에서 일찍은퇴와는 달리 트라파토니는 AC 밀란에서 12시즌동안 주전으로 활약하며, 2번의 세리에 A 우승과, 1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2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1번의 컵 위너스 컵 우승과 도요타 컵을 우승하며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했다.

한 클럽에서 그의 축구인생을 모두 보내는 대신 바라세(Varase)[7]라는 당시 리그 내에 있던 클럽으로 이적하였으며 단 한시즌만 뛰었지만 성공적인 시즌을 마친 뒤 1973년 은퇴한다.

2.2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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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제자 미셸 플라티니와 함께

1974년 트라파토니는 AC 밀란 유스 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년 뒤 1975년 정식 감독으로 승격이 되지만 별 다른 기록 없이 1976년 유벤투스 FC로 감독직을 옮긴다. 그리고 10년동안 유벤투스의 감독을 하며 황금시대를 연다. 트라파토니는 유벤투스에서 여섯 차례의 리그 타이틀과 2차례의 FA컵 우승을 하며 이탈리아 재패는 물론이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지금은 UEFA 유로파 리그로 이름이 바뀐 UEFA컵 2회 우승, 지금은 폐지된 컵 위너스컵[8]1회 우승과 유러피언 슈퍼컵 1회우승, 도요타컵[9] 1회우승 등 10년동안의 유벤투스 감독 생활 동안 무려 1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당시 챔피언스리그, UEFA컵, 컵 위너스 컵등 3개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한 감독은 트라파토니가 유일하다. [10]

10년간의 유벤투스 감독 생활을 마치고 트라파토니는 라이벌팀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감독직을 옮긴다. 당시 인터밀란은 1979-1980시즌 이후 리그 타이틀은 물론 각종 대외컵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지 않아 트라파토니를 영입한 것인데 감독직을 옮긴 첫 해인 1986/87시즌엔 디에고 마라도나의 나폴리가, 그 다음시즌인 1987/88시즌 에는 아리고 사키가 이끄는 AC 밀란이 리그 타이틀을 가져갔지만 세 번째 시즌인 1988/89시즌에는 8년만에 인터밀란에게 리그 타이틀을 가져다 줬다. 그리고 마지막 시즌인 1990/91 시즌에는 UEFA 컵 우승을 달성 헀다.[11][12]

인터밀란을 떠난 직후 트라파토니는 유벤투스로 5년만에 복귀한다. 하지만 아리고 사키에 이어 AC 밀란의 감독직을 이어 받은 파비오 카펠로가 화려한 멤버들을 앞세워 58경기 무패 등 각종 기록을 수립하며 리그 3연패를 달성하게 되며 트라파토니는 그 동안 UEFA컵 우승 1회를 제외하곤 유벤투스 감독 1기 때와 비교하면 초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1994/95 시즌 트라파토니는 처음으로 해외 감독 생활을 하게 된다. 독일의 명문 구단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자리를 옮긴다. 첫 해외 감독생활이었던 94/95 시즌은 히츠펠트 감독이 이끌고 돈지X로 대형 선수를 수집한 도르트문트에게 밀려 무관으로 보냈고 원할하지 않은 의사소통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다음 시즌인 1995/96 시즌에 세리에 A의 칼리아리로 자리를 옮기며 이탈리아로 복귀하며 리그 11위를 기록,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다른 감독 자리를 찾아 옮겼는데 그게.. 1년전에 어려움을 겪어 떠난 FC 바이에른 뮌헨...;; 그래도 그는 96-97 시즌에 바이언을 3년만에 리그 우승을 이끌며, 다시 독일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 성공을 이어가는데 실패하였다. 당시 선수들은 감독한테 대들며 훈련을 게을리 하였고, 선수들이 스포츠 잡지보다 촌평지에 더 많이 나와 FC 할리우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1998년 3월 10일 폭발한 트라파토니는 분노의 인터뷰를 시전하였다.# 여기서 가장 많이 지목된 선수는 토마스 슈트룬츠, 그는 유리몸이 되어 2년간 10경기도 채 뛰지 못하였고 거의 맨날 병상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문법이 이상하다.(...) 그는 97-98 시즌에 DFB-포칼 우승 이후 뮌헨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1998/99 시즌에 다시 AFC 피오렌티나의 감독으로 이탈리아로 컴백하며 곧바로 리그 3위를 기록, 팀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등 선전하였으나 그 다음 시즌인 1999/00시즌에는 7위를 기록하며 부진을 겪었다. 1999/00시즌이 끝난 뒤 트라파토니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다. 쉽게 예선을 통과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정작 본선에 올라가자 같은 조에 있던 에콰도르는 가볍게 잡았으나 크로아티아전에서 패배하고 멕시코전에서는 겨우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안습한 모습만 보여 주다가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후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16강전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에게 생각지도 못하게 안정환의 골든골로 1:2로 패하면서 우승 후보 팀이 16강전에서 탈락하는 비참한 모습만 보여 줬다.

이런 안습한 모습은 그 다음대회인 유로 2004에서도 이어졌고 그 대회에선 8강에도 못올라가는 2002월드컵보다 더 비참한모습을 보여주며 트라파토니의 감독 커리어상 첫번째 실패를 하게 된다.[13]

2004년 좋지않은 모습으로 국가대표팀을 떠났으나 다행히 트라파토니를 찾아주는 팀은 있었는데 바로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클럽인 벤피카. 2004-05시즌 트라파토니는 벤피카를 11년만에 정상으로 올려놓았으나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는 이유로 재계약하지 않고 1년만에 팀을 떠난다. 트라파토니의 그 다음 행선지는 독일의 Vfb슈투트가르트. 하지만 슈투트가르트에서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주고 예스퍼 그론캬르와 톰마손과 갈등을 일으키며 20경기만에 해고당하게 된다.

후에 오스트리아 리그 클럽인 레드 불 찰츠부르크의 디렉터로 자리를 옮겼고 마테우스를 감독으로 두며 2006/07시즌 오스트리아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리그가 끝난 뒤에 트라파토니는 보드진 회의에서 마테우스를 경질시켰다.

2008년 트라파토니는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0년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이탈리아와 무승부를 기록 하는 등 선전하면서 무패로 조별 예선을 마감했다.

조별예선에서 2위를 기록하고 월드컵 본선 티켓을 위한 플레이오프로 진출했는데 상대는 다름 아닌 프랑스. 홈에서 0:1로 패배했지만 원정에선 로비킨의 골로 1:1무승부가 되는 가 싶더니 막판에 갈라스의 골로 1:2로 역전당해 패배했다. 다만 리플레이 확인 결과 갈라스가 크로스를 올리기 전에 앙리가 두 차례나 그의 손으로 볼을 터치 하는것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변한게 없고 결국 2010년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아일랜드 축구 협회에는 트라파토니에게 연장계약을 제시했고 트라파토니는 유로 2012 본선에도 감독직을 수행하였으나 크로아티아, 스페인, 이탈리아와의 조별 예선에서 모두 패하며 8강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아일랜드 축구협회는 연장 계약을 제시하여 2014 브라질 월드컵 까지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 스웨덴, 오스트리아, 카자흐스탄, 페로 제도와 같은 조로 편성이 되었으나 독일, 스웨덴, 오스트리아에게 밀려 조 4위로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였다. 진출 실패 직후, 아일랜드 축구협회와 상호 동의하에 계약을 해지 하였다.

유로 2004에서의 실패가 너무 커서 그렇지, 2005년 이전에는 자신보다 2살 연하인 맨유알렉스 퍼거슨을 능가하는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혔다.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며 실추된 명예를 벤피카와 레드불 찰츠부르크에서 회복했다.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없는지 그렇게 손에 넣고싶어하던 유로타이틀과 월드컵을 끝내 획득하지 못한다. 만약 획득했다면 현실FM 결국 트로피 콜렉션 완성 실패

3 경력

3.1 선수 시절

3.1.1 출전 기록

  • 클럽
1958/59AC 밀란00
1959/60AC 밀란20
1960/61AC 밀란301
1961/62AC 밀란320
1962/63AC 밀란300
1963/64AC 밀란281
1964/65AC 밀란300
1965/66AC 밀란181
1966/67AC 밀란230
1967/68AC 밀란240
1968/69AC 밀란220
1969/70AC 밀란200
1970/71AC 밀란150
1971/72바레세100
  • 국가대표
196010
196150
196220
196361
196430

3.2 대회 우승

4 감독 시절

4.1 우승 기록

  1. 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컵, UEFA 컵위너스컵을 전부 우승해 UEFA 플라그를 유럽 최초로 유벤투스에 안겨준 감독이며 리그 타이틀을 10회를 획득한 명장이다.
  2. 99년 위너스컵이 폐지되면서 유벤투스가 최초이자 최후로 유일하게 수상구단으로 남았다는 정보가 있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유벤투스 이후로 아약스, 뮌헨, 첼시가 순차적으로 유럽무대의 모든 대회를 석권하였지만 UEFA 플라그 기념패는 유벤투스만 소유하고 있다.
  3. 국내에서는 클럽감독시절이 해외축구가 보급되기 한참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기에 인지도는 매우 떨어지는 편. 설상가상으로 월드컵때의 이미지와 유로2004의 삽질로 퇴물취급받는게 현실이다. 심지어 세리에매니아조차도 트라파토니 이야기가 나오면 "도대체 국대에선 왜 그랬어요?" 반응밖에 안 나온다(...) 애초에 유벤투스나 인테르에서의 전성기는 너무 옛날이니까.
  4. UEFA 컵위너스컵이 폐지된 현재로서는 더 이상 이 기록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5. 독일어를 배우긴 하였으나 문법이 엉성하다. 아일랜드 감독직을 맡았을 때에는 주머니에 고양이를 잡기 전까지 고양이라고 하지 말라라는 말을 하였다. 여기서 고양이는 유로 2012 본선행을 의미한다. 아일랜드의 본선행이 확정되자 노래 한 곡이 나왔다.MIAW!
  6.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바이에른 뮌헨의 전설적인 명장
  7. 밀란과 협력관계인 소규모의 자그마한 구단이다. 풋볼매니저에서는 위성구단이라 나온다.
  8. FA컵 우승팀만 참가
  9. FIFA 클럽 월드컵
  10. 유로피언 컵(UEFA 챔피언스리), UEFA컵(현재의 유로파리그), UEFA 위너스컵(각 국가의 축구협회 주관의 컵대회 우승팀들이 참여하는 대회, 99년도 라치오 우승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이후 라치오는 UEFA 슈퍼컵에서 트레블을 이룬 맨유를 이겼다.)을 우승하면 UEFA에서 UEFA플레이트라는 명예 트로피 비스무리한 걸 지급하는데, 이것을 받은 구단은 유벤투스가 유일하다. 현재 대부분의 명문 구단은 유로파리그 우승만 하면 받을 수 있다.
  11. 인터밀란은 트라파토니가 가져다준 1990/1991 시즌 이후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 리그 탈환을 꿈꿨지만 유벤투스-AC 밀란 양강체제에 밀리고 2000년에는 로마를 연고지로 한 AS 로마SS 라치오에게까지 밀리며 돈은 많이쓰는데 쓰는 만큼 효과는 못보는 클럽으로 전락하가가 2006년 칼치오폴리 사태로 인해 2005/06 시즌 우승한 유벤투스가 우승 박탈 당한 어부지리로 기분 묘하게 리그 타이틀을 이어받았다
  12. 그 이후 유벤투스가 2부리그인 세리에 B로 강등당하고 AC 밀란도 구단주인 베를루스코니가 돈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며 제대로 보강도 하지 않고 30대 이상인 선수들로만 구성되 밀란 노인정이라고 대차게 까이면서 하락하는 동안 인터밀란은 리그를 재패하게 되고 조세 무리뉴감독으로 인해 09-10 트레블을 달성하며 황금시대를 열게 됐다....가 아니라 그 이후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리버풀을 7위로 만든데 이어 인테르 역시 7테르를 만드는 막장 행각을 보이며 결국 AC 밀란에게 왕좌 자리를 6시즌 만에 내줬다
  13. 애초에 칼리아리와 피오렌티나는 우승을 노릴만한 처지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