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리 셰브첸코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밀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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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에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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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현역 마지막 경기에서.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안드리 미콜라요비치 셰우첸코[1]
(Andriy Mykolayovych Shevchenko)
생년월일1976년 9월 29일
국적우크라이나
신체 조건183cm, 73kg
포지션스트라이커,팀닥터
주로 쓰는 발오른발
등번호7번
유스팀FC 디나모 키예프 (1986~1993)
소속팀FC 디나모 키예프 (1994~1999)
AC 밀란 (1999~2006)
첼시 FC (2006~2009)
AC 밀란 (임대) (2008~2009)
FC 디나모 키예프 (2009~2012)
지도자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6)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 )
국가대표111경기 48골
2005 FIFPro World XI
FW
안드리 셰브첸코
FW
사무엘 에투
MF
프랭크 램파드
MF
클로드 마켈렐레
MF
지네딘 지단
MF
호나우지뉴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존 테리
DF
카푸
GK
디다
1999 Ballond'or
수상
히바우두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안드리 셰브첸코
2000 Ballond'or
수상
루이스 피구
2위
지네딘 지단
3위
안드리 셰브첸코
2004 Ballond'or
수상
안드리 셰브첸코
2위
데쿠
3위
호나우지뉴

무결점 스트라이커

AC 밀란의 전설의 7번.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2]와 바르셀로나[3], 레알 마드리드[4] 킬러.[5]


1 개요

우크라이나의 前 축구선수로 흔히들 이름을 간단히 줄여 셰바라 부른다. 2000년대 국내 해축팬들 사이에서는 일명 4대 스트라이커의 한 축이었다. 그러나 동시기에 활동한 라이언 긱스와 더불어 국대 잘못 만나 메이저 대회에 제대로 못간 케이스로 손꼽힌다.


2 선수 경력

2.1 디나모 키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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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깨기 시절
자국 리그 명문구단인 디나모 키예프의 리그 5연패 및 98/9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의 주역으로 유럽무대에 그 이름을 알렸다. 특히 컬쳐쇼크 급 활약을 보여줬던 경기는 97/9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FC 바르셀로나 전으로 홈에서 3-0으로 캄프 누에서는 4-0으로 떡실신시켜버린 사건인데, 셰브첸코는 캄프 누 원정에서 전반전 해트트릭이라는 폭탄을 터트려 전 유럽을 경악케 만들었다. 98/99 시즌 그는 챔스 16강에서 만난 아스날을 상대로 프리킥 결승골을 터트려 팀을 8강에 올려놓았고 8강에서 만난 레알마드리드를 상대로는 1차전에서 1골 2차전에서 2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어 챔스 4강행을 이끌었다. 4강에서 만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그는 다시 1차전에서 2골을 기록하였지만 3:3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고 2차전에서 1:0으로 아쉬운 패배를 당해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이 시즌 그는 챔스 득점왕 및 UEFA 최우수공격수로 선정되었다.


2.2 AC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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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캐릭터, 월드 클래스급 공격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던 시절

스피드, 테크닉, 골 결정력, 피지컬, 키가 완벽히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선수

이후 99/00시즌 이탈리아의 명문 구단 AC 밀란으로 이적, 데뷔시즌 득점왕 등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6] 부상과 이에 따른 컨디션 난조로 리그 5골에 그치며 극도로 부진했던 2002/03시즌을 제외하면 매시즌 20골 언저리를 기록하며 세리에 A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우뚝선다.[7] 셰브첸코 커리어의 정점은 2003/04 시즌으로 이 시즌 그는 리그우승과 세리에 득점왕을 차지하고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이후 04/05시즌에서는 팀을 챔스 결승으로 올리는 활약을 하였지만 리버풀에게 이스탄불의 악몽을 맛본다.[8] 05/06 시즌 챔스 조별 라운드 5차전에서는 페네르바흐체를 상대로 혼자 4골을 득점하였고 4강에서 만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2차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바르셀로나를 탈락시킬 뻔 했었다.[9]

정확한 골 결정력과 '동유럽의 호나우두'라고 불릴 정도로 빨랐던 스피드, 그리고 상대방 수비수들을 초토화시키는 몸싸움과 준수한 테크닉, 윙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는 전술적 이해도 등 무결점의 스트라이커라 칭송 받았던 선수.

밀라노더비 역대 최다득점 기록 보유자이며 레전드 군나르 노르달에 이은 AC밀란 역대 최다득점 2위(173골)로 사실상 노르달의 기록을 깰 수 있으리라 기대를 모았으나...


2.3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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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브첸코의 흑역사

첼시 FC 역사상 최악의 먹튀 2위.[10]

첼시 FC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세브첸코를 영입하는 것에 강한 욕심을 드러냈고, 약 500억 정도로 추산되는 거액의 이적료와 세브첸코 아내를 통한 설득을 통해 결국 영입에 성공하였다. 이적 직후 리버풀과의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 맹활약을 보이자 첼시 주전 공격수 디디에 드록바가 벤치로 밀려나는 거 아니냐는 여론이 주를 이뤘지만[11] 부상과 극심한 부진을 거듭하였고(06/07~07/08 리그 47경기 9골) 결국 드록바에 밀려 벤치나 데우다가 다시 AC밀란으로 임대 형태로 복귀하게 되었다. 2007년 2월 존 테리를 응급처치로 구한 것이 세브첸코가 첼시에서 활약한 유일한 사례라고도 회자되며[12], 구단주가 개인의 욕심만으로 선수를 영입했다가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AC밀란으로 복귀하자 많은 사람들이 "EPL 적응 실패였을 뿐"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임대기간 1년동안 리그, 컵 경기 모두 합쳐 2골 1도움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내고 결국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의 시간때우기용 교체선수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임대 만료 후 첼시로 복귀했지만 밀란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2.4 다시 디나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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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말 결국 자신이 선수생활을 시작했던 디나모 키예프와 2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고, 2010-11 시즌 종료 후 1년 계약을 연장하였다.

리그에서는 55경기 23득점을 기록하며 고국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유럽 대항전에서는 2010-11 시즌 12경기 5득점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고, 특히 2011년 3월 유로파리그 맨체스터 시티와의 16강 1차전 홈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득점을 기록하자 부활이니 제2의 전성기라느니 등의 설레발이 있었다. 하지만 2011-12 시즌 5경기 무득점에 그쳐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게 했다.


2.5 국가 대표

1995년 국가대표로 첫 발탁됐으며, 첫득점은 1996년 5월 터키와의 친선전에서 기록하였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는 조별리그(9조)에서만 3골(PO포함 4골)을 득점하며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크로아티아[13]에 1차전 0-2, 2차전 1-1(셰브첸코 득점), 합계 1-3으로 패해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유로 2000 예선에서는 프랑스[14] 승점 1점차로 뒤져 플레이오프로 밀려났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슬로베니아에 1차전 1-2(셰브첸코 득점), 2차전 1-1, 합계 2-3으로 패해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예선에서도 상황은 또다시 반복되었다. 조별리그(5조)에서만 9골[15](PO포함 10골)을 득점했으나 폴란드에 밀려 플레이오프로 밀려났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우크라이나는 독일[16]에 1차전 1-1, 2차전 1-4(셰브첸코 득점), 합계 2-5로 패해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유로 2004 예선에서도 총 3골을 기록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조별리그(6조) 3위로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다. 당시 조별리그 1위는 그리스[17], 2위는 스페인이었다.

그래도 그는 묵묵히 팀을 이끌었다. 그 결실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맺었다.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는 조별리그(5조)에서 6골을 넣으며 조 1위로 드디어 플레이오프가 아닌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다. 이는 1991년 소련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의 월드컵 첫 본선 진출이었다. 셰브첸코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튀니지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며, 아나톨리 티모슈크, 세르히 레브로프, 안드리 보로닌 등과 함께 8강 진출에 성공한다. 비록 8강전에서 이탈리아[18]에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다.

유로 2008 예선에서는 조별리그(B조)에서만 5골을 기록했지만 조 4위로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는 조별리그(6조)에서 6골을 넣었으나 잉글랜드에 밀려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으며, 플레이오프에선 2경기 모두 출전하고도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그리스에 1차전 0–0, 2차전 0–1, 합계 0-1로 패했다. 당시 본선 진출권을 그리스에게 내 주게 되자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뭇 축구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2010/11 시즌이 끝나고 2012년 자국에서 폴란드와 같이 공동 개최로 열리는 유로2012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본선[19] 첫 경기인 스웨덴 전에 선발로 나와 0:1로 끌려가던 후반 10분과 17분에 잇따라 헤딩골을 기록하며 조국 우크라이나에게 유로대회 첫 승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안방임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와 프랑스에게 패하면서 8강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하여 유로대회 1승을 챙긴 것으로 만족해야 했으며, 셰브첸코는 국가대표팀과 이별을 고했다.

3 은퇴 후

2012년 7월 은퇴 이후 정계 진출을 선언하고 "우크라이나 - 전진!" 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하면서 일단 정계 진출은 무산되었다.

또한 골프 선수로 전향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을 꿈꾸며 2013년 9월 12일 우크라이나 카르코프에서 열린 유럽프로골프 챌린지 투어 카르코프 슈퍼리어컵에서 데뷔전 치뤘으나 세브첸코는 참가 선수 중 최하위권인 공동 118위에 머물렀다.

2016년 2월 16일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임명되었다. 유로 2016이 끝난 후 7월 16일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동시절 탑클래스 선수들에 비해 드리블 및 발재간은 투박한 편이었다.무결점이라면서요이를 타고난 운동능력과 뛰어난 골결정력으로 커버하였다.[20]즐라탄이나 마리오 고메즈 같은 축복받은 신체를 타고난게 아닌 순수 운동능력만으로 세계최고가 된 만큼 그 운동능력만큼은 당대 최강에 역대 축구판에서도 그의 운동능력에 비교할 선수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다.[21]

단순히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득점에만 능한 선수가 아니라 '무결점의 스트라이커'라 불릴 정도로 다재다능한 선수이기도 했다. 셰브첸코는 소련 축구계의 리누스 미헬스아리고 사키라 할 수 있는 발레리 로바노브스키 감독이 말년에 디나모 키예프에서 길러낸 최고의 역작으로, 사키처럼 선수에게 다재다능함을 요구하는 로바노브스키에게 10대 시절부터 지도받았고 그 결과 공격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플레이를 수준급으로 해낼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원톱과 투톱에서 모두 능숙하게 뛸 수 있었고, 최전방에서 득점을 노리는 플레이와 보다 공격적인 파트너를 뒤에서 지원하는 플레이가 모두 가능했으며, 심지어 스트라이커로서는 뛰어난 수비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운동능력을 극대화하는 셰브첸코의 스타일은 자연스레 몸에 많은 무리와 나이에 따른 급격한 기량저하를 불러왔고, 그로인해 셰브첸코의 최전성기는 다나모 키예프 말년과 AC밀란 첫 두시즌 이후 20대중반인 2001년에 벌써 지나간 상태였다. 그 이유로 2000년대 초반에 이미 노쇠화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2001/02시즌에는 리그 14골에 그쳤고 부상의 여파가 있다고 하지만 2002/03시즌 리그 5골의 성적표는 네임밸류에 비하면 극도로 저조한 성적이었다. 더 심각한건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25-27세로, 스트라이커라면 한창 전성기를 향해 달려나가야할 나이였음에도 이랬다는 거다.[22] 이후 2003/04시즌 부활에 성공하여 세리에 득점왕과 발롱도르를 수상하나 퍼포먼스와 활약도 모두 밀란 커리어 초반의 최전성기에 비교하면 부족한 활약도였다.[23] 2004년 부터 2006년 까지는 상당히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06년에 접어들어서는 팬들의 우려가 나올정도로 기량이 저하된 모습이 관측되었다. 그러나 꾸준히 리그에서 20골 언저리를 기록했으며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우려를 어느정도 불식시키는데 성공하지만 첼시로 이적한 이후(...)[24]

첼시 시절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피지컬이 떨어져가고 있던 시기에 거칠기로 유명한 프리미어리그 적응실패까지 겹치며 선수 본인이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 꼽히고 있다. 실제로 밀란 임대시절의 경기를 보면 예전에 득점왕을 몇 번이나 했던 선수와 동일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맥없는 플레이를 보이곤 했다.


5 셰브첸코에 대한 말말말

"모든 스트라이커들에게는 각각의 특징과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쉐브첸코는 모든 걸 지니고 있고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있다."

- 발레리 로바노프스키[25]
"모든 빠르다는 선수는 다 잡아봤다. 하지만 그는 분명 같이 뛰었는데도 점점 멀어진다."

- 에드가 다비즈[26]
"우리는 오로지 1명에게 당하였다."

- 루이스 피구
"그가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상대팀에게는 공포다."

- 루디 푈러

6 기타

첼시 시절 존 테리를 응급처치로 살려준 것 때문에 '의대 지망생이었다. 20살 때부터 축구 했다.' 라는 루머가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셰바는 10살의 나이로 디나모 키예프의 유스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18살에 프로 데뷔를 한 선수다, 월간 포포투 2010년 10월호에 셰브첸코의 인터뷰에서 자세히 알 수 있는데, 셰바는 키예프 대학에 입학하려 했지만, 테스트에서 떨어지자 전차부대 대령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군인이 되길 고민했다고 한다, 2달 뒤 디나모 키예프의 1군 선수가 되자 테스트를 보지도 않고 입학시켜 줬다고...[27]

토레스, 셰브첸코처럼 부상으로 폼이 하락했다가 스타일의 변화로 롱런한 대표적인 선수는 이탈리아 국가대표 출신이자 유벤투스의 카피탄이였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있다. 알레의 경우엔 상기한 둘과는 달리 볼 컨트롤, 개인기 능력이 세계 최고급이기도 했고 애초에 이들처럼 최전성기이던 20대 초반 피지컬에 극도로 의존하진 않았다.[28]

호나우두, 티에리 앙리,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 더불어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해축팬들에게 4대 스트라이커로 통했다. 이 넷 중 누가 제일 뛰어나냐는 떡밥이 종종 던져지지만 보통은 호나우두를 맨 앞으로, 반니를 맨 뒤로 놓고 앙리와 쉐바 중 누가 나은지는 키배로 번진다. 앙리가 EPL을 정복하고 말년에 라리가에서도 세계 최고급의 활약을 펼친 반면 셰브첸코가 AC 밀란 시절까지 보여준 퍼포먼스는 앙리에 비해 꿇릴게 없었으나 첼시로 와서는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줬고 후에 밀란으로 복귀해서도 재기에 실패하면서 발롱도르를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비전문가를 통틀어 앙리보다 낮게 평가받는다.

7 기록

7.1 대회 우승

  • 디나모 키예프 (1994/95 - 1998/99, 2009/10 - 2011/12)


7.2 출전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4/95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1714121
1995/96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31165122
1996/97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2060000
1997/98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231988106
1998/99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2618451410
1999/00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32244461
2000/01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342431149
2001/02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29143063
2002/03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24541114
2003/04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322410105
2004/05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291700106
2005/06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281900129
2006/07첼시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0463103
2007/08첼시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1751051
2008/09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1801171
2009/10첼시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100000
2009/10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2172061
2010/11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181021125
2011/12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1661050
  1. /ɑndˈrij mɪkoˈlɑjovɪt͡ʃ ʃɛwˈt͡ʃɛnko/. 선수의 우크라이나어식 이름은 Андрі́й Микола́йович Шевче́нко'안드리 미콜라요비치 셰우첸코'이며, 러시아어식 이름은 Андре́й Никола́евич Шевче́нко'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솁첸코'이다. 선수 본인이 우크라이나어식 이름을 선호하는지 러시아어식 이름을 선호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일단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에 주로 활동한 인물이기에 우크라이나어식 표기를 쓰기로 한다.
  2. 인테르와는 총 19경기 출장 14골을 기록하였는데 이 기록은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다.
  3. 역사상 누캄프에서 원정선수로 해트트릭한 2명 중 1명. 다른 한 명은 故루이스 아라고네스. 레알 오비에도 소속으로 1961년 4월 30일 해트트릭 기록했다. 셰브첸코는 바르샤를 상대로 총 6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였다
  4. 레알을 상대로 4경기 4골을 기록했다.
  5. 엄밀히 말하자면 강팀과의 경기에선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저 세팀이 특히 호되게 당해서 뇌리에 박혔을 뿐이다. 저 세 팀 이외에 유벤투스는 셰브첸코에게 7골을 내주었으며 뮌헨 또한 셰브첸코에게 4골을 내주었다.
  6. 세리에 A 역사상 데뷔시즌 외국인 득점왕은 예전 유벤투스미셸 플라티니UEFA 회장과 셰브첸코 뿐이다.
  7. 그러나 이 부진했던 시즌에서도 그는 조별리그 1차전에서 만난 레알마드리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뽑아 팀을 조별리그 1위로 16강을 진출시키고 4강 2차전에서 벌어진 밀라노더비에서 골을 기록하여 원정다득점 원칙에 따라 팀이 결승에 진출하게 만드는 등 팀의 챔스우승에 적잖은 공헌을 하였다.
  8. 세브첸코는 이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하였지만, 예지 두덱에게 수 차례 슈팅이 막히고,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섰을 때, 두덱에게 막히면서 리버풀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9. 결과는 바르셀로나와 무승부로 1차전 결과에 따라 바르셀로나가 결승에 진출했지만 당시 그의 정당한 골이 푸욜의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무산되었다.
  10. 1위는 볼 것도 없이 이 분.
  11. 사실 당시에는 그야말로 유럽을 호령하는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었던 셰브첸코가 다이버 별명을 얻으며 뽀록바로 조롱받던 드록바보다 나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12. 이 사례가 위기탈출 넘버원에 방영됐었다.
  13. 크로아티아는 1998 프랑스월드컵 본선 3위를 기록한다
  14. 프랑스는 유로 2000 우승팀이다
  15. 에베 산(Ebbe Sand)과 더불어 월드컵 유럽예선 득점 공동1위
  16. 독일은 2002 한일 월드컵 준우승팀이다
  17. 그리스는 유로 2004 우승팀이다
  18. 이탈리아는 2006 독일 월드컵 우승팀이다
  19. 개최국 자동출전
  20. 당대 최고의 선수들에 비해선 투박한 편이지만,일반적인 동시대 공격수들과 비교하면 수준급이다.
  21. 유벤투스 중원에서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원을 씹어먹고, 98 월드컵당시 호나우두보다 뒤늦게 출발했음에도 호나우두를 따라잡아 1:1찬스를 커버하는 엄청난 운동능력을 보여준 네덜란드의 '싸움닭' 에드가 다비즈조차 셰브첸코의 운동능력에는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22. 이 때 당시 그는 매우 힘든시기를 겪고 있었는데 부상도 그를 괴롭혔지만 그의 은사이자 정신적 지주인 발레리 로바노프스키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흔들릴수 밖에 없었다.
  23. 이 때문에 요한 크루이프는 기술대신 신체능력에 극도로 의존하는 셰브첸코가 30줄에 이르면 기량을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으며, 이는 결국 무섭게 맞아 떨어지게 된다.
  24. 사실 셰브첸코의 하락의 징조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던 AC밀란 시절의 03/04시즌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이른시점부터 관측되기 시작했다. 셰브첸코는 세계 최정상의 클래스치고는 상당히 투박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25. 셰브첸코를 10대 때부터 지도하고 성장시킨 셰브첸코의 은사로 셰브첸코의 축구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26. 위에 언급한 내용을 대변하듯이 다비즈는 셰브첸코가 가진 능력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27. 입학 테스트에서 코치 몇명이 자신의 드리블과 다른 몇가지가 마음에 안들어 떨어졌다고 한다. 이 부분만 봐도 의대를 지망했다 라는것은 거짓임을 알 수있고, 어려서 부터 복싱, 레슬링, 아이스하키도 할 정도로 스포츠 중독이었다고 한다.
  28. 하지만 알레 또한 부상 전 압도적인 스피드를 활용하여 수비수들을 터는데 매우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