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립


말총을 대체 어떻게 저렇게 엮은 거야 조선의 장인들은 괴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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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스타일리쉬 양반들의 MUST HAVE 아이템
요즘에는 옛날에 쓰던 남자 모자 취급이지만, 들어가는 정성을 보면 현대시점에서도 충분히 예술품 맞다.

1 설명

과거 한국 남성이 썼던 모자들중 하나. 우리가 가장 흔히 아는 갓(모자)으로서, 그 형태는 조선시대에 정립되었다. 물론 고려시대에도 방립이라고 부르던 물건이 있다.

원래는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쓰개. 그때 당시에는 대나무, 줄기, 갈대 등을 꼬아서 만들수 있는 대부분의 모든 것들로 만들었고 딱히 생긴 모양도 정립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에 투구의 형태로도 사용된 방립이 조선시대로 오면서 발전한 물건이 흑립이다. 말총으로 만드는 흑립이 정립된 것은 성종 무렵으로 보는데, 이는 전해오는 김시습의 초상화에 보이는 갓이 대나무를 엮어 만든 갓임을 근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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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도전에서 묘사된 죽립의 모습.

그래서 용의 눈물, 정도전 같은 여말선초를 다룬 사극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대나무로 된 갓을 쓰고 나온다[1]. 초립과 비슷한 개념. 참고로, 상복을 입을 때는 천으로 만든 백립이나 삿갓을 썼다.

이것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은 갓장이라고 불렸다. 여성 버전으로는 너울이 있다. 항목 참조.

2 조선시대의 흑립

망건과 함께 말총(꼬리털)을 꼬아서 만들었으며 대부분의 조선시대 양반이면 하나씩은 꼭 가지고 있었다.[2] 참고로 중인 이하의 갓이랑 양반의 흑립은 다르다. 중인들이 쓰던 흑립은 약간 작아서 신분을 표시했지만, 양반의 흑립은 가리개가 매우 넓은 편이었다. 물론 비를 맞으면 금방 헤지니 아껴서 써야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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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초중기에는 흑립의 크기가 너무 커지면서 망가지기 쉬웠다. 게다가 말의 꼬리로 만들기 때문에 군수물자로서 중요한 말을 상처입히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은 넓은 갓을 금지시키게 된다. 그래서 구한말 찍힌 사진들을 보면 좁은 챙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조선중기 기록화를 보면 흑립이 대부분 크고 넓다.

참고로, 갓의 넓이는 해당 시대의 왕이 쓰던 익선관의 넓이와도 일치한다. 즉 전쟁이 있거나 경제문제가 터지면 왕부터 모범을 보인다고 크기를 줄였다 한마디로 사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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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찬가지로 비싼 갓통 + 백립.

은근히 관리하기 힘들어서 전용 갓통에 보관했다. 현대로 따지면 명품 코트, 의복 취급이니 애지중지 하는게 당연했다. 양반 이름이 붙은 사람은 최소 하나 이상을 구비했다. 몰락한 양반들은 헤지거나 구겨진 갓을 쓰고 다녔기에, 양반의 가세를 구분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특유의 가벼운 구조 덕분에, 착용할 시에는 갓끈으로 고정시키는게 중요했다. 놓치면 수백만원이 날아간다! 잘 쓰면 묘한 멋이 있다. 현대에 보기에도 가벼운 쓰개가 둥 떠있는 모양이 신기한 편인데,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는 그야말로 절정 간지템으로 취급 받아서 금방 유행을 타게 되었다.

3 현대의 흑립

단발령이 시행되고 점차 수요가 줄어들었다. 해방 이후 1960년대 전까지만 해도 간간히 노인분들이 쓰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갓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 이것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민족종교갱정유도쪽 사람들이거나 굿을 하는 중인 무속인, 공연중인 전통 예능 계승자들이다. 그냥 한복을 즐겨입는 사람도 갓은 안 쓰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비싸고 불편한 물건이다(…).

현대 일반인의 기준으로 볼때 '전통의상에서 머리에 쓰는 물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이거다. 가끔 1000냥 가게에서 팔리기도 하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 정말이지 대충 만든게 수두룩하다.[3] 불교용품점에서도 종종 파는데, 대부분 무속인들의 장식품용이다.

제대로 만든 갓은 굉장히 아름다울 뿐더러, 중력을 무시하는듯한 독특한 멋이 있다. 18세기에 갓을 처음 본 서양인들은 조선인들이 만들어낸 갓에서 어마어마한 손재주와 가볍고도 우아한 모양새에 놀랐다고.[4]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로 갓일(갓을 만드는 일)이 등록되어 있다. 그만큼 힘들고 손재주가 많이 필요하다. 제대로 만든 갓을 보면 알겠지만, 전통 문화 중에서도 정말 장인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섬세하고 고된 작업이다.

4 평가

필요성 면에서는 여러모로 조선에서도 이견이 많았다. 흥선대원군이 조선후기 온갖 모자들의 챙을 줄이라는 명령을 한 걸 보면 알겠지만, 조선 여성들의 가체와 함께 대표적인 낭비(…)의 소산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가볍고 통풍성이 좋아서 더울 때는 나름대로 훌륭한 모자였다. 실학파에서는 비를 막아주지 못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잘 생각해보면 고급모자류 중에서 비를 막아주는 물건은 현대에도 없다(…). 그리고 비가 올 때는 갈모라고 따로 갓 위에 덮어 쓰는 방수용 모자가 따로 있었다.

흑립은 대표적인 신분제의 상징인데다가, 민족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외국의 귀족제 사치품들을 생각해보면 딱히 조선의 양반들만 이상했던 건 아니다(…).[5] 연구자들 중에는 오히려 조선시대 장인들의 손재주나 근면성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분석하는 사람이 많다.

참고로 흑립은 너무 섬세한 물건이라서, 외국으로 반출되는 경우가 적었다. 하지만, 초립, 패랭이는 왠지 모르게 파리에 전파되어 여성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파리에서 인기인이었던 홍종우도 있고 동양 문화가 널리 수입되었던 시절이었으니
  1. 정도전에서 묘사된 정몽주의 경우처럼 발립을 혼용하여 시대상을 더더욱 돋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다.
  2. 허생전에서도 언급된다. '제주도의 말총을 매점매석했더니 온 조선의 부를 손에 넣게 되었다'는 묘사가 괜히 들어간게 아니다!
  3. 흥선대원군이 괜히 절약하겠다고 째째하게 챙 넓이를 줄인게 아니다(…). 갓이나 말총이 많이 유통되었던 과거에나 쓰고 다닐 만한 물건이지 현재는 제대로 만들어서 관리하려면 등골이 휠 정도로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조상님들은 대체 이걸 어떻게 쓰고 다닌거냐
  4. 풍모가 좋은 선비가 제대로 만든 갓을 쓰면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여러모로 중세 조선에서는 간지템, 패션 아이템의 최선두였던 셈.
  5. 민주주의 시대에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신분제도, 왕정, 독재자 같은 비민주적인 계급 시스템들은 실용성보다는 하위 계급의 부를 갈취하고 과시하는데 주력할 수 밖에 없다. 조선후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왕조국가들이 그랬는데 딱히 조선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