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통행체계)

ナナサンマ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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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왼쪽은 730 시행 직전의 우측통행 모습이고, 오른쪽은 현재의 좌측통행 모습이다.

관련 동영상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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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현 일대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반환된 이래 6년간 자동차에 대한 통행방향의 유예 기간을 거쳐 정식으로 바뀐 통행 체계이며, 1978년 7월 30일부터 적용된 통행 체계이다. 통행 체계는 종전에는 우측 통행이었으나, 다른 일본 본토(규슈, 시코쿠, 혼슈, 홋카이도, 쓰시마 섬 등)와 마찬가지로 좌측 통행으로 변경하여 오키나와에 남아 있었던 왼쪽 운전대 차량들은 전부 타이완, 필리핀, , 사이판 등지로 수출하였다.

오키나와는 19세기 말에 본국 일본을 따라 좌측통행이 되었지만,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미군정이 오키나와를 통치하게 되면서 미국을 따라 우측통행으로 전환했다. 미국은 애초에 오키나와를 한반도나 대만처럼 '원래 일본 땅'이 아닌 '일본이 침략해 뺏은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1] 즉, 애초에 미국은 오키나와를 일본에 돌려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오키나와는 1972년에 미국에서 일본으로 반환되었고, 일본 본토에 비해 매우 작은 면적을 가지는 오키나와가 굳이 일본 본토와 다른 통행방향을 택할 이유가 없었기에 통행방향을 좌측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2 진행

1978년 7월 29일 22시부터 오키나와현 전역에서 긴급 자동차을 제외한 자동차의 통행이 금지되어, 8시간 후인 다음날 6시를 기해, 자동차는 좌측 통행이 되었다. 도로 표지, 도로 표시 등의 변경은 이 8시간의 자동차 통행 금지 시간에 일제히 전환이 이루어졌다. 간선 도로에서는 미리 좌측 통행용의 표지나 신호를 설치해 두어, 이것들을 커버로 덮어 두고, 자동차의 통행을 멈춘 8시간 사이에 그 커버를 벗겨서 우측 통행용의 표지에 씌워 효율적으로 변경하였다. 차선의 우쪽 좌회전 표시도, 화살표 부분을 덮는 등 8시간 내에 좌측 통행용으로 전환했다. 이 방법은 발안자의 이름을 따서 '구다카 방식'으로 불렸다.

작업에 따른 교통정리는 오키나와 현경만으로는 대처 할 수 없어, 경시청을 비롯한 전국 각 현경의 경찰관들이 지원하러 오기도 했다. 그래도 변경 당시에는 각지에서 자동차끼리의 접촉사고 등 소규모의 교통사고가 빈번했으나, 사망 사고 같은 대형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불과 8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일제 전환이 가능했던 요인의 하나로, 1978년 당시 오키나와현에는 노면전차가 없었던 것[2]이 꼽힌다.[3] 노면전차를 자동차에 맞추어 우측 통행에서 좌측 통행으로 변경하려면 모든 차량과 승강장의 구조를 수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시가키 시에는 이를 기념하여 명명된 730교차로가 있고, 이 곳에 기념비도 있다. 2008년 7월 30일에는 730의 3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여 기념비를 730기념공원에 다시 설치되었다. 그리고 미야코지마 시에는 730기념탑이 있다. 또한 오키나와 현청 앞에도 기념비가 있다.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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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키나와는 19세기까지 류큐 왕국이라는 독립국으로 있어 청나라사쓰마 번에 조공하고 있었지만 일본이 군사를 동원해 점령하고 류큐 왕국을 멸망시켜 일본령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본토와는 이질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고, 식민지마냥 일제에 핍박받은 역사도 가지고 있기에 일본에 대한 귀속감이 '본토에 비해' 강하지 않다. 오키나와 참조.
  2. 사실 나하에 있었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박살났고, 대중교통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자동차 오타쿠 미국이 복구하지 않았기에 사라졌다.
  3. 홍콩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반환 후에도 중국 본토처럼 우측 통행으로 바뀌지 않고 영국령 시절의 좌측 통행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스웨덴의 경우 시가지를 지나가는 노선은 그냥 폐선시켜버리고, 일부 교외지역 노선만 계속 좌측통행으로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