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che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약칭 BiFan[1]
1 개요
[1]
1997년 국내 최초로 판타스틱 장르의 영화축제로 시작하여, 2015년 19회를 맞이하였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더불어 가장 성공한 국제영화제로 손꼽지만, 더불어 전직 부천 시장의 뻘짓으로 영화제가 파행될뻔한 과거가 있다. (아래 "2005년 PiFan 파행" 참고)
판타스틱 장르뿐만 아니라 SF, 호러를 넘나들며 비오는[2] 여름밤에 보기 적절한 영화가 많다.
상영관은 한국만화박물관[3], CGV 부천소풍[4], CGV 부천, 부천시청(잔디광장/어울마당/판타스틱큐브), 롯데시네마 부천, 부천체육관, 복사골문화센터[5], 오정아트홀, 소사구청, 시민회관[6], 송내어울마당, CGV부천역이며, 상영관들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영화제 기간동안 운영한다. 그냥 7호선을 셔틀 삼아 이동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7]그리고 이어지는 온수종착편욕
12회때 베이커가의 망령을 상영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명탐정 코난 극장판을 16기까지 상영하였다.[8] 이 때문에 본의아니게 강제정모를 하는 경우가 있다. Pifan의 횟수와 코난 극장판 기수가 일치한다는 건 비밀
1997년 1회 영화제 당시 곤 사토시의 《퍼펙트 블루》와 오시이 마모루의 《토킹 헤드》(이건 거의 실사영화에 애니는 10분 남짓 나온다.)같은 작품이 상영하면서 인기(줄을 섰다가 끝내 매진되면서 1회 상영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야 했다)를 끌었고 이후로 《왕립우주군》을 비롯한 여럿 애니들을 대거 상영했다.
2012년에는 전해 PiFan의 인기 작품을 재상영하는 "PiFan 로드쇼"로 명탐정 코난 - 침묵의 15분을 상영했다. 하지만 이후 명탐정 코난이 PiFan에 등장하는 일은 ㅇ벗었다 [9]
원래 Puch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PiFan)이라고 썼으나, 2015년부터 Buche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BiFan)으로 표기한다. 2000년 7월에 개정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의해 부천은 Bucheon으로 표기하는데, 부산국제영화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PiFan'으로 유명해져버린 탓에, 2000년에 지명·행정구역명 등의 공식 로마자 표기가 현행과 같이 바뀌었음에도 영화제 명칭은 15년이 지나서야 개칭되었다.
2 역대 상영작
3 2005년 PiFan 파행
종전에 잘 하던 김홍준(영화감독 출신)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이들을 갑자기 이유도 없이 해임[10]하고 시장의 지인들을 집행위원장에 앉혀놓으면서 반발이 거셌다. 씨네21에 기고하는 달시 파켓같은 해외 영화기자도 비난했고, 방콕 국제영화제 및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참가하던 국내외 영화인이 이를 항의하고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홍건표 부천시장은 온 가족이 보기좋은 영화제로 만들겠다라고 판타스틱 영화제 취지도 모르고 나서면서 더 까임을 받았는데 홍 시장이 부천 시장 이전에도 2002년 부천시정발전연구소 소장 시절에 영화제가 마니아 위주 영화제라는 걸 못마땅해 상영작 및 여러가지에 대하여 딴지를 걸면서 문제를 일으킨 바 있었다. 이 때 김홍준 집행위원장과 갈등을 빚어서 개인적 감정을 가졌다는 게 정설이다. 결국 부천시장이 된 지 1년 만에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집행부를 물갈이했는데 결국 낙하산 논란이 된 집행위원장(아무개 대학 교수로 보수적인 컬럼을 쓰고 새누리당이나 홍건표를 지지했기에 제대로 낙하산이라는 비난이 컸다...)이 중도 하차하면서 몽정기 2의 정초신 감독이 임시 위원장을 맡았는데 벼룩시장 부천지, 부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말만 집행위원장이지 자기들끼리만 영화제 집행을 맡는다면서 내가 허수아비냐고 분노했다.
더불어 김홍준 위원장을 비롯한 전직 집행부인사들은 서울에서 리얼 국제판타스틱 영화제를 열어 맞대응을 했는데 예산이나 여러 모로 뒤쳐졌음에도 리얼 국제판타스틱 영화제가 당시 부천판타스틱보다 관객 수가 압도적이었다.
이런 논란 속에 그 해 영화제 관객 수는 사상 최저를 기록하였다. 다른 영화제에서 보통 4 ~ 5만 이상 관람객이 오던 거와 대조적으로 겨우 1만을 넘기는 수준이었다. 우습게도 온 가족 영화제라면서 연 야외행사에서는 무료이고 온 가족들이 모여 10만 이상이 오긴 했지만 영화제와 별로 상관도 없는 야외행사였다. 당연히 시장이 백기를 들었으며 나중에 재선에 실패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리얼 국제판타스틱은 1회로 막을 내려버렸다. 사실 예산이나 여러 모로 어려웠던 점도 컸지만 부천 시장과 패거리들의 영화제 말아먹기가 사라진 이상 이 영화제는 존속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10년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똑같이 새누리당 시장시의 간섭으로 영화제가 난리를 겪더니 파행 위기에 처하면서 앞 글자에 부가 들어가는 두 도시 국제영화제가 정치권 외압 및 간섭으로 박살나고 있다. 뭐 광주국제영화제나 충무로 영화제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4 BiFan 레이디와 가이(홍보대사)
거의 매회 홍보대사 역할인 BiFan 레이디를 선정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2006년(10회)에는 최초로 남성 배우인 BiFan 가이도 선정되었다.
- 역대 BiFan 레이디/가이
- 1회(1997년) : 강수연
- 2회(1998년) : 추상미
- 3회(1999년) : 진희경
- 4회(2000년) : 배두나
- 5회(2001년) : 故 장진영
- 6회(2002년) : 하지원
- 7회(2003년) : 박한별
- 8회(2004년) : 없음
- 9회(2005년) : 장신영
- 10회(2006년) : 박중훈, 이준기
- 11회(2007년) : 송창의, 이완
- 12회(2008년) : 유진
- 13회(2009년) : 이영진
- 14회(2010년) : 황정음
- 15회(2011년) : 박보영
- 16회(2012년) : 박하선
- 17회(2013년) : 이현우, 후지이 미나[11]
- 18회(2014년) : 심은경
- 19회(2015년) : 권율, 오연서
- 20회(2016년) : 없음
5 기타
판타스틱 영화제로서 호러, 고어, 어드벤처 다양한 소재들이 상영한다. 심사위원장들도 이 장르에선 꽤나 유명한 이들이 많으며 심야특별 제한구역 상영회에선 피칠갑의 고어 영화들만 골라 상영하기도 한다.
트로마 영화 연속 상영회를 비롯한 자리를 가져서인지 트로마의 로이드 코프먼이 이 영화제에 꽤 애정이 크다. 더불어 심사위원장으로서 한국에도 왔으며 이후로 종종 영화제 게스트로서 자발적으로 오기도 했다. 그 밖에도 스튜어트 고든, 브라이언 유즈나, 어빈 커슈너 같은 영화인들이 심사위원장으로 한국에 방문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오랫동안 묻혀졌던 한국 영화 재상영도 이뤄지는데, 《우주괴인 왕마귀》를 오랜만에 무료 상영하기도 했다.
상영되는 애니메이션을 아이들과 함께 보기위해 왔다가 화들짝 놀라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초창기 《왕립우주군》이 상영할 당시 술에 취한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어떠한 짓을 하려던 장면에 기겁해,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엄마들이 꽤 보였다는 후문.- ↑ 정식으로는 B와 F만 대문자로 쓰고, 나머지는 소문자로 쓴다.
- ↑ 영화제 기간 중에는 반드시 사흘 이상 폭우가 쏟아지곤 한다. 오죽하면 '우천국제영화제'하는 농담이 나올 정도일까? 참고로 14회 당시에는 건담 극장판을 연달아 상영하는 3~4일째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많은 건덕들을 고생시켰다. 물론 여름 7~8월에 영화제를 하니까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2012년 16회 때처럼 영화제 기간 내 비가 한번도 오지 않은 경우도 있다.
- ↑ 2010년부터
- ↑ 2016년부터 부천역관으로 상영이관
- ↑ 2009년까지.
- ↑ 송내어울마당으로 상영이관
- ↑ 서울 지하철 7호선 부천~부평 구간 연장 전까지는 순전히 셔틀버스와 시내버스 노선들로 이들 상영관 간 이동을 커버했다.
- ↑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막판을 상영하기도 했다.
- ↑ 2015년 19회때 19기 극장판인 화염의 해바라기를 상영하면서 3년만에 명탐정 코난을 상영했다.
뭐,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2015년 부터는 Pifan이 아니라 Bifan 이게 되니 꼭 틀린 말은 아니다. - ↑ 나중에 명분이라고 들이댄 게 너무 마니아들만 보러온다. 아 온 가족이 봐야할 거 아니냐는 헛소리.
판타스틱 영화제라는 것도 정말 모르는 이들 답다또 다른 이유라고 들이댄게 영화제 개막식에서 김홍준 위원장이 축사를 하는데 자신의 이름을 빠뜨렸다는 황당한 헛소리를 지껄였다. 김홍준 위원장은 이후 충무로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도 맡았는데, 그 때도 똑같은 일을 당했고, 그 영화제는 몇 년 뒤 결국 망하고 말았다. - ↑ 외국인으로서는 최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