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PC 제품 역사 | ||||
PC | XT | jr | AT | PS/2 |
1 개요
IBM이 IBM PC(5150), IBM PC XT, IBM PC AT에 이어 1987년에 발표한 제 3세대[1] IBM PC 규격 컴퓨터이다. PS/2는 Personal System/2의 약자.
IBM은 1981년에 IBM PC를 발표하면서 개방 아키텍처 정책을 적용했고 이에 따라 시장에는 IBM PC의 호환기종이 성공적으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개방 아키텍처의 특성상 호환기종이 넘쳐난다고 해도 IBM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그다지 없었고 컴팩이 1986년, IBM보다 앞서서 80386을 채용한 IBM PC 호환기종인 Deskpro 386을 발표하면서 PC 시장의 주도권이 IBM에서 호환기종 제조사들로 넘어가는 사건마저 생기자[2] 이에 IBM이 성장하는 PC 시장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발표한 후속기기가 바로 PS/2. PS/2의 특징은 개방 아키텍처 정책을 철회하고 폐쇄 아키텍처로 전환한 것이다.
PS/2는 MCA(Micro Channel Architecture), VGA 등의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지만 PC 시장의 주도권은 이미 완전히 넘어가버린 뒤였고, 폐쇄 아키텍처라는 점과 비싼 가격[3] 때문에 시장의 반향은 얻지 못했다. 다만 IBM 브랜드의 신뢰성 덕분인지 기업시장에서는 꽤 팔렸다고 한다. 결국 IBM은 PS/2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데스크탑 PC 쪽에서는 사실상 손을 떼다시피 해버리고, 아키텍처의 주도권은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호환기종 제조업체들의 일명 윈텔 진영으로 넘어가게 된다. [4] 여담으로 IBM PC는 애플 II와 똑같은 테크를 밟았다. 애플 II를 개방 아키텍처로 만들었다가 1986년 애플 IIGS에서 폐쇄 아키텍처로 전환했으나 별 재미를 못보고 애플 II 시리즈 자체를 접어버렸다. 다른 점이라면 IBM PC는 IBM이 손뗀 뒤로도 계속해서 발전해서 결국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것 정도.
2 모델
1987년 4월 발표 당시의 모델은 다음과 같다. (단, 모델 25는 87년 4월 당시에는 없었고 수개월 후에 추가된 엔트리 라인이다)
- Model 25 (8525) : 8086@8MHz[5], 512KB 메모리 탑재 (640KB 확장 가능), 8비트 ISA 채널, MCGA 그래픽, 본체/모니터 일체형.
- Model 30 (8530) : 8086@8MHz, 640KB 메모리 탑재, 8비트 ISA 채널, MCGA 그래픽, 데스크탑형.
- Model 50 (8550) : 80286@10MHz, 1MB 메모리 탑재 (8MB 확장 가능), 16비트 MCA 채널, VGA 그래픽, 데스크탑형.
- Model 60 (8560) : 80286@10MHz, 1MB 메모리 탑재 (16MB 확장 가능), 16비트 MCA 채널, VGA 그래픽, 타워형.
- Model 80 (8580) : 80386DX@16MHz, 1MB 메모리 탑재 (16MB 확장 가능), 16/32비트 MCA 채널, VGA 그래픽, 타워형.
모델 25, 30은 기존의 IBM PC XT(5160)를, 모델 50, 60은 IBM PC AT(5170)를 대체하는 기종이었고 모델 80은 PC AT의 상위 모델이자 IBM제 386 PC로서 처음 나온 기종이었다.[6] 초기의 릴리즈는 저랬으나 이듬해인 1988년에 모델 25, 30도 80286 모델이 나왔고 후기로 가면 하위 모델인 모델 25, 30에 80386SX를 달기도 하고 모델 80은 80486 탑재 모델도 나왔다. 당연히 8087, 80287 등의 부동소수점 연산용 보조 프로세서를 설치할 수 있었고 하드디스크가 없는 일부 모델은 옵션으로 하드를 장비할 수도 있었다.
3 하드웨어
3.1 마이크로 채널 아키텍처 (MCA)
PS/2는 기존의 AT 버스(ISA)를 내다버리고 새로운 시스템 버스로 MCA를 채택했다. 당시 ISA는 16비트 채널의 한계로 인해 느린 속도와 제한된 접근자원, x86 CPU에의 하드웨어적인 의존성(즉, x86 이외의 다른 아키텍처에서의 사용이 어렵다) 등등으로 성능 한계를 드러내고 있던 시점이었다. MCA는 IBM의 메인프레임, 워크스테이션에서 사용하던 버스 구조를 베이스로 만든 32비트 버스로 ISA를 월등히 능가하는 성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문제는 IBM이 이 규격을 호환기 업체에 개방하지 않았다는 것. 결국 PS/2에 사용하는 주변기기는 모두 PS/2 전용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PS/2의 폐쇄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이 MCA였다.
여담으로 IBM의 이 꼬장질 때문에 나온 규격이 EISA(Extened Industry Standard Architecture). MCA를 IBM이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1988년 컴팩, HP, NEC 등을 비롯한 호환기 제조업체[7]가 주도하여 ISA를 대체할 32비트 버스 개방 규격으로 EISA를 만들었다. EISA는 PCI 규격이 나올 때까지 PC 호환기의 데이터 버스로 쓰였고 이론적으로는 MCA에 필적하는 성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ISA와의 호환성을 중시하다보니 최적화가 어려워 성능이 MCA에 비해 좀 떨어졌다.
3.2 그래픽
모델 25와 30은 MCGA(Multi Color Graphics Array), 모델 50부터는 VGA(Video Graphics Array)를 내장했다. 양쪽 다 그래픽 카드의 형태가 아닌 메인보드에 내장된 회로의 형태였다. 'Array'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당시의 VGA의 성능은 256KB의 비디오 메모리를 갖추고 320x200 해상도에서 262,144 팔레트 중 256 컬러, 640x480 해상도에서 262,144 팔레트 중 16컬러를 표현할 수 있는 성능으로 CGA(PCjr의 CGA plus 포함), EGA와도 상위호환성을 갖추고 있었다. 동시대의 개인용 컴퓨터 중에서 해상도는 몰라도 색상 표현이 떨어진다는 이미지가 있던 IBM PC지만 VGA의 등장으로 그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었고 PS/2 전용이었던 VGA를 사용하고 싶었던 호환기 사용자들을 위해 그래픽 카드 제조사들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IBM의 VGA와 호환성이 있는 그래픽 카드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아 VGA는 PC 호환기 시장에서도 표준 그래픽 카드가 되었다.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VGA가 '그래픽 카드'와 동의어로 사용될 정도. 기타 VGA에 대해 상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MCGA는 VGA와 마찬가지로 320x200 해상도에서 262,144 팔레트 중 256 컬러를 사용 가능했지만 640x480 해상도에서는 흑백 출력만 가능한 VGA의 너프버전이었다. VGA의 320x200 해상도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는 MCGA에서도 똑같이 실행되었다. 텍스트 모드는 VGA, EGA에 준하는 고해상도 컬러 텍스트 모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CGA와의 호환성은 있었지만 EGA와의 호환성은 없었다고. VGA는 비디오 카드의 형태로도 만들어져 시장에서 대성공했지만 이쪽은 너프버전이라 그런지 비디오 카드 형태로 만드는 업체가 없었다고 한다.
또한 IBM은 옵션으로 MCA 슬롯에 장착할 수 있는 8514/A[8]라는 비디오 카드를 제공했는데, 1024x768 해상도에서 256색을 표현하는 당시로서는 굉장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용 이미지 처리 프로세서를 탑재해서 이미지 출력 속도도 VGA보다 훨씬 빨랐다. IBM이 8514/A를 제공한 것은 GUI OS인 OS/2를 원활하게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문제는 이 작자들이 8514/A의 기술규격을 꽁꽁 숨겨놓는 바람에 VGA처럼 호환카드가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이후의 서드파티 비디오 카드는 VGA를 확장한 SVGA로 독자적인 발전을 하면서 PS/2에서만 쓸 수 있던 8514/A는 역사의 그늘에 묻혀버리게 된다(...). 엄청 나중에 호환 카드가 나오긴 나왔다지만 이미 세상은 SVGA가 판치고 있어서 망했어요. 이 8514/A는 나중에 XGA로 발전하는 물건이지만 XGA도 결국은...
3.3 사운드
업무용 컴퓨터 제조사(...) 이미지를 끝까지 떨쳐버리지 못한 IBM은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PS/2에도 사운드 관련 하드웨어를 넣지 않는 병크를 저질렀다. 그래서 IBM PC AT까지의 PC와 마찬가지로 PC 스피커밖에 안들어있다. 이건 80386/80486을 쓴 후기모델도 이 모양이다.
사운드 카드를 달면 되지....싶겠지만 폐쇄규격인 MCA를 사용한 덕분에 사운드 카드를 달기도 힘들다는 함정이 있었다. 시장에 나와있는 사운드 카드는 죄다 ISA용이었다. 애드리브나 사운드 블래스터가 MCA로 나오긴 했지만 그게 국내에선 구하기가 무진장 힘들었던 터라 애초에 누가 PS/2를 써야 말이지 당시에 PS/2를 썼던 극소수의 국내 유저들은 대부분 눈물을 머금고 PC 스피커로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4 운영체제
1987년 발매 당시 번들된 운영체제는 PC-DOS 3.30. 그리고 PS/2와 함께 발매한 OS/2가 있다.이름부터 짝을 맞춰 지었고 OS/2의 원활한 구동을 위해 전용 그래픽카드인 8514/A를 만들었을 정도로 PS/2의 운영체제로 의식하고 만든 OS지만 물론 PS/2에서만 구동되는 것은 아니다.
각 OS의 상세한 내용은 링크된 항목을 참조.
5 PS/2의 유산
PS/2 자체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PS/2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게 상당히 많다. PS/2 자체는 폐쇄 아키텍처였으나 PS/2에서 처음 도입한 규격이 호환기에 영향을 끼쳐 표준화된 게 상당히 많기 때문.
- 16550 UART (시리얼 포트)
- 1.44MB 2HD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 다만 3.5 인치 드라이브 자체는 PS/2 이전부터 있었고(매킨토시는 처음부터 3.5인치를 사용했다) IBM PC 호환기 중에도 채용한 사례가 있다.
- VGA
- PS/2 포트
- ↑ 5150과 XT는 사실상 마이너체인지 수준으로 거의 비슷한 구조라서 같은 세대로 본다.
- ↑ 심지어 당시만 해도 개발도상국에 속했던 대한민국의 금성반도체도 IBM보다 앞서서 1986년에 386 기종을 내놓았다.
- ↑ PS/2만의 문제는 아니고 원래 이전 모델들도 오리지널 IBM제는 호환기보다 많이 비쌌다.
- ↑ 이후에도 IBM이 PC 규격 컴퓨터를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레노버에 PC 사업을 매각하기 전 까지 IBM제 x86 기반 PC나 워크스테이션은 잘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PS/2나 그 이전처럼 새로운 아키텍처를 주도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시장에 나와있는 표준 규격에 맞춘 일반 완제품 PC같은 물건이다. 손을 뗐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
지금은 다 팔아버리고 정말로 손뗐다 - ↑ 8088이 아니라 8086을 채용했다.
- ↑ 인텔 80386 시리즈를 처음 탑재한 IBM PC 계열 컴퓨터는 IBM제가 아닌 컴팩의 Deskpro 386이었다. PS/2 모델 80보다 1년 앞선 1986년에 발매되었는데 IBM PC 아키텍처의 주도권이 IBM에서 호환기기 업체로 넘어간 분수령으로 평가받는 기종이다.
- ↑ 9개의 업체가 컨소시엄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들을 'Gang of Nine'이라고 부른다.
- ↑ VGA와 달리 이름이 숫자로만 되어있는 이유는 이 제품이 IBM의 8514 모니터와 짝이었기 때문이다. 8514 모니터는 1987년 당시에는 보기 힘든 1024x768 해상도를 지원하는 16인치 사이즈의 모니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