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U 프린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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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hre Prinz und Du bist König (프린츠를 타고 왕이 되세요)." - 출시 당시 광고.[1]

1 개요

NSU 프린츠(NSU Prinz)독일(당시 서독)의 자동차 회사인 NSU가 1958년부터 1973년까지 생산한 경차[2]소형차의 명칭이다. 전쟁 이후 NSU가 처음 생산한 자동차이며, 오토바이 업체로서의 경력을 잘 살린 차로서 NSU의 꾸준한 돈줄이 되어 주었다.

2 역사

2.1 프린츠 30(프린츠 I, II, III)

1957년 9월, NSU에서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새로운 경차를 하나 소개한다. 이때 공개한 차가 바로 프린츠(왕자)로, 150대를 시험 생산한 뒤 1958년 3월 11일부터 본격적인 대량생산에 돌입했다. 프린츠는 꼿꼿한 지붕의 4인승 2도어 세단이었고, 어른 4명이 타기에는 다리 공간이 좀 부족했지만 4명을 태울 수 있는 수준에다가 문이 넓게 열리는 덕분에 뒷좌석에 쉽게 탈 수 있었다. 또한 차량 앞에 달린 기본 트렁크[3]만이 아니라, 뒷좌석 뒷편에는 옷가방 하나가 들어갈 만큼, 좁지만 깊은 수납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

프린츠 II프린츠 III

뒷엔진 뒷바퀴굴림 설계에 공랭식 2기통 583cc 20마력 엔진이 4단 수동변속기와 배치되어 있었고, 오토바이 제조사였던 경험을 잘 살려 설계한 덕분에 차량 자체의 설계도 상당히 단순했으며, 심지어 충돌 상황을 대비한 크럼플 존도 설계했다. 엔진 역시 소음이 심하다는 것[4]만 빼면 연비와 내구성 등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1959년에 등장한 프린츠 II부터는 고급화와 함께 모든 단수에 싱크로메쉬가 들어간 4단 변속기가 장착되었고, 수출 사양인 30E에는 30마력 엔진을 장착했다가 1960년 10월에 등장한 프린츠 III에는 23마력 엔진과 함께 새로운 안티롤바와 30마력 엔진을 장착했다.

1950년대 말에는 브라질 현지 생산도 시도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고, 대신 칠레오스트레일리아에서 현지생산이 이루어졌고 이집트에서도 Ramses라는 이름 하에 판매되었다. 1962년 12월 21일까지 94550대의 프린츠 30 시리즈가 생산되었다.

2.2 슈포르트 프린츠

1958~1968년 사이에 생산된 쿠페인 슈포르트 프린츠(Sport Prinz)는 이탈리아 베르토네에 있었던 프랑코 스칼리오네(Franco Scaglione)가 디자인을 담당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베르토네 공장에서 차체 250대를 제작하는 등 7년 간 생산을 담당했으나, 나중에는 독일 네카르줄름(Neckarsulm)에 위치한 Drautz(이후 NSU가 이 회사를 인수한다)가 생산을 담당했다. 엔진으로는 프린츠의 583cc 엔진을 그대로 사용했으나 1962년 후반부터는 598cc 엔진을 장착했다. 단종 때까지 20831대가 생산되었으며, 로터리 엔진을 장착한 NSU 스파이더가 이 차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2.3 프린츠 IV

이어 1961년 6월에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완전신형 프린츠가 공개되었다. 쉐보레 코베어(Corvair)의 영향을 받은 차체 디자인은 새로웠고, 598cc 2기통 공랭식 엔진을 뒤에 장착했다. 이전 프린츠처럼 우수한 설계를 갖추었으며, 오토바이 제작사로서의 흔적 역시 편심봉(eccentric rod) 형태의 캠축과 크랭크케이스 안에 설치된 다이나스타트(dynastart. 시동 모터 겸 발전기)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나중에는 4기통 엔진과 일반적인 모터 및 발전기가 장착되었다. 크기 역시 지난 세대였던 프린츠 I, II, III의 3.1미터에서 3.4미터로 커졌고, Ramses II(이집트)와 NSU P-1000 등의 이름으로 해외 판매도 지속되었다. 히터, 전동 시계, 주차등을 비롯한 장비들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 경쟁차 대비 고급스러웠다.

여담이지만 1968년에 영국 오토카(Autocar) 지에서 프린츠 IV를 시승한 내용에 의하면, 최고시속 113km/h에 96km/h까지의 가속 시간이 35.7초[5]였으며, 시승차의 가격은 관세를 포함해 597파운드(미니 850은 561파운드)였다. 또한 이 시승기에서는 경쟁력 있는 가격과 적절한 성능을 언급하면서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 있을 건 다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전 세대처럼 높은 신뢰성과 연료 효율, 운전 재미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 속에 1973년 7월 31일까지 꾸준히 생산되었으며, 1970년 봄에는 50만번째 프린츠가 생산되었고 단종 때까지 625171대가[6] 생산될 정도로 상당한 성공을 이끌어냈다.

2.4 프린츠 1000과 TT/TTS(Typ 67a)

초기형 NSU 프린츠 1000.초기형 NSU 프린츠 1000 TT.[7]

196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는 차체 크기를 3.4미터에서 3.76~78미터까지 키운 프린츠 1000[8]과 1000 TT가 공개되었다. 차체를 키우면서 엔진 역시 4기통 OHC 공랭식 엔진으로 바꾸었고, 996cc 40마력과 1085cc 54마력 엔진이 각각 장착되었다. 페이스리프트도 이루어져 3점식 후미등과 대형 헤드램프가 장착되었으며, TT는 4점식 헤드램프를 설치하고 12인치나 13인치 휠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했다. 스포츠카급의 활기찬 성능과 뛰어난 연료효율 및 신뢰성, 심지어는 훌륭한 핸들링과 코너링이 같이 합쳐지면서 반응이 상당히 좋았고, 1965년에는 덩치를 4미터까지 키우고 디자인을 각지게 손본 뒤 1177cc 엔진을 얹은 NSU 1200이 라인업에 추가되기도 했다. 다만 스포티함이 좀 떨어진 탓에, 1200 TT는 프린츠 1000의 차체와 1200의 1177cc 65마력 엔진이 장착되었다.

NSU 1000 CNSU 1200 TT

1967년 1월에는 1000에서 프린츠 명칭이 사라지면서 NSU 1000/1000C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앞부분 크롬 바의 디자인이 TT와 통일되면서 엠블럼도 왼쪽에서 중앙으로 위치를 옮겼다. 프린츠 1000 TT도 1967년까지 14292대를 생산하고 나서 1177cc 엔진을 얹은 새 버전을 "NSU 1200 TT"라는 이름 하에 출시했으며, 또한 경기용 차량 스펙에 맞춘 차량인 TTS도 1967년 2월 13일에 출시했는데, 트렁크에 오일 냉각기를 장착하고 996cc 엔진을 70마력으로 튜닝하면서 100km/h까지 가속 시간이 12.3초, 최고시속 160km/h를 기록해 힐클라임 및 서킷 경기에서 우수한 성능을 거두었다.[9]


사진은 1967년식 NSU TTS. 바짝 올라간 번호판과 노출된 라디에이터 외에는 TT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또한 TTS는 경주용 사양으로 83마력 버전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1971년 7월까지 총 2402대의 TTS가 만들어졌고 1200cc급 TT 역시 1972년 7월까지 총 49327대가 생산되었다. 한편, NSU는 1969년에 폭스바겐에 의해 인수되어 아우토 우니온과 합병되었고, 따라서 회사 명칭도 아우디 NSU 아우토 유니온 AG로 개명되었다. 폭스바겐의 입장에서 프린츠와 그 형제차들은 자사의 폭스바겐 비틀 등과 집안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던데다가 아우디 브랜드를 통한 고급 라인업을 원하고 있었고, 따라서 프린츠는 1972년 12월에 단종되어 아우디 50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아우디 50이 폭스바겐 폴로의 형제차임을 감안하자면, 프린츠의 후속은 사실상 폭스바겐 폴로나 아우디 A1로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1. 참고로 프린츠(Prinz)는 독일어로 "왕자"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2. 맨 초창기 차량인 프린츠 I, II, III은 마이크로카로 분류되기도 한다.
  3. 기본적으로 엔진이 뒤에 있었고, 스폐어타이어와 연료 주입구가 같이 들어가 있다.
  4. HonestJohn Classic에서는 프린츠 30의 단점에다가 "승용차보다는 4륜 오토바이같다"고 적어 놓았다.
  5. 동시대의 미니 850는 가속시간이 29.5초였고, 최고 시속은 프린츠와 거의 비슷했다.
  6. 아우디 공식 사이트 기준. HonestJohn Classic에서는 576025대로 기록하고 있다.
  7. 헤드램프 종류와 크롬바의 색상으로 일반형과 TT를 구분할 수 있다.
  8. L, S, C의 3개 트림이 준비되었다.
  9. NSU의 후신인 아우디의 공식 사이트에서는 1976년까지 북미유럽 모두를 합쳐 29번의 우승을 기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