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의 역사를 다루는 항목.
1 선사시대
기원전 5000년에 이미 나이저 강을 중심으로 농업이 행해졌으며, 그 역사는 나일 강이나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만큼이나 오래 되었다고 한다.
2 문명의 시작과 가나 제국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동기는 강력한 문명권을 형성한 지중해 및 이집트 지역과의 지속적인 교류 덕분으로, 사하라 사막을 낙타를 타고 관통한 캐러밴 무역상들에 의해 북부의 문화와 종교, 물산이 전파되었다.
그 이후 소닌케족이 세운 가나 제국[1]이 모리타니 국경 지역에서 존재했으며[2] 가나 제국은 황금과 소금을 교역해서 유럽에서 황금의 땅이라고 불렀을 만큼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이들은 스스로 와가두(목동의 땅이라는 뜻이다)라고 했으나 만악의 근원 유럽 상인들이 가나라 부르면서 가나라 알려져 있다. 가나는 샤나 파라오 같은 통치자를 일컫는 말(우리나라로 치면 왕. 그러니까 가나 제국은 직역하면 왕 제국. 이집트를 파라오 제국으로 부르거나 중국을 천자 제국이라 부르는 거나 마찬가지이다.)이다[3]. 물론 목동의 땅 제국도 이상하긴 하다 가나 제국의 수도 쿰비살레에는 3만 명이 거주했으며, 매우 발달된 조세 제도를 갖추고 있었으나 알 모라비드 왕국의 공격[4]에 사막화까지 더해 경제가 시망하여 11세기 사실상 멸망했다. 다만 왕국 자체는 13세기까지 남아 있었다.
3 리즈시절
이후 무슬림들이 분열되어 세력이 시망하자 소소 제국이 무슬림을 몰아내고 가나를 완전히 멸망시킨 후 말리 일대를 지배했으나 옛날보다 세가 줄어들었다. 한편 남부 지방에는 만딩카족의 말리 왕국이 13세기에 생겨났다. 소소는 캉가바를 침공해 순디아타 케이타의 형제를 모두 죽이고 무능한 통치를 폈다. 이후 캉가바의 왕이 된 순디아타 케이타는 말리를 세우고 키리나에서 1235년 소소 왕국을 격파했으며, 이후 말리 제국이 말리를 지배했다.
말리 제국은 농업이 번창하고 이슬람교를 믿었으며, 니제르 강과 사하라 사막 캐러벨 대상로를 이용해 북아프리카의 여타 이슬람 국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니제르 강의 오래된 모스크로 유명한 팀북투는 상코레 대학이 세워져 학문의 전당이 되었고,[5] 서아프리카 해안지역에서 산출된 막대한 금으로[6]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왕조들과 교역하면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기도 했다. 말리 왕조의 만사 무사(칸칸 무사)[7]는 메카 순례 중에 금을 물쓰듯 하여 카이로의 금 값이 폭락 했다고 한다. 물론 금값이 너무 떨어져서 지중해권과 서아시아 전체의 물가가 엉망이 되었고, 당연히 지역 전체의 경제에 악영향을 주었다. 결국 황제는 일부러 고율 이자를 받기로 하고 시중의 황금을 사들여 물가 안정을 꾀해야 했는 데, 그럼에도 이미 풀린 금이 너무 많아서 금값과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흠좀무.
그러나 만사무사의 이야기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인 거짓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뒤죽박죽 혼합된 이야기라 신뢰성이 낮고 가려들을 필요가 있다. 마치 무한한 황금의 보고를 지닌 것처럼 묘사되는 만사 무사이지만 정작 메카에 도착했던 시점부터 황금전설이 무색하게 자금 부족을 보이고 있었고, 이 때문에 귀향길에는 굉장한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거기에 황금을 펑펑 사용하다 보니 (허망한 전설과는 달리) 곧 제국 전역의 황금이 모두 소진되어 만사무사 당시부터 국가는 기울기 시작했다. 만사 무사와 동일한 14세기의 인물인 중세 최고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만사 무사의 전설이 진동한지 고작 20년 후 팀북투를 찾았고 말리를 '가난한 국가'로 묘사했다. 정리하자면 만사 무사 전설은 한때의 만용과 인간의 호들갑이 결합한 말 그대로 전설일 뿐,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와 관련해 덧붙이자면 만사 무사 시절 지나친 소비 탓인지, 이븐 바투타가 말리에 도달한 시절 말리 제국의 지도자 만사 쉴레이만은 지나친 인색함을 본 이븐 바투타에게 노골적으로 그를 비웃었다. 또한 상당한 요직에 있는 관리에게 초대받은 이븐 바투타가 대접 받은 음식의 보잘 것 없음에 놀라 "고작 이것을 가지고 우리를 청했습니까?"라고 언짢아했더니 "그들로서는 이것이 대단한 대접입니다."라는 응수를 받고 이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음을 깨닫기도 한다.
그나마 호평을 받은 곳이 가오지방이지만 그 호평이라는 게 흑인들의 도시치고는 가장 아름답고 크며, 풍족한 도시라고 하는 것인데, 역으로 말하면 다른 도시들은 정말 보잘 것 없고 가오만이 그나마 볼 만 하다는 뜻이다.
이븐 바투타가 자주 호들갑을 떨며 풍족하다, 대단하다, 풍요롭다는 어투를 상시 사용한 것과는 너무나도 차별되는 묘사이며, 도중에 만사 무사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돈을 먹튀하는 바람에 돈 받으러 왔다가 객사한 상인의 무덤마저 나온다. 어째 세계의 황금시장을 뒤흔드신다는 갑부가 돈이 없어서 알렉산드리아의 상인의 돈을 먹튀하신 모양. 게다가 그 후 사정을 보면 돈 찾으러 온 상인을 암살해버린 느낌마저 풍긴다.
참고로 지금도 말리에서 만사 무사는 죽일놈 취급을 받는데, 국가의 부를 쓸모없는 과시행위로 모조리 소진해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말리의 구술 역사가들의 역사 구술에서는 만사 무사는 결코 언급되지 않고, 언급을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8]
한편 말리 제국이 번영할 무렵 동부엔 송아이[9] 족이 말리 동부 끄트머리의 가오(Gao)를 중심으로 1340년경 왕국을 형성했다. 이후 송아이인들 외에도 투아레그와 투클로르, 월로프의 반란 등을 겪으면서 말리 왕국이 차츰 쇠퇴해 갈 무렵 15세기 송아이의 손니 알리는 말리를 밀어내고 말리 지역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후 아스키아의 치세 동안 송아이는 전성기를 누려 이슬람교가 전파되고 국가 체제가 정비되었다. 그러나 16세기 말 송아이는 내부의 분쟁으로 혼란스러워졌으며, 이후 모로코 사드 왕조의 침략으로 1591년 멸망하게 된다.
송아이인은 멸망하지 않고 덴디 왕국을 세웠으나 몰락해서 큰 세력을 가지진 못 했다. 17세기 모로코인들은 말리의 나이저 강 유역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후 중부 지방에선 1712년 밤바라 족의 바마나 제국이 세구를 중심으로 세워졌고, 그 외에 카르타나 케네두구 왕국이 존재했으며 풀라족은 19세기 초엽 마시나 제국을 세웠다.
4 투쿨로르와 식민지 시대
알 하지 우마르 이븐 사이드 탈은 이름 한번 간지나는 이슬람 성직자로, 1848년 풀라니계 이슬람 국가인 투쿨로르 제국을 세운다. 투쿨로르는 먼저 카르타 등의 작은 왕국을 점령했으며 이후 바마나 제국을 차지했다. 이어 투쿨로르는 통북투까지 지배영역을 넓혀 대제국을 이룩했으나 제국은 영 부실했으며 밤바라족과 풀라족은 제국에 저항했다. 1864년 알 하지 우마르 이븐 사이드 탈이 살해당했으며 이후 이 제국은 몰락해 갔고 결국 1890년 투쿨로르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졸라맨 프랑스령 시절의 깃발. 끓어오르는 나의 힘 힘세고 강한 깃발 가운데의 사람 모양은 '카나가'라고 하는 아프리카의 전통 문양이다.
5 현대사
1958년 말리는 공화국이 되었고 1959년에는 세네갈과 잠깐 연방을 이루기도 했으며,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말리의 초대 대통령 모디보 케이타는 1968년까지 집권하여 산업 국유화와 집단농장을 실시했으나 처절하게 망해서 1967년 말리는 1인당 GDP 48$로 르완다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경제가 시망하고 세네갈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1968년 무사 트라오레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1991년까지 독재 정치를 하는 등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쳤다. 그는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사회주의 정책을 완화시켰으며, 자연재해 원조금을 빼돌리기도 했다. 1977년 모디보 케이타가 사망한 후 그의 장례식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자 그는 반발하여 정치 탄압을 시도했고, 그래도 이후 1979년 민정을 실시했으나 말로만 민정이지 독재는 끝나지 않았다. 1980년대 그는 학생운동을 열심히 진압하고 종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1991년 쿠데타가 일어났고 트라오레는 물러나게 되고 이후 쿠데타의 주동자 아마두 투마니 투레가 집권했다.
1992년 아마두 투레는 코나레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코나레에 의해 말리는 민주화되었으며, 2002년 아마두 투마니 투레가 대통령이 되었다. 말리는 서아프리카에서 베냉과 더불어 가장 민주적인 국가로 2011-12년 언론자유지수는 25위를 기록해 아프리카 2위를 기록했으며 심지어 대한민국보다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만 투아레그족과의 분쟁으로 인해 북부 지방과 동부 지방은 영 상태가 좋지 않다.
투아레그족은 1961년 처음으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1964년 잔인하게 진압당했고, 1990년 다시 반란을 일으켜 가오를 습격했다. 1994년 투아레그족은 가오를 다시 습격했고 송아이족과 분쟁이 일어났다. 1995년 투아레그족의 반란은 대충 해결되었으나 아직도 내전은 끝나지 않고 있다. 말리의 치안은 아프리카에선 매우 좋은 편이지만 북부 지방에선 투아레그 반군과 알카에다[10]가 활동하니 주의하자.
2012년 3월 22일 군사쿠데타가 벌어졌다. 아마두 사노고 대위가 주도한 쿠데타군은 쿠데타를 일으킨 원인이 투아레그족 반군세력에 대하여 속수무책인 투레 정권을 타도했다고 한다. 너네가 그런 소리를 할 입장이 아닐 텐데?하지만 투레 정부는 독재가 아닌 민주정부로서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정권이고 투레 대통령도 2012년 5년 대통령 임기를 다하고 은퇴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말리 여론에선 그렇게 나쁜 반응이 아니라 현 쿠데타 세력이 지지가 낮다. 이런 와중에 유엔까지 비난하고 나섰고 미국은 이런 말리 군부 쿠데타가 되려 알카에다만 좋아할 일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도를 장악한 군부이지만 이들 세력이 그다지 없고, 투레 대통령이 그를 지지하는 다른 군부대 호위 속에서 무사히 피신한 상황이다. BBC 방송은 쿠데타군 규모 및 무장이 빈약하여 정부군이 반격하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한편, 북동부에서는 분리독립을 원하는 투아레그족으로 구성된 '전국아자와드 해방운동'이 반란을 일으켜, 2012년 3월 30일에 군사요충지 '키달'을, 31일에는 '가오'를, 4월 1일에 팀북투를 점령, 사실상 말리 북동부를 장악하였다. (말리 정부는 이들 조직이 알카에다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11]) 결국 이들은 4월 6일 가오에서 아자와드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말리 공화국 헌법 117조는 아프리카 통합을 위해서는 말리 공화국의 주권을 일부 또는 전부 포기할 수 있다는 대인배적 조항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통합은 커녕 자국의 북동부가 아자와드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한 현실은 시궁창.[12]
투아레그족의 반란과 군사쿠데타가 맞물려 군 전투력의 붕괴를 초래, 중부의 군사요충지인 몹티 코앞까지 반군이 진격하자 결국 프랑스가 군사개입하게 됐다. 말리 정부에서는 알카에다와 투아레그 족이 연합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투아레그 족이 점령한 북부지방을 알카에다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주의자가 먹튀(..)해서 3파전이 벌여졌다고 한다. 자세한건 말리 내전 항목에서 서술.
2015년 11월 20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으로 추정되는 무장요원이 수도에 있는 고급 호텔에서 170명을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였다.
2015년 11월 말리 호텔 인질극 항목 참조.- ↑ 가나 공화국과는 다르다. 가나 공화국은 중서아프리카에 있고 가나 제국은 북쪽에 있다. 가나 공화국은 가나 제국에서 이름을 따왔을 뿐이다.
- ↑ 가나의 수도(로 추정되는) 쿰비살레는 모리타니에 위치해 있으며, 아직까지 완전히 발굴되지 않았다.
- ↑ 이는 잉카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잉카 제국' 이라 하지만 원래 이름은 '타완틴수유(네 방향의 나라)' 이며, 잉카는 통치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 ↑ 지배 민족인 소닌케족과 왕들이 이슬람교를 믿지 않고 토착종교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 ↑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로, 989년에 세워졌다. 참고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볼로냐 대학은 거의 백 년 뒤인 1088년에 설립되었다. 이 대학에는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으로 엄청난 양의 장서를 갖추고 전 세계에서 학생들을 받았는데, 장서가 최소 40만, 최대 70만 권에 달했다고 한다. 상코레 대학에는 외국인 학생 비율이 무척 높았으며, 쿠란은 물론이고 수학, 철학, 지리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의학, 법학을 가르쳤다. 또 대학은 그 자체로 이슬람교 선교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 ↑ 니제르 강이 나일 강처럼 여름에 홍수가 나고 난 뒤에는 물이 빠지면 강바닥에서 막대한 양의 황금을 채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니제르 강의 범람원은 폭 240km, 길이 480km에 달해 그만큼 광범위한 곳에서 황금을 채취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 ↑ '만사'는 말리어로 '황제'라는 뜻이므로, '황제 만사 무사'라고 쓰면 '황제 황제 무사'가 되어버린다(...)
- ↑ 출처 - 히스토리 채널. 역사의 진실을 깨워라. 아프리카의 엘도라도 팀북투
- ↑ 일반적으로 송가이나 송하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발음은 soŋaj로 팀북투나 가오 지방에서는 송오이라고 한다. 이들은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쓰며 만딩카나 소닝케족과는 매우 이질적이다.
- ↑ 둘다 이슬람이지만 모계적인 면이 강한 투아레그족과 수꼴 알카에다는 당연히 사이가 안 좋아서 양쪽이 힘을 합치기 어렵다.
- ↑ 알카에다와 투아레그의 목적은 다르다. 알카에다는 온건 이슬람 국가인 말리 전역에 엄격한 샤리아법으로 통치되는 이슬람 국가를 세우려 하는 데 비해 투아레그족은 분리독립을 원한다.
- ↑ 게다가 말리는 서사하라를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있는 나라인데, 아자와드에서 "서사하라도 인정했으니 우리의 독립도 인정하라"고 나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