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월드클래스 재앙신

역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2008년초대2대
기획재정부 신설강만수윤증현

姜萬洙

1 경력

1945년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출생한 대한민국의 고위 경제관료이다.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대학 65학번으로 윤증현 전 기재부장관과 동기. 그러나 그 둘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다 카더라.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밑에 있을무렵, 과장급 중 일을 가장 잘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다.
부가가치세를 만든 전적이 있다. [1]속설로도 유명하고, 본인도 직접 산업은행장 퇴임 후 인터뷰에서 발언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따져 보면 주요 추진자는 강경식 前 부총리가 꾸린 team[2]이었으며 강만수 前 장관은 오재구 등의 관료와 함께 실무를 맡은 것이다.

1997년~1998년 대한민국의 제4대 재정경제원 차관을 했는데[3], IMF 사태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무리한 원화값 방어정책을 펼치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관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강씨는 이후 재야에서 “고환율정책을 썼더라면 IMF위기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후일 고환율정책으로 불러올 환난을 예고했다. [#]

2008년 2월 부터 1년간 기획재정부 장관을 했다.[4]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전부터 주요 경제 정책을 수립해 선거에 활용하였으며,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았다. 장관으론 고작 1년을 재임했지만, 대통령 임기 내내 신뢰를 받았으며, 때문에 정권의 실세로[5]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2008년에는 전국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인물이었다. 그의 환율정책은 하이엔드오덕들에게도 적이었지만 이 양반 때문에 유학생들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외환보유고 60조원을 1-2분기만에 날려먹으며 4대강과 자원외교는 우습게 찜쩌먹는 수준대기업을 더 부자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당시 풋만수[6]라는 오명이 각종 주식/경제 커뮤니티에 나돌았을 정도.그의 고환율정책으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2014년 현재 477조원에 달하는 기틀을 마련한다.[#] 2010년 아베노믹스도 이와 비슷한데, 일본은 양적완화를 통해 환율을 조절하여 또다시 한국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차이점이라면 2008년 한국은 규모에 의한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방어능력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행하여 외환을 실컷 말아먹었다는 점인데, 일본은 그래도 방어가 될정도의 규모가 된다는 것.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지능이 문제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리만 브라더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장관 재직 중엔 모친상에 대통령이 찾아왔을 정도. 장관에서 물러난 즉시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영전된 데 이어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2008년 9월 산업은행의 리만브라더스 인수포기로 세계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2010년 3월에 [한국은행총재 임명설]이 돌아 루머만으로 화폐시장이 들썩거렸다. 진보언론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피아로 비판받던 일반 경제관료들과 조선일보에서도 [비판적일 정도]. 우리은행 회장 된다는 소문이 나돈 적이 있을 때도 분위기가 아주(...)

2011년 3월 산은금융지주 회장이자 산업은행 행장으로 낙하임명되어국가의 뿌리부터 망치러 가겠다는 패기보소. 그리고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위해 다이렉트를 런칭하는등 노력했으나, 정권이 교체된 2013년 역시 낙하산 후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물러났다. [7] 산은지주로 옮겨가는 이유가 연봉 때문이라고 대놓고 말하다니, 천박해도 너무 천박해2013년 3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언급으로 이슈화된 강 회장의 연봉 인상은 금융권 안팎의 반발로 추진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대놓고 챙겨주기 돋는 상황

2016년 8월 2일 산업은행장 재직당시 대우조선해양 비리에 개입된 정황이 포착되어서 자택이 압수수색 당했다.[#]생계형 비리 의혹 혐의는 알선수재·배임, 제3자 뇌물수수 등이며, 현재 검찰의 구속 영장은 기각되었다. 이에 반발한 검찰이 구속 영장의 재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1.1 공과

상기한 부가가치세 관련 업적이 있으나, 부가가치세가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대부분 경제위기 시절에 경력을 쌓은 때문인지 전체적으로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이것도 자업자득이지 특히 2008년의 금융위기와 관련하여, 그의 환율정책은 엄청나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강만수는 취임 초기에 환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실행으로 옮겼다. 환율이 높아지면 국제 시장에서 대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그러면 한국 경제도 좋아질거라는 발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러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한민국은 영토에 쓸만한 자원이 거의 없기에 거의 모든 원자재와 석유 등을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는데, 그럼에도 수출 잘 되라고 환율을 올려버렸으니 경제도 안 좋은데 원자재 값까지 올라서 모든 물건 값이 올라버리는 현상을 가져온 것이다. 비유를 들어서 말하면, 환율이 1 달러당 1000원 일 때 수입산 밀가루로 만드는 라면 한 봉지 제작에 드는 원가가 100원 이었다면, 환율이 1 달러당 1500원이 되었을 때에는 재료값 상승, 재료를 운반 할 때 드는 운송비 상승 등으로 인해 라면원가가 150원 이상이 되고, 제작사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최종 판매가를 그만큼 더 올려야만 하는 식으로 물가가 상승하게 된다. 게다가 중간에서 원가가 올라간만큼만 가격을 올리면 그나마 나을 터인데, 소비자가 중간에서 가격이 얼마만큼 오르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무기로 삼아 자기들이 얻을 이익분도 몰래 올려버리면서 상황이 시궁창이 되고말았다. 현대사회에서 유통업계가 유독 비판을 많이 당하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당시 환율과 물가 뉴스를 검색해보면 당시 민심과 언론의 반응이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인 것을 볼 수 있다. 창렬경제의 원흉

특히 이라크전의 여파로 석유값이 미친듯이 폭등을 할 때 환율 폭등 크리까지 터져버리자 원가상승으로 인한 손해를 소비자와 함께 분담하고 있던 정직한 몇몇 운수회사들이나 택시 운전기사들은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다. 그렇다고 운송비를 올리면 국민 경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또한 고환율 발언한지 10여일 만에 환율이 요동을 치면서 KIKO 사태를 불러온다. 이때 피해 규모를 보면 [1000여개 기업이 10조원 가량의 손실을 봤으며, 20개 기업은 파산했고 18개 기업은 경영권을 빼앗겼다.] 이들 기업들은 그 이후에도 수년간 소송에 진을 뺐으며 임직원들이 과로사한 경우마저 있었다.

이렇게 취임 초에는 환율이 올라가야 하고 주장했으나, 민심에 급격한 변동이 보이고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가 터지자 입장 바꿔서 점심시간도시락 폭탄이라 불릴 정도로 외환시장에 달러를 쏟아 부었다. 한국 경제계의 윤봉길 의사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주식시장에 시장경보조치(서킷브레이커, 사이드카)가 지속되고 환율과 채권금리가 요동을 치며 폭등하자 환율안정으로 대처를 한 것인데...급등급락의 연속으로 환율에 불안을 느낀 수출입딜러들이 결재를 묶는 바람에 소규모 상인들이 줄도산 사태를 빚었다.

당시 금융시장은 98년 IMF 구제금융때를 보는듯 하였다고 한다. 백약이 무효하고 시장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고...[8] 아래의 외환개입 그래프를 보면 개입 시도가 효과를 낳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사][9] 에서 말하는 외환개입의 효과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그래프다.내 패 다 보여주고 포커치는데 돈을 꼴 수 밖에. 지능지수가 의심되는 수장. 외국 외환딜러들은 호구를 만나서 밀고 당기며 한국의 외환을 공짜로 쪽쪽 빨아먹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외환보유고는 2600억 달러에서 2000억 달러로 추락했으며, 또한 이렇게 달러를 쏟는 과정에서 일본 수준의 경제도 아닌데 2004년 전설의 일은포[10]의 한국판, 즉 한은포(한국은행포)를 마구 퍼부으면서 환율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치솟는 환율과 떨어지는 주가지수가 서로 교차하게 하는 "그랜드 크로스"를 만들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심지어 풋만수[11]라고까지 불렸다. [일본에서는 개미들도 풋만수를 이용해서 수백만엔씩 벌어갔다.][12]

다만 이 부분에서 참고해야 할 점은, 높은 수준의 외환보유라는 것은 이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사용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싱가폴, 대만 등 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그 파장을 겪은 국가들이 2000년대부터 대단히 높은 수준의 외환보유를 하고 있는 것(전세계 5위 부근)이 바로 이와 같은 이유이다.(물론 이는 당시 너무 심하게 겪은 것에 대한 심리적 요인이 크다) 경제규모의 외환을 과도하게 쥐고 있는 상태는 유동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으나, 이것을 감소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전국가적으로 높은 수준의 불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소시키는 것 역시 어렵다. 그러면 결국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 사족으로 2015년 2월 현재, 3600억 달러 대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달러 폭격 조치 덕분에 세계금융위기에서 한국 경제는 크게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13] 당시 상황은 외국 자본이 철수하기 시작하고 자본 회수에 나섰기 때문에 외환위기처럼 국가도산까지 갈 수 있는 엄청난 위기 상황이었다는 것.그렇긴 한데 강만수가 빨린건 외환위기 문제와 상관없이 적정 환율이니 이런 멍청한 발언하다가 공짜로 뜯겼다는데 있다.

특히 이 상황에서 원료를 대부분 수입하는 우리나라가 10조원에 달하는 환차손을 감내하면서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것은 경제 붕괴를 막아낸 신의 한 수로 평가되기도 한다--

다만 경제부처의 장관으로서 시장과 잘 소통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적 식견도 없으면서 타인의 의견을 듣지도 않아 대표적 예 중 하나로 금융위기 발발후 "국내 금융기관의 익스포져(exposure)는 제한적이며, 실질적인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안이한 대응성 발언]을 하였던 적이 있다.[14] 이건 차후 금융위기에 그나마 선방했다고 포장하는 것과 완전히 모순되는 이야기 아닌가

심지어 1997년 IMF 위기와 관련하여 그가 낸 변명은 "6.25 때부터 누적되어 온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내가 어떻게 해결하느냐?"였다. 물론 수십년간 누적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에게 주어진 권한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이같은 발언은 주어진 권한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 실제로 회피한 것 같다 솔직히 누가 니가 다 해결하라고 했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나 아니면 안된다는 자아도취

2008년 10월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강 장관은 '신문에 보도된 것을 모아서 고환율 정책을 폈다고 하는데 제가 무슨 고환율 정책을 썼나'며 발끈했다. 본인의 치매 증상을 유머로 승화하는 재치가 있다. 그는 또 '환율의 방향에 대해 말한 것도 3월25일에 한 번뿐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한 언론사 초청강연을 가리킨 것으로 당시 '환율과 경상수지 적자추이를 감안할 때 어느 길로 가야할지는 자명하다'는 식으로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환율을 시장에 온전히 맡기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2월29일 취임 간담회)거나 '환율이 올라갈 경우 서비스 수지도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중요하게 여길 것이 경상수지'(4월15일 정례브리핑)라는 발언만 보더라도 무엇이 진실인지는 명확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웃음밖에 안 나온다'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민주당 오제세 의원도 7일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발언의 진위를 따져보겠지만, 국회에서의 위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고발까지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2008년 그에 대한 평가는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의 생활비에 아무런 고려없이 오직 대기업의 수출을 장려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환율을 조작'했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정쟁으로 인한 비하를 감안하더라도 위 사례들을 보면 일반적인 국민들의 입장을 신경쓰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종합하면, 요새 식으로 말해서 한국판 아베노믹스를 5년 먼저 실행한 사람(...)이다. 다만 시기적으로 보면 세계 경제 위기는 2008년 후반기 이야기로, 고물가, 고환율은 2008년 2월 강만수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후 이미 반년 가까이 가속화 되었고 강만수는 그 부작용에 전혀 신경 안 쓴게 맞다. 그러다가 통화 스와프로 잠깐 반짝 하고 빛 난것은 맞는데, 그 몇 달 뒤인 2009년 2월에 결국 잘렸다.

또한 리만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기 2개월 전 산업은행김승유(전 하나금융회장)를 중심으로 이명박, 강만수의 지지하에 인수를 추진했었다는 문건이 발견되었다. 민유성 산은회장은 투자의향에 대하여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반박을 하였다. 9월 10일 산업은행은 인수포기를 발표하였고 9월 15일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했다. 만수는 자신이 무슨 일을 벌렸는지 자각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인수를 하였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5] 그리고 세계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결국 리만 브라더스의 북미 지역은 바클리스 캐피털이,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의 일부는 일본의 노무라 증권이 인수했다.[16]



2 트리비아

가장 유명한 명언을 꼽자면 ["올해는 정말 원 없이 돈을 써 봤다."] 당신이 쓴 돈이 국가예산의 1/4 ~ 1/5라는게 문제지만 말이지 2008년도에 돈을 하도 써서 윤증현 장관 시절엔 이 정도의 환 정책이 다시 재개되지 못했다. 이것이 경제 관리 중심의 주류 "모피아"와 강만수계 모피아의 차이라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두 번째 정도라면 "지하자금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지하자금이 아니다" 가 있다. 고위 공무원 시절 지하경제 규모가 얼마냐는 물음에 특유의 변명성 말 돌리기로 한 말이지만, 지하경제를 가장 정확하게 나타낸 말이기도 하다.

2000년에 개정된 로마자 표기법에 큰 불만을 갖고 있어서, 언젠가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한 분이기도 하다. 일단 관련 부처에 앉으신 뒤에나 생각하시는 게 어떨지

한겨레21에서 '[누가 감히 강만수에게 돌을 던지랴]'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한 적이 있다. 참고로 제목은 반어법이다. 당시 한겨례는 강만수를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음을 감안하자.
[여당 중진 의원 보좌관이 특혜성 대출을 알선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의 연루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정부 법조비리 나비효과
동남아에서 "정킷방"을 운영하던
범서방파 구속 기소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총 재산 1위 우병우,
재산 증가폭 1위 진경준)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임창용, 윤성환,
안지만, 오승환)
정운호 게이트
(정운호, 홍만표, 최유정, 김수천)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신영자, 신동빈,
서미경, 이인원)
우병우넥슨 게이트
(진경준, 김정주)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산업은행, 대우조선해양,
강만수, 최경환, 안종범)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불화

(조선일보, 이석수, 송희영)
박수환 게이트
(남상태, 박수환, 송희영)
성주 롯데골프장
THAAD 배치 확정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최순실, 박근혜, 청와대,
전국경제인연합회, 이대 정유라 특혜)
이대 미래라이프대
반대 시위

(최경희)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과관계의 직·간접적 연결고리만 간단히 기록됨.
전반적인 부분은 문서 참고.
  1. 부마항쟁의 원인이 됨
  2. 30대의 젊고 쟁쟁한 경제 관료들이 주축을 이뤘다고 한다
  3. 하필이면 1997년 외환 위기 때라.. 위기마다 관료가 돼서 데자뷔 돋는다고 까였다. 그때 그 사람
  4.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지만, 알고 보면 행정고시(1970년, 9회) 재경직 수석.
  5. 또한 환란 후 10년만에 주류에 재진입하는데 성공한 舊 재무부 인맥(세칭 모피아)의 대부로써
  6. 풋옵션의 풋과 강만수를 합친 단어. 풋옵션은 주가지수가 내려가면 돈을 번다.
  7. 당시 취임 이유가 직계가족이 국내 최고 의료기관에서도 치유불가능하다고 손을 든 병에 걸려 해외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선 막대한 치료비가 필요해 '높은 보수'를 받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출처 : [강만수, 결국 산은지주 회장 내정, "해도 너무해"]
  8. 강만수는 IMF도 금융위기때도 재정부/기재부에 있으면서 둘다 겪었다.
  9. <'종이호랑이 아니다'..정부 고강도 개입>(종합2보), 연합뉴스, 2008년 9월 3일.
  10. 일본은행과 일본 금융 당국이 당시 엔고를 막기 위해서 헤지펀드에 대항해 분당 10억엔, 35일간 30조엔의 달러 매입을 퍼부은 사건.
  11. 옵션시장의 옵션 + 강만수. 풋옵션은 주가가 떨어지면 돈을 번다.
  12. 해당 글은 2chan에 올라온 스레드를 번역한 것이다.
  13. 하지만 그 대신 물가는 산으로 가버렸다. 물가 상승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이분의 경제 정책도 한 몫을 했다. 반론 ; 외화를 풀은 것과 물가상승은 하등 관계가 없다. 물가상승은 외화의 재매입과정에서 발생하는 것. 차라리 이 경우는 외화를 풀기전 고환율정책과 관련이 있으나 해당 정책은 얼마 못가 파기되었고, 환율 역시 1000원대 아래로 떨어지게 된 바, 연단위의 중장기적 관점에서 볼 경우 환율정책이 물가상승문제를 일으킨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14. '강만수 "美 금융위기 영향 제한적"', 아이뉴스.
  15. 출처:["2008년 리먼 인수추진 MB 라인 입김 있었다"]
  16. 결국 시간이 흘러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인수한 노무라 증권은 현재 흑자 상태이다. 하지만, 인수 직후 유능한 美 사원들이 대거 이직하는 사태를 감수하고도 흑자로 전환한 것은, 노무라 증권 측의 오랜 경험의 힘이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