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메스 FC No.1 | |
가와시마 에이지 (川島永嗣, Eiji Kawashima) | |
생년월일 | 1983년 3월 20일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사이타마 현 요노 시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185cm, 80kg |
소속팀 | 오미야 아르디자(2001~2003) 나고야 그램퍼스(2004~2006) 가와사키 프론탈레(2007~2010) 리에르스 SK(2010~2012) 스탕다르 리에주(2012~2015) 던디 유나이티드 FC(2015~2016) FC 메스(2016~) |
국가대표 | 72경기 |
가와성룡
일본의 축구선수. 포지션은 골키퍼로 현재 프랑스 리그앙 클럽 FC 메스 소속.
1 상세
약 10년간 일본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해온 가와구치 요시카쓰[1]의 뒤를 잇는 일본의 주전 골키퍼.
가와사키에서 주전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키는 활약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당초 선배인 나라자키가 주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2]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자 카메룬전에서 선발 출장, 선방을 보이며 1-0 승리에 기여하고 조별예선에서 단 두 골만 실점하며 대부분의 축구 팬들과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팀을 2승 1패로 16강에 올리는데 공헌했다.
전성기를 벨기에의 주필러 리그에서 보냈으며, 벨기에의 명문클럽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하였다.
냉철한 판단력과 순발력을 겸비하여 매우 많은 선방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굉장히 파이팅이 좋은 선수. J리그 시절에는 선수협회 부회장을 담당하기도 했고, 벨기에의 리에르세 SK로 이적한 뒤에는 외국인 선수임에도 팀의 주장을 맡는 등 리더쉽도 뛰어나다. 페널티킥에서는 다소 약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페널티킥 부분에서만큼은 완전 신이 들린 전임 국대 골키퍼인 가와구치에 비해서 약하다는 소리지, 전체적으로 보면 중간 정도는 간다. 오만의 알리 알 합시(위건 애슬레틱)와 호주의 마크 슈워처(첼시 FC)에 비해서는 다소 클래스가 떨어지지만, 현역 아시아권 골키퍼로는 독보적인 위치로 평가받았었다. 2011년 AFC 아시안컵 당시의 그는 일본의 카시야스, 일본의 케일러 나바스라고 해도 될 정도의 사기적인 골키퍼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잔실수가 상당히 많이 늘어나고, 기량이 점차 줄어들면서 현재는 타 아시아권 선수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수준의 키퍼가 되었다. 재미있게도 일본 축구 팬들이 가와시마에게 가지는 불만사항은 한국 축구 팬들이 정성룡에게 가지는 불만과 대부분 일치한다. '서있기만 한다', '몸을 날리지 않는다', '별 의미없이 넘어진다', '공을 펀칭만 하고 잡지는 못한다' 등등(...). 심지어 벨기에와의 평가전에선 공을 걷어내겠다고 무리하게 뛰쳐나와서 김병지? 노이어? 실점한 적이 있어 그 일로도 비난을 듣는다. 이운재와 김병지를 봐왔던 한국 축구 팬들이 정성룡에게 불만을 가지는 것처럼 일본 축구 팬들에게도 선배인 가와구치 요시카쓰와 나라자키 세이고와 비교되는 가와시마의 불안정한 모습과 실수가 불만일 수 밖에 없을 듯.
2012년 초에는 AC 밀란에서 세컨드 골키퍼로 영입하려 한다는 이적설이 돌았다. 일단 본인과 대리인의 언급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사실이긴 했던 모양. 다만 팀내 입지와 AC 밀란의 기존선수 정리문제 탓인지 결국 성사되지는 않았다.
2014년 하비에르 아기레 신임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에서 이고르 아킨페프가 빙의되어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우루과이 전에서 실점했을 때는 수비수들을 마구 다그치더니 자신이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적당히 쑥쓰러워하고 마는 뻔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4/15 시즌 종료 후 스탕다르 리에주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교 자유 계약 신분으로 풀려났다. 눈에 띄는 기량 하락으로 인해 프랑스 유소년 국가대표 출신의 요안 튀랑-윌리엔[3]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상태였고,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원했기 때문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동안 소속팀 없이 지내면서 국가대표 자리도 후배 골키퍼들에게 내주게 된다. 그리고 2015년 11월 3일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던디 유나이티드 FC와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던디가 강등당했다(...)
던디와의 계약 만료 이후 새 팀을 물색하게 되었는데, 일본 내 언론과 그리스 내 언론에서는 그리스 리그 파나티나이코스 FC와 계약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으며 그 외에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클럽인 NEC 이적설이 돌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프랑스 리그 앙(Ligue Un)의 FC 메스 (FC Metz)와 1년 계약을 체결하였다.[4]
[1]
2 기타
- 예전부터 착실하게 유럽 클럽으로의 이적을 준비해온 선수인지라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다. 물론 원어민처럼 완벽한 건 아니지만 선수간의 의사소통이나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는 문제가 없는 수준. 실제로 기자회견장에서 제각각 다른 언어로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통역 없이 답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덕분에 일본에서 어학교재의 광고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 또한 일본 성인대표팀 내에서도 감독인 할릴호지치는 프랑스어를, 골키퍼 코치는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데 가와시마는 두 언어 모두를 할 수
- 있어, 보다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 왠지 게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수이고, 본인 역시 게이 의혹이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일본의 캐쥬얼 호모 붐 덕분에 생겨난 반농담성 게이 의혹이긴 하지만, 일단 게이에게 인기가 있는 것만큼은 사실. 남아공 월드컵 당시 남아공의 게이들 사이에서 뽑힌 축구선수 TOP 10에 든 적도 있고, 영어권 게이 사이트에서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게다가 가와시마 본인은 30대가 넘어서도 미혼이었으나 2014년 9월 10일 자신의 공식 블로그를 통해서 결혼했음을 밝혔다.
사요나라 게이설
- [2] 부인과 자녀가 언론에 공개되었는데 부인이 생각 이상으로 아름답다.
-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관련 개드립의 희생양이 되는 불운을 겪었다. 2011년 8월 20일 리에쥬SK 과 제르미날 베이르쇼트 팀의 경기 중에 베이쇼르팀 응원단이 '가와시마, 후쿠시마'를 외치며 조롱하는 사건이 있어 제르미날 베이르쇼 측에서 사과했었고, 2012년 10월 12일 프랑스와 일본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이후 프랑스2 TV에서 사회가가 농담이랍시고 '일본팀 골키퍼 가와시마 선수가 후쿠시마의 영향을 받아 뛰어난 것 같다'며 가와시마의 팔을 4개로 만든 합성 사진도 방송하는 사건을 저질러 프랑스 내에서도 욕을 먹었고, 일본 정부의 정식 항의에 프랑스 정부가 공식 사과까지 하는 사건이 있었다. 양심이 있다면 이런 개드립은 악행이다. 재미있는 건 2ch의 몇몇 챤넬러들이 이 네타를 줏어서 가와시마 디스 및 장난으로 사용했다는 것(...).
역시 얘들은 팀킬의 귀재들
- 가와사키 프론탈레 시절에는 홈경기 때마다 자비를 들여 고아나 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초대해 축구 관람을 시켜주기도 했다. 이 관중석은 '가와시마 시트'라고 불렸다고 한다.
- 일본 국내에서는 자기관리가 충실한 선수로 불리는거 같다. 오죽하면 가와시마에게서 배우는 자기관리 관련 서적이 나올정도. 거기서도 가와시마 본인이 '40세까지 좋은 활약을 펼치고 싶다.'라고 언급했다.
- ↑ 다만 2002 월드컵 때는 나라자키 세이고에게 밀렸다. 가와구치가 116경기로 A매치 출장 수가 더 많긴 하지만 나라자키도 77경기로 꽤 많이 뛴 편. 당연히 한국에서 이운재와 김병지 라이벌 구도가 있던 것처럼 가와구치와 나라자키의 라이벌 구도도 있었다. 두 선수의 팬들은 자기가 응원하지 않는 골키퍼가 선발출장한 일본 대표팀이 실점하거나 지거나 하면 자기가 응원하는 골키퍼가 나왔으면 골 안먹었을텐데 이겼을텐데 이런 식으로 얘기하기도 했다.
- ↑ 가와구치는 부상 후유증이 있어 선발로 나오기 힘든 상태였지만 오카다 다케시 감독이 그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기기 위해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 ↑ 릴리앙 튀랑의 사촌동생이다.
- ↑ 카와시마 에이지 자신의 블로그에는 2년 계약이라고 언급하였지만 일단 구단 공식 발표는 1년 계약이라고 명시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