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명이인/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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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age/001/2011/01/03/PYH2010081113510001300 P2.jpg
골키퍼 코치 | |
이운재 (李雲在 / Lee Woon-Jae) | |
생년월일 | 1973년 4월 26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충청북도 청주시 |
본관 | 경기도 여주시 |
신체 | 182cm, 90kg |
포지션 | 골키퍼 |
출신교 | 청남초 - 대성중 - 청주대성고[1] - 경희대 |
프로입단 |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선수시절 소속팀 |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1999, 2002~2010) 상무 (2000~2001) 전남 드래곤즈 (2011~2012) |
지도자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골키퍼 코치 (2013~201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 (2016~2016.8) |
국가대표 | 133경기 |
2008년 K리그 MVP | |||||
따바레즈(포항 스틸러스) | → | 이운재(수원 삼성 블루윙즈) | → |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 |
2009년 FA컵 MVP | |||||
최효진(포항 스틸러스) | → | 이운재(수원 삼성 블루윙즈) | → | 염기훈(수원 삼성 블루윙즈) |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역대 주장 | |||||
곽희주 (2009) | → | 이운재 (2009)[2] | → | 조원희 (2010) |
199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안정환 | FW 샤샤 | ||||||||||
MF 서정원 | MF 고종수 | MF 데니스 | MF 고정운 | ||||||||
DF 강철 | DF 김주성 | DF 마시엘 | DF 신홍기 | ||||||||
GK 이운재 | |||||||||||
200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김대의 | FW 유상철 | ||||||||||
MF 신태용 | MF 이천수 | MF 안드레 | MF 서정원 | ||||||||
DF 김현수 | DF 김태영 | DF 최진철 | DF 홍명보 | ||||||||
GK 이운재 | |||||||||||
200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나드손 | FW 모따 | ||||||||||
MF 김동진 | MF 따바레즈 | MF 김두현 | MF 김대의 | ||||||||
DF 산토스 | DF 유경렬 | DF 무사 | DF 곽희주 | ||||||||
GK 이운재 | |||||||||||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이근호 | FW 에두 | ||||||||||
MF 김형범 | MF 조원희 | MF 기성용 | MF 이청용 | ||||||||
DF 아디 | DF 마토 | DF 박동혁 | DF 최효진 | ||||||||
GK 이운재 | |||||||||||
수원 삼성 블루윙즈 10주년 베스트 XI | |||||||||||
FW 샤샤 | FW 나드손 | ||||||||||
MF 데니스 | MF 김두현 | MF 고종수 | MF 김진우 | MF 서정원 | |||||||
DF 최성용 | DF 박건하 | DF 이병근 | |||||||||
GK 이운재 |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레전드 | |||||||||||
18 박건하 | 13 산드로 | 14 서정원 | 22 고종수 | 29 곽희주 | |||||||
7 김진우 | 3 이병근 | 1 이운재 | 11 데니스 | 12 나드손 |
1 경력
1.1 선수시절
이운재의 2002년 월드컵 스페셜
수원 삼성 시절 스페셜
아직도 그를 기억한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맞붙고 싶은 선수다. - 이케르 카시야스
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남 드래곤즈 소속 축구선수.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코치.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부동의 NO.1 골키퍼이자 역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이다. 퐈이야를 보고 확실히 알았다고 카더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멤버로 2011년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기 전까지 15년 가까이 수원의 골문을 지켜온 레전드. 수원의 리그 우승 4번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국가대표 131경기 출전은 전 세계 현역 골키퍼 A매치 출전 순위 4위를 기록하고 있다.[5]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전까지는 김병지에게 밀려 국가대표팀에서 2인자에 머물렀었다. 단, 국가대표 데뷔전은 더 빨리 치뤘다. 경희대학교 3학년(당시 이운재는 선수단에서 막내였다. 나이는 21세) 때 1994 FIFA 월드컵 미국 국가대표팀에 선발됐고, 마지막 독일전 후반전에 최인영과 교체되어 투입된 게 월드컵 데뷔 첫 경기였다. 당시 22세의 나이에 비해 침착하고 기량 또한 뛰어나서 차기 국가대표 골키퍼감이라는 평가답게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결국 졌지만 그래도 전반전에 3골 털린 최인영에 비하면야... 하지만 간염에 걸리며 체력이 뭉텅 주저앉아버렸고[6], 결국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에 승선할 수 없었다. 간염이 완치된 뒤, 병역의무 수행으로 상무에 입대했다. 유명해진 건 2002년부터지만, 실제로는 그 전에도 리그에서 경기당 실점률 등을 볼 때 탑클래스였다. 다만 국대 축구 이외에는 대체적으로 무관심한 대한민국 성향상 2002년에 기용됐을 때는 듣보잡 취급을 당했었다. 각 게시판에서 쟤는 누군데(...) 왜 기용하는지 모르겠다는 게시글이 공공연히 올라올 정도.
그러나 김병지가 2001년 1월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페널티 라인 밖으로 뛰쳐나가다 실점할 뻔한 일이 있은 이후에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크게 신임을 잃자, 김병지 대신 중용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7]
2002년 월드컵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면서 야신상 후보에까지 거론되었으나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수상자가 올리버 칸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 엄청난 성과다. #
그리고 2002년 월드컵끝난 뒤 스페인에서 이적 제의가 왔었다고 한다. 근데 조건도 안 좋고 그냥 남아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거절했다고... 이운재가 만약 이적했다면 수원의 수비는 어떻게 되었을까
김병지와 함께 대한민국 최정상의 골키퍼로 손꼽힌다. 김병지와 달리 안정적이고 수비적인 스타일을 추구해 어느 상황에서도 중간 이상은 가는 안정감으로 유명하다.[8] 이러한 스타일 덕분에 김병지와 달리 국가대표에도 잘 뽑혔다. 김병지와의 골키퍼 대결은 2004년 K리그 챔피온 결승전(포항VS수원)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 경기는 전설 아닌 레전드 수준인데, 1, 2차전은 두 골키퍼의 활약으로 무승부, 그리고 2차전 끝나고 연장전으로 들어가서도 득점이 안나서 승부차기로 들어갔다. 이때 포항측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온 것이 김병지였다. 김병지로서는 이것이 이운재와 결판을 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슈팅은 이운재에게 막혔고, 2004년 우승은 수원에게 돌아갔다.
강한 멘탈이야말로 이운재 최고의 장점으로, 침착성은 물론이고 과감한 판단력과 정확성으로 단점인 반사신경을 커버한다. 여기에 수비라인 형성은 여러 전문가들이 손꼽는 이운재의 장점. 골키퍼로서 뒤에서 호통까지 치면서 수비라인 형성을 지시해 수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 수비의 핵심이던 홍명보가 은퇴하고, 3백에서 4백으로 국가대표 수비 전술이 교체되던 단계에 이운재의 카리스마는 축구 국가대표의 수비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그 덕에 은퇴 전까지 국대팀의 주장도 겸임하였다.
단점이라면 끝까지 공을 보며 기다리는 타입이며, 이런 특성이 페널티킥 방어 시엔 강점으로 작용한다.[9] frameborder='0' scrolling='no' 승부차기에서 이운재에게 파넨카 킥을 시도한 결과...
다만 순발력이 떨어져 프리킥이나 순간적인 중거리 슈팅에 약점을 보인다는 점. 특히 선수 말년으로 갈 수록 체중관리에 실패한 것과 겹쳐서, 살이 쪄서 순발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돼흐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한일월드컵 이후 대표팀의 부진과 맞물려서 본인 또한 상당한 부진을 보였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 직전에는 부진이 극에 달해서 소속팀인 수원의 부진의 원흉으로 몰리기도 했다.[10] 이에 대다수의 축구팬들 사이에서 당시 좋은 활약상을 보이고 있던 김병지를 국가대표 주전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며, 결국 이운재가 주전 골키퍼로 낙점되고 김병지가 본선 엔트리에서 탈락하자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한 것이 아쉬운 선수 1위에 당당히 김병지가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에서는 미칠듯한 선방을 보여줬다. 특히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프랑스와의 조별예선 2차전은 이운재의 국가대표 인생경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라인에 걸린 슈팅을 그야말로 동물적 감각으로 아슬하게 쳐냈고, 박지성의 동점골로 경기가 무승부로 마무리되던 후반 막판 티에리 앙리와의 1:1 상황에서 페인팅에 속지 않고 앙리의 슈팅을 쳐냈다. 월드컵 본선에서의 선방쇼로 자신에 대한 비난을 어느 정도 불식시키는 듯 했으나... 소속팀에서의 부진은 계속되어 결국 2006년 후반기 리그에서 후보 골키퍼인 박호진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채 후보 골키퍼로 전락하는 안습한 상황을 맞이했다.[11] 2007년 시즌을 앞두고 그랑블루 사이에서는 이운재 대신 박호진을 주전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차범근은 결국 이운재를 선택했고 이운재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경기력을 조금씩 회복했다.
그 뒤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 눈부신 선방으로 대한민국이 엄청나게 답답한 경기력과 골가뭄에도 불구하고 3위를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1승4무1패의 성적으로 대회 3위(...)[12] 특히 이란, 이라크, 일본과 상대한 8강전부터 3,4위전은 무실점으로 끝까지 틀어막은 뒤, 상대를 승부차기까지 납치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 3번의 승부차기에서 2승1패를 기록했다. 흠좀무... 그러나 4강 이라크전에선 염기훈, 김정우가 2연뻥을 시전하며 패배. 어찌됐든 애무축구를 구사하며 답없는 공격으로 무득점을 내버린 대표팀에서, 대회 4경기 연속 무실점 및 승부차기 승리를 기록하여 호평을 받았다.[13]
그런데... 대회 기간중 고참 선수 3명과 함께 술을 마시러 간 사실이 발각되어 술타스틱 4라는 오명과 함께 1년간 A매치 출장 정지를 당했다. 그런데 이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술 먹은 이운재가 술 안 먹은 다른 선수들보다 더 잘 한 수준을 뛰어넘어 거의 멱살 붙잡고 질질 끌어 캐리한건데 대체 그 나머지 선수들은 뭘 한 거지????
더불어, 나이는 속일 수는 없는지 2009년 이후로는 떨어진 운동량과 순발력 부족으로 불필요한 실점 허용이 늘고 있다. 검증 좋아하는 허정무 감독의 성향 탓에 국대 골리를 독점하고 있지만 경험을 제외한 부분에선 김용대, 김영광, 정성룡 등 젊은 골키퍼들과 비교해서 나을 게 없다는게 중론. 오히려 이운재의 지나친 독점으로 그의 은퇴이후 차기 골리 선정에서 크게 애를 먹을 것이 예상된다. 8~10년 주기로 골기퍼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독일과 특정 선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다 시먼 이후 대체자를 찾지못해 고생중인 잉글랜드의 예를 생각해보자.[14][15]
2010년 4월 4일에 열린 서울전에선 8분동안 내리 3점이나 실점하는 삽질을 했다. 이로인해 국대 및 수원 주전 골키퍼 교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월 1일 기준, 시즌 8경기 22실점이라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이운재를 비난하는 입장에서는 이운재가 2006년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 골키퍼로 김병지가 거론되던 시기에 김병지에게 '이제 후배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님?'식의 발언을 했던 것과 함께 실점할 때마다 수비들에게 성질(?)내는 모습 등을 근거로 인간성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게다가 월드컵 이후로도 부진이 계속되면서 과거에 언론에서 후배 골키퍼들에게 했던 '실력으로 나를 넘어봐라'는 발언을 놓고도 계속 까이는 중이다.
또한 독일월드컵 당시 골키퍼 코치였던 정기동이 이운재를 편애해 경기력과 관계 없이 계속 주전으로 내세운다는 비난을 받았던지라 이 부분에서도 비판을 받게 되었다.[16] 비교하자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당시 김봉수 골키퍼 코치가 정성룡을 편애한다는 비판을 받은 것과 같다.
결국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B조 예선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는 정성룡에게 밀려 후보 신세가 되었다. 이번 월드컵이 끝나고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월드컵이 끝나고 치러질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 때 은퇴식을 가졌다. 그 업적을 기리는건지 축협에서도 이례적으로 국가대표를 은퇴하는 이운재에게 일종의 은퇴식을 치러주기로 했다.#
이렇듯 경기력에서 극과 극을 달렸던 탓에 평이 상당히 갈리는 선수로 등극했는데, 칭찬할 때는 거미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나 (2002년 이후로) 까일때는 주로 몸무게로 까이며 특히 돼운재 또는 배둘레햄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시기에 이운재를 까면서 나온 희대의 유행어가 바로 반반무많이. 물론 본인 말로는 물만 먹어도 몸이 부는 체질이라고. 여튼 국가대표가 자기관리도 못한다는 이유에서 꽤 비난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히딩크도 이운재를 처음 훈련에 합류했을 때, 근육보다 군살이 많다고 깠다.[17]
2006년 즈음부터 부진으로 인해 비판을 많이 받았으나 사실 아시아 역대급의 골키퍼라고해도 무방하며 전성기때는 그야말로 월드클래스의 골키퍼였다. 2002년 월드컵 때 괴물급 활약을 보이며 명실공히 세계최고 골키퍼였던 올리버 칸과 야신상 경쟁을 했던 게 이운재였다. 살쪘다고 까이던 06년 월드컵, 07년 아시안컵에서도 국대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 중 하나였고 자기 욕심만 강하다는 이미지와 달리 2010년 월드컵 때 우루과이전에서 패배했을 때 의기소침한 정성룡[18]에게 가서 "이제는 네가 최고다."라며 격려해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운재는 적어도 국대에서는 항상 경쟁자와 치열한 경쟁을 하던 선수였다. 미국 월드컵 독일전 후반전에 깜짝 출장을 해서 최인영의 뒤를 잇나 했지만 서동명이라는 198cm의 장신 키퍼의 출현으로 올림픽 대표 시절 마지막까지 주전경쟁을 했으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에는 김병지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에도 김용대, 김영광, 정성룡 등 젊은 골키퍼들과 끊임없는 경쟁을 했다. 놀라운 점은 대부분 그 경쟁에서 모두 제치고 승리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경쟁자들의 임팩트나 명성 등이 치솟을 때에도 결국은 경기력으로 증명해냈으며, 많은 비판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은 실력으로 잠재웠다. 적어도 이운재가 현역일 때는 골키퍼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물러났고 소속팀에서도 슬슬 은퇴를 생각해봐야할 나이(37)라 물러난 후를 준비하고 있는 듯 했다. 당시 기사에 의하면 본인은 팀에 남아 코치가 되는걸 바라고 있으며 농구선수 출신이던 이젠 농구계 암적 존재가 되어버린 강동희 감독[19]과 함께 음식점에 투자했다고 한다. 이제 수원에 운재갈비집이 생기는건가 이후 분당 정자동에 퓨전음식점을 냈지만 2012년 기준으로 망했어요...
그러나 소속팀과의 코치직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지못해 선수로 뛸수있는 다른 팀을 찾았고 2011년 1월. 전남 드래곤즈 입단이 결정되었다. 전남에서 10kg을 감량했다는데 그덕에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엄청난 선방들을 보여주고 있다. k리그 3라운드까지 3경기 1실점.
여담이지만 상당히 자존심이 강한 선수이고 인터뷰때도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김병지의 대표팀 합류설이 나왔을땐 대놓고 직설적인 말을 쏟아냈을 정도였으며 네티즌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내가 팀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느껴진다면 언제라도 옷을 벗겠다 라고 밝혔을 정도로 강한 자존심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2012년 12월 5일 은퇴했다.
1.1.1 승부차기
파일:Attachment/이운재/d6.jpg
그의 이름이 전설로 남을 수 있게 만들어준 2002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에서의 선방.
특기는 페널티킥(그리고 승부차기)방어로, K리그 통산 승부차기 전적은 12전 11승 1패 승률 91%[20]. 승부차기 전적이야 말할 것도 없으며 32골 허용 26 방어로[21] K리그 역대 승부차기 방어율 역시 1위이다. 본인 스스로도 페널티킥에는 굉장히 자신이 있어서, 2002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 때 히딩크 감독이 승부차기에 대한 지시를 해주려고 했을 때 본인의 감대로 해보겠다고 이야기 했을 정도. 특히 승부차기는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키커보다도 오히려 여러번 기회가 주어지는 골키퍼가 심리적으로 더욱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페널티킥에 특별한 비결은 없고 상대 키커가 나올때부터 볼을 찰 때까지 자세를 하나하나 끝까지 보고 움직일 방향을 결정한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순간적으로 읽는 연습을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22] 키커들의 버릇으로 공을 놓는 순간과 뒤로 갔다가 달려오기 직전의 순간 골대의 한 쪽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그런 경우는 자신의 찰 반대쪽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서 공을 놓는 순간 방향을 알 수도 있다고. 다만 상대 선수가 달려오는 거리가 지나치게 길 경우엔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져서 그냥 감으로 막는다.
2002년에 스페인과의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의 이케르 카시야스와 승부차기에서 대결,[23] 스페인의 4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막아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기도 했으며 4강전에선 미하엘 발락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고 원통함을 잊지 않고 있었는지 월드컵 종료 후 얼마 되지 않아 가진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한국의 반칙으로 얻은 패널티 키커로 발락이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방해버리고 발락에게 복수를 이뤄내기도 했다. [24]
2007년 아시안컵 때는 8강과 4강, 34위전이 전부 승부차기로 결정났다. 이란과의 8강에서 2번의 방어를 하며 4강에 진출했으나,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는 염기훈과 김정우가 실축하며 5:3으로 패배했다.[25] 일본과의 34위전에서는 한명이 퇴장당한 불리한 상황에서 0:0으로 승부차기까지 가서, 6:5의 상황에서 방어를 성공하여 팀을 3위까지 이끌었다.[26] 2009년 K리그 FA컵 결승전에서는 2번이나 막아서 수원의 FA컵 우승에 기여했다.
1.2 코치 시절
스페인으로 건너가 FC 바르셀로나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후, 2013년 12월 10일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U-22 국가대표팀(이광종호)의 골키퍼 코치로 임명되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듣기로는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워낙 현역 시절에 레전드급으로 업적을 많이 세워서 은퇴 이후 바로 골키퍼 코치로 임명했어도 그 누구도 낙하산 인사라 욕하지 않고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고 하더라 국대 합류가 시급합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끝날 때까지는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이광종호의 코칭스태프(골키퍼 코치)로 합류해 금메달 획득에 이바지했다. 특히 660분간 무실점으로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은 김승규 등의 수비라인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15년 킹스컵에서 오랜만에 모습이 비춰졌는데, 살이 많이 쪘다 (...) 세월무상 이 대회 온두라스전에서 골키퍼 김동준이 페널티킥 세 번을 연달아 막아내는 신기를 선보이고, 이창근이 편파판정을 등에 업은 태국의 일방적인 공격과 슈팅을 모조리 선방한 것으로 보아 코치로서도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 하다.
올림픽대표팀(이광종호, 신태용호) 코치와는 별개로, 2015년부터는 함께 국대에서 활동했던 안정환의 부탁을 받고 청춘 FC의 골키퍼 코치로도 활약 중이다.[27] 그리고 제작진에서도 살이 많이 찐걸 의식했는지 첫 등장 때 풍만한 뒤태라는 자막을 붙여줬다. 1분 9초
훈련 도중 골키퍼의 부재로 인해 코치인 자신이 직접 슈팅 게임에서 선방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역시 국대출신인지라 나이와 뱃살에 비해 그래도 제법 날렵한 모습. 현역때의 카리스마와는 다르게 안정환에게 사사건건 구박받는 옆집 아저씨의 풍모를 보여준다. (...)
2016년 3월 9일, 공식적으로 슈틸리케호의 골키퍼 코치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리우 올림픽이 끝난 2016년 8월 22일에 대표팀 골키퍼 코치를 떠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2 사건사고
2.1 2007 아시안컵 숙소 무단이탈 및 룸살롱 출입사건
2007년도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아시안컵 대회 도중, 동료 국가대표 선수인 이동국, 김상식, 우성용과 함께 자정즈음 국가대표팀 숙소를 무단이탈해 룸살롱에서 밤늦게 술을 마신 사실이 들통나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 언론사 뉴시스의 현지취재에 따르면 이운재는 룸살롱에서 접대부와 함께 폭탄주를 마시고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2차'까지 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당 업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성매매 유흥행위를 하는 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다 이운재 등을 접대한 현지 접대부들이 선수들을 직접 지목하며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사진까지 공개되며, 인도네시아 교민들은 선수들의 부적절한 성추문에 커다란 실망감과 분노감을 드러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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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널리 알려진 직후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은 국민에게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정환: 운재형....왜 먹었어
2015년 1월 아시안컵이 한창일때 SBS의 풋볼매거진 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운재를 인터뷰할 때 박문성이 이운재에게 2007년 아시안컵 당시 음주 사건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이운재는 "그때 당시 사건은 내가 생각해도 참 바보같은 짓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큰 일이 될 줄 몰랐었다. 그냥 선수들끼리 서로를 독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지금도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 많이 아프다."라고 말하며 반성과 후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3 트리비아
참고로 상대팀의 응원가가 "운재야 운재야 뭐하니? 골 먹는다!"이다. 근데 위의 음주사건 이후 골이 술로 바뀌었다.
별명도 다양한 편인데 잘할땐 갓운재 운재신이지만 못할때는 돼운재 반반무갑 등등으로 부른다. 그러나 2006년 독일 월드컵 전까지 2002년의 체중으로 감량하는 근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운재 체중 4년주기설 힙덕후들에게는 미국의 전설적인 힙합프로듀서인 Dr.Dre를 닮아, 운드레로 불린다. dctribe의 영향이 큰 듯.
여담으로 수원에서 잘나가는 고깃집치고 이운재 싸인이 걸려있지 않은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떠돌아 다닌다.[28] 수원 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학생들이 싸게 먹는 곳이 아닌 근당 가격이 좀 나가는 곳에는 정말로 꽤나 많이 걸려 있다고 한다. 실제로 축구잡지 포포투에서 사실임을 시인했으며 자신의 고기철학을 유감없이 밝힌 바 있다.(...) 그리고 2007년 당시의 사건이라든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볼때 술도 상당히 잘마시는듯.아니 고기집가서 술마시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그의 강력한 수비조직 조율능력에서 기인한 "펀칭후 패드립"[29] 이라는 특이한 별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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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이런 짤방도 생겼을 정도.
2002년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호아킨의 슛을 막아내고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한 것은 아내를 위해서 한 것이었으나 그의 아내는 자기에게 한 줄 몰랐다고 한다(...).
Google에서 영어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를 무슬림이라고 주장하는 블로그들을 여럿 볼 수 있다. 강제 개종. 딱봐도 술이랑 돼지갈비 좋아하게 생겼는데 무슬림일 리가
이상하게도 그가 첼시 FC에서 뛴 것으로 아는 초딩들이 가끔 있다. 이운재의 수원 삼성 시절 유니폼과 첼시의 유니폼이 비슷하고 스폰서까지 같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듯. 이런 기사도 있다. 다만 진짜 첼시에서 뛴 적은 없었다. 만약 진짜 갔었다면 존 테리한테 패드립쳤을지도 모른다.
첫째 딸 이윤아 양이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2014년 3월 15일에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출연했다. 링크
- ↑ 재학 당시 청주상업고등학교.
- ↑ 전임 주장인 곽희주가 시즌 중 성적 부진에 따른 부담감을 느껴 시즌 중 선임되었다.
- ↑ IFFHS선정 근 25년간 세계 골키퍼 순위 77위. 아시아 골키퍼 중에서 유일한 100위권이다.
- ↑ 클럽 커리어만 보면 해외 리그 경험이 있는 알리 알 합시나 가와시마 에이지가 이운재보다 좋아보이지만,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은 이운재가 압도적이다. 알 합시는 나라가 워낙 약체라서 월드컵 진출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고 가와시마는 유럽 커리어를 이어가고는 있으나 기량이 심히 떨어진 상태. 이운재의 전성기 기량이라면 유럽에서도 충분히 통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많다.
- ↑ 1위는 이집트의 전설적인 골리 아메트 핫산의 184경기. 2위는 이케르 카시야스의 167경기. 3위는 잔루이지 부폰의 161경기 그런데 카시야스와 부폰은 계속 경신(...)중이다
- ↑ 이운재의 회고에 의하면 선수생활을 포기해야 하는지 기로에 설 만큼 예후가 심각했다고 한다.
- ↑ 다만 일방적으로 이운재만 기용된 것은 아니고, 월드컵 본선 직전까지 이운재와 김병지가 주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월드컵 이후 히딩크는 월드컵 본선에서 김병지가 아닌 이운재를 주전으로 기용한 이유에 대해 이운재의 컨디션이 조금 더 좋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 다만 그렇다고 김병지가 경기 때마다 돌출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적지만 가끔 벌어지는 몇몇 상황이 사람들의 인식에 크게 박힌 것.
- ↑ 이운재와 정반대 특성의 골키퍼가 2010 월드컵 당시 지역예선 포함해서 거의 30점 다되게 실점한 바 있는 세르히오 로메로다. 로메로는 공이 하프라인만 넘어오면 바로 예측해서 공을 막는다. 때문에 코파아메리카 2011에서 우루과이 상대로 승부차기를 했을때 한번도 선방을 해내지 못했다. 안그래도 골키퍼가 이런 스타일이라 수비수의 보좌가 누구보다도 필요한 로메로였는데 그런 로메로한테 제대로 된 수비수가 마스체라노 하나뿐이었으니 독일전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 ↑ 참고로 당시 수원은 전반기 리그 꼴찌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 ↑ 게다가 수원은 후반기에 들어서 전반기의 부진을 털어버리고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인 끝에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운재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졌다.
- ↑ 오죽하면 이러다 결승전까지 승부차기로 가서 4무 우승(...) 해버리는 것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왔었다.
- ↑ 특히 마지막 3,4위전은 한일전이었던 탓에, 이운재의 선방에 따른 3위 획득은 매우 각별했다.
- ↑ 잉글랜드는 월드컵과 유로컵에서 골키퍼의 실책으로 매번 경기를 날려먹고 있다. 2012년 들어서 조 하트가 슈퍼세이브로 활약을 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 ↑ 이건은 20대 후반의 정성룡과 김영광으로 세대교체에 성공한 국가 대표팀 보다는 박호진이 반짝한 2006년을 제외하곤 10년 이상 이운재 천하였던 수원 삼성에게 더 큰 문제였다. 근데 역시 수원답게... 정성룡을 그냥 사갔다.
- ↑ 게다가 김병지가 독일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김병지와 이운재가 함께 있으면 국가대표팀에서의 이운재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이운재를 위해서 정기동 코치가 김병지를 내쳤다는 설이 지배적이어서 더욱 까였다.
- ↑ 하지만 이후 파워 프로그램을 잘 소화해서 김병지와 더불어 훌륭한 골키퍼가 되었다고 칭찬했다. 출처 : 마이 웨이(히딩크 자서전)
- ↑ 우루과이의 선제골은 그의 미스가 컸다.
- ↑ 교회에서 만나 친해졌다고 한다.
- ↑ k리그에 국가대표 경력을 넣어도 이정도 전적을 가진 골키퍼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전 역사상 승부차기에서 한번밖에 저본 경험이 없는 독일국가대표 골키퍼 정도?
- ↑ 단 키커의 실축도 포함
- ↑ 야구선수 이치로도 사용한 훈련법이다.
- ↑ 카시야스는 그 경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한국이 전반전부터 우리보다 월등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이운재와 만나서 인사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 ↑ 월드컵이 끝난 직후에는 아시아 슈퍼컵 경기를 치르러 수원 2군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사우디 클럽과 맞붙었다. 딱 14명(스타팅 11명+서브 3명, 그나마도 전원 후보)만 사우디로 건너갔고 선수교체 3명을 다 쓰기 위해 골키퍼 박호진을 공격수로 투입시킬 정도로 수원 입장에선 별로 비중을 두지 않은 경기였고 그저 이운재 한명만 믿고갔다고 할 수 있는 상황. 그 경기에서 수원은 한국산 침대의 위대함을 중동의 침대꾼들 앞에 보여주었고(...) 승부차기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필드로 오른 이운재가 사우디 슈터들의 공을 죄다 막아버렸다. 참고로 이 경기가 치러진 건 월드컵이 막이 내린 지 채 일주일도 안 되었을 때였다.
- ↑ 이는 이운재의 국가대표 승부차기에서 유일한 패배 기록이다.
- ↑ 토너먼트 내내 0득점으로 승부차기로만 승리/패배하며, 대회 중간에 술을 마시러 간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이운재에 대한 까방권이 생겼다.
- ↑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A대표팀 코치를 겸하는 신태용의 경우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 ↑ 이 소문을 최불암은 불암콩콩코믹스 남아공 월드컵 편에서 써먹었다. 이운재가 남아공에 도착하자마자 후배들을 데리고 톰슨가젤 고깃집이라는 남아공 맛집부터 도착해서 식당 주인에게 싸인을 해준다는 내용;;;
- ↑ 유래가 상당히 특이한데 경기중 수비수가 정신줄 놓고 플레이해서 상대팀에 골찬스가 나서 슈팅을 하면 일단 어떻게든 급하게 펀칭해내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격양된 표정과 목소리로 수비수들을 강하게 질책하는일이 많은데 마치 그 모습이 패드립 치는거 같이 격한 모습이라 이런 별명이 붙었다. 독일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인 올리버 칸 역시 이런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