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

決定論
Determinism

1 개요

만사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믿는 사상.

사실 구체적으로 학문적으로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고대인은 이를 너무나도 당연하고 뻔한 이치라고 생각했으니까(신화의 혈통 강조, 신과 인간의 운명적 파멸 등). 그리고 오히려 '신의 섭리'에 의문을 가져봄으로써(혹은 대체재) 역설적으로 결정론은 구체화될 수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형성되어가던 결정론의 대한 공격은 대부분 실패하거나 '자유 의지' 등 근거가 딱히 없는 자기만족이었고 결국 '강한 결정론'인 기계론적 결정론이 근대까지 위세를 떨치게 된다.

그러나 현대 들어 양자역학적 성과를 필두로 하여 기계론의 무결성이 처참하게 분쇄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인과율이 소멸한 것도 아니기에 기계론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확률론적 결정론이 현재 시점에 살아 남은 '결정론'이다. 결정론과 정반대되는 것으로 모든 것을 혼돈으로 치부하는 우연론이 있으나 자기모순[1]을 해결하기 어렵다보니 위상이 매우 초라하다.

2 배경

17세기에 데카르트베이컨 등의 경험주의와 합리주의가 만들어져 자연과학의 토대가 성립되었고, 그에 영향받은 아이작 뉴턴물리학을 통째로 일으켜세웠다. 그 때 뉴턴은 가장 기본이 되는 세 개의 법칙을 이야기하는 뉴턴의 운동법칙과 그로부터 미적분이라는 사기스킬기술로 세상을 정량화된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자연 법칙을 기본법칙과 이성으로 알아냈다! 이것은 데카르트가 추구했던 기본 원리로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는 모습 아닌가?[2] 그렇다면 물리학이 뻗을 수 있는 모든 곳, 즉 우주를 모두 겨우 수 개의 기본법칙으로부터 모두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아이디어가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작 뉴턴은 자신의 법칙을 활용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설명할 수 있게 만들려는 데카르트를 좋게 보지 않았지만. [3]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물리학을 벤치마킹한 화학이나 생물학이 성공을 맛보았고, 그에 따라 통계학정치철학 분야에서 뉴턴철학을 따르라는 기조로 사회학이나 경제학같은 신학문들을 만들어 또 성공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성립함으로 인해 완전무결하게 결정된 바를 말할 수는 없게 되었다. 웃긴 건 정작 이렇게 된 원인을 제공한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혐오하면서 "양자역학은 정말로 인상적이다. 하지만 나의 내면의 목소리는 내게 이것이 아직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론은 많은 것을 설명해 주지만 오래된 것의 비밀에 우리를 가까이 데려다주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신이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종교인이 아니었으므로 여기서 '신'을 기존 기계론적 섭리로 치환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3 의의

"범죄 행위의 책임 소재를 묻기 위해서라도 결정론은 옳아선 안 된다"는 주객전도식 사고를 당연한 줄 착각하는 경우가 흔하고, 이는 지성인을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많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근대 들어 대두된, 자유 의지에의 칭송에 배치되어 애꿎은 결정론에 케케묵은 종교적, 무속적 이미지를 덧씌워서 결정론의 권위를 훼손시켰기 때문에 나올 수 있게 된 말이지 무슨 대단한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교육 과정까지 결정론을 일부러 언급 회피하는 이유는 민간에 전설로 전해지던 '정감록 사태'로 설명할 수 있다. 어설프게 알면 아무래도 일반인은 "어차피 정해진 운명 막 살아야지."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 그러나 운명이 설령 정해져 있더라도 그 시나리오를 우리가 정확히 인지할 방법이 없는 이상 노력을 하느냐 마느냐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다. 오히려 우리는 인과를 강하게 긍정하기에 계획을 수립하고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설령 범죄자로 정해진 운명이 있을 지라도 처벌과 격리 조치가 반드시 부정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저런 생각은 순전히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기 위해 그들의 생득적인 환경을 무시하고 스스로에게 맘 편히 징죄할 면죄부를 주려다 보니 생기는 것. 즉 죄벌의 인과는 무시하지도 못하면서(애초에 '논리'라는 것 자체가 결정론적) 자유 의지를 억지로 첨가하는 쪽이 더 어색하다.

냉정히 말해서 자유 의지는 전혀 그 존재가 증명되지 못했으며 그저 가정하기 위해 가정했던 에테르나 다를 바가 없다. 영혼 또한 마찬가지로 당장 뇌를 통해 감정이나 행동을 어느 정도 조작할 수 있음이 밝혀져 있으니 오캄의 면도날을 피하기 어렵다. 흔히 결정론을 공격하기 위해 내세우는 '확률론적 결정론'도 결국은 양자역학적 특이성만 포함시켰을 뿐이지 일상에 적용할 때는 기존 기계론과 다를 것이 없는 엄연한 결정론이다. 즉 학문 체계의 근간이나 마찬가지인 인과, 그리고 결정론은 일반인이 어떻게 오해하더라도 아직도 존중 받고 있으며(애초에 과학 실험 자체가 결정론의 의식이나 마찬가지) 심지어 그들조차도 무의식적으로 긍정하는 행동을 보이며 살아간다. 단지 기계론만 타격을 입었을 뿐. 물론 이미 무결성이 사라진 이상 '확률론적 결정론'이라는 머리가 둘 달린 이론이 해괴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긴 하다(당연히 이런 괴리감 또한 인과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코펜하겐 해석이 당시에 큰 충격을 주고 아인슈타인도 어떻게든 반박해보려고 애썼던 것이고. 근데 현재로서는 보이는 것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1. 논리를 따지는 것 자체가 철저히 인과적인 행동인데 이를 부정하는 것을 '이론'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 혼돈의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그들은 아무 것도 '계획'하지 않으며 살고 콩 심은데 콩이 난다는 걸 부정하고 살아가는가? 그런데 이런 질문조차도 혼돈 속에선 정해진 게 없으므로 무의미하고 여기서 무한히 파생되는 상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혼돈의 세상은 이럴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혼돈이다!"라고 정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니 더욱 의미가 없지만. 그렇다고 어느 정도라도 정해진 이치를 인정하면 이미 결정론의 테두리 안에 들어서게 된다.
  2. 그는 철학과 세상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제 1명제로부터 모두 설명하고자 했다.
  3. 뉴턴은 그를 두고 '그는 가능하면 신 없이 구원받고 싶었다.'고 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