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교향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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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교향곡 제1번 C장조 작품 21
(Sinfonie Nr.1 C-dur op.21/Symphony no.1 in C major, op.21)
1 개요
번호 그대로 베토벤이 생애 처음으로 발표한 교향곡이다. 작곡 시기는 1799년부터 1800년까지. 선배들인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각각 스물다섯살, 여덟살(!!!)에 첫 교향곡을 썼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달걀 한 판을 채운 삼십줄에 첫 곡을 완성한 셈이라 결코 빠르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전에도 물론 교향곡 창작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고, 실제로 만약 완성했다면 수십 곡을 완성할 수 있는 방대한 초고(스케치)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중 작품으로 나온 것은 이 곡 하나 뿐이어서, 고전파 선배들과는 달리 굉장한 공을 들여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가장 초기의 곡인 만큼 아직 선배들의 강한 영향력에 놓여 있는데, 그 와중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통해 관습화된 규칙을 깨려는 모습도 엿보인다. 실제로 이 곡은 요즘의 평과 달리 처음 소개되었을 때 '상당히 색다른 작품' 으로 평가받아, 이후 발표하는 교향곡들과 마찬가지로 활발한 논쟁을 유발했다.
2 곡의 형태
전형적인 4악장 형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1악장의 느린 서주 첫머리에 C장조라는 기본 조성을 쉽게 예상하지 못하도록 다른 조성의 화음을 갑툭튀시켜 의표를 찌르고 있다.[1] 다소 파격적인 서주 뒤에 나오는 빠른 본론 부분은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지만, 끝을 맺는 종결부(코다)를 선배들보다 더 늘려놓아 균형을 깨고 있다.
2악장에서도 1악장과 마찬가지로 소나타 형식을 쓰고 있지만,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몇몇 후기 교향곡들에서처럼 당시 교향곡의 느린 악장에서는 잘 쓰지 않았던 트럼펫과 팀파니를 약한 팡파르처럼 뒷배경에 깔아주는 대담함도 보여준다. 3악장은 고전 교향곡의 미뉴에트로 되어 있지만, 미뉴에트라고 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추진력도 훨씬 강해 훗날 많이 쓰게 되는 스케르초를 예견케 한다.
마지막 4악장에서도 1악장과 마찬가지로 느린 서주를 뒀는데, 전체 관현악이 한번 꽝 때려준 뒤 약간 밍기적대는 식으로 가다가 본론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도 1,2악장과 마찬가지로 소나타 형식을 쓰고 있다.
관현악 편성은 플루트 2/오보에 2/클라리넷 2/바순 2/호른 2/트럼펫 2/팀파니/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라는 전형적인 고전 시대의 2관 편성 스펙. 하지만 그 당시로서는 아직 많이 보급이 안된 클라리넷을 중용해 완벽한 목관악기 셋팅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 비중은 아직 미미하지만.
3 초연
첫 공연은 1800년 4월 2일에 오스트리아 빈의 부르크테아터(부르크 극장)에서 있었는데, 베토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처음 시도한 '아카데미' 음악회였다. '아카데미' 는 당시 상업적인 의도로 행해진 음악회를 일컫는 단어였는데, 당시 관현악 음악회는 그리 보편적인 공연 형태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작곡가의 수익을 의도하고 치르는 상업적인 공연은 드물었다.
이 음악회에서는 선배인 모차르트의 교향곡[2]과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의 아리아 몇 곡이 베토벤의 자작곡인 7중주, 피아노 협주곡 제1번과 함께 공연되었다. 선배들의 곡을 적절히 섞어놓고 자신의 작품과 비교하도록 한 전략이었는데, 비평가들의 견해는 엇갈렸지만 대중적으로는 크게 성공했다.
4 트리비아
20세기 초반에 이 곡보다 먼저 완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교향곡 하나가 발견돼서 한참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위작. 그래서 이 곡이 '2번' 으로 수정될 일은 없다. 자세한 사항은 예나 교향곡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