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교향곡 | ||||
1번 | 2번 | 3번 (영웅) | 4번 | 5번 (운명) |
6번 | 7번 | 8번 | 9번 (합창) | 10번 (미완성) |
정식 명칭: 교향곡 제3번 E플랫장조 작품 55 '영웅'
(Sinfonie Nr.3 Es-dur op.55 "Eroica"/Symphony no.3 in E flat major, op.55 'Eroica')
“이 교향곡은 착상과 처리가 아주 힘차며, 그 양식은 숭고하며, 시적인 영감을 품고 있다. 이 교향곡을 들을 때 나는 헤아릴 길 없는 깊은 고태(古態)적 슬픔에 잠긴다”
“교향곡 제3번은 완벽한 인격에서 우러나온 작품이며, 감정의 유연성과 정력적인 힘이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완성에의 정진이야말로 이 작품의 영웅적 성격을 뚜렷하게 하는 것이다”- 리하르트 바그너
정명훈이 지휘한 '영웅'.
1 개요
교향곡 제9번의 완성을 앞두고, 쿠프너[1]가 베토벤에게 8개의 교향곡 중 가장 맘에 드는 곡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3번이라고 답했다. "C-Minor가 아니고요?" 베토벤은 다시금 딱 잘라 말했다. "아니오, 에로이카요."
베토벤의 세 번째 교향곡. 1803년에 작곡된 곡인데, 당시 나온 모든 교향곡들 중 가장 파격적인 곡이자 베토벤의 중기 시대를 대표하는 킹왕짱 중요한 작품이다. 제목인 영웅 에서부터 풍겨나오는 간지가 장난이 아닌데, 다만 처음 의도한 표제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름을 대놓고 쓰고 있었다. 아예 곡을 나폴레옹에게 바치려고도 생각한 모양. 사실 여기에는 당시 빈 주재 프랑스 공사였던 장 밥티스트 베르나도트가 베토벤에게 나폴레옹에게 교향곡 하나 써서 헌정해보는게 어떻수라고 은근히 제안한바도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베르나도트가 나중에 나폴레옹을 배신하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하지만 베르나도트로서도 뛰어난 음악가인 베토벤에게서 나폴레옹을 찬양하는 음악을 받아내는 공을 세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긴 하다. 어쨌든 베르나도트가 베토벤에게 곡을 직접적으로 쓰라고 한것은 확실치는 않지만 적어도 두 사람이 나폴레옹에 대해서 대화를 몇차례 나눈것은 사실이다.
베토벤은 본에 있을 때부터 프랑스 대혁명의 열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나폴레옹을 대혁명의 기조인 '자유, 평등, 박애' 를 구현해줄 영웅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갈 수록 민주주의보다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는 등의 행보가 계속되자 점차 의심스럽게 보게 되었고, 결국 황제로 기믹 체인지한 뒤에는 제대로 꼭지가 돌아 정성들여 작성된 악보 표지를 찢었다. 베토벤의 제자 페르디난트 리스의 증언인데, 다만 이 때 찢은 것은 자필보가 아닌 필경이 작성한 필사보였다. 하지만 자필보에도 나폴레옹의 이름이 거칠게 긁혀 지워진 것으로 봐서는 꽤 심하게 빡돌았던 듯. 그래서 최종적으로 붙인 제목이 'Sinfonia Eroica 교향곡 영웅'.
"영웅"은 이 곡뿐만 아니라 베토벤의 중기 스타일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볼수있다. 이미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썼을 정도였던 베토벤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그것을 이겨내는 영웅이라는 것을 생각했다고 볼수있다. 이런 것들에 외면적인 영웅인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들이 결합되어서 이 곡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것이 타당할 것이다.
생전에도 꽤 유명했던 곡이었고, 위의 쿠프너와의 일화처럼 베토벤 자신도 이 곡에 꽤 애착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수도 없이 많이 연주되고 녹음되어 베토벤의 홀수번 교향곡의 인기를 입증하고 있는 중.
2 곡의 형태
일단 악장 숫자는 그냥 고만고만한 네 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데, 비교적 전통적인 형식의 3악장을 빼고는 미칠듯이 규모가 커지고 엄청난 파격이 가해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1악장의 경우 서주 격으로 두 번 꽝꽝 때려주고 시작하는데[2], 주제 두 개를 던져주는 것은 고전 시대와 마찬가지지만 그 주제를 주물러대는 전개부는 무려 200마디를 훨씬 넘을 정도로 확장되어 있다. 길이만 길어진게 아니라 리듬의 파격[3], 불협화음, 잦은 조바꿈 등으로 거의 폭력적인 인상까지 주고 있다.[4] 주제를 다시 내놓는 재현부나 마무리짓는 종결부도 기존의 것과 달리 많이 변화시키고 있다. 애초에 내림마장조는 신성한 것을 찬양하는 데나 쓰였던 장조인데 이를 인간을 위해 가지고 내려왔다는 데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1악장의 첫 번째 주제는 탄호이저 서곡이나 좀 과하게 보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에서도 그 단편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널리 퍼져 있다.
2악장은 '장송 행진곡(Marcia funebre)' 이라고 달아놓았는데, 나폴레옹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좀 많이 브람스 교향곡 1번 1악장과 비슷한 음악이다.[5] 어쨌든 한층 달아오른 기분을 한번에 주저앉히는 효과를 보이는 무겁고 어두운 대목인데, 물론 기본적으로는 그런 조용하고 어둠에 다크한 정서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간에는 C단조와 반대되는 조성인 C장조로 한층 밝아지게 되고, 후반에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강음을 시작으로 한, 결코 다크하다고만은 볼 수 없는 매우 드라마틱한 악구가 등장한다. 느린 악장에 단조 조성을 사용하는 것은 이전에도 꽤 자주 볼 수 있던 시도였지만, 이 정도로 확장되고 비극적인 감정 이입을 시도한 예는 없어서 이것도 중요.[6] 이 장송행진곡의 반주에서 등장하는 소위 "운명의 동기"는 이후 5번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5번의 스케르초 악장이 1803년에 시작되었다고 보는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3번과도 무관하지는 않아보인다.
3악장은 전작인 2번과 마찬가지로 스케르초인데, 템포가 훨씬 빨라져 4분음표 세 개가 한 박으로 취급되는 스피드를 보여준다. 중간 부분에서 호른 세 대가 부는 사냥 나팔식 악구가 튀어나오는 것이나, 처음 부분이 다시 반복되는 대목에서 갑자기 박자를 확 바꿔 진행하는 부분 등도 꽤 신선한 대목.
마지막 4악장은 특이하게 주제 하나를 내놓고 여러 방법으로 가공하는 변주곡 형식을 썼는데, 그 주제가 예전 작품들에서 이미 울궈먹던 멜로디라서 재활용이 비교적 적었던 베토벤의 창작 방식상 꽤 이례적인 경우로 여겨진다.[7] 그리고 그냥 변주만 죽어라 하는 것도 아니고, 텐션을 주기 위해 푸게타(짧은 푸가)를 도입하거나 소나타 형식의 전개부 원리를 응용하는 등[8] 여러 가지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관현악 편성은 다음과 같다. 플루트 2/오보에 2/클라리넷 2/바순 2/호른 3/트럼펫 2/팀파니/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호른이 두 대가 아니라 세 대가 쓰인 것이 우선 눈에 확 띄고 있다. 물론 선배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도 호른을 네 대 사용한 교향곡을 남기고 있지만, 드문 경우이며 더군다나 이렇게 홀수 단위로 쓴 예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거의 없다.[9] 이 세 대의 호른의 역할 분담도 주목할만한데, 세 대 모두 같은 조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1번이 최고음, 3번이 중고음, 2번이 저음 이렇게 역할이 분담되어 있다. 세 대가 모두 함께 운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때때로 3번 호른이 1,2번과 독립적인 용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1악장 재현부에서는 1번 호른이 F조로 잠시 이조한 후 다시 Eb조로 크룩을 갈아낄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서 3번이 한동안 실질적인 1번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콘트라베이스가 첼로와 독립적으로 연주된다는 점도 기존 고전파 교향곡과 다른 점이다.
3 초연
일단 1803년에 완성한 뒤 이듬해 12월에 자신의 후원자였던 로브코비츠 공작의 집에서 소규모 편성한 악단으로 비공개 시연했다. 공개 연주회는 1805년 4월 7일에 빈에서 진행했는데, 워낙 규모가 크고 파격적인 형태의 작품이라 전작 교향곡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심지어 베토벤을 옹호하던 진보적인 비평가들도 '곡이 너무 길어졌으니 축소시켜야 한다' 고 우려섞인 평을 내놓았고, 3악장의 경우 다른 악장에 비하면 뱀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여론에도 베토벤은 꿈쩍하지 않았는데, 다만 곡의 규모가 너무 커서 연주가 힘들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했다. 그렇다고 축소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절대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4 가필
베토벤 교향곡 연주에 있어서 금관악기 가필 문제는 항상 논란거리다. 베토벤 시대의 호른과 트럼펫 같은 금관악기는 밸브나 피스톤 그딴거 없이 오로지 입술과 호흡의 조절만으로 얻어지는 배음만 낼 수 있었다.[10] 때문에 낼 수 있는 음이 제한적이었고 지금처럼 다양한 음들을 쓸 수 없었다.
영웅 교향곡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부분은 1악장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첫 주제를 튜티(총주)로 연주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곡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기 때문에 연주 효과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 베토벤이 쓴 악보에는 이 부분에서 첫 주제를 트럼펫이 세게 연주하다가 갑자기 버로우하고 훨씬 음량이 약한 목관악기들이 계속 이어받는 식으로 쓰여져 있다. 실제로 당시 트럼펫으로는 이 선율을 끝까지 제대로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악보대로 연주한 음반을 들어보면 굉장히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후에 금관악기에 밸브가 도입되면서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호른과 트럼펫이 모든 음을 연주할 수 있게 되자 이 부분에서 트럼펫이 목관악기로 넘어간 부분까지 모두 연주하도록 가필하는 것이 일반적인 연주법이 되었다.[11]
이 부분이 아니더라도 당시 금관악기들이 지금처럼 모든 음표를 다 연주할 수 있었다면...하는 부분들이 곳곳에 있다. 이전 세대 지휘자들의 경우 이런 부분들에서 음악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호른 등을 보강하여 연주는 경우가 있다. 특히 토스카니니, 칼 슈리히트, 마리스 얀손스 등은 비교적 적극적으로 호른의 가필을 허용하는 지휘자들이다. 말러의 경우 이러한 문제점을 참지 못하고 아예 곡 전체의 금관악기 파트를 재편곡 개념으로 뜯어고쳐 공연한 지휘자도 있을 정도.
하지만 20세기 후반, 영국을 중심으로 곡이 작곡된 시대의 양식 고증을 시도하는 시대연주가 붐을 일으키면서 이런 가필이 작곡자의 의도를 그르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일부 음악학자들은 앞서 언급된 1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베토벤이 나폴레옹의 그릇된 행보를 풍자하기 위해 일부러 금관을 주저앉힌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시대연주 지휘자들 가운데서도 이 부분이 나폴레옹의 몰락을 상징한다면서 악보대로 연주하면서 일부러 트럼펫의 버로우를 강조해서 연주하기도 한다.[12]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말이 안되는게 곡이 작곡되고 완성된 시기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기 전으로 베토벤이 한창 나폴레옹을 숭배하던 시기였다. 곡이 완성된 후에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했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이 격분해서 악보의 겉장을 찢었지만, 곡 자체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 시대연주자들이 스스로 고증과 정격성을 중요시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의 기본적인 전후 관계조차 파악하지 않은 억지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그들이 내세우는 시대연주의 고증의 정확성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13]
그리고 베토벤이 하도 악필이라, 남아 있는 자필보는 낙서인지 악보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다(…). 그래서 출판된 악보들도 편집자나 출판사에 따라 저마다 상이한 부분이 종종 발견되는데, 1990년대 후반에 조나단 델 마의 편집으로 간행된 베렌라이터 음악출판사의 악보에는 4악장에서 현악기만 연주하는 첫 변주가 현악 파트 전체가 아닌 파트 당 한 명씩 현악 3중주나 현악 4중주 형태로 연주하라고 지정되어 있는 등 새로운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델 마의 연구와 편집에 비판적인 여론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현재는 이런 시대연주 음악학자들의 날선 비난의 칼날을 피해가기 위해서 가필없이 악보대로 연주하는 지휘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얀손스처럼 그딴 비판에 상관없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가필을 추가해서 연주하는 지휘자도 있지만...
5 트리비아
이 곡을 애호한 집단 중 하나로 나치가 있다. 교향곡 제9번(베토벤)과 함께 각종 나치 행사에 즐겨 사용하였는데, 이는 이 곡 특유의 힘 있고 파격적인 내용이 나치가 좋아하는 영웅주의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 물론 나치는 베토벤이 왜 나폴레옹의 행위에 분노했는지는 신경쓰지 않았다(...). 프랑스 대혁명을 지지한 공화주의자인 베토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무덤에서 일어날 짓.
- ↑ Christoph Kuffner(1780~1846), 오스트리아의 시인. 베토벤의 합창 환상곡(Op.80)의 가사를 써준 이력이 있다.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완성한 후 다음 작인 합창 환상곡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협주에 성악을 믹스하는 신선한 형식을 시도했고, 이 곡에서 얻은 자신감과 경험이 교향곡 제9번(베토벤)의 바탕이 되었다.
- ↑ 일단 이것만 해도 엄청난 파격. 베토벤을 가르쳤던 하이든의 교향곡만 봐도 일단...
- ↑ 기본 리듬은 3/4박자지만, 곳곳에 짝수 박자의 흐름을 갖는 악구가 삽입되어 박자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스코어를 펴놓고 보면 어지럽기까지 하고 대부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는 불협화음의 온상이 되기 마련. 하지만 이렇게 해서 곡을 이끌어 나가는 힘이 거의 무한정으로 뿜어나온다.
- ↑ 하지만 전개부는 어차피 주제를 소재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섹션으로서 전개부에서 이런 행위를 하는 것 자체는 클래식에서 허용되는 사항이므로 이걸 너무 파격적이라고 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 ↑ 뭐, 나폴레옹이 대변하는듯 했던 혁명정신의 죽음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 ↑ 그래서인지, 실제로 유명 인사의 장례식에서 이 2악장만 떼어 연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 ↑ 여기서 말고도 무려 세 번이나 더 써먹었다. 춤곡 모음인 '12개의 콩트르당스', 발레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마지막 곡과 피아노 독주곡 '에로이카 변주곡'.
- ↑ 뭔소리냐면 주제선율을 통째로 가져다가 변형한다는 변주곡 형식의 통념을 깨고 주제선율의 특정 소재로부터 악상을 전개시킨다는 것이다. 또다른 예로는 벤자민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이라는 관현악곡이 있는데, 악기별로 주어진 주제를 변주하는데 통째로 변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의 첫 음에서 새로운(?) 악상을 파생시키는 것이다.
- ↑ 굳이 홀수로 사용한 예를 찾자면 말러 교향곡 제1번에서 호른이 7대 사용되었다. 그런데 말러 교향곡 1번도 첫번째 버전에서는 호른이 네 대였다. 이후 개작하면서 7대로 증강했다.
- ↑ 호른의 경우는 손으로 바람을 조절하여 좀 더 많은 음을 낼 수 있었다.
- ↑ 트럼펫 뿐만 아니라 호른 파트에도 동일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등의 지휘자는 호른까지 보강해서 이 선율을 연주하도록 하고 있다.
- ↑ 물론 죽은 작곡가는 말이 없다.
- ↑ 다만 나폴레옹을 배제하고, 어떤 영웅을 다루는 곡의 이야기 구조에서 생각한다면 바로 다음의 느린 악장이 장송행진곡이기에 '영웅의 쓰러짐'을 묘사하는 쪽이 설득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