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여태껏 많은 귀족들을 죽여왔다. 여제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를바 없을 것이다." - 다우드, 디스아너드[1]
"네놈이 어떤 조선, 어떤 정치체제를 만든다 해도 누군가는 빼앗고, 누군가는 빼앗기지. 누구는 짓밟히고, 누구는 짓밟지. 윗것들은 대의를 말하지만, 다 그게 그거야. 결국... 개헛소리!" - 뿌리깊은 나무, 이방지
대립하는 집단이 있는데 두 집단의 수준이 (나쁜 쪽으로)[2] 비슷할 경우 사용하는 말. 정치, 사회에 대한 관심을 끊은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양비론의 가장 전형적인 예시이기도 하다. A도 나쁘고 B도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의 예시가 정치, 사회쪽 예시만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 쪽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긴 하다.
양비론과 마찬가지로, 이 말 자체는 옳다 그르다를 평가할 수 없는 명제 자체가 아니다.A=B 이거일 뿐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서 적절한 표현인지 잘못된 왜곡인지가 드러난다.
2 정치에서
예시 : 정치인은 그놈이 그놈이니까 A당 뽑든 B당 뽑든 똑같은데 뭘. (+ 어느 쪽을 선택해도 상관없잖아. / 그냥 선택을 하지 말자.) |
여기서 보통 '그놈이 그놈이니까 정치에 관심갖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네가 정치할 꺼냐?'로 이어지는 게 대부분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지만 양비론 =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다. 양비론적 태도가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을 뿐이지, 정치에 의욕적으로 참여하는 사람 중에도 양비론적 태도를 가진 사람(흔히 말하는 중립적 사고)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정치 현안에 대해 A정당이 a라는 정책을 내놓았고 B정당이 b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스스로 그 현안에 대해서 c라는 정책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여 두 정당 모두 틀렸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양비론적 태도를 가졌으나 정치적 무관심에는 빠지지 않은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이라면 c라는 정책을 내놓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런 오해가 널리 퍼진 것은 한국의 정치 참여 구조가 유권자들이 스스로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당을 찾아 지지하는 것보다 정당의 정치적 입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현상이 보편화해 있기 때문이다. 즉, 특정 정당의 입장을 맹종하는 사람은 제3자가 정당의 것이 아닌, 자기만의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니가 못한다고 남까지 못하냐?
양비론자 = 정치적 무관심에 빠진 사람이라고 무조건 몰고 가는 것은 흑백논리의 변형판이나 다름없다.
3 논쟁에서
논쟁에서는 흔히 물타기로 불리는 논점 흐리기,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세력에 대한 두둔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여론 호도나 전환을 위해 쓴다. 여기에는 프락치질이나 코스프레를 동원한다.
예를 들어 A세력과 B세력이 서로 경쟁관계인데 B세력이 내/외부의 잘못으로 비판을 받거나 수세에 몰렸을 때, B세력의 사람이 중립인 척 혹은 온건한 A세력의 사람인 척 하며 "A나 B나 똑같아!" 라는 식으로 깎아 내리는 것이 그것. 주로 쓰이는 곳은 정치적 논쟁이지만, 친목질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간의 다툼에도 두루 나타난다.
가장 단적인 예는 이런 식이다.
(전략) A : 그러니 B세력을 처벌해야 합니다! B : 너네는 털어서 먼지 안 나오냐? (후략) |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현재 토론의 핵심은 "B세력을 처벌하느냐? 마느냐?"인데 뜬금없이 "A세력에도 잘못이 있다"라며 핵심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결국 말이 안 되는 셈이다.
4 오용
그냥 무관심하거나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자신을 포장하고 허세를 떨기 위해 곧잘 인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저렇게 말하면 마치 모든 걸 통달하고 파악해서 실망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저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진짜로 뭘 좀 알아서 그놈이 그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몇마디만 물어봐도 바로 밑천이 나온다. 예를 들어 인생을 아이돌 추적에 쏟아붓는 빠순이 사생팬들이 선거철만 되면 선거방송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이 취소되는 걸 욕하며 그놈이 그놈인데 무슨 선거냐는 불만을 입에 달고 산다.
물론 틀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몇십년이나 지켜보기는 힘들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문자로 기록한 것이 남아있는데 굳이 직접 실험할 필요가 있을까? 역사는 무엇이 일어날지 어렴풋이나마 알려준다. 물론 이 말을 쓰려면 명확한 기준과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게 바로 경험과 지식이다.
5 기타
양비론에 잘못 빠지면 쿨게이가 된다. 하지만 정치적 무관심과 마찬가지로 모든 양비론자가 쿨게이인 것은 아니며, 거꾸로 모든 쿨게이가 양비론자인 것도 아니다. 양비론적 태도를 가진 사람이 (근거를 제시할) 지식이 부족해서 쿨게이가 되기 더 쉬운 경향이 있을 뿐.
비슷한 표현으로 '오십보백보', '도토리 키 재기', '그 나물에 그 밥' 등이 있으며, 도긴개긴, '모두까기 인형'이 있다.
간혹 도긴개긴을 도진개진, 도찐개찐, 도낀개낀, 도끼니개끼니, 개진도진 등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표준어가 아니다. 참고로 '그놈이 그놈'도 사실 그 놈이 그 놈으로 띄어 써야 맞는다.
하지만 이런 말을 무조건 나쁘다고 비난하기만 할 것은 아니다. 진짜로 둘 다 막상막하로 나쁜 놈이라 어느 쪽에도 동조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주체사상에 경도된 북한 학자들과 순수 공산주의 학자들은 서로 대립하는데, 이런 때 일반적인 한국인이 둘의 대립을 보고 "그놈이 그놈"이라는 반응 외에 어떤 반응이 나올 수 있겠는가? 북한을 공격한다
그실일, 진짜 그 놈이 그놈이다.